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므

2012.02.21

(+) 시아준수 이외의 이야기

밤공의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 이른바 침대씬에서는 옥주현 엘리자벳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여전히 섹시하고 나른하며 치명적인 토드에게 손가락을 마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다가섰다가(이전의 공연들에서는 그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다가서는 시늉을 하는 정도였다), 괴로운 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제끼는 표현이 대단히 극적이었다. 과장된 몸짓이 다소 연극적인 것으로 느껴질 여지도 있었지만 침대씬에서 죽음의 유혹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것인데, 엘리자벳의 몸부림치는 갈등이 첨가되니 훨씬 더 그 상황의 극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효과를 주었다. 그렇게 한 바탕 완전히 거부를 하고 나니 침대에서 내려와 엘리자벳에게 다가서려다가 마는 토드의 언짢음? 이래도 안 넘어와? 허탈함? 같은 감정들도 진하게 닿아왔음은 물론.

이외에도 전반적으로 그녀의 캐릭터 해석에 점점 살이 붙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장면들이 많았다. <전염병>에서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에 상관없이 마구 포효하던 엘리자벳(듣기 좋고 나쁨, 예쁘고 예쁘지 않았음을 떠나 바닥으로 무너지는 절규가 남편의 배신에 의해 영혼이 꺼지는 엘리자벳에 어울렸다)이나 <황후는 빛나야 해>에서 자잘한 대사가 추가되었던 것, 루돌프의 장례식에서 황제의 가슴을 부여잡고 마구 내리치는 것 등. 크고 작은 리액션에서 많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소 평면적이었던 이전에 비하여 엘리자벳이 나이를 먹고, 배신을 당하고, 자유를 갈망하며 겪는 시련들에 의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외에, 개인적으로 힘겨웠던 오늘의 캐스트를 보고 나니 루케니와 대공비 역할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인 엘리자벳보다도 루케니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김수용 루케니까지 보고 나니 확실히 알았고,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대공비가 담당하고 있던 무게중심의 한 축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것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