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데이 이브이자,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샤토니 열 번째 공연

 

이번에는 베르나르도의 덩치가 산만 해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배나라 리프. 얼마나 혼이 빠지도록 요란스레 푸념 같은 호들갑을 늘어놓는지, 토니가 제대로 반응할 틈이 없었어요. 바쁘게 흘러가는 대사를 비집고,

“더..?”

하는 게 전부였거든요.

내내 정신을 쏙 빼놓고도 모자랐는지 마지막에는 확답도 받아 갔어요. 

“몇 시?”

“열시!”

한참 정신없는 와중이었는데, 불시의 질문 공격에도 척하면 착. 어쩌니저쩌니해도 역시 장단이 잘 맞는 진짜 친한 친구인 거예요. 자기가 했던 질문에 이번에는 거꾸로 자기가 대답하는 토니의 얼결스러운 말투까지 다 모조리 귀여웠어요.

 

(근데 배나라 리프, 토니에게 팔 잡혔다가 풀려날 때 나직하게 개새끼라고 한 거 맞아요…? wow..)

 

 

댄스파티에서 마리아와 마주할 때, 푸른 조명이 스며든 얼굴에서 유독 빛을 내는 브라운아이즈를 보았어요. 허허 잘생김. 이 잘생김, 이 조명과 이 눈동자의 채도를 만난 적이 있어요.  〈혼자서 가〉의 아더요. 두 손으로 원탁 짚고, 랜슬럿을 빤히 노려보던 잘생김을 곧장 불러일으키는 순간이었어요. 브라운아이즈에는 역시 푸른 조명인가 봐요. 

 

“넌 빠!져 치노!”는 간만에 위협적으로 멋졌어요. 공격적인데 불량스럽지는 않은 게 신기해요. 성격은 있는데 불손하거나 날티나지 않는 것도요. 

 

 

Tonight

“너희 아버지도 날 보면 분명 좋아하실 거야.”

(~기억으로만 적는 터라 정확한 대사는 조금 다를 수도 있어요~)

세상 천진한 확신이었는데, 대번에 돌아온 부정. 

“아니. 아빠도 오빠랑 똑같아. 두려워해.”

시무룩해지는 귀가 보였어요. 눈매도 입매도 나란히 쳐져서 잔뜩 풀이 죽는데, 이어지는 말에 또 금세 화색이 돌아요. 

“너 하나도 안 무섭게 생겼는데.”

“그치!”

마리아와의 대화 하나하나에 태양계 하나가 피고 지는 반응이라니. 어쩌면 이토록 투명한지.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요. 

 

 

닥 아저씨네 가게

“부나스! 노체스! 아저씨이!”

평소와 다르게 인사말부터 내지르며 등장한 우리 토니. 들떠서 살짝 혀 꼬인 발음조차 귀여웠어요. 안에서는 심각한데 혼자 달떠서 발랄하게, 발음도 안 되는 외국어로 등장해서 머쓱해지는 것도 상황이 꽤 재미있었고요. 맞아요, 지금 토니에게 제트고 샤크고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새 인생 새 달나라 찾아 마음이 동동 떠 있게 된 지 오래인걸요.

하지만 한번 제트는 또 영원한 대문자 J인 것도 맞나봐요. “병! 칼! 그냥 총도 쏘지 그러냐.” 할 때만큼은 우리 (구)리더답게 날카로워요. 

 

슈랭크 경위의 난입. 지난한 깽판은 듣기 싫지만, 꼭 필요한 장면이란 건 인정해요. 환멸을 숨기지 않는 얼굴이 숨 막히게 잘생겼거든요. 눈썹은 짙게 모이고, 미간에는 살짝 그림자 드리운 채로 표정을 굳힌 토니가 심지어 계단 아래에 있을 때는 푸르스름한 토드의 조명까지 한 몸에 받고 있어요. 잘생김에 의한, 잘생김을 위한 순간이 아닐 수 없네요. 

 

 

웨딩숍

오늘 유난히 외국어라고는 배워본 적이 없는 태생부터 아메리칸이었던 토니. 아니타가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는데도 모범학생은 되지 못했어요. 

“노체스는 좀 이르지 않나? 부에나스, 타르데스.”

“부..라스! 타르데스! ..그라시아스.”

