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


오늘 1막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시아준수가 내뱉었던 그 숨소리. 한숨 같기도 하고 신음 같기도 한 그런 걸 아주 명확한 크기로 두 번 냈는데, 한 번은 리프트에서 내려와서 죽음의 천사들과 대형을 잡은 후에.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춤에 들어가기 전에 시동 걸듯이 ‘하아..’ 하며 냈던 그 소리다. 그때 그 숨소리는 물론, 그 표정. 아아.. 블루스퀘어는 공연장 안에 표정만 클로즈업 하는 전광판을 달아야만 한다. 첫 번째 숨소리가 은근하고 나지막했다면 두 번째는 완전히 노골적으로 섹시했다. 이건 “마지막 춤 결국엔 나와 함께~” 하면서 그루브를 타며 죽음의 천사들을 엘리자벳 쪽으로 보내는 순간에 나오는데, 하아... 아 진짜 이건 너무 위험해. 시아준수의 마지막 춤이 대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고 온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이다. 첫날에도 이미 완벽하게 물이 올랐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첫날에는 시아준수만 보여서 몰랐는데 오늘 보니 마지막 춤 넘버에서 앙상블이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토드가 등장하기 전에 죽음의 천사들이 미리 나와서 사람들에게 잠을 불어넣는 듯했는데 토드에게 너무나 어울리는 배경이라 혼자 감동했다. 삶도 죽음도, 시간도, 꿈도 지배하는 초월자에게 너무도 어울리는 그런 느낌이라.

그런데 시아준수의 죽음은 왜 이렇게 엘리자벳의 허리 근처로의 스킨쉽이 잦고 진한지? 마지막 춤에서 입맞춤을 총 두 번 시도하는데 그때도 움찔하지만 허리를 쥐고, 끌어안고, 밀치고 할 때.. 너무 박력 있어서 눈물 난다.. 게다가 오늘은 엘리자벳의 목에서부터 가슴, 배를 쓸어내리는 손길은 정말이지 너무했다. 샤토드는 프로야..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

그리고 강렬하게 남았던 것은 침대씬에서 "널 사랑해" 하는 이 부분. 오늘 특히나 이 부분을 섬세하게 불렀는데 꼭 자수를 놓듯, 한땀한땀 심혈을 기울여서 유혹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내가 이렇게 하는데도 안 넘어오고 배길까? 그런데 안 넘어온다. 정말 장한 그녀. 이 때 거절 당하고 난 뒤에 일어나서 천천히 엘리자벳에게로 내딛는 걸음걸이가 무척 싸했다. 온몸에서 정색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으로. 니가 지금 나를? 이런 느낌.

침대씬에서 시아준수의 몸동작이, 음 첫날에도 느꼈지만 정말 공기처럼 부드러웠다. 토드로 분한 순간에는 항상 그런데 문제는 침대씬에서는 시아준수 주변의 공기만 섹시함 분자로 이루어 놓은 것처럼 위험한 분위기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공기에 꿀을 발라놓았나 싶을 정도로. 농염한 느낌. 게다가 가슴은.. 일부러 그렇게 헤쳐놓는 거지?


<내가 춤추고 싶을 때>

죽음과 죽음의 천사들의 안무에 살포시 감동했다. 죽음의 천사들과 토드가 엘리자벳을 몰아갈 때, 토드의 뒤로 죽음의 천사들이 V자 대형을 만들면서 한 걸음 씩 엘리자벳을 몰아가는데 그때 그 V자 대형이 마치 토드의 등 뒤로 솟아난 거대한 검은 날개처럼 느껴졌다. 토드가 두 팔을 올리면 순식간에 죽음의 천사들이 V자에서 촤르르륵 대형을 흐트려서 엘리자벳을 포위하는데, 그건 토드의 거대한 날개가 펄렁~이면서 엘리자벳을 품 안에 가두는 듯했다. 진짜로 어디까지 멋있을 건지 작정한 시아준수를 보는 느낌.

또 개인적으로 토드가 "곧 너의 삶을 증오하게 될거야!" 하면서 버럭할 때 짜릿했다. 아무래도 이후로 토드가 조장하는 엘리자벳의 불행이랑 겹쳐지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증오로 몰아넣는 죽음의 무자비함.. 으으..

(+) 이 넘버에서 등장하는 타이밍은 앙상블이 “엘리자벳~ 엘리자벳~” 을 부르는 순간이다. 토드의 등장이 중간 중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루어질 때가 많고, 미리 무대에 나와서 준비하고 있다가 조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낼 때도 많기 때문에 이렇게 숨어있는 그를 찾는 것도 또 한가지 재미다.

(+) 시아준수의 트윗을 보고 나니 죽음이 이토록이나 무자비한 데에는 그렇게라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라도 사무친 외로움을 해갈하고 싶어서? 어디까지 파헤쳐야 죽음이란 캐릭터의 다면성을 모두 볼 수 있을지. 어렵다. 시아준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좋은 나로서는 이런 수수께끼가 즐겁기도 하고,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좋으면서도 머리가 아프고 머리 아프면서도 좋다.


