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 이후의 첫 공연, 개인적으로 명명하기를 샤토니 시즌 2의 첫날. 그리고 시즌 2임을 천명하기라도 하듯 부드러운 갈색 머리의 토니가 되어 나타난 시아준수. 

 

아니, 딱 하루 쉬는 사이에 흑발이 브라운이 될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갈발의 토니는…

흑발 다음 장의 아름다움이었어요. 

특히 아득하게 아름답다 여겨진 순간은 빛 속에 있을 때예요. 색이 옅어지니 얼굴 전체의 선도 연해져서 조명을 강하게 받을 때마다 토니가 그대로 빛에 부서져 사라질 것만 같았어요.

댄스파티에서 마리아와 토니만 남겨두고 모든 배경이 페이드아웃 될 때 그대로 조명과 함께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고..

원핸드 후반부, 하얀 조명 아래에서 아스라해지는 인영은 꼭 붙들고 서서 사라지지 말아달라 소원하고 싶었어요.  

 

뿐일까요. 투나잇에서는 발코니에서 토니와 마리아가 서로 얼굴 마주 대고 있을 때, 두 사람의 머리색이 꼭 같은 게 또 왜 그리 애틋하던지. 정말 닮은 느낌.. 사랑으로 맺어질 운명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면서, 마음이 올망올망해지더라고요. 

 

이렇게 머리색 하나로 사람 마음을 이마만큼이나 뒤흔들 수 있는 사람이 시아준수 말고 또 있을까요.

없어요, 오직 이 한 사람뿐이에요.  

 

 

*

 

토니와 리프, 이제 애드립 없이는 이 장면을 마무리할 생각이 없나봐요. 오늘의 선공은 정택운 리프의 몫이었어요. 뱃속부터! 던져놓고 곧장 발을 빼는 게 아니겠어요?

“이거 싫어하지 참.”

정작 토니는 응해줄 생각이었던지 리프의 등 뒤에서 얼굴이 싸해지더라고요. 

“…무덤까지.”

죽든 살든 얍. 

“좀 기다려주지.”

투덜거림 같은 핀잔은 덤이었어요. 

 

 

Tonight

계속 머리색 이야기인데요. 난간에 기댈 때, 갈발이 되니까.. 토니.. 정말 그냥 그 시대의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어요.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게 그린 듯한 그림체야? 어떻게 이렇게 얼굴이 동화예요?

나만 보면 된다고요? 너 아닌 다른 무엇은 볼 생각조차 없어요. 

 

 

닥 아저씨네 가게

“병! 칼! 그냥 총도 쏘지 그러냐.”

오늘 병, 칼의 사납기가 아주 예사롭지 않았어요. 넌 빠!져 치노! 가 카랑했던 날들보다도 배는 사납게 터트려지던 병과 칼. 제트 아이들이 산만하고 어지럽게 굴 때 한 번에 진정시켰던 가닥이 이렇게 나오는구나 싶더라고요.

흥분하는 대신 쿨로 머리 식힐 것을 가리키는 토니가 더욱 강렬하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답니다.

 

 

웨딩숍에서는 오늘도 이어진 무릎돌리기. 추가로 자신의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듯이 두 손으로 뒷머리를 덥석 감싸 짚기도 했어요. 

이어서는 아니타가 뭐라 하거나 말거나 마리아한테 곧장 홀린 얼굴이 볼 꼬집기를 시도했는데 여기서 아주 깨가 쏟아지는 하루였어요. 이지수 마리아는 고개를 옆으로 빼서 끝까지 피하려 들고, 토니는 끝까지 꼬집으러 쫓아가는 모양이 너무 웃기고 귀여웠거든요. 결국 마리아의 오른쪽 볼을 주욱 치즈처럼 늘여 당긴 것도 모자라서 예뻐서 죽겠다는 듯이 두 손을 머리를 감싸 쥐려고, 하지만 차마 닿지는 못하고 마리아 머리 위에서 두 손이 동동대는데..

어떻게 이렇게 사랑 만발인지.. 하하..

 

그리고 또 귀여웠던 하나. 사랑 피어나는 웨딩숍에서 기습뽀뽀하고는, 여느 날처럼 엄마 미안이라거나 쏘리 맘이라 하는 대신

“보지마 엄마..”

하는데 뒤에서 남성 관객의 웃음소리가 들려오지 뭐예요. 

이 귀여움은 남녀노소 불문인가 하여 그게 또 소소하게 마음을 웃게 했답니다. 

