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물은 배질의 실수에도 웃지 못하던 젖은 눈. 배우들도, 관객도, 배질 본인도 그만 푸스스 웃어버리고만 이벤트 같은 실수에 조금도 동화되지 못하던 촉촉한 눈. 아, 그 젖은 눈가를 닦아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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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시 돌아온 눈맞춤의 24번. 공연을 본 건지 그 눈을 본 건지 모르겠다. 끝나지 않는 황홀경에 지금까지 노곤노곤한 기분. 내 시선이 정면을 향하는 거의 매 순간ㅡ등장, 찬란한 아름다움,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against nature, 넌 누구, 넌 어디로에서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정면을 쏘아보던 눈, life of joy의 기도하고 사랑하라 짜릿하게, 그리고 도리안 그레이에서 '나를 향하여 젖은 눈'을 보았다.
무엇보다. 무릎 걸음이 정착되고 난 이후로는 처음인 눈맞춤의 번호. 나를 향하여 다가오는 무릎 걸음의 얼굴은 너무도 마음이 깨질 듯한 시야였다. 사랑해 마지않는 10월 8일의 고조를 이어가는 오늘의 도리안 그레이였음에도(남아있지 않아ㅡ에서 시작하여 예뻤겠지를 딛고 모두가 사랑했던 도리안에서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나는 그 눈 외에는 대체 무엇을 보았는가.
내 눈에 남은 것은 내 시선 안에서, 엉금엉금 무너지는 걸음으로 다가서려 안간힘을 쓰던 작은 몸뿐. 그건 마치, 내가 그가 그토록 바라는 눈앞의 아름다운 소년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을 심어주었다. 아, 그렇게라도 그의 환영으로 실재할 수 있다면 좋았을 걸.
그러나 오늘도 구원은 없었다. 홀로 남겨진 죽음 끝에 어둠이 드리울 뿐. 허황의 낙원에서 울면서 웃는 그만이 존재하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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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질의 거실
'배질이 말한 나쁜 영향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의 새초롬했던 목소리.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사랑스럽게 새침하고, 사랑스럽게 당당하고, 또 사랑스럽게 자연스러우면 어느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푸스스 웃어버리고 마는, 헨리 워튼의 잔류를 승낙하는 배질의 마음이 딱 내 마음이야.
2. 당신은 누구일까
청혼할 생각이에요, 와 함께 헨리 워튼의 책 위로 얹어지던 손바닥. 이렇게 잔망스럽기 있나. 고개도 이케이케 앞으로 내밀어 헨리 워튼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사랑스러움, 대체 어디에서 왔지?
오늘의 아름다움은 신이 허락해준 나의 사랑, 나의 사랑ㅡ에서 날아오는 날개 단 발걸음. 팔랑팔랑, 양 날개에 사랑을 가득 묻히고는, 나풀나풀.
3.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내가 그녀의 가냘픈 목을 칼로 그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의 호흡이 매우 좋았다. 이미 그리스 신화의 비극을 보는 것처럼 마른 대사에 비통함이 가득.
그리고 배질에게 기대어 있던 얼굴을 들 때, 눈물에 젖어 일렁이던 눈의 아름다움.
4. 1막의 또 다른 나
1막에서 가장 좋았던 소리.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움. 아름다움의 홍수. 이건 들어야만 한다. 잘라서 들을 것.
5. Against Nature
위에도 적었지만 이것만큼은 꼭 따로 적어야 해. 24번의 눈맞춤, 최고양♡ 포복하는 찰나의 치켜뜨는 눈, 좋아하는 한쪽 무릎만 꿇은 로미오까지. 완벽해.
6. 넌 누구
그 아름답던 소년ㅡ에서의 찡긋거림에 그만 심쿵. '아름답던'과 '소년'을 이어준 찰나의 찡긋에서,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선과 악을 동시에 입은 채 찡긋하는 눈이 감탄스러웠어.
7. 무엇이 기다릴까
배질의 말을 무시하며 낄낄 내뱉는 웃음소리가 특별했다. 중간엔 신음성처럼 억눌린 소리를 내기도. 이런 웃음은 오랜만.
입맞춤을 보내는 입술 모양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오늘은 조금 더 츄~ 동그랗게 모아서 얄궂은 아름다움을 빛냈다.
날 사랑했던,은 거의 처음으로 배질을 향한 완전한 옆모습이 아니라 비스듬히 비켜난 옆얼굴이었다. 그래서 정면에서도 그 은밀하고도 잔인한 표정이 보였어. 기뻤다.
나도 알 수가 없었던 숨겨진 나, 영원한 삶 선사한 또 다른 나ㅡ의 소절들. 소리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여기에 비석을 꽂을래.
이어지는 찬란한 아름다움은 28일과 13일의 만남. 퇴폐미 극치의 주문이 배질을 옭아매는 것이 시청각적으로 다가왔다. 절정은 요즘 늘 그렇듯, '후회 없으라'에서 마침내의 본색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갈퀴 같은 음성.
