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샤큘

8월 21일, 인생작의 인생 공연이었다.

그의 마지막이 서글퍼 마음이 아픈 와중에 웃음이 났다. 오늘은 역사가 되리라. 동시에 여기서 끝이 아님을 예감했다. 다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종지부를 찍는 완성형이 아니라, 다음을 예고하는 레전드였으므로. 

다음 이후에 다시 다음이 있는 것, 시아준수의 경이로운 점 중의 하나다.

오늘의 넘버는 하나를 꼽을 수 없다. 모두가 제각각의 형태에 알맞도록 완전했다.

파괴적인 아름다움의 Fresh Blood, 찬란하고 서슬 퍼랬던 She, 눈물의 At Last, 처창한 절절함의 러빙유, 절대적이었던 Life After Life…….


1.

‘이렇게 다시 와줘서 정말 기뻐요.’ 

항상 이 ‘다시’라는 단어가 걸렸다.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는 기억한다. 기억이 없는 그녀를 향해 그가 건네는 혼자만의 인사. 

그의 감격 어린 인사에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에는 의문이 가득하다. 그녀는 그를 모른다. 낯선 곳, 꺼림칙한 노인과 마주한 얼굴에 서린 경계심. 그와 그녀의 온도 차는 확연하다. 재회의 기쁨은 그 혼자만의 것이다.

그래도 그 온도 차가 하릴없이 슬프지만은 않다. 앞으로의 대한 기대감에 차 있는 그에게서 희망의 기쁨이 보이기 때문에. 생기를 찾은 눈이 그녀를 향해 반작이고, 목소리에는 설렘과 조바심이 교차한다. 기회, 희망. 허락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 

그는 다시금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녀를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된다.


2.

Fresh Blood.

무릎을 굽힌 걸음걸이로 무대를 가로로 횡단하는 그가 얼마나 멋있는지에 대해 적은 적이 있었나. 무대의 모든 공기가 그에게로 집결한다. 그는 마치 블랙홀 같아. 욕망이 얽힌 음산한 목소리. 주문을 건다. 눈도 귀도 뗄 수 없다. 엄청난 존재감으로 공간을 짓누르며, 군림한다.

부패한 허물을 ‘벗어!’
강인한 젊음을 ‘채워!’
새롭게 부활한다.

활화산 같았다. 귀를 사정없이 두드려대는 쇳소리. 끝없는 청각적 자극. 가사 말미마다 화약처럼 터트려지는 그의 강세.

400년 만에 처음으로 흡혈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순간. 그는 냉혹하고 잔인하다. 한도까지 숨통을 조인다. 터뜨리고, 내깔기며 한 남자의 젊음과 생명을 유린했다. 

질투, 분노, 경멸, 멸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총체가 조나단을 집어삼킨다. 온정은 없다. 놈은 수단일 뿐이므로. 그의 손길과 목소리가 거칠어질수록 조나단의 공포가 짙어지고, 나의 환희는 커진다. 그 모든 욕망의 기원ㅡ엘리자벳사에 대한 사랑이 마침내 수면 위로 형체를 드러내는 순간에는 더욱더.

미나, 그녀와 영원히 살리!
오랜 갈증에 종말을 고하고, 그가 못 박듯 선언할 때의 그 쾌감! 다시 찾은 힘! 신의 운명이 아닌 그의 영혼이 인도하는 영원한 삶을 살아가리라 부르짖을 때의 소름!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예고하는, 가장 파괴적으로 아름다운 소리.

‘수많은 새 생명! 날! 거부 못 해.’

이것이 악마의 아름다움이라면 기꺼이 감사하고 기꺼이 순종할 절대적인 순간의 그. 


3.

She는 점점 더 장대한 포르티시모가 되어간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에서부터 패악의 흑화까지.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에도 경건하게 아름다운 그라는 사실.

신 따윈 필요없‘어’. 평생 미치도록 널 저주‘해’.

울음 섞인 소리는 비명이 되었다. 이제 흑화에는 단순한 분노나 원망 말고, 사무치는 고통과 울음도 함께한다.


4.

loving you keeps me alive.

이 넘버를 이름한다면, 시아준수의 드라마. 이렇게 부르리라.

참 시아준수답다. 그가 어떻게 드라마를 불어넣고, 노래에 생명을 부여하는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단계를 밟아 발현되는 그의 감정’을 절감할 수 있다.

그의 감정은 언제나 듣는 이의 속도를 고려한다. 홀로 앞서가지 않아. 그러면서도 계산적이지 않다.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음악과 감정이, 부르는 이가 하나로 얽혀든다. 그야말로 삼위일체. 그가 음악이고, 그의 음악이 그의 감정이 되고, 그의 감정이 곧 음악이 된다. 그래서 그에게는 숨소리조차, 울음조차도 노래가 된다. 그 어떤 소리도 노래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인가. 신비할 정도로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는 것은. 이제는 흡사 무조건 반사와 같다. She에서부터 응축된 감정이 삼연곡 막바지의 러빙유에 이르면 고이다 못해 흐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2절 전, 오른손으로 심장을 부여잡으며 웅크리는 몸은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항상 두 눈에 아프게 박힌다. 그가 쥔 것이 그의 심장인지, 나의 심장인지. 떨리는 손이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울음했다.

