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춤추고 싶을 때>
헝가리의 여왕이 된 엘리자벳이 승리를 만끽할 때, 석상 하나가 빙그르르 움직인다. 정면을 향해 돌아선 석상 앞에는 검은 끈으로 수없이 동여맨 회색 옷을 걸친 죽음이 엘리자벳을 지켜보고 있다. 마치 여왕의 기사처럼, 또는 왕비의 후견인처럼 말쑥한 차림새다. 일견 그녀를 대견해하는 것도 같은 표정으로 죽음은 승리에 도취된 엘리자벳을 본다. 그녀를 응시하는 시선 안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감정이 담겨 있는지 모두 나열하기 어렵다. 대견한 듯이, 탐하듯이, 기꺼이 이해한다는 듯이. 토라지기 쉬운 꽃을 어르고 달래듯 맞장구를 쳐주는 모습에서 그 순간조차도 죽음의 손바닥 안에서 계획되었음이 느껴진다. 엘리자벳을 위해 계획된, 죽음이 마련해 놓은 승리. 바로 자유.
이 장면의 죽음이 얼마나 신사답고 절도 있게 멋있었는지 할 수만 있다면 두 눈으로라도 계속해서 재생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축제를 열어’ 하며 엘리자벳 쪽으로 인사하듯 팔을 뻗는 동작이 특히 그랬다. 약간의 그루브가 섞인 팔이 유연하게 뻗어짐과 동시에 고개는 반대쪽으로 살짝만 까닥이는데, 그 손끝의 동작이 어찌나 우아한지. 그 순간의 죽음은 그래 엘리자벳 네가 이겼어 라고 말하는 것도 같았고 한편으로는 죽음이 마련해 놓은 승리에 도취된 그녀를 귀엽게 여기는 것도 같았다. 마치 죽음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그것이 진정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일반인을 대할 때와는 다른 특별한 감정 정도에 그치는 것인지에 대한 해석은 죽음의 다양한 면모만큼이나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이쯤 되니 내내 엘리자벳만을 바라보는 죽음의 다크다크한 소악마적인 순애보가 나의 짝사랑인 것 마냥 안타까워진다. 잊혀져도, 면전에서 거절을 당해도, 두려움에 외면의 대상이 되어도 죽음은 엘리자벳의 곁에 머문다. 그녀를 얻기 위해 불행을 조장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원하는 것 또한 선사한다. 그것은 치명적인 사랑, 혹은 죽느냐 사느냐의 아슬아슬한 게임. 무섭지만 너무나 감미로워 거부할 수 없는 유혹 그 자체다.
이윽고 석상에서 내려온 죽음이 지상의 무대를 밟으면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그의 본심이 드러난다. 자유를 주었으니 나와 함께 가자, 죽음의 요구는 거침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도 엘리자벳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떠나라는 거절이다. 또다시, 번번이. 입맞춤을 시도하는 죽음을 밀어내는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며, 죽음은 ‘내가 없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다그친다. 죽음이 그의 손길을 뿌리치는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동안 죽음의 천사들은 두 사람을 에워싸고 현란하게 움직인다. 엘리자벳을 향한 죽음의 불같이 타오르는 마음처럼 거칠고 화려하게, 무대 구석구석을 누비며 죽음의 천사들은 죽음의 마음을 형상화한다.
죽음과 엘리자벳의 대립이 무르익어 감에 따라 전개되는 안무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한 몫을 한다. 당장에라도 다가설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 경계하듯 원을 그리며 돌 때나, 죽음에 의해 엘리자벳이 구석으로 몰아질 때나, 이어서 그 반대로 엘리자벳이 죽음을 밀어내며 몰아갈 때 등. 마지막에 엘리자벳의 허리를 움켜쥐는 죽음과 그때 내밀어진 그의 손을 도도하게 쳐내는 엘리자벳을 보고 있으면 두 사람의 닿을 듯 닿지 않는 뒤틀린 관계를 실감하게 된다. 언제쯤 엘리자벳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게 될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어쩌면 죽음은 엘리자벳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그녀의 고고함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정말로 그렇다면, 죽음이 사랑하지 않는 엘리자벳은 없는게 아닐까? 시종일관 차갑고 오만하지만 엘리자벳을 볼 때면 보석을 발견한 듯이 빛나는 그의 눈동자에 묻고 싶다.
마지막 춤에서나 이때나 엘리자벳과의 스킨쉽에는 자상함이 없다. 쏘아보듯 강렬한 눈빛에는 어르고 달래는 사랑의 기색이 스며있지만 손길은 그렇지 않다. 인형을 다루듯 허리춤을 쥐고 잡아먹을 듯이 얼굴을 들이밀고 숨결을 맡고. 입맞춤을 시도할 때조차 턱에는 고고한 힘이 실려있다. 아이처럼 저돌적이고 짐승처럼 본능적이다. 몇 개의 얼굴을 가진 죽음인지, 도무지 가늠할 길이 없다.
결국 또다시 엇갈린 채로 두 사람의 노래가 끝에 이르면 죽음이 절도 있게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는 것으로 그들의 춤도 끝난다. 마지막에 죽음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언제나 엘리자벳이 있다.
죽음은 때를 기다린다.
(이제는 자유를 얻었지만) 고립되어 갇힌 사람은 엘리자벳만이 아니다. 엘리자벳의 어린 아들 루돌프도 어두운 밤, 천둥이 치는 방 안에서 홀로 두려움에 떤다. 대공비 조피가 나약하다며 나무라는 가냘픈 목소리로 루돌프는 엄마를 찾는다. 그러나 루돌프를 찾아온 것은 기다리는 엄마가 아닌 죽음이다. 루돌프의 침대 뒤편에서 연기처럼 솟아난 죽음이 천천히 황태자의 침대로 내려 앉는다. 아직은 어린 아이와 초월적인 존재 죽음의 만남이다. 애초에 죽음이 어린 황태자의 머리 꼭대기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부터가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살가운 목소리는 침대 위에서 엘리자벳을 유혹하던 때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자상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웃음기가 배어있는 음성이다. 아직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세워놓은 죽음의 계획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순진한 어린 아이는 두려워하는 대신 반갑게 죽음에게 말을 건넨다. 친구라는 말을 그대로 믿는 듯 가지말라 잡는 모습에서 죽음과 엘리자벳의 첫만남이 오버랩된다.
