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공연이었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좋았으나 다만 자잘한 변수들이 있었다. 극 전체의 완성도면에서 보면 분명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는 오히려 그 실수들이 4일 공연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으로 인해 몰입을 방해받기보다는 오히려 생각지 못한 변주요소를 발견한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익숙한 여러 장면이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시아준수를 제한다면 4일의 주인공은 단연 김선영 엘리자벳. 1일의 모습을 모두 씻어낸 듯, 연기도 노래도 매끄러웠다. 공연장에서도, 공연이 끝난 지금에도 귓가에 맴도는 넘버는 당신처럼 (reprise)와 행복은 너무도 멀리에. 이정화 배우는 아무래도 계속해서 강해지실 것 같고, 최민철 루케니도 본 중에는 가장 좋았다.


4일에는 내린 토드였다. 머리세팅이 22일의 느낌이 날 듯 말 듯했는데 윗머리가 그때와 달리 매우 짧게 비죽비죽 솟아 있어서 섹시하다기보단 귀여웠다. 1일과 같이 눈썹을 그리긴 했는데, 뒷꼬리는 없이 안쪽에만 각을 세워 그린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4일에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가 정말 좋았다. 오른쪽 블럭에서 보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가 이런 느낌이었구나.. 싶었다. 죽음이 엘리자벳에게로 석상 위에서 물 흐르듯이 팔을 뻗을 때, 석상에서 내려와 탐색하듯 다가설 때,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팽팽한 원을 그리며 대치할 때. 내가 없이 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바로 니 삶을 증오하게 될 거야로 이어질 때의 그 몰아치는 느낌! 그리고 이어지는 밀당 안무. 으으으으. 조금 더 오른쪽에서 이 순간을 정면으로 보고 싶다. 이때 무대에는 죽음과 엘리자벳, 죽음의 천사들과 별무리처럼 감도는 조명뿐인데 그것만으로도 풍성한 느낌을 준다.


엄마 어디있어요에서는 리프트의 고장(?)으로 침대 위로 솟아오르지 못하고 옆으로 돌아나왔다. 침대 밑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그의 발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가 배경화면에 토드의 그림자만 혼자 떠오르는 것을 보고 어? 왜 안 나오지? 했는데. 이때 등장하는 토드의 그림자가 프롤로그와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 이외의 넘버에서도 등장하던가? 그런데 대체 혁명과 침몰씬에서 등장하는 흑백 영상의 정체는 뭐지. 혁명 당시의 실제 사료인가? 아니면 재연한 영상? 정체가 궁금하다.


아아, 그러고보니 엘리자벳의 결혼식에서는 위 아래로 크게 오르내리지 않고 고정된 높이에서 종을 쳤다. 후반의 몇번은 1일 밤공처럼 두 손으로 줄을 잡고 쳤는데, 덕분에 동작과 종소리의 싱크가 2월 12일 밤공만큼이나 딱딱 맞아 떨어졌다.


아무것도 직후에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로 이어질 때, 시아준수가 어느 쪽 계단으로 올라와 대기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보았더니 엘리자벳의 넘버가 끝나자마자 무대 오른쪽이 커튼으로 가려져 버렸다. 아무래도 시아준수도, 무대 소품도 전부 그쪽으로 등장하는 모양.


이어지는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는 ㅎㅎ 사람을 참 할 말이 없게 만든다. 무대 앞쪽으로 설운돌프의 팔목을 거칠게 잡아끌며 소리를 긁어내던 시아준수가 떠오른다. 역시 설운돌프는 시아준수에게 맞춰서 휘둘리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승돌프와는 토드가 반 휘두르고, 승돌프가 반 휘둘려주고 이렇게 역할을 나눠갖는 것과는 달리 설운돌프는 시아준수의 완력에 의해 다루어지기만 한다. 그래서 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느낌. 넌 정말 놀잇거리고 수단일뿌냐 하는 듯이. 


맞아, 그리고 정확히 총 맞았다. 총구가 똑바로 겨누어진 것을 난 봤어 봤다구 ^__^



(+) 세상을!! 구원해~에서 음을 털어내듯 불렀던 구원해~ 부드럽게 회유하는 느낌의 1일과는 달리.

(+) 행복한 종말에서 토드가 등장하기 직전 그가 앉을 테이블의 먼지를 웨이터로 분한 죽음의 천사가 재빨리 털어내는 걸 보고 새삼 흐뭇해진 그들의 주종관계.

(+) 아역에서 청년 루돌프로 전환되는 순간에 등장하지 않았던 설운돌프.


댓글 '1'

우유

12.04.07

꿈꾸고 시를 쓰면서 신나게 말을 타고 아빠처럼 자유롭게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잖니
그랬죠
꿈꾸고 시를 쓰면서 신나게 말을 타고
너무 늦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