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면은 너를 보낸다 rep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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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장
별무리를 응시하며 사르르 웃는 얼굴은 처음. 미세하지만 분명히 미소를 그린 얼굴이었다. 나아가 건반에 몸을 맡긴 채 살짝 기울여 웃음 머금는 얼굴까지. 사람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요? 사실 사람의 형상을 한 사랑인 건 아니고요?
 
2. 당신은 누구일까
헨리 워튼의 ‘그래서~’도 평소와는 달리 의미심장하게 뜸을 들인다 싶었는데, 세상에. 새침하게 쏘아댄 ‘플라토닉 사랑이거든요!’ 놀람은 아주 잠깐, 감탄이 일었다. 너무나도 어울리는 애드리브가 아닌가. 그녀의 재능을 향하였던 관념적 사랑이 재능의 함몰과 함께 끝나리란 예고 아닌 예고가 되어주었으니까. 개연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애드립이 아니라 극을 다듬어주기까지 하는 재치 있는 선택. 아, 가능하면 앞으로도 매번 듣고 싶을 만큼이나 좋았다.
 
그나저나 주말 밤공의 새 애드립 공식이 고착화되려나 싶었는데 역시 예상을 비껴가는 그. 이런 점은 꼭 시아준수라서 반가웠다. 도리안이지만, 그를 본 것 같아서.
 
3. 최악의 줄리엣
드디어 기다리던 줄리엣의 차례. 무대 위 그녀를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며 한껏 부푼 얼굴이 일행들에게 신이 나 소개를 하는데, 선 채로 조는 앨런 캠벨을 발견하고는 멈칫. 나의 그녀를 자랑할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몸소 자리에서 일어나 앨런을 깨우며 주의를 환기시키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너무 귀여웠어. 한 번 더 말해야지, 너무 귀여웠어! 예상범위를 벗어난 애드리브의 즐거움 또한 주었지. 앞으로도 이 장면에서 계속하여 다채로운 연기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대가 된다.
 
그리고 시빌 베인 화이팅. 이제는 발연기보다도 아예 개그에 욕심을 내는 것 같다. 자연히 일행들의 웃음이 만발하고, 그는 초조한 분노에 잠겨 든다. 난간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손에서 걷잡을 수 없는 황망함이 느껴졌다.
 
4.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찬란한 아름다움을 이어 부르는 그의 어깨에 어느 순간 넌지시 놓여진 헨리 워튼의 손. 미동도 없이 그 상태 그대로 맺어지는 타락의 주문. 꼭 인형술사에게 속한 마리오네트처럼 비추어지기에 안타까움을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특히나 오늘은 찬란한 아름다움을 부르는 그와 배질, 헨리 워튼이 한 시야에 들어오는 각도였는데 한눈에 보이는 그 셋의 부조화가 마음을 서걱서걱하게 했다. 여전히 눈물 맺힌 눈으로 환상을 좇아 흐려진 그의 눈. 감시자처럼 뒤를 지키고 선 채 새까만 눈동자로 날카롭게 그를 응시하는 헨리 워튼. 그 대각선 뒤로 다시 푹 고개 숙이고선, 차마 그런 그들을 바라보지도 또 외면하지도 못하는 배질까지. 이 삼각형을 그 자리에서 깨트릴 수만 있었어도 그다음은 없었을 텐데. 누구 하나 자신의 꼭지점에서 벗어나지 아니한 채 마무리되어가는 찬란한 아름다움이, 말 그대로 찬란한 만큼이나 서글펐다.
 
5. Against Nature
꿈틀대는 푸른 핏줄ㅡ의 광기에 휩싸인 눈을 만났다. 사로잡힌 눈이었다. 저 건너의 쾌락에 경도된 눈동자가 번뜩였다. 잔뜩 부풀어 시린 안광이 형형한 그에게 묻고 싶었다. 도대체 그 너머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 뒤에 다가올 공허함은 혹시 아는지.
 
6. 넌 누구
오늘의 그림은 난간에 살짝 기대어 앉아 뱉은 나른한 숨. 종잇장 같은 옆선이 아무런 무게감 없이 난간에 그 몸을 실었을 때, 마치 악의 꽃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은 자태가 실로 그림이었다.
 
7. 감각의 완성
이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마약이 어떤 의미에서 쾌락의 마지막 경계선인 걸까. 살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마약ㅡ‘기분 좋아지는 그것’은 브랜든 부인들도 하던 것이 아닌가? 마약이 쾌락에서 배척당해야 할 근거가 대체 무언가. 이런 의문을 품는 내가 도덕적으로 해이한 걸까. 하지만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감각’을 추구한 건 헨리 워튼 그 자신이 아닌가? 마약은 도덕의 범주가 아닌가? 마지막 경계선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 경계 짓는 자가 있다면 그 또한 인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삶의 그 무엇이 인간의 머릿속 죄악이고, 또 죄악이 아닌 것인가. 아, 온통 혼란이다. 정말이지 헨리 워튼을 잘 모르겠어.
아니면 설마 이러한 모순ㅡ헨리 워튼에게 도덕의 잣대가 생기기 시작한 이 모순이 설마 (조용신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헨리 워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자신의 궤변에 함몰된 도리안은 여전한 채로 두고 헨리 워튼만 빠져나가는 법이 어딨어. 이렇게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악질적인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어.
 
