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밤 모두 내린 샤큘
다만 밤공, 윗비에서부터 삼연곡까지는 4:6의 새로운 가르마. 

예상한 대로의 공연이었다. 13-14일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완전함을 이어갔다. 감격스러웠다. 실력을 차치하고서라도 매번 발현되는 이 사람의 에너지, 집중력, 무대에서의 진심. 그것을 고스란히 목격하고 흡수했다. 

‘더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그 말, 이렇게 바로, 확고하게 확인시켜 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는 언제나처럼 또 자신의 말을 지켰다. 이 사람을 대체 어쩌면 좋은가.

낮공에서 가장 좋았던 넘버는 Fresh Blood, 밤공은 2막의 At Last.


1. 

Solitary Man

노백작님을 샅샅이 본다. 이 모습으로의 등장이 무척 짧고, 변신 후의 그가 선사하는 강렬함 때문에 잊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구붓한 등, 불편한 걸음걸이, 두껍고 뭉툭한 핏줄이 잔뜩 솟은 손, 남부럽지 않은 은발의 찰랑거림, 그리고 별을 박은 두 눈.
항상 예쁜데, 오늘의 눈동자는 반짝임이 유난히 선명했다. 빨려들 것만 같았어. 불그스름하여 고운 눈 둘레와 깜빡임을 따라 명멸하는 깊고 큰 눈동자.

그는 눈으로 참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습니까?’ 되물을 때의 의뭉스런 빛. ‘떠났다?’ 하던 때의 허탈감. 등등등. 소리 없이 눈으로만 하는 연기도 분명 잘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쁜 눈.. 크고 맑고 예쁜 눈알.. 아.. 시아준수.. 눈이 다했잖아요..


2. 

Fresh Blood

낮공. 시작부터 힘이 넘쳤다. 숨 쉴 수 없게끔. 파괴적이고, 절대적이었다. 가히 역대급이었다 말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너무 좋아서도 눈물 났던 27일 밤공’의 프블 같았다. 그래서 또 눈물남ㅋㅋ 아하하ㅋㅋ 여태껏 살면서 겪은 모든 경험(보고 듣고 읽고 등의 정말 모든 경험) 중에서 한 가지 자극으로 이렇게 많은 눈물을 쏟은 건 드라큘라가 처음이다. 시아준수가 처음이야..

그가 지배하는 공기가 내 숨을 움켜쥐었다. 그가 터트려내는 분노와 욕망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강세가 유난했음은 물론. 으르렁대는 소리, 긁는 소리, 폭발하는 소리, 분노하는 소리. 모든 파괴적인 청각적 자극의 집합체였다.

시각은 또 어떻고?

핏빛을 두 눈과 귀로 오롯하게 흡수하는 그 느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 낮공. 망토 모자를 벗은 직후의 머릿결도 엄청 인상적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찰랑찰랑. 폭포수처럼 부스스 흐드러지는 붉은 신기루를 따라 내 마음도 출렁댔다.

(+) 헤드뱅잉은 밤공이 대박이었다. 평상시가 ‘털털’이었다면 오늘은 ‘털털털털’ 같은 느낌으로 강렬하게 이어졌다.


3.

윗비

염색을 새로 하여 강렬한 불꽃과도 같았던 그. 그런데 윗비에서 등장할 때부터 왼뺨에 기다란 땀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처음엔 상처인 줄 알고 놀랐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어.

밤공에선 가르마가 달라졌다. 늘 하는 5:5가 아닌 4:6!! 헐 너무 예뻤어….


4. 

기차역에서.

낮밤 모두 오랜만에 철도역 북쪽에서 오는 기차들~ 이라고 말하였네ㅎㅎ

'더 늙고, 더 외롭고, 더 못돼졌죠.' 밤공에서 심장에 직격타. 처진 눈, 회한에 잠긴 목소리. 모든 것이 아래로 아래로 침잠하던 찰나의 순간.

C블록은 She를 시작하기 전에 미나를 향해 웃어 보이는 얼굴이 잘 보여서 좋다. 어떤 기대를 품었는지 모르지만, 분명하게 웃고 있다. 극 내에서 웃는 순간이 거의 없는데, 여기서 그의 웃음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켜줄 듯이 그렇게 예쁘게 웃어.


5. 삼연곡

She

낮공. 신에게 애원하는 목소리가 미세하게 울음으로 흩어졌다. She에서 이렇게 직접적인 흐느낌이 섞여든 것은 처음이다.

밤공에선 더 나아갔다. 흑화하는 순간, ‘평생 미치도록 널 저주<해>’.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들었다. <해>를 발음하는 순간의 얼굴에는 평상시와 같은 격노 대신 울컥함이 가득했다. 분노하였다기보다는 아파 보였다. 그 얼굴이 잊혀지질 않아. 울컥함이 피맺힌 얼굴. 울먹거림 속에 원망이 한가득 사무쳐있었다.


