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공. <12월> 직전 그의 미소를 보았다.
"할 수 있을까", 부드러운 연결음, 울음 속 아스라한 웃음. 곱게 접어둔 추억을 열어보며 그때 그랬지 하는 것만 같던 얼굴. 낮공만 해도 울먹임이 훨씬 지배적이었던 얼굴이 밤공에서는 편안해 보였다. 그렇구나, 이연은 더는 아픈 기억이 아니구나. 간직해온 사랑은 잊고, 새로운 사랑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부터가 이제 이연을 보낼 수 있게 되었음을 그 자신이 깨닫고 짓는 미소 같았다.
<12월>이 시작한 후 중간의 "이연아.." 하는 흐느낌과 함께 터지는 울음은 찬란했던 지난 사랑이 파노라마처럼 그를 스쳐 가, 그 사랑의 잔여감이 주는 울음이었을까. 그는 여전히 아이처럼 엉엉 울었지만, 잊지 못한 사랑에 얽혀 섧게만 토해지던 울음이 아니었다. 그는 울면서도 웃었고, 눈꼬리를 한껏 내려뜨리다가도 올려서는 아스라이 미소 지었다.
마지막 "또 봐"의 희망적인 어조, 조심스러운 최후의 포옹, 글썽이면서도 웃는 얼굴. 25일 밤공에서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연을 기쁘게, 아픈 추억보다도 찬란했던 사랑의 기억으로 기꺼이 놓아주었다. 더는 아프지만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한 그가 있었다.
작별이자 기약의 문장, "또 봐" 이후 커튼콜 <다시 돌아온 그대>에서 재회한 두 사람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지욱이 꼭 이연이 사는 세계로 가버린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환호와 웃음 속에서 끝끝내 첫사랑을 찾아간 것이라고.
하지만 20년의 이연을 보내준 지욱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하는 것이 관객의 몫이라면, 나는 지욱을 이 땅 위에 두고 싶다. 그는 살아서, 이 땅에 남아 먼저 간 사람을 잊지 않고, 다만 기억하며, 추억하고, 때때로 눈물도 짓다가 웃음도 지으며 그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욱의 사무실 한구석에 놓여 있던 녹슨 기타처럼 아픈 첫사랑의 기억도 점차 삶의 해묵은 기억 중의 하나로 묵혀갈 수 있는 여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며, 두 사람이 마침내 나누었던 "또 봐"라는 새로운 기다림을 향해 살아가고 있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