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바야흐로 웃으며 그리는 데뷔 20주년의 해의 오르막길, 그리고 살다보면과 함께합니다.

 

 

마지막 날의 마지막 섹션이었다. 지휘자석 대신 키보드 앞으로 자리를 옮긴 양주인 음악감독님이 말하기를,
“자정 가까이 전화가 왔어요.”
연락이…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그녀가 어떤 결심을 하고 키보드 앞에 단신으로 섰을지 다 잇지 못하는 말줄임표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여러 마디 부연하는 대신 그저 온화하게 웃는 연주자와, 간밤의 급박함을 반추하며 음악감독님의 협조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거라며 허허 웃는 가창자. 그렇게 단 두 사람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새벽을 두드린 느닷없는 연락과 함께 온, 예정에는 없었던 노래. 살다보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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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피아노 반주에만 의지하여 노래하는 얼굴이 고요했다. 그 얼굴은 격랑에 출렁이지도, 바람에 흩날리지도 않았다. 잔잔한 미소만이 고요한 얼굴의 파동이 되었다. 일곱의 멤버와 여럿의 오케스트라는 여태의 환상이었을까? 가창자와 연주자 한 사람씩만 남겨둔 공간에 조명조차 그윽하니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고요 속에서 도란도란 다가오는 노래가 자꾸만 살포시 웃었다. 노래가 웃을수록 마음은 소란해졌다. 저 웃음은, 눈앞의 저 미소는… 눈을 깜빡이면 사라질 듯이 아스라한 환영 같은 게 아니었다. 두 눈을 아무리 깜빡여도 미소는 사라지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그게 마음에 달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웃음이 귓가를 다정하게 간질일 때마다 마음이 기억을 헤집으며 수선을 부렸다.

 

그도 그럴게, 살다보면, 14년에 처음 불렀던 이 노래를 23년의 그가 웃으면서 부르고 있었으니까.

 

우리의 시간 속에서 이 노래는 ‘지나간다’의 동전의 뒷면이었고, ‘오르막길’의 다른 얼굴이었다. 살아보면 살아진다는 가사를 결 많은 소리로 풀어내는 가창 속에는 직접적인 언어로는 다 표현하지 않는(혹은 못 하는) 심상이 아롱아롱 맺혀있었다. 한 번도 꺼내어 말한다거나, 노래에 첨언하는 법이 없었지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살아보면 살아진다더라, 후렴을 주문처럼 되뇌는 그 모습에 단 한 번이라도 눈물로 눈앞을 채운 적이 있다면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이 노래의 가사를 어떤 버팀목으로 삼았는지,

어떻게 삼아 왔는지,

어떤 식으로 삼켜내는지.

그리고 견뎌내는지.

 

그런데,
그랬는데.

 

견디고 삼키던 얼굴이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살다보면 ‘살아진대’ 하던 나날을 온전히 자기 자신의 힘으로 영글어 내더니, 과연 ‘살아보니’ 살아지노라 하면서.

 

그 모습이 기뻤다.
서러울 만큼. 

 

 

사실은 이 노래가 아닌 다른 무엇이라도 좋았을 것이다. 단 하나가 아쉬웠다는 이야기에 새벽을 깨우며 무대를 준비한 마음이 이미 선물이었으니까. 이 순간이 비로소 이룩할 백 퍼센트의 충만함을 위해 그가 무엇을 감당했는지 아니까.
함께 결행해준 동료에 대한 감사와 새 곡이 추가된 경위에 대한 이야기가 설명의 전부였지만. 밤 늦은 시간 예정에도 없었던 노래를 준비하게 된 공연자로서의 부담이나, 극장 측과 협의를 거쳤을 것이 분명한 대표로서의 수고로움에 대하여는 첨언하지 않았지만. 모든 공을 음악감독님께 돌리고 자신은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그가, 실은 어마어마하게 긴급한 양해를 기꺼이 감수했다는 걸 어찌 모를까.
그러니 실은 다른 무엇이라도 기뻤을 것이다. 어마어마했노라는 원성이 곧 염원의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헤아려 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하지만 그는 단지 노래 하나를 선물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이미 8월의 코코타임에서 살뜰하게도 보듬어 주었던 우리의 어제와 오늘을, 또 한 번 재차 끌어안고 어루만져 주었다.

20년, 우리 이렇게 함께 살아냈다고.

이렇게 또 살아가자고.

 

노래를 마치고 개운하게 웃는 그를 멀거니 바라보았다. 잔잔한 채로 사라지지 않는 웃음이 눈앞에 동동 떠다니는 동안 그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음악감독님에게로 달려갔다. 손을 잡아 에스코트하는 무릎이 정중했다. 간밤 사이에 뚝딱 투입된 노래에 그의 상체가 잘 익은 벼처럼 연신 허리접은 인사를 거듭했다. 자신의 수고로움을 피력하기에 앞서 동료의 노고를 보듬을 줄 아는 이 사람은, 무대를 마치고 나서 더 바빴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웃는 얼굴이 시야에서 흐려졌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무대를 향하여 쏟아지는 박수를 연주자의 몫으로 돌리는 그 때문에 시야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진한 채로 생각했다.

 

삶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 하는데, 이 사람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만을 주는구나…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사람이었나, 사랑이었나, 행복이었나. 20주년이란 것이 원래 이렇게 행복만을 수확하는 시기인 걸까. 원래 이런 것인가.

 

알 수 없었다.

내 생에 20주년은 이 사람과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터이므로. 이건, 이것만큼은 더 살아보지 않아도 그저 알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