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일요일. 애드립 향연은 물론 대단히 즐거웠고, 부음감님의 오케스트라가 드물게도 크게 힘내주었으며, 막공을 코앞에 둔 배우들의 기합은 이다음이 있을까 싶게 단단했어요. 무엇보다 이 극과의 영영 이별을 앞둔 관객들의 마음으로부터의 호응이 오늘의 가장 아름다운 완성이었어요. 그래서 감히 말합니다. 좋은 공연이었다고요.
“닥 아저씨가 27년간 해오신 가겐데-”
기특한 제 선물 자랑을 하다 그만, 그 선물 몰래 던지는 시늉하던 리프를 딱 보고 웃음 터져버린 우리 토니. 웃음결에 부스러지던 어미가 간지러워 저도 따라 웃었던 걸 시작으로, 엄청났던 2월 19일의 공연이 본격적인 막을 올렸습니다.
“토니, 요즘 베르나르도 건드리기가 힘들어졌어.”
“그럼 걔를 제트로 영입해.”
리프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천지개벽할(개똥 같은) 일을 태연하게도 제안하는 우리 토니의 오픈 마인드. 갱단을 풍미한 구 리더 정도 되려면 역시 이 정도 발상의 전환은 할 줄 알아야 하나 봐요. 입이 쩍 벌어진 채로 아연한 표정의 리프가 웃겼는지, 한 마디를 더 보태기까지.
“아님 니가 샤크로 가든가.”
놀리는 투 역력한 목소리. 그 안의 장난기가 좋았어요. 편해 보여서요. 리프도 토니를 참 스스럼없이 대하지만 토니에게도 리프는 마음 내려놓고 대할 수 있는, 진짜 친한 친구라는 걸 느끼게 하는 이 순간이 무척이나 좋아요.
그런데 절친한 사이에도 내외할 것은 있는데 말이에요. 글쎄, 기합 실어 침을 에퉤퉤 잔뜩 뿌려놓은 손으로 뱃속부터! 를 하자는 거예요. 리프가.
“아니 침을 뱉으면 어ㄸ..”
한껏 처진 눈썹이 올망졸망했어요. 오빠 말마따나 사람의 분비물은 다 지지인데, 그걸 잔뜩 묻힌 손을 잡으라고 내밀면 몹시 곤란하거든요. 진짜 친한 친구 사이에도 말이에요. 지겨워 죽겠는 제스처는 덕분에 떠오르지도 않았어요. 그보다 난감한 게 저 지지 묻은 손이었으니까요.
일대의 곤궁에 처한 얼굴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불난 데 부채질하듯, 토니를 채근하며 배나라 리프가 침으로 손 소독을 연거푸 더 했을 때는 아예 사색이 되었던 얼굴의 사랑스러움 말로는 다 못 해요.
“..무덤까지..”
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받아주는 우리 토니. 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였지만, 또 비록 잔뜩 사린 손이 리프의 손가락 끄트머리를 살짝만 잡아주었지만 어쨌든 받아는 줬어요. 다정하다니까요.
참, 앞서 베르나르도 성토가 끝나고 나면요. 리프가 몸으로 치댈 차례인데요. 요 근래 토니, 리프를 외면하면서 등을 돌려 앉는데 리프 쪽에서 보면 뒤에서부터 냉큼 끌어안기 좋은 자세가 되는 게 못내 웃겼거든요. 고스란히 내주고 있는 동그란 등이 참 귀엽기도 했고요.
그런데 예측할 수 없는 사람. 오늘은 그 타이밍에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버리지 뭐예요? 치댈 곳을 잃은 리프가 잠시 황망해하더니, 토니를 도로 끌어다 앉혀놓고는 양다리로 토니의 한쪽 종아리를 칭칭 감쌌어요. 이번에 황망해진 쪽은 토니였고요.
“야 이건 좀 과하다..”
진짜 친해도 내외는 좀 하자고, 오늘의 토니가 애드립으로 내내 항변하는 것만 같았어요.
