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넘버는 At Last, 그리고 삼연곡(She-At Last-Loving You Keeps Me Alive) 전부. 기록보다는 감상 위주의 오늘.


1.

2막, 깐샤큘.

어제와 비슷한, 부드러움과 감미로움을 돋보이게 하는 낭만적인 외모. 깐샤큘과 Mina's Seduction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고혹적이고, 감미로워. 정말로요.

머리를 넘기면 무엇보다 미나의 반응을 관찰하는 그의 얼굴이 잘 보여서 좋다. 표정 연기가 너무도 섬세해. 치명적이고, 유혹적이고, 뇌쇄적이고, 틈도 없게끔 파고든다. 미나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면 미간을 찡그리기도 하고, 동공을 부풀리기도 하고, 이를 앙 물 때도 있고. 가끔씩 매서운 표정을 지을 때도 있다.

오늘 특히나 여러 표정을 보여 주어서.. 꼭 미나의 반응 하나하나마다 그가 정해둔 표정이 1부터 99까지가 있고, 그래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그대로 다 표현되는 것처럼 다양한 얼굴을 보았다. 무서운 건 이 모든 게 '나 이런 매뉴얼로 연기해요' 하는 식이 아니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즉각적이어서, 오늘 이 넘버에서의 연기가 엄청 차지고 숨 막혔다는 사실.

이렇게 숨 막히는 순간을 나열하면 끝도 없지만 가장 강렬했던 건 침대 위에서 흡혈 후, 역으로 흡혈 당할 때. 몸에 힘이 풀리는 것처럼 뒤로 살짝 쓰러지면서 오늘은 눈도 감았다. 눈꺼풀도, 고개도, 손도 한꺼번에 침대로 풀썩. 침입자들 때문에 방해받았을 땐 늘 그래 왔듯 미나의 상태를 한 번 살피는 자상함을 보여준 후, 내가 좋아하는 예의 경쾌한 상체 반동으로 튕겨져 일어났고. 엄청 섹시하고, 멋있게.


2.

삼연곡은 매일매일이 최대치이자 그 이상이 없을 것 같은데, 항상 그다음이 있다.

She는 단연코 오늘이 가장 좋았다. 내일의 공연이 온다면 달라질지 모르겠으나 오늘은 그렇다. 어느 대목을 꼽을 수 없게 오늘의 She 전체가 장대하고 아름다운 비극이었다. 사랑하던 아름다운 목소리, 슬피 울던 소리, 분노에 차서 끝내 흑화하던 목소리 전부.


울음과 노래가 교차하는 At Last. 뮤지컬 드라큘라는 시아준수의 뮤지컬 가운데 대사와 가사가 가장 아름답고 예스럽다 느끼는 극인데, 그 고전미가 빛 발하는 장면 중의 하나.

대사가 정말 다 좋다. 이 대사 위에 덧씌워지는 연기가 너무 좋아. 울먹임 반, 잦아드는 목소리 반. 힘겹게 이어가는 사랑의 속삭임이, 아, 지금 떠올려도 너무 마음이 아파.

아픔의 종지부는, 오늘은 반말이었다. ‘당신은! 이미 결혼했어..’ 목소리도, 그의 등도 파르르 떨렸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떠나서는 그녀를 향한 눈물의 세레나데 러빙유.

1절은 눈물로 가득했다. 군데군데서 비집고 나오는 울음 때문에 떨림까지 있었어. 노래와 흐느낌을 오가는 목소리였다. 특히 ‘나를 살게 한 첫 사랑’에서 사-라-앙이 울음에 갈라지면, 그는 울고 있는데 나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 흑흑. 우는 데 좋아해서 미안해요.

2절. 절정. 감정이 사무쳤는지 두 손을 모아 눈물을 훔치더니, 심장을 부여잡고 호소했다.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서, 아픈 심장을 움켜쥔 것도 같고 기도하는 것도 같은 모습이었어. 그러다 제발 날 봐달라며 두 팔을 가로 벌리며 오열할 때는 ㅜㅜ 미나 정말 후..

개인적으로 그가 가장 애틋하고 안쓰러운 장면은 결혼식 때. 외따로 떨어져 웅크린 등이 가엾다. 마음만 먹으면 런던이고 세상이고 파괴할 수 있는 그인데, 사랑의 스러짐 앞에선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무너진다. 떨군 고개에서 훔치지 못한 눈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우는 입은 다물어지질 못하고. 땀과 울음으로 범벅된 얼굴이 그렇게 또 한 번 지옥을 건넌다.


3.

삼연곡에서도 참 좋았던 미나와 그의 감정선은 At Last에서 폭발했다. 개인적으로 정선아 미나와의 호흡 중에서는 베스트였다.

모퉁이에서 그가 등장할 때부터 벌써 마음이 서걱서걱했다. 원하나 원해서는 안 되는 연인을 보던 얼굴. 그 눈빛, 그 애틋함.. 애써 눈물을 삭이려던 눈에서 결국 눈물 줄기가 비집고 흘렀다. 그의 왼볼은 눈물 마를 날이 없네.

그의 절규 ㅡ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받은 내 인생’은 눈물에 비례하여 처절해진다. 갈수록 극적이다. 400년의 고독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목소리. 영원한 삶이라는 굴레가 그에게 어떤 저주였는 지를 통감케 하는 노랫소리. 이 순간 토해져 나오는 고통과 절절함이 미나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 결정적이었으리라.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오늘의 ‘그대 사랑해요.’

애절하다는 말 외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을 쓸 텐데. 사랑의 고백이자 간절한 타이름이었다. 오직 그녀를 위한 세레나데인 동시에, 남겨질 그녀를 달래는, 안심시키는 음성.

그리곤 또 그렇게 웃었다. 22일 공연 때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은 얼굴로 오직 그녀만을 위한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어. 괜찮으니 울지 말라는 듯. 오히려 고맙다는 듯.

잔인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축복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순간에 있었다. 너무도 귀하고, 소중하여 조심스럽기까지 했던 마지막 입맞춤. 사랑하는 이의 숨결 속에서 맞이하는 죽음.

그래, 축복.

그것은 사랑. 저주의 시작도 끝도 사랑이었던, 사랑으로 점철되었던 그의 400년은 최후조차도 사랑 속에서 맞이했다. 함께 했으니까, 분명 외로운 마지막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칼을 맞고 고통스러워 하던 얼굴이 자꾸만 맴돈다. 관 속으로 잠겨드는 마지막 얼굴이 조금만 덜 아픈 것이었더라면 나의 먹먹함도 덜할 수 있을까.

붉은 조명 아래서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과 닫힌 관 위에 쓰러져 내리던, 남겨진 이의 등이 내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커튼콜에서의 웃는 모습과 사랑의 총알에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파장 후에 잠잠해진 무대를 보자 다시금 서글퍼졌어.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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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8.01

It's Over와 Life After Life 도 좋았다. 본문에는 쓰지 않았지만. 둘 다 강강강의 최대치를 찍은 느낌이었고, 특히 Life After Life 는 가장 좋았던 어제 밤공과 견줄 정도로 좋았다.

연꽃

14.08.01

아 맞아. 이건 꼭 써야 하는 거였는데. At Last에서 정선아 미나가 포옹할 때나 애틋하게 어루만질 때나 계속 시아준수의 깃을 눌러 주어서 고마웠다. 깃을 내리니 얼굴이 훨씬 잘 보여서.. 일부러 깃만 골라 누른다 싶을 정도로 내내 그래서 더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