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샤토니 여덟 번째 공연 

 

12월 7일 수요일, 오늘은 여러모로 관객부터 시작하여 참 굉장했던 날이에요. 4일이 정적 캐스트의 조합이었다면 오늘은 동적 캐스트의 조합이었던 것 같아요. 기합 가득 들어간 객석과 만나 무척 흥겨운 공연이었습니다. 이 밤도 무척 즐거웠어요. 덕분에요. 

 

*

 

정택운 리프보다 연기하는 대사의 높낮이가 확연한 편인 배나라 리프. 그와 호흡 맞추는 첫 장면, 토니 목소리의 고저도 좀 더 선명해집니다. 특히 오늘의 첫 대사가 꽤 하이했어요. (첫 대사가 뭐였는지 벌써 기억이 안 나요. 8일 공연을 듣고 채워 넣어볼게요. 가능하다면요.)

깨알 같은 주고받기도 새로 생겼습니다. 

“이런 내가 실망스러우면, 지금 당장 우리 집에서 방 빼도 돼.”

리프의 어깨를 손등으로 두 번 툭툭 치고 지나치는 토니. 한쪽 눈썹 살짝 올린 얼굴이 세상 무심하고 멋있었어요. 

 

그리고 초반에 웃음 만발하게 한 포인트. 

그렇지 않아도 그간 쭉 김찬호 베르나르도와의 공연이었던지라 임정모 베르나르도를 오랜만에 보는데, 보자마자 아니 원래 저렇게 사람이 컸었나 했거든요. 마치 그 마음을 읽은 사람처럼, 샤크를 상대하려면 토니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걸 피력하며 배나라 리프가 말하기를

“베르나르도 덩치가 더 커졌어. 냉장고만 해졌어.”

진짜 과장 아니고 진짜 냉장고만 하던 사람을 냉장고라 하니 더없이 찰떡일 수밖에 없는 와중에 눈도 입도 동그랗게 뜬 토니가 한 마디를 더 얹었습니다. 

“더 커졌다고..?” 

토니와 리프의 생생한, 진짜 수다를 엿보는 것 같은 순간이었어요.

 

토니 인생의 굴곡과 새 출발에의 결심을 알려주는 회심의 대사에도 살짝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중간에 쉬는 구간이 생겼거든요.

“이제 진짜, 그만하고 싶어.”

‘진짜’를 강조하며 잠시 뜸을 들이더라고요. 덕분에 한 박자 밀린 ‘그만 하고 싶어’가 평소보다 나직해지면서 얼마나 진짜로 그만하고 싶은지 그 마음이 새롭게 전달되었어요. 

 

“뱃속부터! 무덤까지! 죽든 살든 어이!”

오랜만에 재회한 배나라 리프와는 새 동작을 고안해왔습니다. 어이! 구호 맞추어 골반 박치기로요. 

 

 

Something’s coming

막판에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컨택 때문에 기억이 혼몽한데요, ‘말이나 해보자’며 계단 오르기를 마칠 때 뜀뛰기 하듯 토니의 발끝이 붕 떠 있던 건 똑똑히 기억해요. 이 대목에서 달나라 탐방하듯 땅에 닿지 않는 걸음걸이를 너무나 좋아하거든요. 4일에는 뜀뛰는 도약이 다소 낮았는데 오늘은 한눈에 가늠하기에도 공중에 붕 떠 있어서 보기에 몹시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오늘의 환호가 무척 대단했어요. 우렁찬 갈채가 넘버 끝에 터져 나왔거든요. 덕분에 토니의 원래도 빛나는 눈동자가 기쁘게 반짝이는 모습을 보았어요. 암전될 때까지 반짝반짝. 힘, 단단히 받은 채로요. 

 

 

Maria 

넘버로 이어지는 마리아 연발 중에서 마지막 ‘마리아.’

