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토드.
여지가 없는 공연이었다. 모든 것이 고르게, 평화롭게 공존하는 날이었다. 완전하였다고 감히 말해도 좋을 것이다.
역시 깨.어.날 거야 좋아요. 조금이라도 발음을 톡톡 끊어하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밤공에서는 서서↑히↓가 두드러졌는데 저음 너무 좋아.
침대씬에서 잔뜩 인상을 쓴다. 예전에는 미간을 살짝 구기는 정도였는데, 요즘 공연에서는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일 정도로 표정을 바꿔 정색한다. 그리고는 눈썹을 까딱이며 상황파악을 하는데, 내가 지금 거절당한 건가? 지금 이건 뭐지? 하면서 엘리자벳에게 다가서는 몇 걸음에서 그 상황을 믿을 수 없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건 뭐? 나는 어디? 그녀의 거절을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내서인지, 때때로 이 순간에는 초월적인 존재라기보다는 거절당한 현실의 남자 같을 때가 있다.
침대씬에서 밀크로 전환될 때 커튼이 드리워질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데, 그림자 속에서도 몸매가..dd
날개 달린 죽음의 그림자가 영상으로 비추어지는 장면은 종소리가 난 직후, 피로연 장면으로 전환되는 순간에도 있었다. 연회장 영상이 회전하면서 천천히 무대가 갖추어질 때 그 위로 검은 덩굴 같은 것들이 왜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죽음의 그림자가 걷히면서 그물처럼 얽혀드는 효과를 준 것 같았다.
오랜만의 이태원 배우는 강해진 이정화 조피와 대비되니 이전보다 훨씬 우아하게 느껴졌다(이태원 조피의 우아함에 대하여 후배는 루도비카의 집안과는 동떨어진 돌연변이 같은 우아함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딱 그 느낌이 들었다). 신이시여 지키소서 우리 젊은 황제에서 성스런 교회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할 때 "맙소사"하며 나긋하게 곁들이는 음이 특히. 이 부분은 이정화 조피처럼 탄식하듯 내뱉는 것도 좋고, 이태원 조피처럼 노래로 불러도 좋다. 그렇지만 밤공의 황후는 빛나야 해에서 옥주현 엘리자벳과 대립할 때는 두 배우 모두 곱고 나긋나긋하게만 불러서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웠던 부분.
그리고 아무래도 나는 결이 많은 목소리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김선영 엘리자벳의 허스키하고 여러 층으로 갈라지는 목소리가 좋다. 음을 높이 끌어 올릴 때 특히 두드러지는 소리. 날 혼자 두지 마↗에서 처럼.
1막의 엔딩에서 요제프가 무대 중앙에서 노래하다 왼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가사로는 난 나를 배신하겠어 부분) 중앙 문 뒤쪽의 커튼이 소리 없이 열린다. 시아준수가 정확히 무대 위에 등장하는 순간이 바로 그때인 듯했다. 그후 문이 열리고 엘리자벳이 나올 때 맞춰서 자신의 거울 뒤 단상에 올라선다.
루돌프의 장례식에서 두 눈을 부릅떴다가, 입술을 앙 깨물어 닫기도 하고, 고개를 돌리기도 하며 엘리자벳의 애원에 반응을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그의 손이 그녀를 향해 뻗어질 때가 가장 애틋하다. 자신이 밀어넣은 불행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감정을 그 자신도 고스란히 느끼는 듯한 죽음. 손등을 위로 하여 허공에 놓인 손이 꼭 엘리자벳의 머리를 쓰다듬고 어루어만져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더디게 움직인다. 하지만 닿지 않는 것인지, 닿지 못하는 것인지.