마지막 순간의 ‘이제 내/게 돌/아/와.’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섧디섧게, 감정을 꾹꾹 눌러 한음 한음 발음하는 마음의 소리. 절절하단 말로는 부족하다. 애원이라 단편적인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다. 더 깊고, 더 절실하며, 더 마음 아픈. 400년이 고스란히 얽힌 외침이었다.


5.

Life After Life

그가 음악인지 음악이 그인지. 드럼이 공기를 극적으로 고조시킬 때마다 그에 꼭 맞춘 듯이 반응하는 그의 몸짓. 고개를 젖히거나, 돌리거나, 상체를 트는 등 절도있게 딴딴, 그 자신이 마치 박자라도 되는 것처럼.

상황은 물론 음악마저 지배했다. 음절 하나, 공기 하나마저 다 지배해.

각이 살아있는 손끝은 또 어떻고.

루시에게 ‘런던을 삼킨 뒤 굴복시킬 것’이라 속삭일 때, 갈고리처럼 힘준 손이 정면을 가리키며 낚아채는 그 순간. 아아. 또 제물을 직접 마련해줄 때의 우아한 손짓. 아...


6.

It’s Over

‘전쟁 끝 선물은 이미 나의 것’하며 의기양양하게 웃던 옆모습. 총 맞기 직전 피식 실소하던 얼굴. 다 대일의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

그리고 짜릿하게 좋았던, ‘포기해’에서마다 끝음을 낚아채듯 끌어올리는 소리. 소리로도 그들을 공격한다. 매섭게 채찍질하듯이. 강렬하고 사납게 그들을 타격해. 더불어 섹시하게.


7. 

At Last

‘차가운.'

13일부터였다. 이 세 음절의 음색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변했던 것은. 오늘은 그 드라마의 절정이었다. 그가 차디찬 한을 토해내는 순간 그 목소리에서부터 수만 개의 얼음파편이 날아와 박혔다. 기관총으로 연사하는 것처럼. 심장을 과녁 삼아 명중시키듯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섭게.


어디가 아니 그렇겠느냐만, At Last는 곳곳이 눈물 포인트다.

‘내 마음의 빛, 태양이 아니라 그대 눈빛.’
‘안돼, 싫어. 사랑해요 그대.’
‘차가운 암흑 속에.’

무수한 눈물의 덫 가운데 오늘 속수무책이었던 부분은 그가 그녀에게 자유를 달라, 부르짖는 순간 열리는 관을 보았을 때. 그가 말하는 자유가 곧 죽음, 그것만이 그의 유일한 안식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스위치 온을 누른 것처럼 그에게 맺힌 모든 서글픔이 몰려와 왈칵했다. 그는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힘겨워 보일 정도로. 애써 마음을 추스를 유일한 힘은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그러니까 자신의 죽음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사랑에서 가까스로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마저도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마지막 포옹.

마지막 포옹을 나눌 때 힘겨운 듯이, 동시에 이거면 되었다는 듯이 두 눈을 질끈 감는 그를 보며 마음 옥죄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아름다우며, 순결하다. 그의 사랑은 그를 닮아 고결하다.

포옹, 입맞춤,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손안에서 맞이하는 죽음. 그는 그것으로 지난 400년이 위로가 되었을까. 그렇게 믿고 싶은데 그 혼자만을 삼킨 채 굳게 닫힌 관과 그 위로 흩뿌려지는 잿빛 가루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안식을 얻어 평온해졌느냐 묻기도 전에 잿더미로 흩어지고 마는 그라서, 남겨진 나의 슬픔이 이토록 하릴없이 몰아치는 걸까.

바람에 실려 저 멀리 흘러가고 마는 그의 영혼이 들을 수 있도록, 그녀의 마지막 울음소리가 더욱 크고 비통한 것이기를 바랐다. 당신이 가는 길에 그녀가 끝까지 함께 하였노라, 그가 알 수 있게. 그래서 외롭지 않을 수 있게.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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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8.28

그밖에
1. 부케. 두 손을 높이 올려 받아 챘다. 뒷걸음질해 들어갈 때는 머리를 한 번 더 쓸어넘겼다. 섹시하게, 지나가는 동작으로 가볍게.
2. 멍청한 놈. 핏빛 물감이 나오다 말았다. 나온 부분은 옆으로 하염없이 흘러서 팔을 평소처럼 비스듬히 기울이지 못하고 위로 돌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