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샤토니 열한 번째 공연

 

오늘 음향, 더할 나위 없는 저의 취향이었어요. 일단 소리 자체가 크고, 사람 음성이 오케스트라보다 최소 1.5배는 큰 밸런스. 그리고 이따금 노래가 메아리쳐서 돌아올 정도로 에코를 강하게 넣었던 날에 비하면 듣기에 딱 깨끗한 정도로만 들어간 울림까지. 음~ so beautiful. 👏🏻👏🏻

 

음향의 마법뿐일까요?

시아준수의 마법도 있었어요. 

 

오늘 토니 노래들 다 뭐였을까요? 가창이 미쳤어요. Something’s coming, maria, tonight 도입부.. 이럴 수가 있나 싶게 모조리 노래로 새 역사를 썼어요. 

 

Something’s coming 의 모든 구간에서 입을 다물 수 없게 했지만 개인적인 하이라이트는 난간 위에서예요. 설레~는 공기 기가 막힌 이 느낌, 부터. 강의 유속을 손끝으로 부리는 듯하던 노래는 마치.. 완급이란 기술의 창시자 같았어요. 노래의 강약이 이럴 수 있나요. 

게다가 그냥 보기에는 큰 힘 들이지 않고 음을 가볍게 툭툭 찍어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 것만 같은데, 그게 전부 오선지의 박자 위로 정확하게 명중하는 진귀한 광경이 내내 펼쳐졌어요!

 

maria에서는 “마리아 끝없이 널 불러, 마리-아-”

오케의 주 멜로디라인을 끌어내는 마지막 마리아, 여기요.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로 집결하는 아이들처럼 오케스트라의 모든 연주가 토니의 품 안으로 사그라들었다가, 마지막 ‘마리아’를 신호 삼아 일제히 행진해 나오는 모습이 실로 대단한 장관이었어요. 

 

tonight은 마리아의 두 번째 소절을 이어받을 때가 특히 엄청났어요. 노래의 화자가 마리아에서 토니로 바뀌면서, 토니가 자기 차례만을 기다리며 쌓아둔 설렘과 갈망이 제방을 넘어 와르르 쏟아지는 이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게다가 한재아 마리아의 고음 구간을 이어받은 토니가 그대로 노래를 리드해가는 능란함이 또 얼마나 돋보였는지!

 

시아준수는 노래, 연기, 얼굴의 삼박자를 다 갖춘 배우이지만 오늘은 특히나 노래가 다른 둘을 압도하는 것 같은 날이었어요. 

 

*

 

그럼 이제 소소하게 장면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리프와의 첫 대사부터. 

 

14일에 베르나르도의 덩치가 얼마나 컸는지에 대하여 토니가 영 반응할 틈이 없었던 걸 두 사람 모두 개선사항으로 받아들였나 봐요. 오늘은 아주 제대로 틈을 만들어 왔어요. 

“그 새끼 덩치 이만해졌어. 덩치 이만해졌다니까?”

같은 말 계속 반복하던 리프가 잠시 말을 줄이는 사이 치고 들어오는 토니의 대사. 

“걘 도대체 뭘 먹는 대냐?”

진정 궁금하다는 듯이 이마 한 중앙이 살짝 파인 미간은 덤이에요. 

 

골반 박치기도, 신신당부도 이어갔어요. 

“몇 시?”

“열시!”

대답하는 토니의 말투가 분명 고개 젓고 있는 게 보이는데, 받아줄 건 다 받아주고 있다는 게 스윗한 점이에요..♡

 

 

Tonight에서는 참 아름다웠던 마지막 화음.

“내 꿈속에서 널 찾을게.”

오늘 두 사람, 진정 하나의 목소리로 노래를 맺었어요. 얼마나 아름다운 합일을 이루었는지, 널~ 에 살포시 밀어 넣는 강세의 길이가 똑같았던 건 물론이고 찾을게~ 어미에 이르러 음성이 서서히 페이드아웃 되는 순간마저도 꼭 같았답니다. 

 

 

닥 아저씨네 가게. 슈랭크 경위가 난입했을 때요. 혼자 계단 위에서 다른 조명 받고 있는 토니를 보는데, 아, 정말 토니는 제트에서 마음이 떴구나 싶더라고요. 혼자만 다른 층, 다른 조명 틈으로 몸을 숨긴 토니가 제트와 샤크의 소동에서 아주 명확하게 선을 긋고, 발을 빼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자기는 또 아무래도 닥 아저씨 가게에 소속된 몸이니까 되도록 말썽에 얽혀서 민폐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엿보였고요. 

근데 또 의리는 있어서, 슈랭크 경위의 못된 말이 이어지니까 참다 참다 결국에는 몸을 일으키는데.. 깽판이 조금만 더 길어졌더라면 슈랭크 경위에게 목소리 내는 토니를 볼 수도 있었을까? 궁금했어요. 

깽판을 듣고만 있는 게 참 답답했는지 오늘은 하아~ 하는 한숨이 마이크를 타고 나오기도 했었는데 말이에요. 슈랭크 경위 응원합니다. 토니의 분노를 끌어내 보아요. 

 

귀여운 추임새도 하나 있었어요. 아주 예쁜~ 여자아이, 까지 하고 곧장 부에나스 노체스 시뇨르~ 하던 다른 날과는 다르게 좀 혼자의 여운에 빠져 있더니 힛. 하고 웃지 뭐예요. 아주 귀여운 남자아이가 여기 있었네요. 

