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넘버는 도리안 그레이.
10월 8일의 낮공을 되살려와, 변주를 더한 오늘의 도리안 그레이.
나 싱그러웠던, 나 밝게 빛나던ㅡ순수를 향한 최면에 매달렸던 얼굴이 소용없음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에서 차오르는 감정이 한때는 예'뻤겠'지의 진성으로 이어지는 호흡이 돌아왔다. 더불어 생을 그어낸 순간 '모든 것이 끝났음'에 안도하는 것처럼 질끈 감아 내렸던 눈 또한. 의미 모를 웃음을 뱉어냈던 8일 낮공에 이어 안도하는 것처럼 들썩이던 어깨까지.
아, 다시금 재연된 해방의 의식이었다. 제 남은 생을 처단함으로써 모든 불행에 종말을 고한 것이다.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하는, 용서를 구할 이조차 더는 없어진 죄지은 육신을 자기 스스로 가장 고독하게 단죄한 것이다.
아름다운 소년이 나를 부른다
텅 빈 허공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울음뿐이었다. 구원은 없었다. 그저 회오리치는 울음의 끝에 맺은 '다'가 그 생의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지난주와 같이 현실이 되지 못한 레퀴엠이 서럽지 않았다. 허황의 낙원에 그쳤으나, 허상의 구원이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오늘은 보였으므로. 고독하고 비참한 죽음과 맞바꾼 인간성의 회복을, 예감하였므로.
*
1. 찬란한 아름다움
헨리 워튼의 손끝을 따라가는 시선이 오늘의 아름다움. 자신의 턱을 끌어당기는 손가락으로 나긋하게 내려앉은 시선이, 차츰차츰 고개 돌려 헨리 워튼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눈에 담았다. 곧이어 타락의 물결을 헤치듯 허공을 가르는 헨리 워튼의 손가락을 따라 정면으로 되돌아가, 이제는 위험한 빛을 품고 반짝였다. 기이한, 황홀한, 고통. 음산해진 헨리 워튼의 목소리에 감응하여 마구잡이로 혼탁해지는 얼굴이 처음 맛본 감각적인 쾌락의 세계에 경이를 띠고 이채로운 빛을 냈다.
아, 찬란한 아름다움의 그는 마치 표정으로 노래를 하는 것 같아. 얼굴로 노래를 수놓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2.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아름다움에 대한 자각의 환희도 잠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얼굴이 분한 듯이 반짝였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환희와 고통을 감당하기가 버거운 듯, 온통 혼란인 그의 정신이 느껴지는 것 같은 음성들이었다. 어제오늘 계속 처창하게 아름다운,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3. 당신은 누구일까
일생일대의 로맨스라구요오! 오늘 왜 이렇게 귀여웠나. ㅋㅋ 꼭 잘라서 들을 것.
특히 아름다웠던 순간은 시빌 베인을 향하여 다가서는 일자 걸음. 또각또각 사뿐사뿐 사랑을 향해 계단을 딛고 오르는 발끝이 날개를 단 듯 살랑살랑. 그의 설렘, 웃는 얼굴, 황홀한 눈동자가 뒷모습에서도 보일 정도로.
애드립은 배드 보이에서 뱃 보이가 되었당.
4. 최악의 줄리엣
일행이 한 마디씩 하면서 퇴장할 때의 얼굴이 오늘 왜인지 매우 귀여웠다. 나의 안목, 내 사랑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실패한 얼굴에 분함이 가득한데, 동시에 이걸 어쩌나 하는 갈팡질팡한 빛도 엿보여서 그랬을까. 그가 화를 내는데 귀여워 보이다니...
5.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하지만, 하지만 그녀가 자살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평소 단말마 같은 외침 후 늘 섧은 울음을 짙게 토해냈다면, 오늘은 조금 달랐다. 허공에 또렷하게 못 박힌 시선이 공포에 질린 채 숨조차 겨우 쉬었다. 잔뜩 질린 눈동자가 파들파들 떨었다. 무엇을 그리 사색이 되어 보았던 걸까. 시빌 베인의 환영? 처음 경험한, 자신이 이끈 죽음이 드리우는 고통?
오늘만의 충동이었는지, 내일도 이같은 변화를 보여줄지 조금 더 지켜보아야 알 것 같다.
오늘만의 충동이었는지, 내일도 이같은 변화를 보여줄지 조금 더 지켜보아야 알 것 같다.
