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샤큘.

어제도 레전드였는데 오늘도 레전드였습니다. 네. 시아준수가 트위터에서 선언하신 바대로 공연하셨습니다. 하하. 진짜 말하면 말한 대로 해내는 사람이란 거 알았지만, 그래도 놀랄 수밖에요. 1막 마지막 곡 Life After Life 후반부에선 소름을 주체할 수 없었다.

13일 밤공과 오늘을 관통하는 큰 맥락은 재연 모차르트! 6/28-29 양일을 관람하였을 때와 비슷하다. 가깝게는 재연 엘리자벳 8/28-29와도 흡사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전한 상태로 정비하여 무대에 오르는 그이지만, 공연하는 동안 무르익어 만개하는 무대에는 꼭 한 번씩 더 없을 경지의 완성형 레전드가 존재한다. 그 완성형으로 한 번 접어든 이후의 공연은 결코 궤도 밖으로 이탈하는 법이 없다. 

이 말인즉 남은 드라큘라 공연이 13일 밤공과 오늘과 같은 페이스로 계속하여 완전하리란 뜻이다. 감히 그렇게 예상한다. 무르익어 더 이상의 경지가 없는 순간이 오면 사계절 내내 그 상태로 만개하는 것이 시아준수의 무대이므로.


1. 

Solitary Man

프리뷰 때와 매우 비슷한 느낌의 어투(혹은 내가 프리뷰 때 처음 들었던 그 고상한 진동의 노백작 말투와 유독 비슷했던 느낌의). 한 음 한 음 정성껏 노래하는 것처럼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심혈을 기울여 발음했다. 작정한 듯이. 시작부터 그가 벼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가 예고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두근거림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


2. 

Fresh Blood

네 찾아오셨습니다ㅜㅜ 완성형이요ㅜ (이렇게 말하면 꼭 언제는 완성형이 아니었던 것 같은 뉘앙스가 되는데,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는 의미당..) 어제도 그랬는데 오늘도요. 곳곳에 강세가 추가되었다. 군데군데서 마구 폭발했어! 귀가 쉴 틈이 없었다. 눈도 쉴 틈이 없었지. 그 상태에서의 헤드뱅잉이란. 하…

유독 기억에 남는 강세는
'다시 찾은 내 힘!'
'수많은 새 생명 날! 거부 못 해!'


3. 

윗비에서 뒷짐 지고 걸을 때 오늘은 너무 멋있어서 웃음날 뻔했어ㅋㅋ 걸음걸이 대체 왜 그래요.. 멋있어요.. 미나를 돌아볼 때 은은했던 눈웃음은 어떻고. 크고 맑은 동공에 숨기지 못하는 기쁨이 반짝거렸다.


4. 삼연곡

She

'제발 신이시여’ 어제도 이 부분에서 그 목소리의 잘생김에 함락당했는데 오늘도 그랬다. 게다가 오늘의 흑화… 대단했어. 정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격정의 하이톤으로 만년설을 쌓는 느낌. 희번덕이던 눈은 또 어떻고.

분노가 송두리째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엄청난 이입. 목소리가 노래의 허용범위 내에서 마구 갈라지며 이지러졌다. 철실이 나부끼는 듯했어.

마지막 절규, ‘그녀에게 갈 수 없죠, 이 고통의 삶 끝내주소서.’
눈물 범벅된 얼굴의 왼쪽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면서 갈망했어. 절망하며 고통스러워했다.


At Last

울먹거림이 아닌 울음이었다. 참 많이 울었다. 항상 많이 울지만, She에서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난 상태에서 이어지는 울음은 유달리 격정적이었다.

특히 아픔의 종지부. 당신은 이미 결혼했다는 외마디는 나도 울리지만 항상 그도 울린다. 이 대사 직후에 늘 흐느낌으로 잠겨드는데 오늘 그 소리가 매우 선명했다.


러빙유
단연코 레전드. 오늘의 레전드.

뭘 어떻게 적어야 이 느낌을, 이 순간을 남길 수 있을까. 그 절절함과 애타는 마음, 눈물 어린 진심을 어떻게 적어야 하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던 얼굴. 웅크린 등이 왜 그리 아이 같던지. 대체 당신은 어떤 생명체인가요. 400세 연세의 그 어디에서 이런 아이 같은 애틋함과 직선적인 순수가 발현되는 가요. 저주의 시간이 당신을 영원토록 소년에서 멈추어 놓은 것일까.

미나가 노래를 시작하며 조나단 쪽으로 향하자,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다 조나단을 발견하였을 때 요동치던 그의 동공. 곧이어 네모꼴로 처지며 울음이 증폭되던 얼굴. 망할 미나ㅜㅜ

두 손을 부여잡고, 또 펼쳐내며 그녀를 향해 날갯짓하는 것과도 같던 애원.

