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2016.04.05

전반적으로는 비슷비슷해요. 동서문화사는, 유일하게 화실을 아뜰리에라 칭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고전적이고 예스러워요. 바질을 베질이라 하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유달리 은유가 많다기엔 다들, 정말 비슷해요. 문장을 다듬는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롤리타처럼 문맥 자체가 뒤바뀌는 건 없어요. 

문예출판사는 문장의 뉘앙스가 가장 친절하고 단어 선택도 다정해요. 가장 쉽게 읽히지만, 중요한 문장에서 필요한 함축미도 잊지 않았어요. 동서문화사에서 지나치게 힘을 주어 번역한 문장을 오히려 문예출판사에서 간결하고 단정한 어휘를 통해 완성함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강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지금 당장 기억나는 건 동서문화사의 "난 영생의 미를 지닌 것이면 무엇이든 질투를 느껴요."와 문예출판사의 "난 아름다움이 시들지 않는 모든 것을 질투해요.")

예담과 더 클래식은 엇비슷하지만 부분부분의 어휘는 예담이 조금 더 고풍스러워요. 더 클래식은 문장끼리의 연결이 중간중간 투박한 데가 있고요. 다만 더 클래식의 경우에는 책 특유의 환상소설적인 이미지가 깎인다는 느낌을 주었어요. 문장들이 깎이고 깎여서 평범해졌달까.

열린책들은 역시나 의역이 많아요. 작가의 호흡보다 번역가의 호흡이 강해요. 세련됨을 가장했지만 작가 위로 떠오르는 번역가의 존재감이 거북할 때가 있고, 오스카 와일드의 긴 호흡을 지나치게 끊어서 나열한 경향이 있어요.

호흡은 펭귄클래식이 길지만, 자칫 산만해지기 쉬웠고요. 호흡 조절이 간혹 애매한 경우를 빼면 문장은 무난과 평범 사이로 예담, 더 클래식과 비슷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