이어서는 본격적인 노래의 시작.
썸띵스커밍, 마리아, 투나잇. 오늘 샤토니의 노래들 대체 뭐였을까요. 다시 없을 완결을 내는 게 이런 걸까 싶었어요. 가창의 완전함, 감정의 농도, 흐름의 맞물림. 모든 요소에 최종, 진짜 최종의 꼬리표가 달린 듯했어요.
그러니까 이건 마치.. 그래 드라큘라 초연, 8월 21일의 공연에서 느꼈던 막 그런 역사적인 느낌?
Something’s coming 의 시작부터 특별했어요.
“혹~시 뭘~까”
오케스트라의 박자에 보조를 맞추어 포물선으로 부드럽게 밀어 넣은 시작부의 유려함. 리드미컬함의 표본이었어요.
“보일 듯 말 듯 달빛을 잡아서 걷으면”
음을 징검돌 삼아 막힘없이 타고 흐르는 움직임, 박자 맞추어 순간적으로 허리에 뒷짐졌던 왼팔의 멋들어짐은 또 어땠고요.
마지막에는 급기야 긁어서 넣는 음 첨가에, 신이 나서 간만에 두 팔로 계단을 날아올랐던 것까지.
오프닝 넘버 내내 발끝이 지상에 닿아있지를 않았어요. 동동 떠 있는 기분으로 한껏 날아다니셨답니다. 노래도, 토니도요.
댄스파티
두 사람의 첫 만남. 첫 대사가 흐르는 장면에서 한재아 마리아에게 무척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요.
자신의 손이 차갑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전까진, 한재아 마리아는 토니의 말에 온 마음으로 귀 기울이며 문장의 마디마다 고개를 끄덕여줘요. 첫눈에 반한 상대를 향해 고개가 홀린 듯이 나붓나붓대요. 영혼까지 토니를 향해 귀 기울이고 있는 그 모습을 좋아해요. 언제봐도 풋풋하거든요. 오늘 역시요.
“꺼져 이 아메리칸 새끼야!”
베르나르도의 훼방. 여기서 토니, 2월 16일에는 베르나르도에게 밀쳐지며 오른 어깨가 살짝 흐트러졌거든요. 정택운 리프가 흐트러진 매무새를 꼼꼼하게 여며주는 손길이 살가웠는데 배나라 리프도 베르나르도에게 시비 걸린 토니의 가슴을 도닥이며 안전한 뒤쪽으로 끌어가는 게 참 든든하더라고요. 두 리프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토니를 아끼고 위하는 모습을 보는 여기도 참 좋아요.
Maria
마리아에서는 얼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솔직히 매 공연마다 이야기하고 싶은데 늘 같은 감탄이라 자제했거든요. 그렇지만 오늘은 해야겠어요. 어쩜 이토록 아름다울까, 이 가사 본인 얼굴을 노래하는 게 아닌 거 맞아요? 눈이 왜 이렇게 예뻐요. 이렇게 반짝이는 얼굴로 노래는 또 왜 그렇게 잘해요. 특히 별빛 런웨이 구간의 가창, 대체 무슨 일이에요.
닥 아저씨네 가게에서는 지난주부터 눈에 띄는 변화가 있어요.
분명 공연 초반에는 층계의 그늘 아래로 몸을 숨기고 나면 그때부터는 슈랭크 경위 쪽으로 시선 한 번을 두지 않는 토니였거든요. 그런데 우리 토니가 달라졌어요. 이제는 자꾸만 고개 돌려 아이들을 봐요. 슈랭크 경위가 어디냐며 닦달할 때도(이건 16일만요), 공터? 하고 한층 더 집요하게 캐물을 때도 흠칫하며 제트를 살피는 시선에 염려가 가득해요. 본인의 제트 시절은 청산했어도, 제트 아이들에게 마음 쓰이는 것까지 정리하지는 못 한 (혹은 정리하지는 않은) 우리 토니예요.