At Last

‘당신은 이미 결혼했어!’ 하며 무너지던 얼굴. 잊지 못해… C블록은 이때 그의 표정을 샅샅이 보기에 참 좋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 눈물 맺히는 것, 입술이 마름모꼴로 하염없이 처지며 울음 하는 것 전부 다 보이니까.

밤공에선 ‘이제 깨달았나요’를 부르며 미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던 손길이 기억에 남는다. 손목에서부터 어깨로, 어깨에서 양 볼로. 그 볼의 눈물을 훔쳐주던 떨리는 손길.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그녀에게 닿는 사랑의 손길.


러빙유

러빙유는 정말 신기하다. 라이브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 이 스토리가 내게 유난히 공감을 사는 건가? 들을 때마다 사무치다 결국 눈물이 맺히는 것이, 나조차도 너무 신기하다. 듣는 내가 이런데, 이만큼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잔뜩 소진된 느낌인데, 매번 극 중 인물 그 자체가 되는 시아준수의 감정은 얼마나 뜨겁고 무거울까. 그만큼 사무치고, 그만큼 소진될 텐데..

슬픔이 밀려오는 포인트는 일일이 다 꼽을 수 없다.

노래를 시작하는 미나를 보는 그의 간절한 시선, 조나단의 존재를 느끼곤 힐긋 시선을 준 후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좌절감이 뭉쳐드는 표정. 곧이어 완전한 슬픔의 독으로 잠기는 얼굴.

울음을 삼킬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마냥 울먹울먹하다, 노래를 시작할 때가 되면 울음을 갈무리하는 바로 그 순간. 이 순간이 정말 정말 슬퍼…

또 1-2절 모두 '그/대/를 처음 본 순간’ 하며 터트려낼 때 내 감정 제어장치도 같이 끊어지는 느낌이다. 그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가사와 함께 그의 감정이 내 안으로도 차오른다. 아아.. 가사.. 진짜 너무해.. 이 가사를 넘나드는 시아준수 목소리와 감정, 눈물이 너무해..


밤공의 러빙유.

평소와 박자가 달라 더욱 아련했던 '첫-사-랑.’ 심혈을 기울여 발음하는 것이 꼭 두 손으로 감당키 힘든 마음을 어렵사리 꺼내 보이는 것 같았다.

'다시 내게 돌.아.와.’는 울음이 섞여들며 미세하게 스타카토로 이어졌는데, 헉 너무 좋았어.

그리고 2절을 시작하기 전에 심장을 부여잡고 울던 모습. 웅크린 어깨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눈가에서 똑, 하고 떨어지던 눈물방울.


(+) 밤공의 부케. 루시가 조금 멀리 비껴 던졌는데, 야구공 잡듯이 왼손을 착 뻗어 엄청 멋있게 캐치했다. 이케이케 착. 멋있었어 ㅎㅎ
낮공에선 머리를 두어 번 힘주어 꾹꾹 한 것 같았는데 가려져서 제대로는 보지 못했다.


6.

Lucy & Dracula 2

밤공, 가르마가 5:5로 돌아왔다.

루시를 침대로 눕힐 때 자세와 속도에 다소간의 변화가 생겼다. 디테일 자체가 바뀌었다기보다는 그냥 자세가 달랐던 걸 수도 있는데 낮밤이 모두 그랬어서 일단 적는다.

원래는 루시를 눕히며 거의 같이 엎드리듯 누웠다가 상체만 일으켜 목을 무는데, 오늘은 루시를 먼저 눕히고 그는 상체를 세운 자세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는 것도 이전처럼 콱 문다기보단 스무스하게 스르르~ 감겨드는 느낌으로.


7.

Life After Life

시작하면서 나른히 반원 그리며 오늘도 사르륵 미소. 사악하고 나른하게~ 밤공에선 손이 샤르륵 아예 한 바퀴를 여유롭게 돌았다. 고개는 여전히 반원 ㅎㅎ

그가 고개를 절도 있게 쓰는 동작은 흑흑 정말 멋있다.

‘영원한 삶’하며 고개를 살짝 젖히며 머리를 넘겼던 초반부. 루시와 나란히 ‘달빛의 축복 속에서’를 부르며 정면으로 고개를 탁 트는 순간, 그리고 마지막에 묘지 문밖으로 파워워킹하며 고개를 탁! 하는 것까지.

분명 그가 세심히 고안해낸 디테일일 텐데ㅡ그러니까 ‘연기’일진데, 계산해서 하는 동작이란 느낌이 전혀 없다. 본능적일 정도로 자연스럽고, 넘버와 그 순간과 잘 어우러지며, 심지어는 동작 자체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있다. 섹시하고 우아해. 관능적이기도 하고 지배적이기도 하다.


8.

