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행방을 들었습니다.
기억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겨울을 보내고 성급히도 찾아온 2010년의 봄, 나는 아직 모차르트의 여운 속에 있었다. 직전의 해가 무척이나 길고도 산란하였기 때문에 유성우처럼 다가온 모차르트라는 기억은 강렬한 만큼 내려놓기도 어려웠다. 그때, 그 해에는 모든 것이 변화를 향하여 나아가는 출발선에 있었다. 확언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보다 많았다. 그의 행보를 예상할 수도 없었다. 그와 그의 활동에 대하여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점은 지금도 물론 그때와 같으나, 지금과 같이 모든 일이 그를 위하여 이루어지고, 이루어질 것이며, 그가 변함없이 그의 자리에 있으리란 확신이 그때는 없었다. 어디로 가야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기쁨 뒤에 남겨진 쓸쓸함과 같은 감정이 막이 내린 후 내게로 감겨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가고 열흘 즈음이 지났다. 달이 바뀌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 그러한 나의 감상을 섣부른 것으로 치부하는 듯이 그가 소식을 알려왔다.
그것은 매우 기쁜 소식이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염원하던 소식이었다. 그는 기쁘게, 그 해의 늦봄을 물들여 주었다. 바로 그 늦봄의 기쁨, 그 해의 가장 화사했던 순간에 슬픔의 행방이 있었다.
슬픔의 행방은 그 해의 나를 지배한 곡이었다. 슬픈 노래였지만 나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기뻤다. 그 해 내내 나는 슬픔의 행방을 들었고, 그 노래를 들을 때 그를 가장 가깝게 느꼈다. 그 해로부터 또 삼사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동안 마음 깊은 곳에서만큼은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외국의 언어였어도 상관없었다. 슬픔의 행방은 내게 그를 투영하는 샘이었다. 그 노래 자체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리로만 엮어진 것이었다. 그 노래 안에서의 그의 목소리, 겹겹이 쌓였다가 호 불면 사르르 날아갈 것만 같던 곱고 결이 많은 목소리, 해변 가득히 널린 모래알을 한순간에 온전한 사금 알갱이로 탈바꿈시켜 놓는 기적과 같은 음성, 애써서 숨기지 않는 날숨과 뒤섞여 나의 귀를 어루만지던 사랑스럽고 선한 미성. 사랑에의 노력은 불필요했다. 그 자체가 사랑이었고, 원천이었다. 노래가 아름다운 것보다 그가 더 눈부셨다.
그랬던 그 노래를 한국에서 부르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지나친 반칙이었다. 그는 또박또박하고 차분하게 곡을 소개했다. 자신의 모든 곡을 아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고, 또 미운 오리와도 같은 곡이었다며. 어떻게 보면 이 콘서트의 계기이자 시초가 된 곡이니, 들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노래했다. 이전까지 그 어떤 곡도 부르지 않았던 것처럼. 본 무대의 최정점을 장식했던 사랑은 눈꽃처럼에서 이미 스스로를 온통 태워냈던 그가 또 한 번 자신을 사르고 살라, 노래 속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너무나도 귀에 익으나, 바다를 건너지 않는 이상은 들을 수 있는 날이 결연코 없으리라 생각했던 첫 구절의 ‘오시에떼’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나를 이끌었다. 곡이 시작되기에 앞서 암전되고 장내가 온통 짙은 어둠으로 물들었을 때, 빨간빛의 라이트만이 곳곳에서 존재감을 나타내던 때, 나는 이미 약간의 기시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지 thanksgiving live의 재연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콘서트의 현장이라기보다 차라리 어느 극장의 관람객으로 와있는 느낌이었다. 좋아했던 노래였고, 그의 노래였는데도 슬픔의 행방은 내 범위의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나는 현실의 감각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슬픔의 행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상상으로 옮겨놓기도 어려웠던 이 순간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다는 것이 이상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슬픔에게 울지말라 하는 시아준수를 이 땅에서, 내 눈앞에서, 나의 귀로 듣는다는 것이. 변하는 것이 행복이라서 쓸쓸하다고 하는 그를 지척에 두고 있는 것이.