6. Against Nature 시퀀스
1막 패션쇼에서 헨리 워튼을 향하여 근사하게 웃던 얼굴이 오늘의 심쿵.
무려 1막 또 다른 나에서 음향이 무려 두 번 먹히는 사고.
7. Against Nature
죄악의 황홀한 절!정!은 오늘도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첫 구원하소'서'에서 마치 비명처럼 갈라졌던 목소리. 그가 예정에 두지 않은 갈라진 음성이었는데, 절묘할 정도로 그 가사와 순간에 어울렸다. 타락을 위한 질주로 거침이 없으면서도 구원을 바라는 모순적인 영혼에 꼭 어울리는 소리여서 그랬을까. 시아준수는 역시 모든 소리로 노래를 빚지요?
그리고 첫 구원하소'서'에서 마치 비명처럼 갈라졌던 목소리. 그가 예정에 두지 않은 갈라진 음성이었는데, 절묘할 정도로 그 가사와 순간에 어울렸다. 타락을 위한 질주로 거침이 없으면서도 구원을 바라는 모순적인 영혼에 꼭 어울리는 소리여서 그랬을까. 시아준수는 역시 모든 소리로 노래를 빚지요?
8. 무엇이 기다릴까
오늘 다시 불현듯 그 다락에서 비틀비틀 내려와 '요즈음, 너무 힘들어요.' 하는 얼굴이 아팠다. 왈칵 치미는 서러움에 혼났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영혼의 비밀. 조여오는 심장에 얼마나 혼자 아팠을까. 약에 취해 몽롱하여서도 '힘들다'고 말하는 그가 아렸다.
마리화나를 쥔 손이 빙그르르, 허공에 원을 그려낸 후 입술에 닿았다. 더없이 아름답게 젖은 입술로 안착한 마리화나가 한 폭의 어그러진 그림이었다. 나아가 그것을 문 얼굴이 푸스스 웃으면, 배덕한 아름다움 하나. 그대로 마주한 상대의 얼굴을 향하여 연기를 뿜어내면, 그 절정. 고통 반, 경악 반으로 일그러지는 상대의 표정을 확인하고서는 또 웃는 얼굴은, 아.. 무엇이 그를 이렇게, 너는 어디로ㅡ가 절로 떠오르는 타락한 순결의 아름다움.
'네가 느끼는 고통, 나도 느끼고 있으니까.'
그 말에 잡힌 두 손목을 풀어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멎었다. 번득이는 눈동자가 배질을 샅샅이 탐색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 다 알고 이야기하는 것인가. 얼핏 파르르한 떨림까지 스며든 눈동자에서 은밀한 초조함이 엿보였다.
'어딘가 변해버린 네 얼굴. 왠지 불안한 심장소리.'
배질이 근접한 것은 아직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얼굴이, 그제야 풀어지며 특유의 악마 같은 여유를 되찾고 은밀한 미소를 머금었다. 배질이 잡아 걸어두었던 모양 그대로 허공에 멎어있던 손목도 그제야 사르르, 내려왔다.
아, 얼마나 섬세했는지 몰라. 가슴을 두드리는 섬세함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도리안의 생명이 담긴 그 눈동자, 언제까지나 보고 싶은 모습이야.
찬란한 아름다움ㅡ타락한, 순결한ㅡ의 아지랑이에는 왼손목의 스냅이 더해졌다. 뭉게뭉게 위로 뻗어낸 손목이 빙그르르 꺾이며 꽃을 피워냈다.
그리고 오늘 새로이 본 것. 그가 한 손으로는 배질의 손을 잡아 이끌고, 다른 손으로는 배질의 옆얼굴부터 귀, 목, 어깨, 팔을 쓸어내릴 때 그 손길을 내려다보며 쫓는 배질의 시선. 고통이 역력하게 담긴 눈이면서도 그 손길을 놓치지 않는 시선이었다. 그가 선사하는 것이라면 어떤 고통이나 타락이라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것 같은 눈이었다.
가운 대신 빨랐던 것은 입맞춤. 채 맺지 못한 배질의 음성까지 함께 삼켜버린 입맞춤이었다. 그조차도 너무도 절묘하였던 것이, 여지를 주지 않고 함락시키는 듯하여서. 감탄스러웠네.