웨딩숍
붕 뜬 기분은 다시 무릎 돌리기로 회귀했어요. 아니 그런데 그 모습을 가만 지켜보는 김소향 아니타의 기색이 심상치 않다 싶더라니.. 토니가 아니라 마리아를 보며 진지하게 묻지 뭐예요.
“마리아, 이런 춤 추는데 진짜 좋아?”
‘이런 춤’이라니. 이게 어때서. 항변하며 무릎 돌리기 한 번 더 해 보이는 토니도 토니인데 얼굴 안의 모든 선이 둥글게 휘어지며 대번에 즉답하던 한재아 마리아.
“좋아, 좋아”
그 열렬한 끄덕임이 제 마음으로 직격했어요. 항변의 앵콜을 선보이던 토니도 마리아의 ‘좋다’는 말에 얼굴이 바로 헤실헤실 풀어져서는 말꼬리를 늘여 그치이- 하는데.. 이 세 사람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거 있죠. 아니타가 나갈 때까지도 진짜 터진 웃음을 참지 못해 두 손에 얼굴 묻고 웃음 덜어내던 한재아 마리아도, 그런 마리아를 뿌듯하게 보는 샤토니도 전부요.
오늘 공연의 가장 안온하고 사랑스러운 순간이었어요.
이어서는 계속 토니가 귀여운 구간.
“교회는 다니냐~”
‘교회’ 키워드 따라 되뇌며 엄숙하게 마음에 입력해두는 토니. 16일부터는 성호 긋고 두 손 모아 신이시여 하듯 들어 올리는 동작이 가미되었어요. 음, 귀여움.
배우의 재치 구간도 있어요. 지금 당장 데려가라는 어머니 톤 대사는 늘 하던 것이잖아요. 항상 해왔던 대사에 어조의 변화만 살짝 주어 충무 빵집을 개장했어요.
“지금당장데려가렴!”
문장 사이의 쉼표를 다 소거하고 익살스럽게 대사를 몰아붙이는 것으로요. 영특준쮸, 영특특특.
반면 쉼표를 대폭 가미하여 새단장한 대사도 있어요.
“아버님, 따님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아버님께 올리는 청이요. 마치 호그와트 비밀 지도의 주문을 욀 때처럼 대단히 엄숙해졌답니다.
오늘 참 어쩜 이렇게 구석구석이 산뜻하고 새로우며 즐거움 넘쳤는지 모르겠어요. 다음 주면 이 극을, 토니를 보내줘야만 하는데 어떻게 보내라고 이렇게 넘치는 행복만 주는 건지..
Tonight (Quintet and Chorus)
애드립 향연을 모두 맛깔나게 성공시킨 쾌조의 오프닝 이후로 썸띵스커밍부터 오빠의 기분이 산뜻한 게 다 느껴질 정도였는데요. 퀸텟 또한 그랬어요. 1절에서도 환한 달빛의 안무가 잠시 다녀갔거든요. 가볍게 내려앉는 날갯짓을 덕분에 무려 단독 안무로 만났네요..♡
Somewhere
그곳으로가 강림한 이래로 썸웨어에서는 계속 규명하고픈 의문이 있어요. 궁금함이랄까.
후반 소절에서 ‘그곳으로’가 고정이 된 건, 웨사스라는 극을 너무나 사랑해서 총첫공 때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올렸던 연출진도 오빠의 개사를 받아들여 줬다는 의미겠지요? 그래서 찾아온 물음표예요.
가장 처음의 그곳으로가 ‘개사되었던’ 건지, 아니면 ‘개사할’ 의도의 시험차 투입이었는지가 궁금해요. 너와 나의 어딘가 대신 ‘너와 나의 그곳으로’로 우선 시험 삼아 바꾸어 불러 보고, 결과가 괜찮았기에 그날의 공연을 근거 삼아 설득했을까요? 아니면 우연치 않게 개사된 버전을 경험하고 나서 가만 보니 생각 이상으로 괜찮았기에 전격 채택한 것이었을까요?