그는 영원에 가깝도록 노래했다. 현실을 분명히 발밑에 두고 있는데도 두 손으로는 차마 움켜쥘 수도 움켜쥐지도 않는 것 같은 어렴풋한 느낌을 그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싶었다. 특히 마지막 날, 잠시간의 침묵 속에서 그는 숨 쉬는 것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꼼짝않고 자기 안으로 빠져들었다. 나도 숨을 쉬지 않았다. 침묵은 길었다. 그는 다음 구절을 쉬이 잇지 않았다. 그가 서 있는 둘레로부터 그의 감정과 기분이 휘몰아치는 것이 보였다. 온몸으로 시간을 끌어당기는 듯했다. 그 순간을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은 그가 아렸고, 좋았다. 그 고요조차도 그의 노래였다.
슬픔의 행방은 공연장 안을 가득 메운 온갖 감정들이 절정을 향하여 일제히 치달아가는 순간에 그가 선사한 극도의 정점이었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서 가장 빛났던 것은 애써 꾸미거나 포장하려 들지 않았던 그다운 진심이었다. 말로써, 노래로써 전한 그 자신이었다.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신이, 온갖 형태의 조화로운 마법을 단 한 사람 속에다 응축해놓았다가 그것을 펼쳐내는 장관을 보는 기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 신. 그 순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존재가 바로 그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새삼스럽게도 놀라웠다. 한 사람의 감정이 이렇게까지 또 한 사람을, 나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슬픔의 행방, 슬픔의 행방.
시아준수, 시아준수, 시아준수.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 시대를 공유하는 60억의 인구 중에서 그를 좋아할 수 있게 된 사실 자체가 이미 축복이고 그것으로 더할 수 없이 기쁜데, 그는 자꾸만 그 이상의 벅찬 무엇을 선사한다.
그와 나눈 2012년은 정말이지 찬란했다. 눈부셨던 해를 이렇게 매듭지을 수 있었던 것조차도 그의 덕이다. 그런 그의 행복이 변해가는 순간에서조차 아름답고 아프지 않은 것이기를, 나의 행복 안에서 빈다.
그리고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그에게 고맙다. 그가 좋다.
기억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겨울을 보내고 성급히도 찾아온 2010년의 봄, 나는 아직 모차르트의 여운 속에 있었다. 직전의 해가 무척이나 길고도 산란하였기 때문에 유성우처럼 다가온 모차르트라는 기억은 강렬한 만큼 내려놓기도 어려웠다. 그때, 그 해에는 모든 것이 변화를 향하여 나아가는 출발선에 있었다. 확언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보다 많았다. 그의 행보를 예상할 수도 없었다. 그와 그의 활동에 대하여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점은 지금도 물론 그때와 같으나, 지금과 같이 모든 일이 그를 위하여 이루어지고, 이루어질 것이며, 그가 변함없이 그의 자리에 있으리란 확신이 그때는 없었다. 어디로 가야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기쁨 뒤에 남겨진 쓸쓸함과 같은 감정이 막이 내린 후 내게로 감겨들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가고 열흘 즈음이 지났다. 달이 바뀌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 그러한 나의 감상을 섣부른 것으로 치부하는 듯이 그가 소식을 알려왔다.
그것은 매우 기쁜 소식이었다. 그리고 기다리던, 염원하던 소식이었다. 그는 기쁘게, 그 해의 늦봄을 물들여 주었다. 바로 그 늦봄의 기쁨, 그 해의 가장 화사했던 순간에 슬픔의 행방이 있었다.
슬픔의 행방은 그 해의 나를 지배한 곡이었다. 슬픈 노래였지만 나는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기뻤다. 그 해 내내 나는 슬픔의 행방을 들었고, 그 노래를 들을 때 그를 가장 가깝게 느꼈다. 그 해로부터 또 삼사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 동안 마음 깊은 곳에서만큼은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외국의 언어였어도 상관없었다. 슬픔의 행방은 내게 그를 투영하는 샘이었다. 그 노래 자체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리로만 엮어진 것이었다. 그 노래 안에서의 그의 목소리, 겹겹이 쌓였다가 호 불면 사르르 날아갈 것만 같던 곱고 결이 많은 목소리, 해변 가득히 널린 모래알을 한순간에 온전한 사금 알갱이로 탈바꿈시켜 놓는 기적과 같은 음성, 애써서 숨기지 않는 날숨과 뒤섞여 나의 귀를 어루만지던 사랑스럽고 선한 미성. 사랑에의 노력은 불필요했다. 그 자체가 사랑이었고, 원천이었다. 노래가 아름다운 것보다 그가 더 눈부셨다.
