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p
여섯 살인 볼프강이 클라비어를 위한 미뉴에트(<미뉴에트 G장조>,K.1)를 혼자서 작곡했는데, 그저 그런 습작이나 별 흥미로울 것도 없는 졸작이 아니라, 오로지 단일 악절 하나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이룬 진정한 첫 걸작이 탄생한 것이었다.
레오폴트는 무척 흥분했지만 결코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제부터 천재의 앞날, 즉 자식의 장래를 위해 전적으로 자기 인생을 바치겠다는 결심이었다. 이는 곧 작곡가로서의 자신의 야심은 철저히 포기한다는 것을 포함했다. 물론 그때그때에 주문이 들어올 경우 가벼운 음악들을 만드는 일은 계속하겠지만, 어차피 이 어린 아들의 첫 걸작품 속에 숨어 있는 광채를 능가하기는커녕 따라잡을 수도 없으리라는 판단이었다.
44p
매우 힘겨운 학습 일정에도 불구하고 볼프강은 대위법을 놀랄만큼 손쉽게 구사했고, 자기 스스로 '베이스 공작' '테너 후작' '알토 경' 등으로 불러가면서 세 가지 성부(聲部)를 제멋대로 가지고 놀았다.
49p
한편 볼프강은 비범하게 타고난 재능과 놀랄 만한 학습 능력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름 없이 사라지지 않을 진정한 작곡가가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매일 새롭게 깨달아가고 있었다.
73p
런던으로 돌아온 타모스는 멀찍이서 모차르트 일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아이가 진지한 모습을 할 때가 더 나아 보였고, 똑똑한 원숭이처럼 재주나 부리는 것보다 그렇게 틀어박혀 작곡을 하는 편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성년에 이른 대마법사는 창조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박수 갈채나 찾아다니는 어릿광대 노릇을 더는 할 수가 없어지게 될 테니까. 도대체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아버지가 그를 가만 내버려둘까?
74p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볼프강은 통속적 테마에 익살극의 효과들을 가미한 갈리마티아스 무지쿰*을 반쯤 유희 삼아 끼적이고 있었다.
*음악적 횡설수설
86p
게다가 볼프강은 연약하고 몽상적인 기질이 다분해 더욱 걱정이었다. 말하자면, 레오폴트가 보기에 가혹하고 구석구석 침울하기 이를데 없는 냉엄한 현실에서 볼프강은 너무 동떨어진 아이라는 게 문제였다. 이 현실세계가 결코 상상 속 왕국 같은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걸 어떻게 해야 납득시킬 수 있을까?
119p
"우리의 이탈리아 원정, 시작이 아주 좋아! 자, 나만 믿어라, 그야말로 이제 시작일 뿐이야. 그런데 난 그 베로나의 신문 나부랭이에서 너한테 붙인 아마데우스라는 성이 당최 맘에 안 드는구나. '고트리프(Gottlieb, '신이 사랑한 자')'를 그대로 번역한 것 같은데, 원래 성이 나은 것 같아. 아마데우스는 왠지 진지한 맛이 없는 게, 꼭 이탈리아 말장난처럼 느껴지잖니. 명심하거라, 모차르트라는 우리 성은 옛날 독일어인 '무트 하르티(muot-harti)', 즉 '용맹하다, 의기가 드높다'란 말에서 내려온 거란다."
153p
"당신, 뤼켄의 주민 맞죠?"
"그저 가면만 그렇지……"
"하긴 내 어렸을 적 왕국은 이제 존재하지 않아요. 지도도 버렸구요."
1770년 1월 23일, 밀라노
155p
볼프강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이루어진 고명한 학자와의 두 차례 만남을 통해 볼프강은 대위법 기술을 완벽히 다듬었고, 오페라의 레치타티보 기법을 철저하게 터득했다. 그 결과 스승도 하루 온종일이 걸릴 푸가는 그는 기록적인 단 시간 내에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볼프강은 이처럼 평온하고 음악적 탐구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장소를 떠난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는 마르티니 신부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159p
공연에 커다란 흥미를 느낀 비평가 슈바르트는 <도이치 크로니크>에 이런 기사를 썼다.
