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두 번째 염색. 더불어 머리끝을 살짝 다듬었다. 정돈된 머리칼에 볼륨을 동그랗게 넣어 꽃잎처럼 봉긋해진 적발이 예뻤다. 새빨간 머리카락 끝에서 새빨갛게 빛나는 귀걸이도. 새빨강 더하기 새빨강인데 어쩌면 이렇게나 조화로운지.

 

Fresh Blood. 오늘도 입맛 다시기를 대체한 모자 벗기..가 될 뻔하였으나 헛손질이 되었다. 노백작님의 은발 위에서 굳세어라 살아남은 모자는 결국 고갯짓을 더 해서야 완전히 제쳐낼 수 있었다. 침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동시에 이루어진 고갯짓이라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보이기도. 노백작님의 성마르고 예민한 면모가 돋보여서 멋있었다.

‘나를 두려워하는! 으앙 / 다시 찾은 내 힘! 므앙’ 콤보도 이렇게 세트로 정착이 되려는가. 개인적으로는 오늘의 밸런스가 듣기에 좋았다. 으앙은 소리 반 공기 반으로, 므앙은 강하고 분명하게.

 

오랜만의 2층. 위층에서 내려다보는 기차역의 그가 몹시도 귀여웠다. 특히 애드립 후에 은근슬쩍 미나의 옆자리에 앉기 위해 살며시 다가서는 걸음걸이와 착석에 성공하여 들뜬 어깨가 대단히 귀여웠다. 미니미 크기를 하고서는 세상의 온갖 설렘을 다 품고 있으니 어찌 귀엽지 않겠어.

 

She. 제단에서 내려온 그가 싸늘하게 식은 엘리자벳사를 망연히 보다가, 떠나가는 그녀에게로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불식 간이었다. 차례로 뻗어진 두 손이 꼭 그녀를 따라가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무엇보다도 멀었고, 그는 살았으되 살아갈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후였다. 그녀를 따르지 못하고 혼자 남은 그의 팔이 절망 속에서 떨구어졌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과연 시아준수. 마음으로 드라큘라를 낳은 사람. 오늘의 노래는 대단히 준수했고, 훌륭했다. 오늘 그와 함께한 린지 미나가 그를 향하여 ‘누르면 바로 드라큘라가 나오는 사람’ 같다 했지. 노래와 연기의 균형을 능란하게 이끌어가면서도 한숨한숨 공들이는 그를 보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와중에 새로웠던 모습. 미나의 소절이었다.

“날 사랑한, 내가 사랑한”

그녀의 음성에 그가 옹송그렸던 몸을 펴고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그리운 무언가에 도달한 사람처럼 입꼬리를 올려 살며시 웃었다. 꿈결 같은 목소리에 심장을 녹이는 얼굴을 하고서. 그러나 얼마 가지 못했다.

“..그이를 찾았는데.”

햇살 같았던 미소는 그녀의 시선 끝에 선 조나단을 지각하며 산산이 부서졌다. 흥건한 얼굴에 간신히 찾아들었던 마른 볕을 물리치고 그의 코끝으로 다시금 울음이 뭉쳐 들었다. 울컥, 미간을 모으며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답고, 마음 아리게 그림 같았던 일련의 표정이었다. 꼭 또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노래, Life After Life. 오늘 공연의 넘버들 중 가장 5월 10일의 텐션을 이어온 순간. 살짝 모자란 음향마저 덮어버리는 성량이 일단 청각을 황홀하게 했다. 기술의 부족함을 인력으로 채우는 그를 목격할 때면 찾아오는 카타르시스, 여지없었다.

 

It’s Over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연달아 보았다. 새로운 반헬싱과의 합이 영향을 주었을까?

“너는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비웃는 것처럼 비스듬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함께 그가 검지를 들어 올려 반헬싱의 눈앞에서 서너 차례 까딱였다. 도발하는 행위였다. 얕잡아보면서, 명백하게 약 올리는 동작은 처음 보는 것이라 깜짝.

세상 윤리와 법칙들을 회오리로 날려버린 후에도 추가로 도발했다. 회오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두 팔을 넓게 펼쳐 올리며, “집어쳐!”

 

Train Sequence 는 이제 거의 최후까지 눈을 뜨고 있다. 푸른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눈을 보다가 ‘그’가 참 상냥하다는 생각을 했다. 객석의 많은 눈들이 끝까지 올려다보는 걸 모르지 않는 그가 계속 그 눈동자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간지러웠다.

 

줄리아의 죽음, 매우 다급했던 “난 미나를 사랑해.”

오늘은 변명처럼 들렸다. 사랑이라는 방패막을 재빠르게 몸에 두른 그는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지난 400년간 자신이 지켜왔다 믿었던 것이 정녕 ‘사랑’이 맞는지 더는 확신할 수 없어진 이의 갈피 잃은 세레나데가 이어졌다.

그댄 내 삶의 이유, 나를 살게 한 첫사랑.

오늘따라 실낱처럼 희미한 음성은 뭉치지 못하고 곧장 흩어졌다. 관 위로 내리는 눈처럼,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재처럼.

 

 

덧. 기차역의 애드립은 “그럼 처음부터 다시..” 

“재미없구나..”

 

피날레, 이런 삶 이런 인생 ‘죽음’보다 괴로워. ‘죽’에서 잠시 숨을 삼키느라 노랫소리가 묵음 처리되었다. 처음 있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