죽음의 손등이 천천히 어린 루돌프의 뺨에 닿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아이의 보송보송한 뺨과 죽음의 보드라운 손길이 느껴진다. 그러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얼굴로 죽음이 웃는다. 어린 황태자의 ‘강해질 수 있다며, 어제는 고양이도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대목에서 부드럽게 터져나온 웃음이다. 엘리자벳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그런 웃음이다. 어린 아이를 귀여워 하는 그렇게나 간지러운 웃음이라니! 하지만 결코 온 얼굴로 웃지는 않는다. 그저 가볍게 피식하듯이, 숨결처럼 뱉어져 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만남은 짧다.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에 죽음은 일어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팔을 안으로 굽히며 황태자에게 남들이 으레 하는 예를 갖추어 인사한다. 멋있고 근사하다. 끝까지 근사하게 뒷걸음질쳐 멀어지는가 싶더니 날래게 몸을 돌린다. 미련도 두지 않고 성큼성큼 사라지는 걸음걸이가 살랑살랑하다. 양 어깨를 좌우로 흔들면서 주머니에 손을 꽂고 흥얼거리듯 돌아가는 뒷모습으로 죽음은 어린 아이의 순진함을 비웃는다. 죽음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나면, 엄마를 찾는 루돌프만이 다시 홀로 남겨진다.
불행은 또 한 번 엘리자벳을 찾아온다. 이번에는 배신이다.
<전염병>
죽음은 의사로 분해있다. 검은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쓰러진 그녀를 진찰한다. 어깨에서부터 시작해 팔을 쓸어내리는 야한 손짓이 그녀의 손목을 쥐고 맥박을 잰다. 손목을 그러쥐는 두 손의 동작이 무척이나 섬세하다. 이마에 닿은 손은 열을 재고, 가까이 들이민 얼굴로는 창백한 혈색을 맡는다. 그때 잠시지만 죽음은 가까이에서 그녀의 향기를 즐겁게 음미한다. 음, 이 향기. 허공에서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부유하는 죽음의 얼굴에 얼핏 만족감이 감돈다. 이윽고 진단이 내려진다. 음습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깊은 지하수로에서 한 방울씩 가까스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느리게 애를 태운다. ‘성병입니다’의 말끝이 길게도 늘어진다. ‘아마도 남편에게서 감염되셨을 겁니다’는 대사에선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사악하게 배어나온다. 즐거운가? 죽음은 진심으로 그 상황을 즐거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의 배신에 몸을 떠는 엘리자벳을 보는 눈빛이 흥으로 반짝인다. 마침내 엘리자벳이 죽어버리겠다고 말하는 순간 죽음이 의사의 분장을 벗어 던진다. 처음에는 모자를, 그 다음에는 코트를. 그가 돌아선 채로 코트를 벗는 순간 드러나는 검은 실크 소재의 뒷면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만다. 그것은 시스루! 브이(V) 자로 깊게 파인 등! 아, 그 순간 슬로우 컷처럼 두 눈에 각인된 등근육의 움직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위장을 벗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죽음은 이제 망설일 것 없이 본색을 드러낸다. 또아리를 틀고 때를 기다리던 뱀이 먹잇감을 향해 맹렬하게 덮쳐들듯, 공작새가 마침내 깃털을 펼쳐내듯 우아하고도 극적으로. 죽고 싶다고 말하는 엘리자벳에게, 마지막 기회라며 자신에게로 올 것을 종용한다. 거듭된 엘리자벳의 거절로 인해 죽음의 유혹이 포르티시모로 나아간지 오래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를 반기는 것은 퇴짜다. 퍼뜩 정신을 차린 엘리자벳이 죽음 대신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삶을 찾아나서겠다 결심한 것이다. 그녀의 생에 대한 의지를 칭찬해야 할지 야속하다 여겨야 할지 알 수 없다.
자유는 어디에.
엘리자벳은 더 이상 프란츠 요제프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 여행가 황후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그녀는 밖으로 떠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는 그 동안에 시어머니 조피가 죽고 홀로 남겨진 아들은 장성한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엘리자벳의 떠나버린 마음을 돌려놓을 수는 없다. 그녀는 황실의 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정신병원에 방문한다.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천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 언제나 엘리자벳의 곁을 맴돌고 있음과 함께 엘리자벳 본인 또한 죽음에의 유혹을 항시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어지럽게 회전하는 무대 위에서 엘리자벳이 ‘구원은 오직 죽음뿐’이라며 흐느낄 때 확연하게 와 닿는다.
구원은 오직 죽음뿐. 그것이 결국은 엘리자벳에게서 있어 유일한 진실이다. 아무 것도 내겐 없다며 울부짖는 그녀의 영혼을 두고, 그렇다면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죽음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미쳐버릴 용기조차 없는 엘리자벳을 방치한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두 사람의 줄다리기인 만큼 죽음에게는 엘리자벳을 맞이하고 싶은 그만의 방식이 있다. 그녀를 위해 죽음이 마련해둔 더없이 신성한 의식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그녀를 버려둔다. 초월자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랑인지 유희인지, 죽음의 차가운 심장이 무섭다.
바야흐로 때가 왔다.
<그림자는 길어지고>
엘리자벳이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 해외를 떠도는 사이, 어린 아이였던 루돌프는 장성해 스물 여덟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미래를 염려하는 그는 제국이 가야할 길을 두고 아버지인 황제와 대립한다. 대화로는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부자 사이에서 때를 맞이한 죽음이 할 일은 약간의 양념을 더하는 것뿐이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소중한 제물을 위한 선물이다. 무대 꼭대기, 합스부르크 황가의 문장 뒤에 몸을 감추고 있던 죽음의 등장은 바로 그때가 왔음을 말해준다.
루돌프는 죽음을 알아본다. 그에게 죽음은 여전히 어린 시절, 암흑 속에서 찾곤 했던 오랜 친구다. 그 기색을 놓치지 않고 죽음은 루돌프의 마음 속으로 파고 든다. 그의 심중을 잔인하게 간파하고 몰아붙이는 죽음에게서 비정함을 느낀다. 정의의 사도처럼, 혹은 이브를 꼬여내는 뱀처럼 죽음이 속삭인다. ‘무너지는 이 세상을 지켜만 보고 있겠나. 미래의 황제 폐하가!’ 탁한 목소리가 정말로 뱀의 그것처럼 들린다. 폐하가! 에서 터져 나오는 쇳소리에 아연한다. 절제와 폭발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언제나 여유롭게 행동해온 죽음이 그의 잔악한 본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그런 죽음의 부추김에 현혹되는 루돌프를 보며, 한 인간의 번민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죽음의 무자비함에 혀를 내두른다. 인간이 살고 죽는 모든 것들이 죽음에게는 그저 여흥일 뿐인가 싶어서. 죽음 앞에서 인간의 고뇌나 번민과 같은 것들이 얼마나 무람한지를 깨닫게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엘리자벳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에는 더 소름이 돋는다. 더 나아가 만약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조차도 결국은 놀이의 연장선이라면..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는 죽음의 차가운 심장이 서글프다.