마리아의 이름을 내뱉으면서 더 벅차오르는 그 어투가 좋았어요. 이름 석 자 알아서 너무 기쁘고 견딜 수 없이 벅차오른 음성이 넘버 내내 귀에 감돌았을 정도로요. 너의 이름을 알았을 때 비로소 이 마음에 사랑이라 정의할 수 있는 감정이 새파랗게 피어나고 있다는 걸, 마리아 단 세 음절로 들려주었어요. 토니가요. 

 

그리고 오랜만에(?) 얼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등호를 사용한 한 줄이면 돼요. 이렇게요. 

토니 얼굴 = 어쩜 이토록 아름다울까. 

 

 

Tonight

“나만 보면 돼.”

2-4일에는 어절 단위로 쉼표를 넣어 강조하더니, 오늘은 단숨에 다 쏟아냈어요. 물 흐르듯이요. 토니의 마음이 지금 이 순간 마리아를 향해 얼마나 물밀듯이 세차게 흘러가고 있는지, 확 느껴지는 톤이었어요. 

 

그런데 토니의 도입 소절, “더 이상 무엇도 필요 없어” 여기서 원래 토니가 마리아의 볼을 쓰다듬던가요? 오른 볼에 조심스럽고도 부드럽게 닿는 손길이 제 눈에는 생경했는데요.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뻗어진 손길이라 굉장히 풋풋하고 또 애틋했어요. 

 

난간에 기대어 마리아 기다리는 장면은 꼭 사진으로 주세요, 쇼노트. 줄 때까지 쓸 거양. 

 

 

닥 아저씨네 가게

“정정당당하게.”

(정확한 대사는 가물한데 아무튼 정정당당)

베르나르도에게서 리프로 시선을 옮긴 토니, 잠시 무언의 눈빛을 나누는데요. 곧이어 리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토니의 말을 이어받아요. 베르나르도에게 재차 악수를 제안하면서요. 

“정정당당하게.”

그 순간 마음이 짜르르 울렸어요. 

분명 토니가 등장하기 직전까지는 깔끔하게 다 같이 붙어서 한판에 끝내자고 했던 리프가, 예정에도 없던 방식(대표 한 명씩만 나와서 맨손 싸움)으로 승부를 내기로 한 거예요. 토니로부터 사전에 어떤 언질을 받은 바 없었음에도요. 단 한 번의 시선 교환만으로 토니의 의도를 다 이해하고 수용까지 막힘없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는데.. 토니와 리프, 너희들 진짜 친한 친구 맞구나. 괜히 뭉클해지더라고요. 그러니까 리프의 죽음은, 토니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무언가인 거예요. 

 

“병! 칼! 총!” 쓰리콤보는 오늘도 이어졌고, 4일에 쓰는 걸 깜빡했는데요. 

“토끼가 아니라, 아주 예쁜 여자아이.”

아주 예쁘다고 새로 추가한 수식어를 오늘도 들려주었어요. 계속 이어지려나 봐요. 

 

 

웨딩숍. 

오늘도 역시 붕 뜬 대자점프. 김소향 아니타가 토니의 동작을 그대로 복사하여, 무려 두 번이나 붕 뜬 점프를 했어요. 그러자 살짝 억울(?)해진 토니. 

“내가 언제 저렇게 했어.”

마리아에게 이르는 토니 너머로 보이는 김소향 아니타의 눈 흘기는 표정까지 더해져서 아주 완벽한 꽁트였어요. 

 

“내가 가서 막아야지”의 엄지도 4일과 엇비슷한 높이에서 동작 강화를 이어갔습니다. 저는 여기 이 엄지가 왜 이렇게 귀여울까요.

 

 

Tonight (Quintet and Chorus)

일합처럼 완벽한 강세의 퀸텟이었습니다. 

토니와 제트, 샤크가 완벽하게 같은 음절에서 강세를 두는 삼위일체의 노래를 들은 날이에요. 박수를 전합니다.  