8. 무엇이 기다릴까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다급하게 배질을 끌어당기는 손이 그때까지 담배를 쥐고 있던 왼손이라는 사실이 문득 눈에 박혔다. 순간적으로 담배를 오른손으로 건네주고 왼손으로 배질의 손목을 움켜잡는 모습에서 찰나의 시아준수의 버릇을 목격한 것 같아 좋았어.
 
나를 ‘사랑했던’, 은 동그란 발음에서 더 나아가 오늘은 웃음기마저 머금었다. 조롱 그 이상. 배질의 마음을 멋대로 재단하며 하시하는 어투로 일관하던 말씨가 자신의 짐작이 명중하였음을 빌미로 다시 한 번 배질을 비웃었다. 마치 손안에 든 물고기를 가지고 노는 것 같은 그였어.
 
‘당신이 만든 나’ㅡ는 점점 더 안개결이 되어간다. 스르르 덤벼들듯 다가서 배질의 얼굴을 그러쥘 듯하다, 도리어 자신이 양 손목이 잡혀버린 얼굴로는 또 웃음 새는 눈이 되었다. 전부가 유희인 것 같은 그에 비해 고통스러운 배질의 얼굴은 이 장면의 아슬아슬함을 극대화해낸다. 사실상 치부를 숨기기 위하여 필사적인 것은 그인데도, 겉으로 드러난 표정의 온도 차 때문에 마치 그가 삼키고 배질이 삼켜지는 것 같은 모순이 피어난다.
 
찬란한 아름다움에 이르러서는 대놓고 배질의 고통을 탐색하며 즐긴다. 탁성의 노래로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며 웃어. 하지만 그렇게나 모질다면 모진 그인데도 그 얼굴이 품은 아름다움에 차마 탓을 할 수는 없다. 배질도, 나도.
 
입맞춤의 소리는 다시 선명해졌다. 그 탓에 오늘은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소리가 되었어.
 
9. 또 다른 나
‘이-십-년 전?’ 습격자의 말을 되새기는 얼굴이 모종의 뜻을 담고 살풋 웃음을 내비쳤다. 빠져나갈 궁리가 이미 마쳐진ㅡ꿍꿍이를 담은 목소리가 말했다. ‘내 얼굴을 똑바로 봐. 내가 그 나이로 보이나?’ 놀라는 습격자의 반응에 아스라이 드리워진 회심의 미소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아, 정말 악인 같잖아.
 
그런데 샬롯 베인 양. 아무리 분노의 습격이라지만 칼끝이 그의 목에 닿지 않게 해줄래요..?
 
그리고 또 다른 나. 오늘도 마음이 복작복작했다. 시야를 가리는 앞가림막의 의도를 이해해버린 후로는 내내 이렇게나 번잡하다. 확실히 매글의 마음으로 내려놓고 보면, 뒤편의 영상만 존재하는 것보다는 이중막에서 정신없이 교차되는 영상연출이 그의 정신 속 혼란을 빚기에는 제격이다. 이중막에 갇힌 채 아스라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그는, 그러나 실루엣만으로도 분명하게 탁류를 헤치며 방황하는 그는, 한 폭의 그림이 맞다. 시각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소리로는.. 소리로는 도저히 양보가 되지 않아. 백번 양보해서 이중막의 존재는 그대로 둔다 해도 ‘그의 퇴장’은 현장감을 앗아가는 악수일 뿐이다. 관객은, 나는.. 그가 퇴장한 순간부터 잃어버린 현장감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걸 단지 일장일단의 문제라 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이건 양보할 수 없는 본질의 문제에 가깝다. 뮤지컬의 본질로서의 현장감 있는 공연예술을 전면으로 건드리는 부분이지 않은가.
 
10. Life of Joy
타락의 건배 후 배질에게 돌진하는 차례에서 오늘은 거의 충돌하다시피 했다. 두 사람의 걸음이 엉키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 모는 걸음과 쫓기는 걸음이 엇박으로 얽히며 노래보다도 급박한 쫓고 쫓기는 역습이 빚어졌다. 완력에 가까운 몰이가 이끌어내는 급박한 절정이 심장을 세차게 조였다. 소리로도, 동선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연기의 합. 오늘의 이 급박함, 또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은 느닷없이 그의 다리에 시선을 강탈 당해서.. 어쩌다 뾰족한 무릎과 곧은 종아리선으로 시선을 떨구게 되었는데 그 순간부터 자꾸만 홀린듯이 시선을 빼앗겼다. 그의 성정을 닮아서 저렇게 곧은가. 흠 없이 곧은 다리가 나무랄 바 없이 그저 아름다운데, 그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무대를 종횡하니 또 자꾸만 보게 되고.. 보게 되면 앓게 되고.. 으응..
 