낮고 음습한 목소리에서 폭발하는 성량까지. ‘황제 루돌프가 밝힐 세상’이라는 달콤한 꾐으로 죽음은 루돌프를 수렁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한다. 헝가리 사람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는 순간 루돌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허리를 난간에 의지한 채, 죽음의 늪으로 빠져드는 루돌프를 곁눈으로 지켜보는 죽음은 그 이상으로 즐거울 수가 없어 보인다. 젊은 황태자가 죽음이 차려놓은 덫에 점차로 포박되어 갈 때마다 죽음의 눈썹이 들썩이고, 어깨가 흥에 겨워 떨리고, 신바람을 감당하지 못한 허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마치 3단 변신처럼 죽음의 즐거움이 증폭되는 것이 보인다. 결국 그의 의도대로 루돌프가 발각된 순간에는 정제되지 않은 웃음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려 퍼진다. 끼익 끼익, 목에 상처를 낼 기세로 갈라지는 웃음이다. 상체를 한껏 휘저어대며 온몸으로도 웃는다. 모든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죽음의 뜻대로다.
절망의 끝에서 루돌프는 어머니인 엘리자벳을 찾아온다.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을 해달라고. 그러나 엘리자벳은 루돌프를 외면한다. 30년 전 프란츠 요제프가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그녀 혼자 버려진 채로 남아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루돌프는 홀로 남는다.
그리고 죽음.
<마이얼링 왈츠>
어깨를 늘어트린 루돌프만이 남은 외딴 공간에 죽음의 천사들을 대동한 죽음이 유유히 등장한다. 루돌프를 향해 빳빳이 뻗은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다. 혼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왈츠에 걸음걸이를 맞춰 고고하게 살랑살랑, 몸짓이 너무나 농염하다. 웃음기가 가신 얼굴은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고, 자켓을 걸치지 않은 검은 셔츠 차림의 죽음으로 인해 무대에는 왠지 모를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표범처럼 우아하게 다가선 죽음이 루돌프에게로 권총을 건네줄 듯 하다가, 맵시 있게 몸을 숙여 죽음의 천사들 틈으로 감춰 버린다. 권총이 자취를 감추면, 죽음의 천사들은 죽음의 지시에 따라 루돌프를 농락하기 시작한다. 포획을 마치기 직전, 사냥의 마지막 의식을 치루듯 엄숙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그들 사이를 유랑하는 권총이 갈팡질팡 헤매는 루돌프의 처지를 조롱한다. 죽음의 천사들과 루돌프, 희고 매캐한 연기가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이 희극의 연출자인 죽음만이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한가롭게 무대를 누빈다.
고고하게 걷는 죽음의 뒷모습에 홀려 미처 루돌프와 권총의 행방을 살피지 못했다. 사소한 동작까지 모두 계산된 죽음이다. 로딩도 버퍼도 없는 완벽한 죽음이다. 거기다 어찌나 몸을 잘 쓰는 죽음인지, 도도하게 살짝 들린 턱과 내립뜬 눈은 차갑고 무정하지만 몸짓만은 사붓사붓하다. 공기의 움직임이라 해도 믿겠다. 아아. 이번에는 대사도 노래도 없이 오로지 움직임뿐이지만 그의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볼수록 이것은 센세이션이다.
마침내 팔다리의 자유를 빼앗긴 채 그의 앞에 무릎 꿇은 루돌프에게 죽음은 손수 권총을 쥐어준다. 은혜를 베풀듯 선량한 동작이다. 두려움에 떠는 루돌프가 저항 없이 그 권총을 받아들이면 곧이어 총성이 울린다. 탕. 총성과 함께 죽음이 루돌프의 입술을 삼킨다. 마지막 의식의 순간은 찰나다. 차갑고 비정한 입맞춤 끝에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쓰러진다. 죽음뿐이다.
계획되었던 살인이 끝나면 죽음의 눈에서 반짝이던 난폭한 광기가 잦아든다. 명멸하는 눈빛에서 만족과 함께 뜻 모를 감상이 묻어나온다. 그것은 비통함인가, 명확하진 않다. 모든 것에 마지막을 선사하는 것이 죽음의 의무이므로 루돌프 몫의 죽음도 당연한 것이건만.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때와는 사뭇 다른 눈빛이다. 천천히, 죽음의 천사들이 루돌프의 시신을 머리 위로 싣고 나간다. 죽음은 마임을 하는 것처럼 버려진 권총을 집어든다. 소리도 기척도 없는 은밀한 몸짓이다. 천천히 오른쪽 객석에 눈을 맞추고, 총구를 겨누었다가, 빵. 무대에만 들리는 목소리로 총성을 흉내낸다. 모두가 숨을 죽이는 가운데 죽음은 총구를 끌어다 연기를 맡는다. 으음, 죽음의 냄새. 보이지 않는 연기를 따라 설레설레 내젓는 턱이 감미로운 향기를 맡는 듯이 흡족해 보인다. 두 눈을 감고, 관능적인 고갯짓이다. 음미하는 그의 숨소리가 무대 위로만 조용히 퍼진다. 죽음의 여운이 길게 늘어진다. 무대가 퇴색한다.
그렇게는 네가 필요 없다.