그리고.. 음. 극중에서 엘리자벳이 죽음을 사랑한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과연 있기는 한지 싶다. 보면 볼수록 죽음만 엘리자벳을 원하는 느낌이다. 엘리자벳에게서는 평생에 걸쳐 죽음의 유혹에 시달리는 모습보다는(죽음이 나타나면 홀린듯이 바라보기는 하는데 그것도 호기심이나 놀람 이런 느낌이지 죽음을 원하고 있는건지는 잘...) 생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하게 느껴질 뿐. 베일은 떨어지고의 엔딩에서도 엘리자벳이 감격에 겨워 몸을 떠는 것은 드디어 이루어진 죽음과의 만남이 기뻐서라기 보다는 드디어 끝, 해방-에 도취된 모습으로 풀이된다. 끝까지 내 주인은 나라는 그녀니까. 그녀의 몸이 힘없이 늘어진 후 혼자 남아 두리번 거리는 죽음의 눈빛은 너무 지고지순하기까지 해서 안쓰럽다. 엔딩의 입맞춤은 엘리자벳이 자신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는 너무나 지쳐버린 그녀의 영혼을 위해 죽음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니까, 차갑고 냉혹한 자기자신을 버려가며 그녀를 구원해준다. 죽음에게 있어서는 드디어 하나가 된 순간이 곧 처음이자 시작이었고 또 마지막이 되어버리는 셈인데도. 게다가 그 마지막 순간조차 더 갈망하고 원하는 쪽은 죽음이다. 엘리자벳은 그저 끝을 원할 뿐이니까. 죽음이 그토록 원하고 기다려왔던 순간조차 결국에는 자기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엘리자벳을 위해 선사하는 엔딩이 안타깝다. 한 남자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는 오히려 여기에다 부제로 붙이면 좋겠는데.
(+) 마지막 춤에서 "나는 알고 있어" 할 때 미세하게 추가된 디테일. 8일 공연 이후로.
(+) 낮공에서 김선영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은 노래 자체의 매끄러움에서는 갸웃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김선영 엘리자벳의 감정선은 따라가도, 따라가도 좋아.
(+) 옥주현 엘리자벳의 결혼식 피로연에서의 디테일. 김선영 엘리자벳은 이 부분을 애매하게 넘길 때가 있는데 옥주현 엘리자벳은 이 장면에서 궁정 생활에 갇히기 전, 생기발랄한 시씨의 모습을 확실히 드러내줘서 보는 재미가 있다.
여지가 없는 공연이었다. 모든 것이 고르게, 평화롭게 공존하는 날이었다. 완전하였다고 감히 말해도 좋을 것이다.
역시 깨.어.날 거야 좋아요. 조금이라도 발음을 톡톡 끊어하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밤공에서는 서서↑히↓가 두드러졌는데 저음 너무 좋아.
침대씬에서 잔뜩 인상을 쓴다. 예전에는 미간을 살짝 구기는 정도였는데, 요즘 공연에서는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일 정도로 표정을 바꿔 정색한다. 그리고는 눈썹을 까딱이며 상황파악을 하는데, 내가 지금 거절당한 건가? 지금 이건 뭐지? 하면서 엘리자벳에게 다가서는 몇 걸음에서 그 상황을 믿을 수 없어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건 뭐? 나는 어디? 그녀의 거절을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내서인지, 때때로 이 순간에는 초월적인 존재라기보다는 거절당한 현실의 남자 같을 때가 있다.
침대씬에서 밀크로 전환될 때 커튼이 드리워질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데, 그림자 속에서도 몸매가..dd
날개 달린 죽음의 그림자가 영상으로 비추어지는 장면은 종소리가 난 직후, 피로연 장면으로 전환되는 순간에도 있었다. 연회장 영상이 회전하면서 천천히 무대가 갖추어질 때 그 위로 검은 덩굴 같은 것들이 왜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죽음의 그림자가 걷히면서 그물처럼 얽혀드는 효과를 준 것 같았다.
오랜만의 이태원 배우는 강해진 이정화 조피와 대비되니 이전보다 훨씬 우아하게 느껴졌다(이태원 조피의 우아함에 대하여 후배는 루도비카의 집안과는 동떨어진 돌연변이 같은 우아함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딱 그 느낌이 들었다). 신이시여 지키소서 우리 젊은 황제에서 성스런 교회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할 때 "맙소사"하며 나긋하게 곁들이는 음이 특히. 이 부분은 이정화 조피처럼 탄식하듯 내뱉는 것도 좋고, 이태원 조피처럼 노래로 불러도 좋다. 그렇지만 밤공의 황후는 빛나야 해에서 옥주현 엘리자벳과 대립할 때는 두 배우 모두 곱고 나긋나긋하게만 불러서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쉬웠던 부분.