마음이 앞서 나가 있는 상태라 그런지 발음이 꼬였는데, 그걸 또 아주 당당하게도 따라 하는 토니가 얼마나 귀엽던지..

 

웨딩숍 오프닝은 역대급으로 김소향 아니타에게 시선을 전부 빼앗겼던 날이 아닐까 싶어요. 김소향 아니타가 붕뜬 점프를 웃음포인트 살려 따라하는데다 날이 갈수록 동작도 커지니까 토니도 여기서 마리아가 아니라 아니타를 보게 되거든요. 내가 언제 이렇게 했냐는 꿍얼거림을 덧붙여서요. 오늘은 특히 아니타가 나갈 때까지도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사라지는 그 즉시 문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아니타는 우리를 도와줄 거야.”

덕분일지 꽁냥씬은 자체 스킵되었네요. 

 

대신 다른 잔망이 강화되었는데요.

“내가 가서 막아야지.” 엄지로 자기를 콕 찍으며, 오늘은 상체까지 엄지 위로 가볍게 숙여 보였답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가서 막겠다며 자기 얼굴을 마리아의 눈앞에 가져다 대는데, 그 ‘얼굴’이 진정 믿음직했어요.

 

 

Ond Hand, One Heart

이지수 마리아와의 합창은 한재아 마리아와의 화음와는 판이하게 달라요.  

후자일 때는 한 마음 한목소리로 토니는 서서히 낮아지는 음계를 향해, 마리아는 서서히 높아지는 음계를 향하여 나아가요. 그래서 한재아 마리아와는 현존하는 모든 음계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화음이 완성돼요. 

반면 전자일 때는 마리아의 굴절 없는 투명한 소리를 토니의 목소리가 사금 알갱이처럼 휘감은 형상을 이뤄요. 마리아의 곧게 뻗은 소리의 모든 둘레와 가능한 모든 경계를 토니의 결 많은 소리가 빈틈없이 감싸 안고 있어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요. 듣노라면 이지수 마리아의 투명하고 곧은 소리와 토니의 결을 쌓아 만든 소리가 손깍지를 낀 것처럼 맞물려가요. 전자도, 후자도 참 대단한 듀엣이에요. 

 

 

The Rumble

베르나르도에게 밀쳐질 때 오늘은 토니의 입장에서 좀 불시의 습격이었던 걸까요? 떠밀린 중심을 되찾기에 전념하느라 발끈하여 주먹 쥐는 걸 못 했거든요. 

 

고개 드는 타이밍은 이렇게 하기로 정했나 봐요. 내내 처창하게 떨구었던 얼굴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순간 느릿하게 드는 걸로요. 어둠이 지는 그 순간에 정확하게 움직이는 고개를 보며 마음이 울렁거렸어요. 뭐 이렇게 영화 같은 사람이 다 있단 말일까요. 

 

 

Somewhere

악몽 후 마리아의 방. 공연 초반의 토니는 여기서 애틋하게, 그리고 또 맑게 웃고 있었거든요. 요즘의 얼굴은 달라요. 일말의 불안과 염려가 지워지지 않은 채 예쁜 얼굴에 스며 있어요. 온기를 찾아 somewhere에 간신히 안착한 것과는 별개로 지금 이 순간의 토니가 쫓기고 있다는 걸 알게 해요. 

 

 

지퍼와는 오랜만에 힘겨루기를 했어요. 세 번째 시도에 힘으로 잡아 뜯듯 끌어서 겨우겨우 닫았답니다. 지퍼 닫는 동작 하나까지 촉각을 곤두세운 채로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시아준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싶어 웃어버렸어요. 

 

 

Finale

치노를 찾아다니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한숨결처럼 애처롭고 가늘게 뱉어내는 애원. 오늘 문장이 조금 새로워졌어요. 

“제발 나도, 나도 그 총으로 ..”

체념하며 숨을 턱 놓아버리는 것처럼 쏴, 하는 이런 억양도 처음이었고요.

음악도, 노래도, 호흡 맞출 동료 연기자도 없지만요. 흐느낌 하나만으로 장면을 다 채워야 하는 이 구간이 얼마나 생생한 슬픔으로 살아있는지 몰라요. 우리 토니는 천재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