루돌프를 잃고 나서야 엘리자벳은 아들을 외면했던 자신을 후회한다. 루돌프의 장례식. 죽음은 그 언젠가 엘리자벳의 딸을 데려갔을 때와 같이 무대의 왼쪽 꼭대기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자세를 낮추고 앉은 죽음의 복색이 놀랍다. 장례식 복장을 하고 모습이 평상시의 죽음과는 살짝 다르다. 아들의 관 앞에 엎드린 채 비탄에 잠긴 엘리자벳을 내려다보는 눈길이 조용하고 무감하다. 흐느끼던 엘리자벳이 그를 발견하고 매달린다. 톡 부러질 듯 가느다랗고 연약한 목소리. ‘차라리 나를 데려가.’ 그토록 원했던 그 말을 듣게 된 죽음은, 그러나 기쁜 기색이 없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죽음이 차갑게 거절한다. 낮게 으르렁대는 목소리가 침잠한다. 분노인지, 언짢음인지 그도 아니면 안타까운 외면인지. 죽음이 말한다. ‘그렇게는 네가 필요 없다.’ 죽음에게는 엘리자벳을 얻고자 하는 그만의 방식이 있다. 그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제서야 죽음을 똑바로 부르는 엘리자벳이 야속하다. 고통에서 해방시켜 달라니, 죽음을 도피처로만 대하는 건 그에 대한 모욕이다. 죽음의 분노와 모욕감이 내게로 전해진다. 죽음은 성난 아이처럼 사납게 포효한다. ‘가!!!’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획 돌아서는 모습에서 모순된 감정이 묻어난다. 고까움, 안타까움, 빈정 상함, 애잔함, 서운함, 언짢음. 기쁨은 없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이렇게나 많은 불행이 한꺼번에 몰아닥칠 수가 있을까? 약속이나 한 듯 엘리자벳 주위의 사람들이 미치거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제국의 생명도 위태로워 진다. 화자 루케니는 그 상황을 침몰하는 배에 빗대어 희화시킨다. 파도가 한 번 철썩일 때마다 갑판이 출렁이고 사람들은 인형처럼 쓰러진다. 그곳은 바로 죽음이 다스리는 악몽이다. 동시에 프란츠 요제프와의 첫 대면을 위해 죽음이 마련한 무대이기도 하다.
낯선 풍광에 어리둥절한 황제 앞에서 죽음은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뜸 들이지 않고. 드물게, 여과 없이. ‘침몰하는 배죠, 폐하!’ 걸러지지 않은 탁한 목소리가 파괴적이다. 마지막 춤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황제가 황후의 소재를 물으면, 죽음은 사납게 성을 낸다. 침몰하는 배라며 황제를 조롱하는 얼굴에 담겨 있었던 웃음이 어느새 증발해버리고 없다. 표정 변화가 거침이 없고 즉각적이다. 정말이지 드물게도! ‘엘리자벳, 나의 엘리자벳!’ 억눌러왔던 화를 일시에 터트리는 기세가 섬뜩하다. 따갑게 내리 퍼붓는 죽음의 분노는 유례가 없는 것이다. 리프트의 난간에 엎드리듯 달라붙은 자세가 뱀처럼 쇡쇡거리는 소리를 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크르릉, 크르릉. 이글대는 눈빛에는 연적을 대하는 적대의식보다는 소유물을 빼앗은 자에 대한 노여움이 가득하다.
한 차례의 첨예한 대립 끝에 마침내 죽음이 선포한다. ‘기다리던 순간이 왔어’. 이것으로 나의 그녀를 ‘구원하겠다’. 높이 치켜든 손에서 단도가 빛을 받아 날카롭게 반짝인다. 비로소 끝을 내려는 것이다. 황제이자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의 무력함을 통렬하게 비웃으며 죽음은 암살자에게로 신성한 흉기를 넘겨준다. 암살자 루케니는 이 순간을 위해 죽음이 아껴둔 최종병기인 셈이다. 모든 소리가 한데로 혼란스럽게 엉켜 들었다가 사그라지는 순간까지 죽음은 엘리자벳의 이름을 노래한다. 그 집착이? 그 사랑이? 어쩐지 슬프고 애잔하다. ‘엘리자벳, 엘리자벳.’
죽음. 마침내.
쓰러진 엘리자벳의 앞으로 죽음의 등장을 예고하는 안개가 깔린다. 그 위로 죽음만의 공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죽음의 전유물인 리프트 위로 순백의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죽음이 걸어 나온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한다. 대지를 적시는 빗물처럼 깊고도 그윽한 눈빛. 선풍처럼 불어닥친 ‘마침내’의 순간에 무량해지는 것은 나다. 죽음 역시 그러한가. 반듯한 얼굴에는 결코 이름 지을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얼마나 더 보고, 얼마나 더 느껴야 그 감정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최후의 순간. 죽음이 새빨간 침대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 번 더 그녀를 부른다. 늪과 같이 깊고도 아득한 목소리. 한없이 부드럽고 낭만적인 부름. ‘엘리자벳.’ 아아, 그 순간 엘리자벳의 불행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그녀를 온전하게 채워줄 수 있는 죽음이 목전에 있으니까. 이제는 엘리자벳이 죽음만의 공간에 올라서는 일만이 남았다. 죽음은 그 자리에 선 채로 기다린다. 엘리자벳이 자신의 힘으로 죽음에게 이를 때까지, 죽음은 오로지 목소리로만 그녀를 채근한다.
하얀 안개가 자욱이 깔린 무대 위에 순결한 백색 옷의 두 사람이 마주 본다. 그들이 나란히 선 그곳은 천상인가 지옥인가. ‘자유로울 거야.’ 위로인지, 아니면 끝나지 않는 유혹인지 구분이 어려울 만큼 달콤한 속삭임. 죽음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쥔다. 심장을 두드리는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큰 충격으로 죽음의 목소리가, 눈빛이, 손길이 엘리자벳만을 향한다. 마침내 그의 품 안으로 날아든 아름다운 새에게 죽음이 입맞춤을 선사한다. 시작은 꽃을 향해 날아드는 벌처럼 뜨거웠다가, 마지막은 꼭 사랑의 마침표처럼 덤덤하다. 단지 죽음 그 자체를 위한 의식이기도 하고, 오래도록 기다려온 사랑의 행위이기도 한 입맞춤이 멎고 나면 엘리자벳의 고개가 힘없이 꺾인다.
엘리자벳을 받쳐 든 죽음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깜박이는 것을 잊은 듯한 눈꺼풀에 어떠어떠한 감정의 무게가 실린 것인지 전부 가늠하기 어렵다. 비장한 희열, 숙연한 환희. 그도 아니면 사무치는 격정? 뮤지컬이 막을 내릴 때까지 이 순간의 죽음을 정확히 표현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김살마저도 우아하게 그려진 죽음에 홀려 있는 동안, 그 발치 아래에서는 암살자 루케니가 죽음의 심판을 받는다. 심판의 순간에도 덤덤한 죽음의 눈빛에서 언뜻 공허함을 본다.
모든 생명이 꺼지고 죽음만이 남는다.
