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세운 옆머리가 돌아왔다. 반면 연기의 노선은 회귀라기보다는 혼화였다. 어제와 그제, 그끄제의 융합. 고요하고 차분하면서도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악동미.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제3의 존재. 어쩌면 엘은 류크와는 다른 의미에서 이 극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ㅡ덧없음의 해설자가 아닐까. 

*

게임의 시작. 숫자들과 데이터에서 이런 여유로움이 느껴진 건 처음이다. 관록의 동공! 반바퀴 회전의 자태도, 고등학생의 선언에 앞서 의식을 치루는 것처럼 따단 멈추어버리던 동작도, 시작할까ㅡ의 절정 이후 몸을 틀어 퇴장하는 움직임까지도! 관록과 여유로움, 능란함? 같은 것이 느껴졌어. 마지막 주의 게임의 시작 중 가장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순간의 그였다. 


비밀과 거짓. 찻잔이 입술과 만나는 지점에서 빨간 것이 묻은 걸 보았당. ㅎㅎ

라이토와의 1차 듀엣 직후, 스르르 나직하게 흘려내는 숨결이 뱀의 것 같다 여겼다. 발견으로 점차 다가서며 흥분을 머금기 시작하는 얼굴은 동물의 것처럼 본능적이면서도 이성의 정제를 받아 정돈된 느낌의 두 가지를 함께 품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마지막 듀엣. 양립하던 이성과 동물적 본능이 합일을 이루어 엘이라는 집합체를 구성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번뜩이는 동공에서, 즐겁게 말려 올라간 입꼬리에서, 팽팽하게 각진 손가락에서 전부!


정의는 어디에 reprise. 진정한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 사이코패스의 강세도 사랑이지만 '지'에서 수직으로 내려꽂는 결의와 자신감도 사랑이다. 마지막 주에 이르러 타의 정의는 용납하지 않을 기세로 강하게 폭발한다. 
마지막 절정ㅡ내가 바로 정의에 이르러 온몸으로, 감전된 것처럼 토해내는 소리도 사랑. 


키라는 당신의 아들. 나긋나긋. 수사관들 한 명 한 명 얼러주는 듯한 그의 말씨가 너무 좋다. 오늘은 갑갑해한다거나 약 올리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상냥함 모드 장착. 
말씨도 추리의 톤도, 노래도, 심지어는 당신의 아ㅡ들의 이음까지도 부드러웠다. 하지만 쉬폰 케이크를 연상케 하는 류의 부드러움이라기보다는 카스테라에 가까웠다. 

깨달음의 아...는 또 처음 듣는 버전이었다. 검지를 빙빙 돌리며 아~~~. 그래그래, 그거구나? 하듯.

그리고 소심쟁이 수사관이 돌아왔다.


죽음의 게임. 내가, 엘이야. 단 두 어절로 보여주는 극명한 표정 대비. 

유난히 좋았던 건 그의 저음. 스피치를 마치고 돌출로 걸어나오기 전까지의 저음이 탄탄하고도 쫄깃쫄깃했다. 변함없는 진실에서 나의 무의식'은' 몸부림치고 있다ㅡ에서의 저음이 확장되었던 날을 생각나게도 하였고. 

아아, 참. 꺾인 돌출에서 상의를 휙 젖히는 동작이 돌아왔다고 그끄제부터 쓰려고 했는데 못 썼어. 그러니 오늘은 꼭 써야지. 홱ㅡ소리가 나도록 상의를 젖히는데 멋있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회전무대에 도달하여 핑그르르 무게감 없이 회전하는 움직임도 좋아요. 


변함없는 진실. 빛을 잃고, 에서 그려 넣었던 웃음에서 쏟아지는 자신감이 너무 멋있어서... 그만....ㅜ

나의 무의식은 몸부림치고 있다ㅡ동굴의 울림 같은 저음은 정말 들어도 들어도 너무 좋다구요. 저 깊은 바닥에서부터 건져올리는 것 같아 짜릿하기까지 하다.  

경-계-선의 눈맞춤은 짧으나 강렬했다. 근래에는 경계선의 마지막 음절과 함께 시선을 높이ㅡ2,3층으로 바로 끌어올리는 편이라 1층에서는 시선이 스쳐가기도 어려운 편이었는데 오랜만에 바로 보았다. 마치 선물처럼.


소이치로와 사탕의 신. 츄~♡ 하고 모은 입술에 가만히 가져다대었던 사탕을 '단서가 전혀 없다'는 소이치로의 말에 과연 그럴까? 하는 움직임으로 뽁 빼내던 손길이 귀여웠다. 그렇게 눈에 훤히 보이도록 반응하는 점이 꼭 아이ㅡ지독히도 유치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ㅡ같아서.

비척비척 반계단을 횡단하다, 이제 그건 힘들겠네요ㅡ안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부드럽게 머금곤 하는 미소는 오늘도 존재했다. 모키 형사님, 순직-하셨어요ㅡ에서도. 


테니스 시합. 너 지금 뭐하는 거'니'? 전에 없던 상냥한 라이토의 물음. ㅋㅋ 좀 웃겼다. 착한 척하지망. 


캠퍼스. 부럽네요, 라이토. 오늘의 운율은 바로 너다! 부드럽고도 나긋한 떨림을 장착한 말씨. 정중한 듯하면서도 경계심을 품고 벽을 친 말투. 샤엘의 대사 톤은 정말 사랑이에요. 

미사가 제2의 키라라는 증거가 있거든요ㅡ에서부터 나도 괴로워요까지. 이 부분에서의 대사 톤도 마치 그가 나의 취향을 심장으로 저격하는 것처럼 좋았다. 목소리의 떨림이라 해야 할까. 그 특유의 고상하면서도 신사적인 발음이 천재적 광기와 만나 휘몰아치는 듯한 표현법이 정말 좋아. 

자기의 흥분에 스스로 취해버린 사람처럼 단서들을 나열하다, 미사를 만나게 해달라는 말에 멈칫. 완전히 굳은 채로 잠시 이어갔던 침묵과 안돼요. 
나도 괴로워요 직전의 표정은 또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얼마간의 한숨과 함께 허공을 슬쩍 훑는 눈매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짜증이 느껴졌다. 곧이어 아랫입술을 말아 깨물던 모습에서도. 


마지막 순간. 오늘은 웃음이었다. 시작은. 그러나 점차 울먹임을 머금어가더니, 울음으로 전도되기 직전에 그의 시간이 멎었다.

최후. 총성과 함께 위로 치켜올려지곤 했던 고개는 오늘은 아주 미약하게만 치솟았다. 늘 대지에서 피어나 하늘을 바라보고 멎었던 그의 생이 오늘만큼은 대지를 향하여 수렴했다.

그래서였을까. 싸늘하게 굳은 눈동자가 바닥으로 저물기까지의 찰나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


오늘의 애드립:
치사빤슨가요?
소심쟁이. 
이것 좀 드세요. 
맥심 3월호에 나왔었죠? 비키니 입은 사진 보고 애국가 4절까지 불렀어요ㅡ바수니 관객의 밀도가 높아 맥심 3월호에서 거의 웃음이 나오지 않았던 오늘이었는데, 그걸 꿰뚫어본 것처럼 허를 찌른 애드립. 엑스송 생각도 나게 했던.

샛노랑, 분홍과 하양. 


키라는 당신의 아들. '수사정보'에 이르러 말을 버벅였당.

댓글 '1'

타코야끼

15.08.19

수사정보에서 말을 버벅였쪄요?ㅠㅠ아구..이런것마저 귀엽네요ㅠㅠ

괜찮아요 오빠 다 괜찮아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