그랬던 그 노래를 한국에서 부르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지나친 반칙이었다. 그는 또박또박하고 차분하게 곡을 소개했다. 자신의 모든 곡을 아끼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고, 또 미운 오리와도 같은 곡이었다며. 어떻게 보면 이 콘서트의 계기이자 시초가 된 곡이니, 들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노래했다. 이전까지 그 어떤 곡도 부르지 않았던 것처럼. 본 무대의 최정점을 장식했던 사랑은 눈꽃처럼에서 이미 스스로를 온통 태워냈던 그가 또 한 번 자신을 사르고 살라, 노래 속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너무나도 귀에 익으나, 바다를 건너지 않는 이상은 들을 수 있는 날이 결연코 없으리라 생각했던 첫 구절의 ‘오시에떼’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나를 이끌었다. 곡이 시작되기에 앞서 암전되고 장내가 온통 짙은 어둠으로 물들었을 때, 빨간빛의 라이트만이 곳곳에서 존재감을 나타내던 때, 나는 이미 약간의 기시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지 thanksgiving live의 재연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콘서트의 현장이라기보다 차라리 어느 극장의 관람객으로 와있는 느낌이었다. 좋아했던 노래였고, 그의 노래였는데도 슬픔의 행방은 내 범위의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나는 현실의 감각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슬픔의 행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상상으로 옮겨놓기도 어려웠던 이 순간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다는 것이 이상했다.
이상하지 않은가. 슬픔에게 울지말라 하는 시아준수를 이 땅에서, 내 눈앞에서, 나의 귀로 듣는다는 것이. 변하는 것이 행복이라서 쓸쓸하다고 하는 그를 지척에 두고 있는 것이.
그는 영원에 가깝도록 노래했다. 현실을 분명히 발밑에 두고 있는데도 두 손으로는 차마 움켜쥘 수도 움켜쥐지도 않는 것 같은 어렴풋한 느낌을 그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싶었다. 특히 마지막 날, 잠시간의 침묵 속에서 그는 숨 쉬는 것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꼼짝않고 자기 안으로 빠져들었다. 나도 숨을 쉬지 않았다. 침묵은 길었다. 그는 다음 구절을 쉬이 잇지 않았다. 그가 서 있는 둘레로부터 그의 감정과 기분이 휘몰아치는 것이 보였다. 온몸으로 시간을 끌어당기는 듯했다. 그 순간을 끝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은 그가 아렸고, 좋았다. 그 고요조차도 그의 노래였다.
슬픔의 행방은 공연장 안을 가득 메운 온갖 감정들이 절정을 향하여 일제히 치달아가는 순간에 그가 선사한 극도의 정점이었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서 가장 빛났던 것은 애써 꾸미거나 포장하려 들지 않았던 그다운 진심이었다. 말로써, 노래로써 전한 그 자신이었다.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신이, 온갖 형태의 조화로운 마법을 단 한 사람 속에다 응축해놓았다가 그것을 펼쳐내는 장관을 보는 기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 신. 그 순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존재가 바로 그 자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새삼스럽게도 놀라웠다. 한 사람의 감정이 이렇게까지 또 한 사람을, 나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슬픔의 행방, 슬픔의 행방.
시아준수, 시아준수, 시아준수.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 시대를 공유하는 60억의 인구 중에서 그를 좋아할 수 있게 된 사실 자체가 이미 축복이고 그것으로 더할 수 없이 기쁜데, 그는 자꾸만 그 이상의 벅찬 무엇을 선사한다.
그와 나눈 2012년은 정말이지 찬란했다. 눈부셨던 해를 이렇게 매듭지을 수 있었던 것조차도 그의 덕이다. 그런 그의 행복이 변해가는 순간에서조차 아름답고 아프지 않은 것이기를, 나의 행복 안에서 빈다.
그리고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그에게 고맙다. 그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