선후를 알고 싶어요. 오빠의, 너무나도 시아준수다운 ‘그곳으로’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요?
웨사스 토크타임이 참 절실한데.. 일본의 vol.3에서 들을 기회가 있을까요. 포르 파보르.
다시 닥 아저씨네. 참으로 대견하게도 오늘 공연 역사상 처음으로 지퍼를 단 한 번도 주춤하지 않고 한 번에 채웠어요. 덕분에 닥 아저씨가 2층으로 천천히 올라오신 것과 맞물려서 아주 충분한 번민의 시간이 허락되었어요. 하늘 한 번 헤아려보다, 고개를 푹 꺼트리고 초조해하다가.. 가방끈 꽉 쥔 손을 바잡았다가.. 혼자서 삭이는 불안을 이렇게 오래 지켜보는 건 또 처음이었어요.
그리고는 Finale, 창연한 비극. 오늘로 단 두 번 남은 두 사람의 피날레예요. 오늘이 지나면 바로 다음 공연이 페어막이니까요.
“여기선 사랑하면 안 돼. 그러면 안 된대.”
물기 먹어 어리광 부리듯이 늘어지는 토니의 목소리도,
“괜찮아. 우리 떠나면 되지.”
그런 토니를 달래는 듯이 짐짓 의연한 마리아의 목소리도.
함께 찾아냈던 ‘그곳으로’를 다시 부르지 못하고 ‘너와 나의 어딘가’로 회귀해버린 두 사람의 합창과, 멎어버린 토니의 시간을 두 팔로 흔들어 깨워보려 하는 한재아 마리아까지.
하나하나 흘러가는 순간, 이제 이 모습을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밀려왔어요. 극 안의 모든 순간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매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켜봐 왔는데, 어느새 진짜 마지막이 목전에 와있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공연은 정말 뭐였을까요.
피날레의 장중한 비극과 막공을 앞둔 관객의 상실감을 애틋하고도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채워주는 따듯한 마법이 커튼콜에서 와주었어요.
커튼콜에서 토니와 배나라 리프의 엔딩 인사가 제법 길어졌거든요. 그 탓에 아니타와 베르나르도를 일찌감치 보내고 먼저 토니 쪽을 돌아본 마리아의 기다림이 다소 길어졌어요.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마리아가 등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두 친구가 참 즐겁더라고요. 물론 이해해요. 절친한 둘이 죽음을 건너 해후하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마리아도 그래서 잠자코 기다렸어요. 하지만 점점 길어지는 뒷모습에 양팔이 슬그머니 허리로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봐요. 양팔을 허리 손하고 마리아가 막 새침해지는 찰나, 토니가 리프를 보내고 마침내 뒤돌아보았어요. 그 순간이었어요.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눈맞춤의 웃음으로 커튼콜의 소란을 모두 다 지워버린 것이요.
분명 토라질 준비를 하고 있던 마리아가 토니가 내민 손을 꼬옥 잡았어요. 언제 새침했었냐는 듯, 토니의 눈을 향해 온 얼굴을 웃음으로 푸스스 허물어트리면서요. 이런 춤 추는 데도 좋아, 좋다며 망설임 하나 없이 끄덕였던 웨딩숍에서처럼.
그 웃음을 마주하며 토니가 웃었어요.
근심 없이 포개어지던 겹겹의 웃음.
그렇게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 평화롭게 소란한 제트와 샤크를 향하여 두 사람이 함께 돌아섰어요.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함께 걸어가는 길의 끝에서 보았어요.
두 사람이 찾아 헤매고 제트와 샤트 역시 열망하였던,
시아준수의 토니가 기어이 찾아낸 ‘그곳’을요.
커튼콜조차도 이야기의 연장선이 되는 이 극에서, 가장 따뜻한 해피엔딩을 이끌어내는 토니와 마리아. 제트와 샤크.
커튼콜까지 사랑스러워 아름다운 이 극을 이제는 보낼 준비를 해야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