 

 

Ond Hand, One Heart

성결함 끝판왕이었던 오늘의 원핸드. 후반부에 하얀 조명길을 걸어 나오던 토니… 배우 김준수에게 시상식의 레드카펫이 있다면 토니에게는 축복된 백색 조명의 런웨이가 있어요. 이 조명길 위를 걸어 나오는 토니가 얼마나.. 예쁜지.. 세상 사람 모두가 알아야 해요. 어여쁜 무언가를 보는 것 자체가 곧 행복이 될 수 있다? 네 그렇습니다. 지나친 아름다움은 심장에 무리가 될 정도의 행복이 돼요. 

 

 

The Rumble

임정모 베르나르도의 껄렁거림이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어요. 그 태도를 참아주는 토니에게 실은 마리아라는 이유가 있다는 걸, 사정을 알고 보는 저도 이렇게 답답한데 영문 모른 채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토니를 지켜보는 제트들은 얼마나 복장이 터질까요. 

그래서 늘 기다리게 되는 것 같아요. 폴란드 거지새끼! 라는 폭언에 버튼 눌린 리프가 난입하여 이 위태로운 상황을 깨트려주기만을요. 

오늘도 토니의 엄마오리처럼 (물론 토니를 디젤 쪽으로 밀치며 매섭게 째려보기는 했지만) 나서준 리프, 얼마나 장렬한 정의의 사도 같던지요. 

 

괜찮아 괜찮아. 

토니 품에서 마지막 말, 괜찮아 두 번 정확하게 남긴 정택운 리프. 흐느끼느라 정신없는 토니는 그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만큼 혼란한 상황. 

비극을 향하여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그 순간을 토니와 리프가 얼마나 극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해주는지 몰라요. 21일에 ‘동생’ 같다고 표현한 리프를 끌어안고 있는 토니의 절망과 상실감을 다 헤아릴 수도 없어요. 마리아라는 세상 가장 소중한 의미마저 일시적으로 지워져 버릴 만큼의 절망을,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는 거예요. 

 

 

마리아의 방으로 찾아온 토니. 

한 번 들었으니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리프는 내 동생 같은 놈인데..”

이 대사가 나오는 순간 이후의 모든 대사들의 무게가 달라져요. 동생을 잃은 형이 그 죄 지은 자를 단죄하고 나서, 자신의 죄를 고하기 위해 제가 죽인 자의 여동생을 찾아 온 여기 이 순간.. 운명이 참 가혹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어요. 그 운명 속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도리(선 사죄, 후 자수)를 단계별로 밟아가고자 하는 토니를 누가 탓할 수 있을까요. 1950년대의 뉴욕에서 잘못은 전부 운명의 몫이에요. 

 

게다가요. 악몽 후 침대 위의 토니를 보는데, 조명에 얼룩진 마이크가 마치 얼굴의 생채기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 말쑥하던 얼굴이 예의 생기로 반짝이는 대신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데다, 또 생채기 같은 것까지 하나 달고 있으니.. 쫓기고 쫓기느라 지친 심신을 보는 듯하여 울컥했어요. 

 

 

“다,닥 아저씨가 우리를 도와주실 거야.”

빨리와, 당부하며 마리아의 이마에 키스를 남겨준 토니. 이마키스는 두 번째예요. 그리고 마치 어떤 공식처럼, 대사가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여 선로 위에서 이탈하는 날마다 이마키스가 와요.

첫 번째 이마 키스의 날도 오늘도 ‘닥 아저씨’를 한 번에 발음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떨었거든요. 

아니타를 피해 마리아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하는, 그게 영 불안한 토니의 마음이 그대로 보이는 듯한 순간이었어요. 

 

 

Finale

치노! 치노! 

마리아의 비보를 접하고 치노를 찾아 헤매는 토니. 마리아가 세상 무엇보다 큰 의미라는 토니의 단언은 진실이에요. 슬픔에 지배당한 목소리에서 그 어떤 색도 찾을 수 없어요. 듣노라면 제 시력까지 까맣게 지워질 것 같은 무저갱이 펼쳐져요. 목소리로만 표현하는 절망의 깊이가 그래요. 

놀랍고도 대단한 건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를 발견하는 순간, 다시는 그 어떤 색도 입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목소리가 일시에 되살아나요. 원래의 빛깔대로, 맑고도 청청한 ‘마리아’를 들으면 바로 직전에 잿빛으로 그을린 소리로 ‘치노’를 목놓아 불렀던 게 거짓말 같을 정도예요. 

 

그러나.. 

 

목소리가 온전한 제 색을 찾기 전에 허락된 시간에 끝이 와요. 해후의 기쁨도 다 나누지 못했는데.

맑게 되살아났던 소리에 완연한 행복이 맺히기를, 정말 잠깐이면 되는 그 조금을 기다려주지 않는 운명이 참 잔인했어요. 그리고 그 운명의 잔혹함을 누구보다 절감하는 이가 그 순간 생이 꺼져가는 토니라는 게 너무도 마음 아픈, 

시즌 2의 첫 공연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