헝가리의 여왕이 된 엘리자벳이 승리를 만끽할 때, 석상 하나가 빙그르르 움직인다. 정면을 향해 돌아선 석상 앞에는 검은 끈으로 수없이 동여맨 회색 옷을 걸친 죽음이 엘리자벳을 지켜보고 있다. 마치 여왕의 기사처럼, 또는 왕비의 후견인처럼 말쑥한 차림새다. 일견 그녀를 대견해하는 것도 같은 표정으로 죽음은 승리에 도취된 엘리자벳을 본다. 그녀를 응시하는 시선 안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감정이 담겨 있는지 모두 나열하기 어렵다. 대견한 듯이, 탐하듯이, 기꺼이 이해한다는 듯이. 토라지기 쉬운 꽃을 어르고 달래듯 맞장구를 쳐주는 모습에서 그 순간조차도 죽음의 손바닥 안에서 계획되었음이 느껴진다. 엘리자벳을 위해 계획된, 죽음이 마련해 놓은 승리. 바로 자유.
이 장면의 죽음이 얼마나 신사답고 절도 있게 멋있었는지 할 수만 있다면 두 눈으로라도 계속해서 재생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축제를 열어’ 하며 엘리자벳 쪽으로 인사하듯 팔을 뻗는 동작이 특히 그랬다. 약간의 그루브가 섞인 팔이 유연하게 뻗어짐과 동시에 고개는 반대쪽으로 살짝만 까닥이는데, 그 손끝의 동작이 어찌나 우아한지. 그 순간의 죽음은 그래 엘리자벳 네가 이겼어 라고 말하는 것도 같았고 한편으로는 죽음이 마련해 놓은 승리에 도취된 그녀를 귀엽게 여기는 것도 같았다. 마치 죽음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그것이 진정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일반인을 대할 때와는 다른 특별한 감정 정도에 그치는 것인지에 대한 해석은 죽음의 다양한 면모만큼이나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이쯤 되니 내내 엘리자벳만을 바라보는 죽음의 다크다크한 소악마적인 순애보가 나의 짝사랑인 것 마냥 안타까워진다. 잊혀져도, 면전에서 거절을 당해도, 두려움에 외면의 대상이 되어도 죽음은 엘리자벳의 곁에 머문다. 그녀를 얻기 위해 불행을 조장하지만, 동시에 그녀가 원하는 것 또한 선사한다. 그것은 치명적인 사랑, 혹은 죽느냐 사느냐의 아슬아슬한 게임. 무섭지만 너무나 감미로워 거부할 수 없는 유혹 그 자체다.
이윽고 석상에서 내려온 죽음이 지상의 무대를 밟으면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그의 본심이 드러난다. 자유를 주었으니 나와 함께 가자, 죽음의 요구는 거침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도 엘리자벳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떠나라는 거절이다. 또다시, 번번이. 입맞춤을 시도하는 죽음을 밀어내는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며, 죽음은 ‘내가 없인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다그친다. 죽음이 그의 손길을 뿌리치는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동안 죽음의 천사들은 두 사람을 에워싸고 현란하게 움직인다. 엘리자벳을 향한 죽음의 불같이 타오르는 마음처럼 거칠고 화려하게, 무대 구석구석을 누비며 죽음의 천사들은 죽음의 마음을 형상화한다.
죽음과 엘리자벳의 대립이 무르익어 감에 따라 전개되는 안무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한 몫을 한다. 당장에라도 다가설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 경계하듯 원을 그리며 돌 때나, 죽음에 의해 엘리자벳이 구석으로 몰아질 때나, 이어서 그 반대로 엘리자벳이 죽음을 밀어내며 몰아갈 때 등. 마지막에 엘리자벳의 허리를 움켜쥐는 죽음과 그때 내밀어진 그의 손을 도도하게 쳐내는 엘리자벳을 보고 있으면 두 사람의 닿을 듯 닿지 않는 뒤틀린 관계를 실감하게 된다. 언제쯤 엘리자벳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게 될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어쩌면 죽음은 엘리자벳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그녀의 고고함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정말로 그렇다면, 죽음이 사랑하지 않는 엘리자벳은 없는게 아닐까? 시종일관 차갑고 오만하지만 엘리자벳을 볼 때면 보석을 발견한 듯이 빛나는 그의 눈동자에 묻고 싶다.
마지막 춤에서나 이때나 엘리자벳과의 스킨쉽에는 자상함이 없다. 쏘아보듯 강렬한 눈빛에는 어르고 달래는 사랑의 기색이 스며있지만 손길은 그렇지 않다. 인형을 다루듯 허리춤을 쥐고 잡아먹을 듯이 얼굴을 들이밀고 숨결을 맡고. 입맞춤을 시도할 때조차 턱에는 고고한 힘이 실려있다. 아이처럼 저돌적이고 짐승처럼 본능적이다. 몇 개의 얼굴을 가진 죽음인지, 도무지 가늠할 길이 없다.
결국 또다시 엇갈린 채로 두 사람의 노래가 끝에 이르면 죽음이 절도 있게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려보는 것으로 그들의 춤도 끝난다. 마지막에 죽음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언제나 엘리자벳이 있다.
죽음은 때를 기다린다.
(이제는 자유를 얻었지만) 고립되어 갇힌 사람은 엘리자벳만이 아니다. 엘리자벳의 어린 아들 루돌프도 어두운 밤, 천둥이 치는 방 안에서 홀로 두려움에 떤다. 대공비 조피가 나약하다며 나무라는 가냘픈 목소리로 루돌프는 엄마를 찾는다. 그러나 루돌프를 찾아온 것은 기다리는 엄마가 아닌 죽음이다. 루돌프의 침대 뒤편에서 연기처럼 솟아난 죽음이 천천히 황태자의 침대로 내려 앉는다. 아직은 어린 아이와 초월적인 존재 죽음의 만남이다. 애초에 죽음이 어린 황태자의 머리 꼭대기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부터가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살가운 목소리는 침대 위에서 엘리자벳을 유혹하던 때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자상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웃음기가 배어있는 음성이다. 아직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세워놓은 죽음의 계획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순진한 어린 아이는 두려워하는 대신 반갑게 죽음에게 말을 건넨다. 친구라는 말을 그대로 믿는 듯 가지말라 잡는 모습에서 죽음과 엘리자벳의 첫만남이 오버랩된다.