끝내 홀로 남겨진 새벽의 끝에 털썩 주저앉던 무릎. 다시금 웅크리고야 마는 외로운 등. 멈출 줄 모르고 거듭하여 쏟아지던 눈물방울. 그녀를 위해 살인과 흡혈도 마다치 않았던 그의 핏빛 사랑으로 뭉친 붉은 눈물.


5.

Life After Life

시작하면서 한 손과 고개로 나른히 반원을 그릴 때, 이젠 웃기도 한다. 사르륵 머무는 미소. 어제도 은은하게 웃긴 했는데 오늘은 아주 분명했어. 기대하라는 듯이 씨익 웃었다.

초반 ‘이제 일어나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의 널따란 진동이 너무 좋다. 항상 좋다고 생각하는 데 쓰는 건 처음이야. 자체울림을 장착한 소리.

'너는 나의 첫 창조물’은 창조물에만 강세를 둘 때도 있고 문장 전체에 강세를 심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후자였다. 음절 전체에 강세가 박혀 톡톡 튀었다.

‘갈증을 채워!!!’가 이렇게 강렬하게 터트려졌던 건 오늘이 처음. 시야가 탁 트이는 것 같은 폭발이었다.

묘지를 나설 때 고개를 탁 젖혀 머리칼을 뒤로 넘기는 동작은 처음보다 어제가 강했고, 어제보다 오늘이 훨씬 강했다. 절도 있고 멋있게! 탁!


(+) 이건 그냥 쓰는 건데 ㅎㅎ 넘버 중간에 아 오늘 이 공연은 짱이야! 혼자 확신에 잠겨 외치는 순간 시아준수와 눈이 맞았다.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이 그가 항상 정면을 보며 씨이익 웃으며 세상을 비웃는 순간이었어서.. 꼭 그가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래 오늘 짱이지?’ 하면서 찡긋 웃는 것 같았다. 심지어 고개도 끄덕여서 ㅋㅋㅋㅋ 아아 ㅋㅋㅋ 네.. 그래서 좋았다구요..


6.

렌필드는 멍청한 놈으로 돌아왔다.


7.

It’s Over

목소리에 힘이 대단했다. 핏빛처럼 선명한 강렬함. 목소리 한 가득 빗살친 증오와 독기가 반 헬싱 무리를 공격했다. 송곳비처럼, 바늘처럼.

‘포기해’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리고 초반에 한 번 피식 웃은 순간이 있었는데! 정확한 가사가 기억이 안 난다ㅜ 충격적이었는데ㅜ

아아 그래 그것 말고도, 초반에 반 헬싱과 힘겨루면서 장풍 쏘고 살짝 위세등등할 때 혀가 빼꼼 보였다. 메롱까진 아니고 살짝 입술 축이면서 입맛 다시는 느낌으로? ㅎㅎㅎㅎㅎㅎ

이래저래 오늘은 흡사 즐기는 듯한, 단지 걸리적거리는 조무래기 몇을 상대하는 느낌의 It’s Over였다.

뛰쳐나갈 때는 헛웃음에 이어 오랜만에 절규가 더해졌었고.

(+) 침대에서 일어날 때 한쪽 다리가 살짝 미끄러졌어. 조심조심.


8.

Train Sequence

심연 속의 ‘어둡다.’
그 어둠에서 찾은 빛이 그녀였는데, 그녀의 목소리 너머로 다른 인간의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의 얼굴.. 상실감과 충격. 크고 맑은 두 눈이 부르르 떨리며, 갈피를 찾지 못하며 동요하는 고개. 경련하는 미간. 악 다문 입술.


9.

At Last

'차가운 암흑 속에’는 점점 더 명확한 흐느낌으로 부서진다. 곳곳에 디테일이 섬세하게 추가되며 노래도 연기도 풍부해지고 있는데 13-14일 공연의 눈에 띄는 변화는 바로 이 부분.

원래도 그의 절망을 목도할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이젠 머리로 이해하기에 앞서 가슴이 반응하게 한다. 그가 서 있는 곳의 지반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남김없이 모래로 부스러져 흩어지고 말아. 그의 지난 400년이 어떤 어둠이었을지 전부 그려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그가 더없이 아파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어둠 속에 살다가 끝내 영원한 안식을 향하여 떠나던 얼굴이 선명하다. 송골송골 맺힌 땀과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 힘에 부쳐 파르르 떨리던 미간. 몸을 가눌 힘도 없으면서 그녀를 향해 기어코 뻗어지던 손. 그 위로 따갑게 쏟아지던 붉은 조명. 그것이 마지막.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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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8.20

그래, 프블에서 장갑이. 장갑 벗기는 손길이 한 번 헛손질을 했었다. 먼저 손이었는지 나중 손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 그렇게 한 차례 헛손질한 후에 허공에서 매끄럽게 감겨들며 다시 장갑을 쥐는 그 하얗고 가는 손이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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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2

지금에 와서 오히려 기억이 더 선명한데, 나중의 손이었다. 그 찰나의 꼬물거림이 멋있는 와중에도 귀여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