 

 

웨딩숍에서는 역시 정유지 아니타의 공연날답게 마리아와의 꽁냥거림이 빠지지 않았어요. 근데 뭐람. 쏘리맘 할 때처럼 양손으로 마리아의 귀부터 볼까지를 폭 감싸 쥐는 건 대체 뭐였담. 그렇게 좋은가. 

.. 하고 샐쭉해져 있는데 원핸드가 온 거예요. 

 

Ond Hand, One Heart 에서도 얼마나 한 마음 한목소리의 합창이었는지 몰라요. 소리의 결은 분명 다른데 어쩌면 이토록 같은 질감의 화음을 이루는지. 이렇게 닮은 느낌의 두 사람이 운명이 아닐 리 없다고 믿게 해요. 마법처럼요. 

 

그리고 시아준수 목소리 말인데요.. 이 넘버 특유의 성결함을 살리기 위해 풍부하게 들어가는 에코와 만나 결 많은 목소리가 얼마나 황홀하게 증폭되는지. 사람의 귀에 행복을 인지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이유는 이 소리를 행복으로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일 거예요. 틀림없어요. 

 

 

The Rumble

왜 매번 제가 “폴란드 거지새끼가!” 에 발끈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임정모 베르나르도일 때는 특히 그래요. ‘다 큰 녀석’이 ‘그 냉장고 같은 덩치’로 사납게 구는 것도 위협적인데, 칼부림까지 더해지면.. 그렇게 포악해 보일 수가 없어요. 온 마음으로 토니를 위해 나서준 리프와 제트를 응원하게 돼요. 

누구도 그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벌어진 리프의 불행한 사고를, 토니가 그 자리에서 응징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고요. 

 

모든 죽음 후에 홀로 남아, 오늘은 어둠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고개를 들지 뭐예요? 이게 딱히 어느 지점을 의식해서 시선을 든다거나 하는 건 아닌가 봐요. 그렇다는 건 그날그날의 연기를 타고 정해지는 그날만의 즉흥이라는 건데, 이것 참. 하루하루를 기대하게 하는 방법도 무수한 사람이라니까요.  

 

 

Somewhere

주황빛 역광을 받는 얼굴, 갓 세수한 것처럼 왜 이렇게 뽀득할까요? 잘 씻긴 듯한 얼굴이 얼마나 뽀얗고 맑은지. 역광 속의 말간 얼굴에 대해 꼭 한번은 쓰고 싶었어요. 

 

썸웨어의 막바지, 오늘 왜인지 한재아 마리아의 앞머리가 잔뜩 헝클어져 있었어요. 제트나 샤크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딱히 차림새 망가질 일 없는 마리아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다는 게 또 새로운 감회를 주더라고요. 좌우로 한 가닥씩 삐져나온 머리칼이 퍽 고달파 보였어요. 토니와 마리아, 이 아이들.. 그 어딘가를 찾아 이곳으로 오기까지 참 고단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투나잇과 원핸드에 이은 마지막 아름다움. 악몽 후의 노래.

“내 손을 잡아 놓지마, 너와 나의 어딘가로 함께”

이토록 짙은 고요 속에서 실낱같이 흐르는 음성이라니요. 새까만 어둠 속에서 단 하나 의지할 곳이 되어주는 작은 촛불 같은 목소리였어요. 내내 크고 장중했던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숨을 틀어막고 토니의 목소리를 지켜보는데, 이 순간만큼은 회장 안의 모든 청각이 토니를 향하여만 열려있는 듯했어요. 

 

 

지퍼는 처음으로! 한 번에 절반이나 채웠어요! 비록 중간에 뚝 끊기긴 했지만요. 

 

 

마지막으로는 닥 아저씨와 토니의 이야기를 할게요. 

마리아의 비보를 철석같이 믿었기에 토니가 풀어놓는 마리아와의 미래가 그저 참담하기만 한 닥 아저씨. 그런 아저씨 마음도 모르고 토니는 밝아요. 아저씨 이름을 따서 아이들 이름 짓겠다는 희망 부푼 말들이 쏟아지죠. 아저씨 입장에서는 마리안지 뭔지 난 모르겠고, 토니의 이룰 수 없게 된 꿈 타령을 계속 듣고 있는 게 그저 괴로울 뿐인데도요. 

사실 여기서 닥 아저씨의 표정을 제대로는 처음 봐요(오늘도 토니 얼굴을 보다 얻어걸린 거기는 해요). 모르는 사람이 봐도 세상 참담한 얼굴이시던데, 토니는 그 표정을 마주하고도 자기 할 말을 그렇게 와다다다 쏟아낸 건가 싶어지더라고요. 사랑에 눈이 먼다는 게 이런 걸까요?

이 두 사람의 엇갈리는 연기 합이 너무나 좋아요. 

“마리아는 제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에요.”

할 때 더 억장이 무너지는 닥 아저씨 얼굴과 세상 절절한 이 마음 대체 왜 몰라주냐는 토니 얼굴의 대치가 백미예요. 

 

두 사람의 대치는 짧지만 연기 합이 굉장히 탄탄해서 finale로 이어지는 토니의 감정을 단단하게 뒷받침해줘요. 

장면과 장면의 긴장감을 촘촘하게 쌓아서 finale 단독 구간에서 터트려내는 우리 토니.

늘 말하지만 연기와 노래, 그리고 얼굴의 삼박자를 다 가졌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