죽음의 손등이 천천히 어린 루돌프의 뺨에 닿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린 아이의 보송보송한 뺨과 죽음의 보드라운 손길이 느껴진다. 그러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얼굴로 죽음이 웃는다. 어린 황태자의 ‘강해질 수 있다며, 어제는 고양이도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대목에서 부드럽게 터져나온 웃음이다. 엘리자벳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그런 웃음이다. 어린 아이를 귀여워 하는 그렇게나 간지러운 웃음이라니! 하지만 결코 온 얼굴로 웃지는 않는다. 그저 가볍게 피식하듯이, 숨결처럼 뱉어져 나왔을 뿐이다.
그러나 만남은 짧다. 아직은 때가 아니기 때문에 죽음은 일어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팔을 안으로 굽히며 황태자에게 남들이 으레 하는 예를 갖추어 인사한다. 멋있고 근사하다. 끝까지 근사하게 뒷걸음질쳐 멀어지는가 싶더니 날래게 몸을 돌린다. 미련도 두지 않고 성큼성큼 사라지는 걸음걸이가 살랑살랑하다. 양 어깨를 좌우로 흔들면서 주머니에 손을 꽂고 흥얼거리듯 돌아가는 뒷모습으로 죽음은 어린 아이의 순진함을 비웃는다. 죽음이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고 나면, 엄마를 찾는 루돌프만이 다시 홀로 남겨진다.
불행은 또 한 번 엘리자벳을 찾아온다. 이번에는 배신이다.
<전염병>
죽음은 의사로 분해있다. 검은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쓰러진 그녀를 진찰한다. 어깨에서부터 시작해 팔을 쓸어내리는 야한 손짓이 그녀의 손목을 쥐고 맥박을 잰다. 손목을 그러쥐는 두 손의 동작이 무척이나 섬세하다. 이마에 닿은 손은 열을 재고, 가까이 들이민 얼굴로는 창백한 혈색을 맡는다. 그때 잠시지만 죽음은 가까이에서 그녀의 향기를 즐겁게 음미한다. 음, 이 향기. 허공에서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부유하는 죽음의 얼굴에 얼핏 만족감이 감돈다. 이윽고 진단이 내려진다. 음습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깊은 지하수로에서 한 방울씩 가까스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느리게 애를 태운다. ‘성병입니다’의 말끝이 길게도 늘어진다. ‘아마도 남편에게서 감염되셨을 겁니다’는 대사에선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사악하게 배어나온다. 즐거운가? 죽음은 진심으로 그 상황을 즐거워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편의 배신에 몸을 떠는 엘리자벳을 보는 눈빛이 흥으로 반짝인다. 마침내 엘리자벳이 죽어버리겠다고 말하는 순간 죽음이 의사의 분장을 벗어 던진다. 처음에는 모자를, 그 다음에는 코트를. 그가 돌아선 채로 코트를 벗는 순간 드러나는 검은 실크 소재의 뒷면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만다. 그것은 시스루! 브이(V) 자로 깊게 파인 등! 아, 그 순간 슬로우 컷처럼 두 눈에 각인된 등근육의 움직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위장을 벗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죽음은 이제 망설일 것 없이 본색을 드러낸다. 또아리를 틀고 때를 기다리던 뱀이 먹잇감을 향해 맹렬하게 덮쳐들듯, 공작새가 마침내 깃털을 펼쳐내듯 우아하고도 극적으로. 죽고 싶다고 말하는 엘리자벳에게, 마지막 기회라며 자신에게로 올 것을 종용한다. 거듭된 엘리자벳의 거절로 인해 죽음의 유혹이 포르티시모로 나아간지 오래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를 반기는 것은 퇴짜다. 퍼뜩 정신을 차린 엘리자벳이 죽음 대신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삶을 찾아나서겠다 결심한 것이다. 그녀의 생에 대한 의지를 칭찬해야 할지 야속하다 여겨야 할지 알 수 없다.
자유는 어디에.
엘리자벳은 더 이상 프란츠 요제프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 여행가 황후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그녀는 밖으로 떠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는 그 동안에 시어머니 조피가 죽고 홀로 남겨진 아들은 장성한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엘리자벳의 떠나버린 마음을 돌려놓을 수는 없다. 그녀는 황실의 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정신병원에 방문한다.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천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 언제나 엘리자벳의 곁을 맴돌고 있음과 함께 엘리자벳 본인 또한 죽음에의 유혹을 항시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어지럽게 회전하는 무대 위에서 엘리자벳이 ‘구원은 오직 죽음뿐’이라며 흐느낄 때 확연하게 와 닿는다.
구원은 오직 죽음뿐. 그것이 결국은 엘리자벳에게서 있어 유일한 진실이다. 아무 것도 내겐 없다며 울부짖는 그녀의 영혼을 두고, 그렇다면 죽음은 어디에 있는가. 죽음은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미쳐버릴 용기조차 없는 엘리자벳을 방치한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두 사람의 줄다리기인 만큼 죽음에게는 엘리자벳을 맞이하고 싶은 그만의 방식이 있다. 그녀를 위해 죽음이 마련해둔 더없이 신성한 의식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아직은 때가 아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그녀를 버려둔다. 초월자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랑인지 유희인지, 죽음의 차가운 심장이 무섭다.
바야흐로 때가 왔다.
<그림자는 길어지고>
엘리자벳이 자신만의 자유를 찾아 해외를 떠도는 사이, 어린 아이였던 루돌프는 장성해 스물 여덟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미래를 염려하는 그는 제국이 가야할 길을 두고 아버지인 황제와 대립한다. 대화로는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부자 사이에서 때를 맞이한 죽음이 할 일은 약간의 양념을 더하는 것뿐이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소중한 제물을 위한 선물이다. 무대 꼭대기, 합스부르크 황가의 문장 뒤에 몸을 감추고 있던 죽음의 등장은 바로 그때가 왔음을 말해준다.
루돌프는 죽음을 알아본다. 그에게 죽음은 여전히 어린 시절, 암흑 속에서 찾곤 했던 오랜 친구다. 그 기색을 놓치지 않고 죽음은 루돌프의 마음 속으로 파고 든다. 그의 심중을 잔인하게 간파하고 몰아붙이는 죽음에게서 비정함을 느낀다. 정의의 사도처럼, 혹은 이브를 꼬여내는 뱀처럼 죽음이 속삭인다. ‘무너지는 이 세상을 지켜만 보고 있겠나. 미래의 황제 폐하가!’ 탁한 목소리가 정말로 뱀의 그것처럼 들린다. 폐하가! 에서 터져 나오는 쇳소리에 아연한다. 절제와 폭발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언제나 여유롭게 행동해온 죽음이 그의 잔악한 본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순간이다. 그런 죽음의 부추김에 현혹되는 루돌프를 보며, 한 인간의 번민을 이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죽음의 무자비함에 혀를 내두른다. 인간이 살고 죽는 모든 것들이 죽음에게는 그저 여흥일 뿐인가 싶어서. 죽음 앞에서 인간의 고뇌나 번민과 같은 것들이 얼마나 무람한지를 깨닫게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엘리자벳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것에는 더 소름이 돋는다. 더 나아가 만약 엘리자벳에 대한 사랑조차도 결국은 놀이의 연장선이라면..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는 죽음의 차가운 심장이 서글프다.
