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인 어제가 벼락 치는 격정의 공연이었다면 오늘은 물결 이는 잔잔한 호수를 보는 듯했다.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고 고요해진 수면에 비추어지는 형상이 이럴까. 차분한 흐름이 안정감을 주었다. 조화로운 마티네나 세미막의 고요함이 있었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마음으로 ‘공연’을 감상하기에 좋은 하루였다. 

 

드라큘라 성의 응접실. 노백작님, 걸어가시다가 코트 자락이 걸린 모양이다. 잠시지만 휘청하며 걸린 코트를 빼내느라 걸음을 지체하셨다. 비틀거렸던 한순간, 정말로 노인의 걸음걸이로 보였던 움직임이 무척 절묘했다. 

 

Fresh Blood의 입맛 다시기는 오늘은 오지 않았다. 진태화 조나단과는 하지 않는 디테일인 걸까? 정말로 특정 조나단과만 하는 특정 디테일인 것이라고? 조금 더 지켜보아야겠다. 

반면 불타는 저 ‘녁’은 오늘도 치솟았다. 이 변주는 고정 패널이 될 모양.

 

윗비베이는 ‘매력적인 곳’으로 돌아왔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와 함께. 그리고 너무나 기뻤던, 왼블이었던 덕에 그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던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

 

Lucy & Dracula 1.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구요.’ 단번에 뱉어내는 대신 차분하게 끊어가는 쉼표가 오랜만에 돌아왔다. 그 덕에 문장도 출렁이기보다는 잔잔하게 일렁인다는 느낌을 주었다. 오늘 공연의 차분한 느낌을 대변하는 듯한 문장이었다.

 

기차역에서는 의외의 애드립 잔치. 임혜영 미나가 애드립에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여자를 웃게 하는 데 좀 서툰 것 같아요..”

“역시 신은 공평하군요.”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죠?”

“정상입니다.”

이런 티카티카는 막공에서나 볼 법한 것인데. 두 사람, 꼭 삼연공의 마지막을 기념하기라도 하는 듯한 애드립이었다.

 

She. 어제 처음 들려주었던 천재적인 애드립은 오늘도 왔다. 

“제발, 눈을 떠, 제발.”

앞으로도 계속 들을 수 있는 것이겠지?

최초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왔을까, 불현듯 어떤 섬광이 그를 지나쳤기에 하필 이 대사를 그 순간에 삽입하게 된 걸까. 후일담이 있다면 꼭 듣고 싶다.

 

At Last. 허공에 못 박힌 그의 두 눈이 오래도록 멎어있었다. 깜빡임도 없이 빛을 반사해내는 눈이 유난히도 옅은 갈색이었다. 도저히 저주받은 존재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투명한 동공이 미동도 없다가,

“그래서 그의 영혼은요?”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그녀의 물음에 움츠러드는가 싶더니,

“..영원히 저주받은 생명을 얻었죠.”

대답을 채 마치기도 전에 질끈 감겼다. 빛이 사라진 채 꽉 닫힌 눈꺼풀 아래에서 그가 견디고 있을 어둠을 막연히 상상해보다가 그만 먹먹해지고 말았다.

 

항상 그의 손길에 뺨을 내맡기곤 하는 임혜영 미나. 오늘은 뺨에 닿은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얼굴을 묻었다. 한껏 기댄 동작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를 향하여 온전히 열린 그녀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았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오랜만에 목격한 절묘한 각도의 피눈물. 오른쪽 앞머리가 오른눈 밑에서 둥글게 엉켜있었고, 거기에서 맺힌 눈물과 땀이 붉은빛을 머금고 뺨을 가르며 흘러내렸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니고 연신, 내내.

 

Mina’s Seduction, 그녀가 흔들릴 때마다 어금니를 꽉 깨무는 얼굴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건 “내 피는 그대 피.” 손바닥을 마주한 두 사람이 그대로 그 맞물린 손을 정수리 훨씬 위로 들어 올려 보였다. 마치 무슨 교감의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처럼, 홀린 듯이. 가능하면 또 보고 싶은데.

 

트레인 시퀀스, 누구도 ‘저어주’ 못하리의 강세. 그리고 퇴장하는 길에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도리도리하던 푸른 암흑 속의 모습.

 

Finale, 피와 고통의 내 세계를 ‘떠나줘요.’ 울음으로 음이 출렁거린 건 처음이다. 마지막까지 그랬다.

19일보다도 더욱 강한 악력에 끌려온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다가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21일보다도 더욱더 부드러운 손길로 그가 그녀의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고 속삭였다.

“떠날게..”

그러나 울음이 차오른 나머지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요). 

울음인지 숨인지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가냘픈 최후의 소절이었다.

 

고요하여 스러질 것만 같은 엔딩조차도 호수처럼 잔잔하게 일었던 오늘의 공연과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