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모든 시간을 사랑하고, 사랑했지만 유달리 아픈 시간이 있고, 유달리 기쁜 시간이 있다. 열 손가락이 모두 같은 강도로 아플 수는 없는 것처럼. 드라큘라는 내게 유난히 슬픈 시간이었다. 벅찰 정도로 행복한데, 그 행복의 진원지가 깊이 고인 슬픔에서부터 비롯되었던 시간.

이렇게 운 적도 없고 이렇게 아파했던 적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해본 적도 없었던 것만 같다.

꼭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아이처럼 당신을 사랑했다. 신기하지, 첫사랑이라니. 당신을 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여전히 처음처럼 경이롭고, 처음인 것처럼 설렐 수가 있다니. 심지어는 막이 내린 뒤에도 멈추지 않는 마음 앓이에 당혹스럽다.

이럴 수 있나. 

오히려 이제야 모든 것이 감각을 찾은 듯 오감이 전부 당신을 향하여 빗발친다. 정작 그 본인은 훌훌 털어버리고, 소중히 보내준 후인데 남겨진 내 마음은 이제 막 시작하는 것과도 같다. 아직까지도 그를 놓지 못한 채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가는 기억을 움켜쥐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극이 올려지는 동안 그를 사랑함에 조금의 망설임이나 소홀함이 없었노라 단언할 수 있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다. 

그래. 다행이다. 외로운 400년의 사랑이 빚은 꽃 같던 그도, 그를 창조한 ‘당신’도 할 수 있는 만큼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했다. 후회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득한 것은 미련처럼 가슴에 남은 그리움. 조금은 쓸쓸한 것 같기도 한 축제 후의 이 고요함.

두 달이 훌쩍 달아나고, 계절은 변하여 처음으로 되돌아올 준비를 한다. 쌀쌀해진 바깥 공기도, 짧아진 가을 해도 전부가 파장을 알린다. 그의 작별인사와 흑발은 이별의 쐐기를 박았다. 나 역시 머리로는 헤어짐을 받아들였다.

남은 것은 마음.

찬란하였던 슬픔과 행복의 시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새로운 시간을 다시금 함께 할 수 있었던 무소불위의 축복마저 허락되었던 지난여름. 

이 모든 것들에 천천히 안녕을 고할 준비를 한다. 보낼 수 없을 것 같은 당신을 서서히 떠나보내기 시작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막공의 후기를 전부 마무리한 후엔 정말 그렇게 되어 있겠지.

그러나 다음 장의 행복이 예고되어 있어도 이 장의 행복을 기억으로 묻는 일은 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