 

 

The Rumble 

오랜만의 임정모 베르나르도. 정말 크고 정말 파워풀한데요, 자신의 강점을 이 넘버에서 십분 발휘합니다. 

“쫄았냐?”면서 토니 어깨를 턱 잡고 제멋대로 한 바퀴 빙 돌려세우는 것에서부터 헉했어요. 임정모 베르나르도가 건드릴 때마다 토니가 너무 나풀나풀한 거예요. 특히 베르나르도에게 계속 밀쳐질 때, 밀쳐지는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토니 몸이 저리로 날아가던걸요. 허허. 

그 리얼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 열이 오릅니다. 리프가요. 

“이 폴란드 거지새끼가!”

버튼은 여기서 눌려요. 베르나르도의 난폭한 언행을 더 참아줄 수 없어진 리프, 토니를 뒤로 물리고 자기가 직접 나서요. 먼저 베르나르도와 붙기로 했던 친구도, 토니도 이 순간은 리프 뒤에 남습니다. 리프 뒷모습이, 토니가 당한 만큼 갚아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죽음 이후, 4일에는 내내 고개 숙인 채였기에 보지 못했던 눈동자를 오늘은 볼 수 있었어요. 

늘 보여주세요.

아름다운 눈이 절망에 물들어 어둠 속으로 잠겨가는 순간은 늘 만나고 싶어요. 

 

 

2막. 오늘의 의문은 2막에서 생겨났어요.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 남의 말을 덥석덥석 잘 믿을까요? 마리아도, 토니도요.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단번에 믿기 어려운 사실을 어떤 출처 확인도 없이 대번에 믿는 게 21세기를 사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다소 갸웃해요. 도와주러 왔다는 아니타의 말은 한사코 믿지 않는 제트들을 보면 이 시대 모든 아이들이 토니와 마리아처럼 순진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그럴까요? 로미오가 되어야 해서 그랬겠죠? 토니가 마리아의 죽음이라는 거짓 비보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버리는 대신 의심 한 자락이나마 먼저 품어보았다면.. 이 극의 행방이 달라졌을 테니까요. 토니의 운명도요. 

 

somewhere로 떠나기 전. “머나먼 곳으로” 늘려서 박자를 탔는데 절박한 상황에서 파도 타는 음성이 너무 좋았습니다. 

 

마리아의 방, 아니타를 피해 창문으로 나가기 직전에는 깜짝 스윗함이.. 닥 아저씨 네서 기다릴 테니 빨리 오라며, 마리아의 이마에 이별 키스를 남겨주었어요. 

 

 

Finale. 치노를 찾아 헤매다, 걸치고 있던 셔츠의 오른 어깨가 그만 뒤로 넘어갔지 뭐예요. 하지만 매무새 단정한다는 게 뭔가요. 그냥 그 차림 그대로 골목을 누비고 헤매는데.. 어깨 한쪽 내려간 채 어둠 속을 홀로 가로지르는 모습이 얼마나 애처롭던지요. 

 

그리고 주목할 변화. 

“여기서 사랑하면 안 돼. 그러면 안 된대.”

문장의 톤이 변화를 맞이했어요. !!!! 아이 같은 울음으로 뭉쳐서 둥그스름했던 문장의 모양이 슬픔으로 가늘어졌어요. 훨씬 연약했고, 당장에라도 사그라질 것 같은 톤이었어요. 

그간과는 너무 다른 어투라 귀가 번쩍 뜨였어요. 어조의 재정립이 시작된 걸까요? 토니가 이 문장을 재조립하고 있는 게 맞다면, 그래서 내일도 이어질 변화인 거라면.. 오, 내일의 공연이 몹시 기대가 됩니다. 

죽는 순간을 기다린다는 어감이 영 스산하지만요. 토니의 마지막 대사가 내일은 또 어떤 궤적을 남길지 벌써부터 기다려져서 참을 수가 없어요. 하루가 일 년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