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때문에 반 이상이 날아간 커튼콜을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들은 한마디씩 했다.
‘시아준수는 프로구나’와
‘아름답다’

2분짜리 커튼콜에 대한 짤막한 감상이었지만, 이보다 더 18일의 시아준수를 잘 담아낼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18일 만의 시아준수를 보며 나는 그의 아름다움에 신음했고, 그의 프로다움에는 눈물을 쏟았다. 앞머리를 올려 훤히 드러난 고운 이마와 여우털처럼 보드라운 눈썹, 곧게 솟은 콧대, 견고하게 닫힌 입술과 조금은 경직되어 있었던 볼의 근육까지. 그는 조각처럼 아름다운 존재였고, 온몸으로 연기하는 모습은 지극히도 프로다웠다.

프롤로그에서 롱코트를 발로 헤치며 걸어나오는 모습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는데도, 한 걸음씩 그가 타박이며 내디딜 때마다 가슴이 곤들어박혔다. 내가 사랑하는 그만의 특유한 음색이 울려퍼지는 순간에는 소름벽이 심장을 둘러쌓았다. 눈물이 마구 났다. 아아, 시아준수구나. 시아준수다. 깐토드에 놀람도 잠시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반가움인지 슬픔인지도 모르고 울었다. 사실 엘리자벳의 초상화가 덜컹거리며 내려올 즈음 이미 울컥해버린 탓에, 시아준수가 등장하고서부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계치에 도달해있었다. 눈물이 기승전결의 짜임새를 무시하고 속수무책으로 쏟아졌다. 그 와중에도 흐릿해진 시야로 시아준수를 담을 수는 없어서 눈은 부릅뜨고 울음은 삼키고 그저 눈물만 내쏟았다.

눈으로는 계속해서 그를 좇으면서도 나는 처음으로 온전하게 그의 노래와 연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오만 생각에 잠겼다. 마른 볼, 얇은 어깨, 롱코트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만 같은 걸음걸이. 나는 공연으로부터 강제로 이탈되어 흩뿌려진 감정들을 주워담아야 했다. 결국 공연 내내 나는 내가 읽고 싶은대로 그의 표정을 읽고, 내가 듣고 싶은대로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느끼고 싶은대로 그의 움직임을 쫓았다.

아름다움으로만 빚어낸 것 같은 그의 얼굴에는 그날따라 표정이 많지 않았다. 여느 때와 같았다면 프롤로그에서 권태로움과 허망함 사이를 오가는 밀고 당기는 연기를 보여주었겠지만, 그날에는 달랐다. 전반적으로 그는 침잠해있었다. 초상화를 향해 턱을 치켜드는 순간에 그의 주변으로 몰려있던 공기가 헤쳐지는 양상마저도 노건했다. 모든 것에서부터 초연하고 여유로웠던, 그래서 때로는 장난기마저도 엿보였던 시아준수의 죽음에 처음으로 세상의 무게가 감겨 있었다.

그의 표정과 움직임에서 무게가 느껴질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의 바수니였으므로, 그 연기의 변화가 캐릭터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비웃음을 짓는 입꼬리가 팍팍했고 걸음걸이에는 무거운 여운이 잔상처럼 달라붙었다. 공연 전반을 통해 느껴졌던 그 ‘무게’에는 녹진한 아픔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전의 공연과 확연하게 다른 그 모습보다도 나의 심장을 건드려온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견고한 그의 노래였다. 그래서 나는 그의 눈꺼풀 위에 맺힌 처연함에 한 번 울고, 변함없이 견고한 그의 목소리에 또 한 번 울었다.

그랬다. 세파의 흔적이 얼굴 이곳저곳에 얽혀 있었지만, 그는 프로였다. 18일 만에 돌아온 죽음이라는 배역 안에서 미묘한 분위기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그 몫의 토드의 완전함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프로다움이 멋있고, 대견하면서도 슬프고 고마웠다.

그 프로다움의 진가는 밤공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낮공이 상대적으로 시아준수 본인이었다면 밤공에서는 그새 완전한 죽음이었다. 내 스스로가 미처 감정을 추스리기 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연기였다. 다시금 부드럽고 유연해진 움직임과 되살아난 죽음으로서의 표정을 보았다. 어느 정도 감정의 갈무리를 마친 듯한 얼굴에는 낮공에서와 같은 ‘시아준수의 표정’이 전혀 없었다. 낮공의 죽음으로 인해 고마움과 슬픔이 한데 섞인 눈물을 따갑도록 흘려야 했다면, 밤공에서는 비로소 시즌 2의 죽음을 만났다. 마치 샤차르트 초연 때 첫공과 1월 28일의 연기 변화를 하루 사이에 겪은 느낌이었다. 그날의 연이은 공연에서 그의 성장과 심경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그에게로 향하는 내 마음의 무게도 절감했다.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그가 얼마나 영혼을 다해 노래하는지, 무대 위의 그가 어떻게 자신의 진심을 담아내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떠한 무게로, 어떤 깊이로, 어떤 아름다움으로 내게 다가와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지. 할 수만 있다면 평생토록 그 아름다움의 찬미자가 되리라 싶었을 정도로.

그날 그의 눈동자에서 유독 반짝였던 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촉촉하고 생생하게 빛나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감히 짐작만 해본다. 무지근히 올려웃던 입술, 훤히 드러난 이마에 패이던 주름의 굴곡. 모든 것이 느린 화면으로 다가와 박혔던. 그 어떤 표현으로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지난 일요일의 죽음에게 인사를 건넨다. 고맙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댓글 '2'

belle

12.03.21

결국 쓰셨네요. 몸은 괜찮아요?

유므

12.03.23

괜찮아지고 있었는데 수요일 공연 보고 나서 더 안 좋아졌어요. 블루스퀘어 너무 심각하게 건조하더라구요. 1막 끝나고 나서 2막부턴 목 따가워서 죽는 줄ㅜ 벨님은 감기 조심하세요 두 번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