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후기를 쓴다. 매우 신이 난다. 

 

6월 15일 공연은 그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 시아준수의 드라큘라 라운드 인터뷰 바로 다음 날의 공연이기 때문이다. 관객으로서는 그간에 느껴왔던 감상을 시아준수의 언어로 직접 확인한 후에 처음 맞는 공연이고, 시아준수로서도 라운드 인터뷰로부터 큰 시차를 두지 않고 임하는 공연이기에 텍스트(정확히는 텍스트로 발현된 시아준수의 의도)와 공명하는 감각을 곧장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ㅡ상당히 축복받은 타이밍의 공연인 것이다.

 

아, 시아준수의 언어로 확인받고 재회한 노백작님이 어찌나 애틋하던지. 구부정한 걸음걸이(특히 신경을 쓴다던 바로 그 ‘걸음걸이’)로 비틀댈 때마다 내 안에 시아준수가 텍스트로 채워 넣어준 사랑이 발을 통통 구르며 요란을 떨어댔다. 매번 보던 걸음걸이건만, 노쇠함 역력한 그 모습에서 오늘따라 사랑의 단맛이 나서 솔리터리 맨이 끝날 즈음에는 두 눈이 조금쯤은 뜨거워진 것도 같았다.

 

읽고 또 읽어서 문장 그대로 읊을 수도 있는 그의 인터뷰 위로 4연만의 노백작님의 음성이 덧씌워질 때의 짜릿함은 또 어땠는지. “그녀의 눈을 보세요. 순결함이 느껴지죠.”의 내려간 어미의 차례에는 손끝에서 이는 저릿함에 눈을 감아버릴 뻔했다. 

 

드라큘라가 벌써 4연씩이나 되었고, 3연으로부터도 불과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거의 모든 것이 그대로인 극이라 배우 본인이 변화구가 되기로 하였다는 시아준수. 그런 그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들.

다시 말해 시아준수가 사위로 흩뿌려놓은 행복들을 내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촘촘하게 수거하여 확실히 끌어안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재차 확인받는 감각들.

 

살아있다는 게 바로 이런 거라 생각했다. 살아서, 사랑을 한다는 게 이런 감각이라고. 역시 나에게 이런 경이를 안겨 줄 수 있는 존재는 지금 이 순간 저 무대 위에 있는 당신밖에 없다고, 조나단의 숨통을 틀어쥐어 침대로 내동댕이치는 괴물 같은 손가락조차 유려하게 쓰는 시아준수의 프레시 블러드에서 몇 번을 그렇게 생각했는지 몰라.

 

노래도 연기도 내 감정마저도 휘몰아쳤던 노백작님의 시간을 지나 윗비베이의 왕자님에서부터는ㅡ두피까지 새빨갛게 단장한 전신이 너무 예뻤던 탓이지. 연기를 샅샅이 보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도 얼굴만, 아름다움만 좇게 되었던 게.

 

나는 시아준수가 무대 위에서 의도 하에 또는 의도치 않게 그려내는 ‘장면’의 아름다움에 대단히 취약한 편인데, 오늘은 무려 She에서 내 각오(연기에 집중하겠다는)를 무용케 하는 미장센이 있었다. 

하필 She에서! She가 어떤 넘버인가. 태생부터가 시아준수에게서 기원하여 시아준수의 소릿결에 안착할 때 가장 아름답도록 만들어진 노래. 그러니까 당연히 시아준수의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이미 이 극에서 가장 아름다운 넘버인데, 이 곡에서 우연한 미장센이 촉발되었다? 불가항력일 수밖에 없는 법. 그리고 오늘의 그가 부린 마법이라 함은:

 

엘리자벳사를 잃은 그가 신을 저주하며 제단 옆의 십자가를 박아 넘어트렸을 때였다. 십자가가 쓰러지다 성모상을 건드렸는지, 묵묵하던 성모상마저도 위태롭게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좌우로 덜컹, 덜컹. 꽤 넓게 휘청대는 성모상 바로 옆에서 두 눈을 새빨갛게 치켜뜬 그가 칼을 움켜쥐고 하늘을 향해 악을 쓰고 있었다. 물리적 타격을 입은 불멸의 성상과 심리적 치명상을 입은 필멸의 인간이 나란히 비틀대는 광경. 참 우연이었는데, 그 우연이 몹시도 아름다웠다. 이 장면을 담고자 애타게 바란 감독이 있어 스크린 위로 치밀하게 옮겨낸 것이라 해도 믿을 만큼.

 

이어지는 앳 라스트와 러빙유, 빨갛게 그렁그렁한 얼굴 앞에서는 결국 얼굴에 홀려 드는 얼빠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투항했다. 루시의 초대를 받고도 어쩐지 화가 난 듯해보이던 얼굴, 미나의 유혹에서 새단장하고 온 회심의 얼굴, 이츠오버에서 형형하게 사나운 얼굴, 트레인 시퀀스에서 올려다볼 때 몹시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얼굴..

 

피날레에서 “부탁해요 제발, 내게 밤을 허락해요”를 부르며 너무나 지쳐 보였던 얼굴.

 

연기로 시작하여 얼굴로 귀결된 6월 15일, 몹시도 충만하게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