'온실 속 화초가 되길 거부한다면, 모차르트는 언젠가는 지금까지의 작곡가 중 최고가 될 것이다.'
275p
그러고 보면 파리 출신 여성 피아니스트가 하필 그때 잘츠부르크에 머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기치 않게 에네르기를 한껏 펼쳐낼 가능성을 창조자에게 마련해주기 위한 운명의 징표나 다름없었다.
"이제야 너만의 진정한 피아노 콘체르토를 작곡했구나."
"잘츠부르크 풍이건 '스틸 갈랑' 이건 전혀 개의치 않고 쓴 겁니다. 또다른 음악이 지금 제게 말을 걸고 있어요. 아직은 소리가 멀지만 분명 들리긴 합니다!"
"파리로는 언제 떠나는 것이냐?"
"이번에도 좀 오래 걸릴 여행이라, 지금 은밀하게 여러 군데에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무프티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데, 가능할지는 미지수죠. 하긴 아버지 고집도 보통이 아니니까, 아마 대주교가 지쳐서라도 허락을 해주실 거예요. 이제는 정말 잘츠부르크를 떠날 때가 왔습니다!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모든 걸 망쳐버릴지도 몰라요."
334p
프리돌린은 종종 이런 얘기를 했다.
"옛날에는 우리 가문도 작위를 받은 집안이었다네. 한데 여러 차례 불행한 일을 겪다보니 이제는 내 마누라, 아이들 나 이렇게 모두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딱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 그래도 우린 여전히 정직하고 선량한 독일인이라네."
"충분히 자부심을 가지실 만합니다, 베버 씨."
389p
계속 그렇게 허황된 생각이나 하고 머릿속 뜬구름이나 좇다보면, 눈앞의 절실한 일들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네 머릿속은 너 자신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 너는 지금 매사에 흥분 잘하고 과도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마음이 선하다보니 너를 홀리는 자들의 결함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게다. 네가 금세 잊혀지고 말 범상한 음악가가 되느냐, 아니면 후대에 길이 이름을 남길 유명한 카펠마이스터가 되느냐는 오로지 네가 얼마나 지혜롭게 처신하는가에 달려 있다. 네가 말한 계획이라는 것은 나를 거의 미치게 만들었을 정도다! 당장 파리로 가거라. 가서 힘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거라. 카이사르가 되느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느냐 둘 중 하나다!
1778년 2월 19일, 만하임. 잘츠부르크의 아버지로부터의 편지
398p
몸이 회복된 볼프강은 아버지의 의혹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는 프리돌린 베버라는 선량한 사람을 높이 평가했고, 감히 고백은 못 하면서 알로이지아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그는 레오폴트에게 답장을 썼다.
수많은 단점 중에서 저의 가장 큰 단점은 이것입니다. 저를 아는 친구들이 정말로 저를 알 거라 믿는 것. 만약에 사실이 그렇다면 굳이 여러 말이 필요치 않겠죠. 아, 만약에 그들이 저를 잘 알지 못하는 거라면, 그들을 깨치기에 충분할 만큼의 말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입니까?
볼프강은 슬픔에만 파묻혀 있기를 거부하고, 불같이 타오르는 창작열을 발휘함으로써 잠시만이라도 눈앞에 닥친 출발을 잊기로 했다. 쾌할하고 통속적인 선율의 대구로 가득한 <피아노와 바이로린을 위한 소나타> 네곡(K.301,302,303,305), 노년에 이른 테너 라프의 친화력 있는 목소리를 염두에 둔 이리아 한 곡(K.295), 소프라노 아우구스타 벤들링이 부르게 될 <어둡고 외딴 숲 속>, 어느 젊은이의 행동을 비난하는 또다른 아리아 한 곡(K.308),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수 알로이지아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듯한 가사의 레치타티보를 포함한 또다른 아리아 한 곡(K.294)…… 볼프강은 알로이지아에게 장담했다.
"이 작품으로 당신은 이탈리아에서 성공을 거둘 겁니다."
402p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절묘하게 활용하여, 볼프강은 파리 시민들이 환호를 터뜨릴 만한 순가들을 정확히 계산해냈다. 그리고 그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고작해야 음악적 효과만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431p
18p
이건 정말 판타지 버금가는 1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