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한 공연이었다. 얼핏 마티네스러운 차분함과 언뜻 세미막스러운 안정감이 있었다. 충분한 박자로 흐르는 오케스트라 위에 튀지 않으며 차분하고 묵직한 공기가 흐르는 날이었다. 들뜨지 않고 수면 아래에서만 치열한 분위기가 꽤 좋았다.
수훈은 삼연곡, 그중에서도 오늘의 Loving You Keeps Me Alive에.
She와 At Last로 모든 진실을 전했는데도 참 버석버석한 박지연 미나 앞에서 오늘의 시아준수, 물기 전무한 그녀의 덤덤함에 두 배로 상처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두 배로 아파하고 두 배로 절박해함으로써 상대배우에게 감정선이 부재한 부분조차 철옹성처럼 꼿꼿하고 무감정한 ‘미나’로 치환하기에 필요한 요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상대역의 아쉬움을, 자신의 필연으로. 천재적이었다.
상대역이 해야 할 몫까지 자신이 전부 채워 넣는 시아준수를 보는 안타까움 약간과, 어떻게든 삼연곡을 삼연곡답게 매듭짓는 시아준수의 고군분투를 향한 찬탄이 오늘 공연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
무슨 일이지. 백작님의 대사들이 대폭 변화를 맞이했다. 사연 처음으로 당신은 ‘나와’ 결혼했어! 에 귀가 번쩍.
윗비에서도 사연 들어서는 처음으로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 기약하는 어조를 들었다. 영국에 처음 방문하냐는 질문에의 대답 ‘네!’ 역시 평소보다 한 톤 높기까지.
무엇보다 가장 새로웠던 건 Solitary Man. 아, ‘지금 당장’ 내려가서 약혼녀를 맞이하시는 게 어떨지. 두 어절이 새로 추가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듣게 될까요? (→ 네, 이튿날 공연에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프레시 블러드는 아주 오랜만에 음량이 만족스러웠다. 가로횡단에서의 에코가 꽤 두텁긴 했지만, 그래도 음량 자체가 애초에 작은 것보다는 에코가 있더라도 음량이 받쳐주는 편이 나은데 오늘이 그랬다. 그래서 시아준수의 소리를 참으로 곧이곧대로 들을 수 있었어. 프레시 블러드 특유의 맹렬한 소릿결에 휘감기는 감각이 참 좋았습니다.
이하는 짧게:
Lucy & Dracula 1. “정말 내 말뜻을 이해 못 하는 것 같군.” 답답함에 손을 그러 쥐며 반걸음 물러나 몸을 틀어 보였던 백작님. 어찌할 바를 모르는 발동동에서 그의 갈망이 고스란히.
Lucy & Dracula 2. 초대에 응한 그가 씩 웃어 보이는 얼굴, 너무너무나. 소소하게는 안겨든 루시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그의 얼굴을 가로질러 달라붙는 바람에 시아준수 간지럽겠다 생각했던 것.
Mina’s Seduction. ‘차디찬 내 삶’의 해사할 정도로 크게 웃는 얼굴도 너무너무나. 형용할 수 없게 아름다워요.
그런데 박지연 미나. 흡혈 후의 표정을 처음 봤는데, 첫공 때도 그랬던가? 극이 ‘어리석은 놈들’로 진입할 때까지 숨을 헐떡이며 흡혈의 여운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연기를 하던데. 미나에게서 보리라 생각해보지 않은 디테일이라 몹시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