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바람이 너무 셌다. 악보 반 이상이 통으로 옥상 아래로 쏟아져 버렸다. 그는 태연히 일어나 악보가 떨어진 땅을 향해 고개를 기웃거리다 옥상 바닥에 남은 악보를 주워들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큰 변화가 있지는 않았지만 사소하게라도 다른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의 리액션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무엇보다 시아준수, 임기응변 아주 잘하니까!
새로운 여일에게는 다른 개성이 있다. 조금 더 여성스럽고, 말투는 때때로 나긋나긋하다. 하지만 아침 식탁에서 성을 부릴 때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몽롱하게 잠긴 지욱의 어깨를 잡으며, 지욱 오빠~ 하는데(김슬기 배우의 여일은 지욱을 터치하진 않는다) 지욱이;; 인상을 쓰며 잡힌 어깨를 뿌리쳐 버렸다. 우이씨 이런 표정으로. 얜 뭐야? 정말 대놓고 귀찮아한다. 선 그을 줄 아는 청년.
강의실에서는 최고로 업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리액션도 컸고. 처음에는 두 눈을 반짝이며 몽롱하게 잠겨 있다가, 여일이 그를 불러 깨우면서부터 본격적인 디테일이 시작된다. 일단 오늘은 여일을 눈에 띄게 귀찮아했다. 같이 축제에 나가자는 말에 진심으로 어이없어하는 투의 대사는 물론, 어깨를 뒤로 빼는 몸짓까지. 또 수업 중에 여일이 종알대자 쉿! 하고 손을 입에 대기도 하고.
여일로 인해 자기만의 세계에서 깨어난 지욱의 의식이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로 돌아오긴 했지만, 수업을 듣진 않는다. 여일에게 무심하게 대꾸하고 나서 교수를 흘긋 보는데 마침 5.18 이야기가 나오니 아이, 진저리치며 미간을 모으곤 하품한다. 팔을 뻗고 몸을 막 비틀면서. 이런 하품이 거의 대여섯 번 있었다. 그러다 오늘도 쌍꺼풀을 그렸는데 ㅋㅋ 더 진하고, 더 오래 그렸다! 아.. 쌍꺼풀 진 얼굴도 잘생겼다..
자신을 보는 이연에게 인사하며 아가처럼 웃을 때, 오늘은.. 혀를 내밀었다.. 와;; 너무 귀여워;; 솔직히 여기서 더 귀여워지기도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가볍게 넘어주셨다. 그가 혀를 살짝이 내밀며 아가웃음으로 인사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마음의 소리가 객석에 가득했던 것 역시 오늘의 백미였다. 하하.
허밍은 오기 반, 흥 반이다. 목소리를 잔뜩 긁어내는 부분도 점점 강해진다. 이래도 나를 모르겠어?! 하는 듯이. 그리고 이어지는 <다시 또 스치다>는 뭉클했다. 그대가 사라지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시련이죠~ 하는 가사가 오늘따라 콕 박혀서ㅜ 아무래도 오늘 공연의 감정적 여파는 안 그래도 반짝이는 1막이 유난히도 찬란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만큼 1막의 감정선은 완전할 정도로 예쁘고 아련했다. <다시 돌아온 그대>의 합도 얼마나 좋았는지ㅜ 찬란하고, 예쁘고, 반짝거리는 두 연인이 참 보기 좋았다.
아아, 다시 돌아온 그대 이전 두 번째 허밍은 평소보다 길었다. 여기서 두 번, 춤을 추었는데 럭비? 축구부? 하여튼 남학생 무리 앞에서 뒤로 껑충껑충 스텝 밟는 춤 한 번, 축제 때 지욱이 바람 맞힌 여학생들 앞에서 황진이 춤 같은 걸 한 번. ㅋㅋ 그러다 이연이 자기를 보고 있었음을 눈치채고 했던 오늘의 대사는 "책 팔아요 책 팔아요~".
4층 아지트에서는 키스신이 어제보다도 더 길었다. 그런데도 나가면서 훈에게 "아 쫌만 늦게 오지"라고 말했어... 왜요.. 그건 짧을 때나 할 말이지 오늘 같은 날엔 할 말이 아니잖아ㅜ 아아, 게다가 입 맞출 때 시아준수 손의 위치가 점점 더 자연스럽고 스스럼없어진다. 첫공 때는 이연의 양 허리에 두 손을 살짝 걸치는 정도였는데 오늘은 한 손이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었다.
2막에서 증권사로 성태를 찾아갔을 때 건네는 인사는 "성태 형!"일 때도 있고, "김성태 차장님!"일 때도 있는데 오늘은 전자였다.
