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기념하고 싶은 날을 맞아 어김없이 반가운 얼굴 비추러 온 사람.
“이렇게 여기 케익도 있어요.”
짠. 소개하기 무섭게 쿵 미끄러져 산산조각 난 케이크를 오프닝에서 볼 줄이야. 어허허. 허탈하게 웃는 오빠 옆으로는 묵묵하게 들려오는 찰칵 소리. 수습은커녕 산산조각 난 잔해를 담기 바쁜 팜트리를 보며 더욱 황망해지는 우리의 사랑스러운 주인공. 결국은 초 불기도 케이크 컷팅도 생략되고만 기념일 라이브조차 그다워 사랑스러운, 언제 불러도 사랑의 이름일 시아준수.
그 사랑이 또 뒤늦게, 폭풍이 지나가고 나서야 실은 폭풍을 겪었노라 고할 때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이 된다는 걸 오빠는 알까. 뮤지컬 인생 중에 이렇게 아픈 상태로 공연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는 말에 철렁 내려앉는 마음을,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관객분들의 에너지로 어떻게든 하게 되었다는 말에 재차 무너앉는 심장을 아는지. 아직은 해쓱한 얼굴이 오늘 내일이면 100퍼센트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며 해사하게 웃어 보이는데, 따라서 웃을 수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어진 채로 그저 시아의 준수다움에 심장을 틀어쥐고 만다는 걸 상상이나 할까.
하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으니까 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구요.”
걱정보다는 믿음을 바랄 사람이라서. 왜인지 너무 잘 알기에 그저 응, 오빠를 믿는다 할 뿐이란 걸 아시는지.
그런데 오빠. 본인 걱정은 하지 말라면서, 팬들 걱정은 왜 그렇게 살뜰하게 하나요? 매일매일 멘보샤를 하고 있자니 여러분이 지겨웁게 느낄까 걱정, 그렇다고 안 하면 패싱 당했다며 시무룩해하는 것도 걱정. 이거 안 하고 딴 거를… 해도 괜찮겠냐며 조심스럽게 눈동자만 올려서 살피는 얼굴은 아, 또 또 세상의 사랑을 다 품고 있어서. 다감한 빛 다사로이 드리운 오빠 눈동자 앞에서 마음이 어찌나 기쁘게도 따끔대던지.
사랑이라는 이유로 맞물리면서 서로 알아 오기를 15년, 아니 20년. 내가 오빠를 아는 만큼 오빠도 우리를 너무 잘 알기에 설명이 필요치 않은 순간들이 우리 사이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음을 목격할 때의 감격이란.
가령,
“우리 팬분들 몰라요?”
캡처타임을 외칠 필요조차 없지. 실제로 프레임 단위로 캡처하고 있던 중에 팜트리를 향한 그 일갈을 듣고 있자니 어쩐지 기대에 부응한 것 같고, 칭찬받은 기분이 되어버렸음을.
역시 우리는 거의 일맥상통해. 척하면 척. 마음과 생각이 마주 닿는 이 감격은 우리가 쌓아온 시간이 주는 선물.
선물 중에서도 으뜸인 건 우리의 긴긴 시간 내내 모든 면에서 참 한결같은 오빠라는 걸. 진실의 입꼬리를 도통 숨기지 못하는 점도, 감사함을 표현하는 순간엔 늘상 일관되어 더욱 소중한 이야기를 번번이 되풀이하는 것도 그저 사랑인 사람.
모차르트 초연 첫공의 기억을 더듬으며 어느새 깊게 잠긴 눈동자가 그날 그 순간의 떨림, 긴장, 불안함을 차례차례 되짚다가 결국에는 팬들을 향한 감사함으로 귀결하고 마는 것까지, 한결같음으로 심장을 두드리는 사람.
무대와 공연에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는 점 또한 그렇지. MR이 없어서 노래를 못 부르는 건 원치 않았다는 말이 이렇게나 설렐 수 있을까? 오케스트라를 초빙케 할 정도로 부르고 싶었던 넘버라니? 역사가 된 눈콘의 시작도 딱 이러하였건만, 이 사람이 또 처음과 같이. 사실은 슬픔의 행방을 이 땅에서 부르고 싶었기에 아예 그게 가능한 콘서트 자체를 기획해 냈던 우리의 어마어마한 사람이 이번에는 대관절 어느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걸까. 어느 캐릭터의 어느 노래가 이토록 김준수다운 결행을 북돋아 주었을까? 다가올 공연을 앞둔 기다림의 시간을 또 이렇게 행복한 상상의 나래로 수놓아주다니, 내 삶의 기쁨이 너무도 살뜰하게 사랑스러워 어쩌지. 아, 김준수가 삶의 나래이자 활력인 생이라니, 이렇게나 기쁠 수가.
기쁘기만 한가. 웃기도 너무 웃게 해. 태어나 처음으로 훌훌 보내주고 만 먼지를 떠올리며 한없이 공허해지는 눈동자가 귀엽다고 좀 웃어도 될까요? 어떻게 키운 먼지인데, 하소연하며 미끄러지는 눈매가 너무 귀여운 걸 어떡해. 그래도 너무 걱정 말아요. 먼지는 곧 돌아올 거예요.
와중에 처음엔 울 뻔했지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다며 툭툭 털고 일어나 웃는 마음가짐이 비범하기 이를 데 없는 것까지가 당신이란 사랑의 완성.
정말이지..
귀엽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우리의 모든 시간 내내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만큼. 15년 전의 내가 오늘의 나를 본다면 여전히 행복으로 귀결되고 있는 이 사랑의 미래에 가히 ‘끝나지 않는 해피엔딩’을 떠올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