<그림자는 길어지고>

역시 오늘도 정말 좋았다. 말이 필요 없어, 승돌프와 샤토드의 케미는 진짜 최고다.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넘버에서 시아준수의 걸음걸이가 두드러지는데 (마이얼링 왈츠의 걸음걸이와는 다른) 두 다리를 교차시켜서 도둑고양이처럼 옆으로 사뿐사뿐 고고하게 걷는 자세가 그것이다. 루돌프를 부추겨놓고, 어떻게 하나 지켜볼 때 살며시 나오는 그 걸음걸이! 아, 정말 대체 어디까지 죽음에 대해 연구한 건지 매 순간 시아준수가 아니라 토드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염병>

스킨쉽이 조금 더 농밀해졌다. 어깨에서부터 손목까지 엘리자벳의 팔을 쓸어내리고 나시 다시 어깨로 한 번 더 쓰다듬어 올라간다. 그 손이 곧장 뺨으로 직행. 닿을 듯 말듯이 가까이 갔다가 얼굴을 들이밀고 향기를 맡는다. 엘리자벳을 희롱하는 억양도 조금 더 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악한 죽음. 그러다가 극적으로 시스루로 비치는 등을 보여주며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이란.. 그 우아하고 매혹적인 몸놀림. 시아준수는 대체 어떤 존재인 거지?

재밌었던 것은 이때도 결국 엘리자벳에게 거절을 당하는데, 침대씬에서 정색을 했을 때와는 달리 이때는 거절을 당했는데도 즐거워 보였다는 것이다. 엘리자벳과 요제프의 사이를 갈라 놓은게 즐거운 것도 같고, 엘리자벳이 끝까지 고고하게 구는게 재밌는 것도 같고. 놀잇거리를 대하는 소악마적인 느낌으로 그렇게.

(+)

이외에 세세한 부분이 조금씩 변했는데 일단 엘리자벳의 결혼식 장면에서 줄을 타고 곡예를 하는 장면이 없어졌다. 대신 무대 왼쪽에서 리프트를 타고 등장한다. 그 위에 서있다가 몸을 굽혀 크하하하 웃는 걸로 마무리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아무래도 위험해서? 첫공에서는 처음이라 중심 잡는 것 때문에 조금 휘청하는 느낌도 있었지만 저녁공에서는 아주 완벽하고 우아했는데 그 모습을 못본다니 조금 아쉽다. 그래도 위험해서라면 너무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리고 루돌프의 장례식에서도 원래는 앉은 채로 등장했었다면 오늘은 선 채로 나타났다. 엘리자벳을 내려다보다가 구부려 앉으면서 아니!! 가!!!! 하면서 퇴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자잘한 에피소드로는 카페씬에서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등장하다가 앙상블 한 명과 엉켜서 살짝 주춤한 것. 귀여웠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의자에 앉아서 척, 다리를 크게 벌려 앉는데 샤토드 몰랐는데 쩍벌남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어린 루돌프와 만나는 장면에서 정말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가슴골이 제대로 펼쳐져 보였는데, 오늘의 토드는 정말이지 위험했다.. 정말로.

댓글 '5'

유므

12.02.16

다른 배우와 넘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하자면 김선영 엘리자벳은 첫공보다 오늘 훨씬 로딩이 된 느낌이었다. 나는 나만의 것과 정신병원의 감정선이 정말 좋았다. 이정화 배우의 노련미도 볼수록 극에 활력을 더한다.

개인적으로는 토드가 등장하지 않는 넘버 중에는 엘리자벳과 조피 대공비가 주고 받는 <황후는 빛나야 해>가 인상 깊었다. 여기에서 두 사람이 대사로도 대립하지만, 대공비의 멜로디와 엘리자벳의 멜로디가 전혀 다른 분위기로 교차되는 것이 좋았다. 마치 장조와 단조의 대립처럼(음악적으로 이런 표현이 정확할진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대립하는 모습을 이렇게 세련되게 보여줄 수도 있구나 싶어서 르베이의 음악에 감탄했다. 이 음악이 루돌프와 황제의 대립씬에서도 그대로 쓰인다는 걸 오늘 듣고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매력적인 뮤지컬이다, 엘리자벳.

침대씬의 유혹의 멜로디가 나중에 루돌프의 장례식에서 엘리자벳이 "죽음이여 날 데려가줘" 할 때 똑같이 쓰이는 걸 발견하고 이때도 조금 짜릿했다. 그렇게 거절을 하더니 결국 죽음이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데려가 달라 말하는 엘리자벳이라니! 하면서..

유므

12.02.16

엘리자벳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신과, 커튼콜의 눈빛에 대해서는 조금 더 기억을 다진 후에 쓰고 싶다. 다만 뗄듯 말듯 죽음의 입술이 끝까지 엘리자벳의 입술을 따라갔던 것만은 먼저 적어둔다.

유므

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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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시아준수가 보여주는 마지막 순간의 눈빛에 약하다. 그 눈에 홀려드는 내 마음이 멋대로 의미를 부여하려 드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그때 그 순간의 시아준수의 눈빛이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그렇게 읽히는 건지. 그것을 항상 확신하지 못해 "눈빛"에 대한 주관적인 이야기를 쓰기가 조심스럽다. 단지 내가 받았던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 적어두려 하는 순간에도 그렇다.

그렇기에 오늘처럼 시아준수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날이 참 고맙다. 그로부터 말을 건네받은 것도 같고, 대답을 얻은 것도 같아서.

유므

12.02.16

후기는 항상 쓰던 것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시아준수를 남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더욱 텍스트에 올인하려 하니 조금 버거운 느낌도 든다. 기가 빨리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공연한 것은 시아준수인데 내가 기진맥진하다. 그게 아니면 나는 내 글 안에서 시아준수를 좇아 공연한 셈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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