9. 또 다른 나
내 속죄는 진실로 내 뜻인 걸↗까의 강약이 한 소절 앞당겨졌다. 내 공포는 속죄의 시작인가↗. 진화하는 밀고 당기기♡
그리고 늘 좋아하는 부분이었는데 쓸 기회가 없었던 것. 숨-겨-진-나까지 내지른 후 뒤로 헛디디듯 비틀비틀 뒷걸음질하며 문을 여는 모습의 그. 이때 결코 뒤돌아보지 않고 정면에 못 박힌 듯이 또랑또랑 빛을 내는 광기에 휩싸인 눈동자의 그.
10. Life of Joy
'인간을 매혹하는 건 불확실성이에요.' 오늘의 새로운 말투. 거의 발작하듯 뱉어낸 문장이었다. 다시 들어보아야겠어. 숨넘어갈 것처럼 찍어눌렀다고 느꼈다.
전체적으로는, 도리안 그레이를 제외한 오늘의 넘버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찬란한 아름다움의 치솟는 강세, '결국 내가 만든 나'의 광기 어린 포르티시모, 황홀했던 기'억'의 처절한 절규까지. 완벽했다. 손끝까지 강타하는 짜릿함에 황홀했고, 행복했어. 이 검은 어둠의 합창이 빚어내는 혼돈의 카타르시스가,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11. 악의 꽃
오늘의 샬롯 베인. 계단을 오르던 중 무슨 연유에선지 그와 나란히 올라가지 못하고 뒤처졌는데, 그런 그녀를 보고는 멈칫. 오르던 걸음을 당기어 다시 그녀에게로 향하여 재차 에스코트해가는 그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멋졌다. 심지어 평소보다 지체된 도달 탓에, 계단 끝에 이르러서는 한 번에 두 계단을 성큼 올라서서 문을 살짝 열고 그녀를 기다렸어. 너무나도 왕자님이었다.
12. 천사의 추락
헨리 워튼을 보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3. 너를 보낸다 reprise
'하, 하, 난 냉혹한 사람이 아니에요.' 설핏 서린 웃음소리를 들었다. 헛웃음처럼 공허한 그 소리가 애써 자기 자신을 방어코자 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난 그녀를 용서해주었어요.' 아름답도록 속살거리는 음성에도 미동조차 없이 텅 빈 친구의 눈동자에 그가 다시 마른 고통의 웃음을 뱉어냈다.
'비로소 진-정-한 선행을 베푼 거예요.' 배질을 향하고 있지만 배질에게 닿지 않는 독백 같은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데도 너무도 고독하고 외로운 방 안이었다.
'하, 다신 날 보지 않겠다고?' 약이라도 한 사람처럼 축 늘어진 어깨를 굳이 일으켜 세워가며, 하지만 좀처럼 곧게 서지 못하는 늘어진 어깨로 그가 두 눈만 치켜떠서 배질을 보았다.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엉망인 모습이 배질의 눈에도 따가웠겠지. 너를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말에도 변함없는 눈동자에 아렸겠지.
아픔의 절정은 계단을 타닥타닥 올라가는 발걸음 소리에 있었다. 흐느낌처럼 탁, 탁, 탁 균일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그건 차마 소리로는 내지 못하는 그의 내적 울음 같아서 더 마음을 아리게 했어..
14. 사라진 아름다움
심장이 없는 얼굴,에서 텅 빈 자신의 심장을 그러쥐는 공허한 손가락. 피할 수 없는 숙-명-에서 헨리 워튼의 어깨를 몇 번이고 그러쥐었음에도 소용없던 매달림.
멀어져가는 헨리 워튼을 보는 눈이 어제부터 살짝 정색에 가깝게 굳는다. 실험체로서 존재해왔던 지난 시간을 뼈저리게 깨달은 얼굴에서 고통과 분노가 회오리치다 슬픔으로 무너지고 말아.
(+)
오늘은 칼배로 목을 그었다. 칼배임을 확인하고 나면 늘 안도해.
그나저나 샬롯 베인. 요즘 너무 칼을 목에 세게 대어 누른다. 살갗이 눌리는 게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라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어.
그리고 음향팀. 일전에 그의 대사에서 마이크가 제때 켜지지 않았던 적이 있었지. 오늘은 그의 노래(1막 또 다른 나)에서 그랬다. 부디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은 없었으면. 힘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