낮고 음습한 목소리에서 폭발하는 성량까지. ‘황제 루돌프가 밝힐 세상’이라는 달콤한 꾐으로 죽음은 루돌프를 수렁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한다. 헝가리 사람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는 순간 루돌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허리를 난간에 의지한 채, 죽음의 늪으로 빠져드는 루돌프를 곁눈으로 지켜보는 죽음은 그 이상으로 즐거울 수가 없어 보인다. 젊은 황태자가 죽음이 차려놓은 덫에 점차로 포박되어 갈 때마다 죽음의 눈썹이 들썩이고, 어깨가 흥에 겨워 떨리고, 신바람을 감당하지 못한 허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마치 3단 변신처럼 죽음의 즐거움이 증폭되는 것이 보인다. 결국 그의 의도대로 루돌프가 발각된 순간에는 정제되지 않은 웃음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려 퍼진다. 끼익 끼익, 목에 상처를 낼 기세로 갈라지는 웃음이다. 상체를 한껏 휘저어대며 온몸으로도 웃는다. 모든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죽음의 뜻대로다.
절망의 끝에서 루돌프는 어머니인 엘리자벳을 찾아온다.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을 해달라고. 그러나 엘리자벳은 루돌프를 외면한다. 30년 전 프란츠 요제프가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그녀 혼자 버려진 채로 남아야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루돌프는 홀로 남는다.
그리고 죽음.
<마이얼링 왈츠>
어깨를 늘어트린 루돌프만이 남은 외딴 공간에 죽음의 천사들을 대동한 죽음이 유유히 등장한다. 루돌프를 향해 빳빳이 뻗은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다. 혼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왈츠에 걸음걸이를 맞춰 고고하게 살랑살랑, 몸짓이 너무나 농염하다. 웃음기가 가신 얼굴은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고, 자켓을 걸치지 않은 검은 셔츠 차림의 죽음으로 인해 무대에는 왠지 모를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표범처럼 우아하게 다가선 죽음이 루돌프에게로 권총을 건네줄 듯 하다가, 맵시 있게 몸을 숙여 죽음의 천사들 틈으로 감춰 버린다. 권총이 자취를 감추면, 죽음의 천사들은 죽음의 지시에 따라 루돌프를 농락하기 시작한다. 포획을 마치기 직전, 사냥의 마지막 의식을 치루듯 엄숙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그들 사이를 유랑하는 권총이 갈팡질팡 헤매는 루돌프의 처지를 조롱한다. 죽음의 천사들과 루돌프, 희고 매캐한 연기가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이 희극의 연출자인 죽음만이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한가롭게 무대를 누빈다.
고고하게 걷는 죽음의 뒷모습에 홀려 미처 루돌프와 권총의 행방을 살피지 못했다. 사소한 동작까지 모두 계산된 죽음이다. 로딩도 버퍼도 없는 완벽한 죽음이다. 거기다 어찌나 몸을 잘 쓰는 죽음인지, 도도하게 살짝 들린 턱과 내립뜬 눈은 차갑고 무정하지만 몸짓만은 사붓사붓하다. 공기의 움직임이라 해도 믿겠다. 아아. 이번에는 대사도 노래도 없이 오로지 움직임뿐이지만 그의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볼수록 이것은 센세이션이다.
마침내 팔다리의 자유를 빼앗긴 채 그의 앞에 무릎 꿇은 루돌프에게 죽음은 손수 권총을 쥐어준다. 은혜를 베풀듯 선량한 동작이다. 두려움에 떠는 루돌프가 저항 없이 그 권총을 받아들이면 곧이어 총성이 울린다. 탕. 총성과 함께 죽음이 루돌프의 입술을 삼킨다. 마지막 의식의 순간은 찰나다. 차갑고 비정한 입맞춤 끝에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쓰러진다. 죽음뿐이다.
계획되었던 살인이 끝나면 죽음의 눈에서 반짝이던 난폭한 광기가 잦아든다. 명멸하는 눈빛에서 만족과 함께 뜻 모를 감상이 묻어나온다. 그것은 비통함인가, 명확하진 않다. 모든 것에 마지막을 선사하는 것이 죽음의 의무이므로 루돌프 몫의 죽음도 당연한 것이건만.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때와는 사뭇 다른 눈빛이다. 천천히, 죽음의 천사들이 루돌프의 시신을 머리 위로 싣고 나간다. 죽음은 마임을 하는 것처럼 버려진 권총을 집어든다. 소리도 기척도 없는 은밀한 몸짓이다. 천천히 오른쪽 객석에 눈을 맞추고, 총구를 겨누었다가, 빵. 무대에만 들리는 목소리로 총성을 흉내낸다. 모두가 숨을 죽이는 가운데 죽음은 총구를 끌어다 연기를 맡는다. 으음, 죽음의 냄새. 보이지 않는 연기를 따라 설레설레 내젓는 턱이 감미로운 향기를 맡는 듯이 흡족해 보인다. 두 눈을 감고, 관능적인 고갯짓이다. 음미하는 그의 숨소리가 무대 위로만 조용히 퍼진다. 죽음의 여운이 길게 늘어진다. 무대가 퇴색한다.
그렇게는 네가 필요 없다.