11. 악의 꽃
샬롯 베인을 에스코트하여 나가며 계단 앞에서 한 박자 쉬는 타이밍의 그가 좋다. 말로는 못하겠는, 찰나에서조차 뼛속까지 사교계의 왕자님다운 그야.
 
12. 너를 보낸다 reprise
아, 단언컨대 오늘의 장면. 슬프도록 아름답게 빚은 한 편의 그리스 비극.
 
계단 위 영혼의 비밀을 드러낸 얼굴이 씩씩거리며 웃었다. 여보란 듯한 웃음이었다. 명료할 정도로 보여주기 위한 웃음이었어. 그렇게 궁금해하던 진실을 직접 보니 어때? 묻는 것 같은 얼굴이 악에 받친 웃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물었다. ‘어때, 아름답지 않아?’ 미세한 떨림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재차 다그쳤다. ‘이십년 전 니가 그린 그대로야.’
어떻게 숨겨 온 진실이고 어떻게 드러내어 보인 진실인데,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기조차 거부하는 배질은 꾹 눌러 담았던 그의 분노를 있는 대로 터트려냈다. 니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그런데 니가 날 외면해? 니가 날 떠날 수는 없어.
 
한껏 악에 받친 외침이 절규가 되었을 때 그가 말했다.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 울음 섞인, 애원 아닌 강요. 여전히 아름답노라 울부짖는 오랜 친우를 보는 그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저 도리안 그레이가 아름답다고 말해.’ 그의 손에 들린 흉기를 목격한 순간 이미 죽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흔들림 없는 배질의 소신이 도리어 그의 가슴에 비수로 박히는 것을 보았다. 심장이 찔린 고통의 얼굴에 증오와 두려움이 한데 번져 들었다. 자신이 더욱 고통스러운 얼굴로, 자신이 가장 상처받은 얼굴로 그는 응당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처럼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아. 이렇게나 완벽한 완급조절과 주고받기라니. 그대로 박제하고 싶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완벽’했어. 비극의 정석이었다.
 
13. 사라진 아름다움
그렇게나 무정한 얼굴로 ‘배질이 살해당했을 거라는 생각, 해본 적 있느냐’ 묻더니. 소름 돋을 정도로 비인간적인 웃음을 섞어 넣으며 웃더니, 무너진다. 영혼의 비밀을 들추는 헨리 워튼의 직구에 해제되고, 실패했다는 선언에 무너진다.
 
애원이었다. 첫 호소는 슬픔을 그린 그림처럼 심장이 없는 얼굴. 둘은 ‘만약 내가 배질을 죽였다면요?’ 마지막은 ‘조여오던 심장’을 토로하는 음성.
그러면서도 배질에게 끝없이 잔인하였던 모습과는 반대로 모질게 몰아붙이지조차 못한다. 호소에 응하지도, 찬란한 아름다움을 재차 들려주지도 않는 불통 앞에서도 결코 배질에게 하였던 것처럼 막 나가지 못한다. 헨리 워튼에게는 그런다. 그저 헨리 워튼이 그의 존재를 부정하기까지 무력하게 서 있을 뿐. 온통 부정당한 실패작이 되어 그 자리에 존재할 뿐.
 
나는 포기했다. 헨리 워튼에 대한 감정적 거리 유지에 실패하였음을 인정해. 분리하여 바라보려 하였으나 더는 그럴 수 없다.
그의 애원을 거부할 권리가 헨리 워튼에게 있는가? 자신이 뿌린 씨앗이 아닌가. 실패로 규정하고 발을 빼면 그만인 건가? 나는 용납할 수 없다. 더는 헨리 워튼을 이해의 범주로 포섭할 수 없어. 이제는 할 수 없다.
 
14. 도리안 그레이
사라진 아름다움이 남긴 것은 결국 파멸. 아름다움을 더 유지할 수 없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 하였지. 그 말대로 되었다. 더는 없는 아름다움과 같이 그의 존재의 이유도 덧없이 사라졌다. 극단의 선택을 결행하는 그를 잠자코 보는 것이 괴로웠다. 왜, 살아남아 다음을 기약하지 않을까. 회개의 다음이,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배질의 말을 기억해내지 않을까.
구원의 경종보다도 실패의 선언이 사무쳤는가.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를 지배한 건 배질보다도 헨리 워튼이란 말인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나. 왜 자신의 안에서는 가치를 찾지 않는가.
홀로 되어 남겨진 것에 회한하는 자조의 음성이 너무도 쓰렸다.
 
 
(+) 그만 인사하자, 되게 안 친해 보여ㅡ라는 배질의 애드립에 웃을 수 없었다. 계속 안 친하게 해주지 그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