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샤토니 서른 번째 공연

 

오늘의 오프닝, 리프가 시종일관 수다스러웠어요. 정점은 소시지 구간. 리프의 수다를 하나하나 묵묵히 받아주던 토니가 ‘소시지’를 듣더니 소리 없이 눈을 반짝였거든요. 

“천하장사?”

애드립할 생각에 아닌 척 신난 입꼬리를 봤어요. 능청스럽게 대꾸했지만 토니의 안에서 신이 난 시아준수 본인이 정말이지 귀여웠어요. 

 

Tonight 에서는 이미지적으로 아름다웠던 장면이 둘 있어요. 

 

“이 밤, 이 밤 모든 게 달라져”

경탄하는 마리아의 가사를 따라 하늘로 시선을 옮기는 토니. 달라진 이 밤의 풍경에서 경이를 찾은 것처럼 반짝이는 눈을 봐요. 그 눈동자가 참 예뻐요. 반짝반짝. 어떻게 사람의 눈 안에 우주가 있을까요. 토니는 하늘을 보지만, 관객은 밤하늘에서 경이를 찾을 필요가 없어요. 토니의 눈 안에 다 있는걸요. 

 

또 하나는 토니와 마리아가 나란히 합창하다, 토니가 마리아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으며 자세를 바꿀 때였어요. 

“이젠 너와 텅 빈 이 세상을-”

여기서 두 사람, 균형이 뒤로 살짝 갸우뚱하다가 오뚜기처럼 빙그르르 되돌아왔는데요. 빙그르 돌아오는 모습이 꼭 음악을 타고 오는 것처럼 보이지 뭐예요. 만면에 사랑의 기쁨을 달고 음악을 타는 두 사람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웠어요. 

 

토니는 어떤 이름의 줄임말이야?

“안톤?”

27일에 이어 오늘도 계속 어미를 올리는 대답을 들려주었어요. 왜 물어보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리아가 물었으니 순순히 대답은 해주는 이 산뜻한 목소리가 너무 좋아요. 계속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닥 아너씨네 가게, 슈랭크 경위의 도발. 

“에이랩!”

점점 심해지는 언사에 토니가 아이들 쪽을 염려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세를 풀고,

“액션!”

계단의 그늘 틈에서 몸을 일으켜요. 

언제부턴가 이 대목에서 안타까워지는 저를 만나요. 여기서 딱 한 명만 더 걸고넘어졌어도 계단에서 내려와 적극 개입하는 토니를 볼 수도 있었을 것만 같은데.. 슈랭크 경위의 끗발이 항상 부족해요. 늘 한 명이 모자라요. 힘내주세요. 

 

 

웨딩숍

오늘은 김소향 아니타와의 공연. 오징어춤 말고 이번에는 어떤 레파토리가 올까 마구마구 설레던 차에,

“친구들이 너 그렇게 춤추는 거 아니?”

헉. 다른 춤 춰보라는 아니타가 아니었어요. 김소향 씨, 애드립을 반복하시지는 않는 편? 매 공연 새롭게 만들어주시는 것 감사하지만 그래도.. 춤추는 멍석은 한두 번만 더 깔아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 토니가 아직 춤 한 번밖에 못 췄거든요. 오징어춤 하나요.

 

 

The Rumble

오늘 샤크들이요. 아메리카 전에 본인들끼리 대화할 때도 서로의 엉덩이를 팡팡 쳐대서, 아, 저건 샤크식 대화법이구나~ 싶을 정도였거든요. rumble에서 임정모 베르나르도가 토니 도발하며 툭 칠 때도, 샤크들끼리 엉덩이 대화법을 빌드업해둔 덕분에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배우들이 극 안에서 일관되게 쌓아 올린 캐릭터성이 이야기의 ‘인과’가 되는 순간의 소소한 짜릿함에 즐겁기도 했고요.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토니의 화를 돋우는 임정모 베르나르도의 여러 방식 중 개인적인 필살기. 

“너 눈 똑바로 떠.”

이 못된 말을 다시 들었어요. 아무리 아무 말이나 막 해도 되는 장면이라고 해도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음해예요. 우리 토니처럼 눈 똑바로 뜨는 아이가 어디 있단 말이에요. 

 

베르나르도에게 밀쳐지며 균형이 살짝 앞으로 쏠린 우리 토니. 발끝으로 땅을 탁 짚어서 몸이 완전히 쏠리는 걸 막아냈어요. 이어서 반대 방향으로 힘을 실으며 신체의 균형을 부웅, 되찾아왔는데 얼마나 그 선이 유려하고 그림 같던지. 

베르나르도 보기에도 제법이었나 봐요. 오호라, 이런 눈으로 토니의 동작을 곧장 따라 해 보였어요. 부웅, 몸을 비스듬히 눕혔다 돌아오더니 낄낄대더군요!

재밌는 건 두 사람의 체격이 다르잖아요. 같은 동작을 해도 느낌이 전혀 달랐어요. 베르나르도가 자기 신체의 육중함을 살려 부왕~ 하는 느낌을 주었다면 그와는 정반대인 토니는 유려함이 돋보이는 비잉~ 이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오늘의 핵심 기억이었어요.  

 

그리고는 마리아..

오늘도 계속 불렀어요. 마리아, 마리아, 세 번째쯤부터는 이름의 형체가 사라지고 웅얼거림만 남은 마리아가 되어서도 멈출 줄을 몰라요. 

더는 기도도 노래도 될 수 없어진 웅얼거림만이 어둠속에 가득히 퍼지는데.. 언어인지 울음인지 분간 가지 않는 소리의 행렬. 절망을 바로 보게 하는 표현법이 아닐 수 없었어요. 

 

 

Finale도 마찬가지였어요. 

“나와!!”

몸을 다 튕겨가면서까지 내뱉은 절규에 그 어떤 색도 없었어요. 바래서 쉰 것 같은 목소리로 토니의 생명 또한 이미 바스러지고 없다는 걸 다 표현해내요. 

오늘은 유독 다 쉬어버린 소리로 목 놓아 치노를 불렀는데, 치노를 찾아서 ‘죽겠다’는 의지 하나만이 토니의 생을 지탱하고 있음이 똑똑히 보였어요. 

달을 꿈꾸던 아이가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오직 죽기 위해 돌진하는 피날레의 참담함이 생생했어요. 

 

 

마지막으로 커튼콜. 퇴장 직전에 토니, 곧 시아준수가 이지수 마리아를 잠시 보았어요. 평소에 비해 조금 더 지긋한 시선이 무언가를 살피더라고요. 그건 상대에게 묻는 시선이었어요. 어떻게 퇴장하겠느냐고. 

마리아가 선퇴장하고 싶다는 기색을 내비치자 토니의 두 눈이 흔쾌히 깜빡였어요. 그래, 그럼.

그러고는 두말 않고 마리아에게 끌려가 주었어요. 

커튼콜 마지막 순간에 목격한 너무나도 동화 같은 다정함, 잊지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