그리고 아무래도 나는 결이 많은 목소리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김선영 엘리자벳의 허스키하고 여러 층으로 갈라지는 목소리가 좋다. 음을 높이 끌어 올릴 때 특히 두드러지는 소리. 날 혼자 두지 마↗에서 처럼.
1막의 엔딩에서 요제프가 무대 중앙에서 노래하다 왼쪽으로 걸음을 옮길 때(가사로는 난 나를 배신하겠어 부분) 중앙 문 뒤쪽의 커튼이 소리 없이 열린다. 시아준수가 정확히 무대 위에 등장하는 순간이 바로 그때인 듯했다. 그후 문이 열리고 엘리자벳이 나올 때 맞춰서 자신의 거울 뒤 단상에 올라선다.
루돌프의 장례식에서 두 눈을 부릅떴다가, 입술을 앙 깨물어 닫기도 하고, 고개를 돌리기도 하며 엘리자벳의 애원에 반응을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그의 손이 그녀를 향해 뻗어질 때가 가장 애틋하다. 자신이 밀어넣은 불행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감정을 그 자신도 고스란히 느끼는 듯한 죽음. 손등을 위로 하여 허공에 놓인 손이 꼭 엘리자벳의 머리를 쓰다듬고 어루어만져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더디게 움직인다. 하지만 닿지 않는 것인지, 닿지 못하는 것인지.
그리고.. 음. 극중에서 엘리자벳이 죽음을 사랑한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과연 있기는 한지 싶다. 보면 볼수록 죽음만 엘리자벳을 원하는 느낌이다. 엘리자벳에게서는 평생에 걸쳐 죽음의 유혹에 시달리는 모습보다는(죽음이 나타나면 홀린듯이 바라보기는 하는데 그것도 호기심이나 놀람 이런 느낌이지 죽음을 원하고 있는건지는 잘...) 생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하게 느껴질 뿐. 베일은 떨어지고의 엔딩에서도 엘리자벳이 감격에 겨워 몸을 떠는 것은 드디어 이루어진 죽음과의 만남이 기뻐서라기 보다는 드디어 끝, 해방-에 도취된 모습으로 풀이된다. 끝까지 내 주인은 나라는 그녀니까. 그녀의 몸이 힘없이 늘어진 후 혼자 남아 두리번 거리는 죽음의 눈빛은 너무 지고지순하기까지 해서 안쓰럽다. 엔딩의 입맞춤은 엘리자벳이 자신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는 너무나 지쳐버린 그녀의 영혼을 위해 죽음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니까, 차갑고 냉혹한 자기자신을 버려가며 그녀를 구원해준다. 죽음에게 있어서는 드디어 하나가 된 순간이 곧 처음이자 시작이었고 또 마지막이 되어버리는 셈인데도. 게다가 그 마지막 순간조차 더 갈망하고 원하는 쪽은 죽음이다. 엘리자벳은 그저 끝을 원할 뿐이니까. 죽음이 그토록 원하고 기다려왔던 순간조차 결국에는 자기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엘리자벳을 위해 선사하는 엔딩이 안타깝다. 한 남자의 위대한 사랑 이야기는 오히려 여기에다 부제로 붙이면 좋겠는데.
(+) 마지막 춤에서 "나는 알고 있어" 할 때 미세하게 추가된 디테일. 8일 공연 이후로.
(+) 낮공에서 김선영 엘리자벳의 <나는 나만의 것>은 노래 자체의 매끄러움에서는 갸웃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김선영 엘리자벳의 감정선은 따라가도, 따라가도 좋아.
(+) 옥주현 엘리자벳의 결혼식 피로연에서의 디테일. 김선영 엘리자벳은 이 부분을 애매하게 넘길 때가 있는데 옥주현 엘리자벳은 이 장면에서 궁정 생활에 갇히기 전, 생기발랄한 시씨의 모습을 확실히 드러내줘서 보는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