타락한, '순결한'의 아지랑이 역시 진화한다. 오늘의 자태를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허공의 수풀을 헤치듯 능란하게 피어나던 꽃봉오리 같은 손가락을 대체 뭐라고 해야 해.
그리고 그에게 함락되어 가면서도 머뭇머뭇 망설이며 그의 눈을, 손길을 피하는 배질을 향하던 필사적이던 눈. 입으로는 여유을 가장한 웃음을 그리되 눈으로는 결코 웃지 않던 얼굴.
그 얼굴의 쐐기는 입맞춤 후 가운을 내리기 위해 돌아서려는 찰나, 배질의 어깨에서부터 팔꿈치, 손목, 그리고 종내에는 손가락 끝을 사르륵 스치던 손가락. 아, 찰나의 아름다움.
8. 넌 어디로
너도, 앨런도, 우린 파멸할 거야ㅡ글로스터의 대사.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미래의 사실임을 보는 나는 알기에 불현듯 울컥하고 말았다. 그래. 모두가 파멸하고 말지. 글로스터도, 앨런도, 배질도. 심지어 매음굴에서 두 눈을 어그러트린 채 망각을 위한 쾌락에 젖어있는 그 자신까지, 전부 파멸하고 말아.
9. Life of Joy
왜일까. 황홀했던 시간, 순결했던 기억ㅡ에서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는 그를 보다 울컥했어. 여기서 눈물이 난 건 처음이다. 왜였지. 그 모습은 이렇게나 여전히 아름다운데, 그 노래에는 1막에서 보여주었던 순수가 더는 없어서였을까. 변해버렸음을 온몸으로 온 정신으로 깨닫게 하는 그 소리의 감각에 서글펐던 걸까. 새삼 그의 어그러진 모습이 너무도 마음을 따갑게 했다.
디테일적으로는ㅡ자신의 어깨 부근에 얹어진 배질의 손을 털어내는 동작이 거친 만큼 컸고, 그 바람에 오른쪽 자켓이 살짝 젖혀졌다. 덕분에 신경질적으로 다시 옷매무새를 여미는 그를 보았네.
그리고 심쿵했던 얼굴. 네 등 뒤의 눈물ㅡ에서 빙그르르 배질을 뒤돌아보며 같잖다는 듯 비웃던 눈과 입술. 배질에게는그렇게 냉담하였던 표정이 헨리 워튼과의 찬란한 아름다움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썹을 끌어올리며 화응하던 얼굴.
10. 너를 보낸다 reprise
베/푼/거/예/요의 꼭꼭 씹어뱉는 듯하던 발음. 한숨을 떠나 이제는 경고조의 음성이 되었던 '제발', 내 선행을 폄하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다신 날 보지 않겠다고? 되묻기 전 하아.. 뱉는 숨결이 더욱 짙어진 것까지. 오늘의 그.
난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었어ㅡ부터는 오늘 유난히 멀리로 시선을 두었다. 저 먼 곳, 돌아갈 수 없는 기억이라도 더듬었던 걸까. 비틀비틀 다락을 향하여 옆걸음하면서도 어딘가의 소실점을 놓치지 않고 못 박힌 시선의 끝을 함께 보고 싶었어.
똑바로 봐!의 억양이 새로웠다. 이전까지 애원에 가까운 절규였다면 오늘은 윽박지르는 것 같은 강세로 가득했다. 폭발하는 화산처럼, 마구잡이로 그렇게.
칼은 거의 내던진 수준이었다. 화들짝 놀라며, 내가 한 일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11. 사라진 아름다움
회한의 듀엣ㅡ마무리에서 비명의 소리를 들었다. '사'라진 아름다움. 깨진 유리조각처럼 튀어오르는 소리가 귀를 타격했다. 그렇게 처절한 고통은 없을 것만 같았다.
12. 레퀴엠
시빌 베인, 배질, 그리고 헨리 워튼에 이르러 눌러 담었던 눈물이 왈칵 치밀어 내린 그.
헨리 워튼을 바라보는 오늘의 그를 보며, 레퀴엠의 헨리 워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그건 거울을 보는 눈이었다. 자신의 파멸과 함께 심장을 잃은 또 다른 나를 보는 얼굴이었어. '사라진 나의 심장'을 노래하는ㅡ그를 일러 자신의 '심장'이라 하였던 헨리 워튼이 처음으로 이해가 될 것만 같은 그런 눈이었다.
(+)
헨리,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울먹울먹) 뱃 보이.
천사의 추락. 오늘 처음으로 뒤를 돌아서 '문을 보고' 열었다. 늘 정면을 본 채로 팔만 휘청휘청 뒤로 하여 열곤 하였는데.
오늘도 칼배로 목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