사거리대포에서 시아준수가 술잔을 따르는 자세는 봐도 봐도 좋다. 너무 반듯하고 예뻐서. 예의 바름이 온 데서 묻어난다. 그렇게 서로 잔을 따라주고 한 모금 들이켜며 오늘도 크~ 코끝을 찡긋하며 쓴 표정을 지었다. 이건 참 봐도 봐도 귀여워. 보통은 쓴 표정을 짓지만 간혹 하지 않을 때도 있어서 그런지, 술 마실 때의 얼굴을 꼭 지켜보게 된다.
사소하지만 보는 재미가 있었던 디테일들은. 지욱의 잔이 비자 성태가 바로 채워주었는데, 지욱도 성태에게 따라주려는 순간 뉴스 속 훈의 멘트에 정신을 빼앗겨서 움직임을 멈춘 바람에 성태는 자작을 해야 했다. 성태가 채워 준 두 번째 잔을 지욱이 막 마시는 순간 여일이 들이닥쳤는데, 오늘은 들이켠 것을 뿜는 대신 놀란 나머지 꼴깍 삼켜버렸다. 그리고 웃음 포인트마다 객석에서 웃음이 잦았는데, 평상시 웃음이 나오지 않았던 데서 웃음이 나왔던 부분 중의 하나는 여일이 호들갑을 떨며 지욱에게 "누가 오빠를 40대로 보겠어!!!" 했을 때. 40대로 볼 수 없긴 하지.. 40대라기엔 너무 섹시하고 멋있으니까..
개인 레슨에서의 "쫓아와 봐"는 진짜 들을 때마다 설레니까 맨날 써야지. 그리고 오늘도, 노래하는 중에 슬쩍 뒤를 돌아보는 화이에게 계속해~ 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갯짓했다. 어제 낮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은 고갯짓하는 순간 혀로 아랫입술을 쓸었다는 것. 정말이지 윤 감독님 이렇게 섹시하셔서 어떡하죠? 자세 잡는 법 코치할 때 손 쓰는 방식은 또 왜 그래요. 검지만 펴서 딸각 소리가 날 것처럼 움직이며 '그쪽 어깨도' 할 때 정말 섹시해서 주금..ㅜ
이 장면의 애드립 포인트인, 두 팔을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펴 보이는 화이에게 건넸던 오늘의 대사는 "헐크야?" 였다. 윤 감독님은 이렇게 약간 썰렁한 듯한 농담을 던질 때의 목소리조차도 섹시하다.
오늘의 인톡시는 보다 리드미컬했는데, 해놓고 쑥스러웠는지 고개 숙여 풉 웃고는 "브라보" 하고 덧붙였다.
또 ㅋㅋ 기억나는 장면은 화이가 윤 감독님의 턱을 향해 돌진해 뽀뽀한 것.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때 객석에서 오~ 하는 소리가 일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변화. <12월> 후 옥상에서 포옹한 지욱과 이연이, 마지막에 몸을 틀어 정면을 바라보는 것을 끝으로 막이 내렸다. 엔딩에 자꾸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17일 공연에서는 '할 수 있을까?'가 추가되었고, 18일 밤공에서는 <12월>이 끝난 후 암전되지 않는 것으로, 그래서 지욱이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는 장면이 온전히 보일 수 있도록 수정되었으며 오늘은 포옹을 마친 후 정면을 바라보는 것으로까지 바뀌었다. 느리지만 조금씩 극이 친절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늘 공연은 감정도 좋았고, 점점 더 섬세해지는 디테일들에 참 즐거웠다. 특히 강의실 장면에서는 어떻게 이렇게 섬세해질 수 있는지 놀랍다. 그만큼 그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고, 또 그의 순간적인 기지가 물 만난 것처럼 빛나고 있다는 뜻이겠지.
길었던 연속 공연이 이제 하루 남았다. 프레스콜과 내일 공연까지, 시아준수 화이팅! 샤지욱 화이팅!
1. 오늘은 하숙집에서 가방을 손으로 들고 나갔다.
2. 훈의 국회의원 배지는 오늘은 아예 만지지 않았다.
3. 이상기온 인터뷰에서 애드립이었던 거야, 대사가 아예 바뀐 거야?...
극이 수정된 부분
1. <12월>이 끝나고 옥상에서 포옹한 지욱과 이연이 마지막에 몸을 틀어 정면을 바라보며 엔딩.
하는데 오늘 요 상관 없어요 뭐! 가 좀 새침하고, 아주 약간 토라진 듯도 하고, 귀엽게 쿨하기도 하고, 털털해도 보여서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