루돌프를 잃고 나서야 엘리자벳은 아들을 외면했던 자신을 후회한다. 루돌프의 장례식. 죽음은 그 언젠가 엘리자벳의 딸을 데려갔을 때와 같이 무대의 왼쪽 꼭대기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자세를 낮추고 앉은 죽음의 복색이 놀랍다. 장례식 복장을 하고 모습이 평상시의 죽음과는 살짝 다르다. 아들의 관 앞에 엎드린 채 비탄에 잠긴 엘리자벳을 내려다보는 눈길이 조용하고 무감하다. 흐느끼던 엘리자벳이 그를 발견하고 매달린다. 톡 부러질 듯 가느다랗고 연약한 목소리. ‘차라리 나를 데려가.’ 그토록 원했던 그 말을 듣게 된 죽음은, 그러나 기쁜 기색이 없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죽음이 차갑게 거절한다. 낮게 으르렁대는 목소리가 침잠한다. 분노인지, 언짢음인지 그도 아니면 안타까운 외면인지. 죽음이 말한다. ‘그렇게는 네가 필요 없다.’ 죽음에게는 엘리자벳을 얻고자 하는 그만의 방식이 있다. 그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제서야 죽음을 똑바로 부르는 엘리자벳이 야속하다. 고통에서 해방시켜 달라니, 죽음을 도피처로만 대하는 건 그에 대한 모욕이다. 죽음의 분노와 모욕감이 내게로 전해진다. 죽음은 성난 아이처럼 사납게 포효한다. ‘가!!!’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획 돌아서는 모습에서 모순된 감정이 묻어난다. 고까움, 안타까움, 빈정 상함, 애잔함, 서운함, 언짢음. 기쁨은 없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이렇게나 많은 불행이 한꺼번에 몰아닥칠 수가 있을까? 약속이나 한 듯 엘리자벳 주위의 사람들이 미치거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제국의 생명도 위태로워 진다. 화자 루케니는 그 상황을 침몰하는 배에 빗대어 희화시킨다. 파도가 한 번 철썩일 때마다 갑판이 출렁이고 사람들은 인형처럼 쓰러진다. 그곳은 바로 죽음이 다스리는 악몽이다. 동시에 프란츠 요제프와의 첫 대면을 위해 죽음이 마련한 무대이기도 하다.
낯선 풍광에 어리둥절한 황제 앞에서 죽음은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뜸 들이지 않고. 드물게, 여과 없이. ‘침몰하는 배죠, 폐하!’ 걸러지지 않은 탁한 목소리가 파괴적이다. 마지막 춤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황제가 황후의 소재를 물으면, 죽음은 사납게 성을 낸다. 침몰하는 배라며 황제를 조롱하는 얼굴에 담겨 있었던 웃음이 어느새 증발해버리고 없다. 표정 변화가 거침이 없고 즉각적이다. 정말이지 드물게도! ‘엘리자벳, 나의 엘리자벳!’ 억눌러왔던 화를 일시에 터트리는 기세가 섬뜩하다. 따갑게 내리 퍼붓는 죽음의 분노는 유례가 없는 것이다. 리프트의 난간에 엎드리듯 달라붙은 자세가 뱀처럼 쇡쇡거리는 소리를 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크르릉, 크르릉. 이글대는 눈빛에는 연적을 대하는 적대의식보다는 소유물을 빼앗은 자에 대한 노여움이 가득하다.
한 차례의 첨예한 대립 끝에 마침내 죽음이 선포한다. ‘기다리던 순간이 왔어’. 이것으로 나의 그녀를 ‘구원하겠다’. 높이 치켜든 손에서 단도가 빛을 받아 날카롭게 반짝인다. 비로소 끝을 내려는 것이다. 황제이자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의 무력함을 통렬하게 비웃으며 죽음은 암살자에게로 신성한 흉기를 넘겨준다. 암살자 루케니는 이 순간을 위해 죽음이 아껴둔 최종병기인 셈이다. 모든 소리가 한데로 혼란스럽게 엉켜 들었다가 사그라지는 순간까지 죽음은 엘리자벳의 이름을 노래한다. 그 집착이? 그 사랑이? 어쩐지 슬프고 애잔하다. ‘엘리자벳, 엘리자벳.’
죽음. 마침내.
쓰러진 엘리자벳의 앞으로 죽음의 등장을 예고하는 안개가 깔린다. 그 위로 죽음만의 공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죽음의 전유물인 리프트 위로 순백의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죽음이 걸어 나온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한다. 대지를 적시는 빗물처럼 깊고도 그윽한 눈빛. 선풍처럼 불어닥친 ‘마침내’의 순간에 무량해지는 것은 나다. 죽음 역시 그러한가. 반듯한 얼굴에는 결코 이름 지을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있다. 얼마나 더 보고, 얼마나 더 느껴야 그 감정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최후의 순간. 죽음이 새빨간 침대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 번 더 그녀를 부른다. 늪과 같이 깊고도 아득한 목소리. 한없이 부드럽고 낭만적인 부름. ‘엘리자벳.’ 아아, 그 순간 엘리자벳의 불행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그녀를 온전하게 채워줄 수 있는 죽음이 목전에 있으니까. 이제는 엘리자벳이 죽음만의 공간에 올라서는 일만이 남았다. 죽음은 그 자리에 선 채로 기다린다. 엘리자벳이 자신의 힘으로 죽음에게 이를 때까지, 죽음은 오로지 목소리로만 그녀를 채근한다.
하얀 안개가 자욱이 깔린 무대 위에 순결한 백색 옷의 두 사람이 마주 본다. 그들이 나란히 선 그곳은 천상인가 지옥인가. ‘자유로울 거야.’ 위로인지, 아니면 끝나지 않는 유혹인지 구분이 어려울 만큼 달콤한 속삭임. 죽음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쥔다. 심장을 두드리는 오케스트라보다도 더 큰 충격으로 죽음의 목소리가, 눈빛이, 손길이 엘리자벳만을 향한다. 마침내 그의 품 안으로 날아든 아름다운 새에게 죽음이 입맞춤을 선사한다. 시작은 꽃을 향해 날아드는 벌처럼 뜨거웠다가, 마지막은 꼭 사랑의 마침표처럼 덤덤하다. 단지 죽음 그 자체를 위한 의식이기도 하고, 오래도록 기다려온 사랑의 행위이기도 한 입맞춤이 멎고 나면 엘리자벳의 고개가 힘없이 꺾인다.
엘리자벳을 받쳐 든 죽음의 시선이 정면을 향한다. 깜박이는 것을 잊은 듯한 눈꺼풀에 어떠어떠한 감정의 무게가 실린 것인지 전부 가늠하기 어렵다. 비장한 희열, 숙연한 환희. 그도 아니면 사무치는 격정? 뮤지컬이 막을 내릴 때까지 이 순간의 죽음을 정확히 표현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구김살마저도 우아하게 그려진 죽음에 홀려 있는 동안, 그 발치 아래에서는 암살자 루케니가 죽음의 심판을 받는다. 심판의 순간에도 덤덤한 죽음의 눈빛에서 언뜻 공허함을 본다.
모든 생명이 꺼지고 죽음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