Mina’s Seduction

‘어떤 벌도 달게 받겠어.’는 가사도, 목소리도 너무나 낭만적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그에게는 이것이 진심일 것을 알아서 울컥하기도 해. 큰일이지. 여기서조차도 나는 드라큘라가 아프네… 이 극이 이렇게 모든 곳이 다 이렇게 울컥할 줄은 정말 몰랐다.


9.

It’s Over

구르고, 발목을 끌고, 확 덤벼들었다가 물러서는 등 아무리 격하게 움직여도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조리 그림 같다. 총격의 순간, 그 순간적인 연기마저도 화폭에 그려놓은 듯이 멋있다


(+) 낮에도 밤에도 중간에 다시 등장할 때 커튼을 멋지게 착~ 반으로 가르고 들어와 우와 했는데 ㅋㅋ 밤공에서ㅋㅋㅋ 퇴장하다가 커튼에게 습격당했다. 착 밀쳤는데 얼굴로 덤벼드는 커튼을 피해서 이케이케 몸을 틀었어 ㅋㅋ 아 귀여워ㅜㅜ

(+) 밤공. 침대에서 거의 점프해 일어난 것 같았는데 너무 순간적이라 잘 보지 못했어


10.

Train Sequence

그녀를 향한 마지막 속삭임이자, 최후의 부름이었는데 그걸 방해한 반 헬싱. 부들부들. 그의 얼굴 가득, 급격하게 떠오르는 피로감을 보았다. 미간 사이를 스치는 절망도. 

반 헬싱과 그녀의 목소리를 번갈아 들으며 앙다문 입술. 경련하던 미간.


밤공에선 미나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사르르 눈을 뜨던 표정이 정말 예뻤다. 

꿈결 너머 들려오는 연인의 목소리. 기분 좋은 꿈을 꾸듯 감은 눈 위로 미소가 사르르 포개어지더니, 살짝살짝 꿈틀이던 미간을 지나 이윽고 뜬 눈은 그리움을 머금은 생기로 반짝반짝했다. 

기억 저 건너편에서부터 간직해온 그리움에 화답하는 것 같던 얼굴. 루시의 말처럼 '오랜 연인을 그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사르르.. 아.. 눈가와 입가에 어렴풋이 배인 미소가 촉촉하고 아련했다.

그래서였나. 반 헬싱의 목소리 이후 그를 강타하는 혼란이 밤공은 평소보다 길었다. 끝까지 손을 포개지 못하고 혼란스러움으로 동요하다, 마침내 다시 잠들 때의 그 얼굴은 공허하고 결연했다. 그때에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이.


11.

The Longer I Live

내 어둠 '사/라/질/까 영원한 삶’ 혼자라면 의미 있나.
이 부분이 정말 너무너무너무 좋다. 특히 저 여덟 음절. 아아. 이 안에 대체 몇 가지 소리가 깃들어 있는지. 모든 허무가 그 안에 얽혀 있다. 갈래갈래 섥히는 소리 없는 몸부림. 그녀를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고해.

관을 쓰다듬던 손길과 눈길도 기억난다. 이곳뿐인가, 하던 허망한 눈빛. 모든 걸 내려놓은 얼굴.


12.

At Last

낮공의 '차가운 암흑 속에’는 13-14일처럼 울음으로 흩어졌다. 밤공은 대단히 차갑고 강하고 아팠다. 그녀를 절대 자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지 않으리란 확고한 결심이 느껴졌어.

'이런 삶, 이런 인생. 죽음보다 괴로워’는 그가 외면하고 싶었던 본심이었겠지. 금보다 귀하다 여기고자 하였으나 결코 그럴 수 없었던 내면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조차 부정해왔던 진심을 마주 보게 된 것은 오로지 그녀를 위하여. 

어찌 보면 그녀는 그의 400년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존재다. 그가 자신을 속여서라도 연명해왔던 시간을 모조리 부정하게 만드니까.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영원한 삶’을 이어갔을 텐데. 금보다 귀한 것이라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서라도, 그것이 유일한 최상의 가치이리라 믿고 영생을 누렸을 텐데.

아니면, 그녀가 아니더라도 왕자일 적 그의 선한 본능이 끝내 그를 같은 길로 인도하였을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고결한 선택을 어떻게든 하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너무 슬프다. 그의 삶이 너무 아프기만 하잖아 흑흑.

반 헬싱 이하 인간들이 그를 악마로 부르고 괴물이라 힐난해도 뮤지컬 드라큘라 속에서 드라큘라를 보는 관객은 결코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사랑을 하는 그는 너무도 고귀하며 헌신적이고, 신성하기까지 하니까. 그 사랑의 방식 앞에 어떻게 눈물 나지 않을 수 있을까.

붉은 조명 속,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그녀만을 담은 시선의 여운이 짙다.

벌써부터 막공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