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공은 내린 샤큘. 다만 2막에서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겨 고정한 탓에 내린 샤큘과 깐샤큘의 중간적인 느낌이 났다. 
밤공은 깐샤큘. 낮공의 앞머리를 넘겨 고정해둔 머리에서 윗머리만 뒤로 넘긴 스타일이었다. 

낮공에서 가장 닿았던 곡은 2막의 At Last.
밤공은 삼연곡, 특히 At Last와 Loving You Keeps Me Alive의 흐름. 그리고 Fresh Blood.

밤공의 삼연곡은 대단했다. 귀가 아닌 온몸으로 그의 음악과 만났다. 지배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거대한 울림과 진동은 콘서트장에서 경험할 법한 수준이었다. 공간 가득 그의 사랑이 팽배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이곳저곳, 가득히. 만져질 듯했어. 살결에 닿는 공기가 그 자체로 살아있는 그의 감정이었다. 

그 어떤 소리도 그에게는 노래이지 않은 것이 없다 했는데, 그는 공기마저도 노래의 하나로 감화시킨다. 공기에 닿는 것만으로도 그의 뜨겁고 차갑고 마음 절절한 사랑에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잊을 수 없어. 잊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1. 

Solitary Man

'외로웠던 시간’의 곱고 마른 소리. 어떻게 흘러가는 노랫마디 하나로 순간적인 외로움을 이렇게 또렷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모든 단어, 모든 소리가 곧 노래이자 그의 감정이 된다.

'상처가 나셨군요.’ 하며 다가설 때의 시선 처리는 항상 섬세하다. 오늘은 특히 낮공에서 그러했다. 

면도칼에 고정된 걸음걸이로 다가선다. 피맺힌 그것을 받아든 직후엔 조나단의 표정을 은밀히 훑는다. 조나단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심스럽게. 옅은 웃음도 머금고 있다. 면도칼로 되돌아가는 시선과 함께 할짝. 이것은 간단한 요기.


2. 

Underscore

요즘은 눈을 감고 소리만 듣는다. 그의 소리를 뿌리까지 감상하는 데는 이편이 좋다. 음을 끌어올리는 이 소리는 정말 너무도 황홀해서, 항상 조금 더 길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소리 공예를 하는 것 같은 순간의 그.


3. 

Fresh Blood

항상 그렇지만 ㅎㅎ 레전드 ㅎㅎㅎㅎ 

놈은 수단이라며 으르렁댈 때, 슬레이브들에게 먹잇감 던져줄 때, 그녀는 나의 것이라며 조나단을 위협할 때, 그리고 무대를 가로로 횡단할 때. 이 모든 맹렬함. 

활화산 다음의 경지는 무엇이지? 용암 그 자체인가? 살아 숨 쉬는 내핵? 

무대를 짓누르는 그의 광폭한 아름다움에 감사했다. 변신 전에도, 변신 후에도. 가면을 쓰든 쓰지 않든 그는 너무도 아름답다. 그 강인하고 파괴적인 아름다움에는 언제나 감사하고, 언제나 순종할 뿐. 


(+) 밤공에선 애드립이라면 애드립이라 할 만한 추가적인 폭발/강세가 두셋 있었다. 
(+) 그리고 난 보았지 C블록 쪽을 향해 머리를 먼저 털어낼 때 찡긋하던 그의 코끝을!


4. 

Lucy & Dracula 1

낮공. '다른 이들은 구걸을 하고 애원을 하고! 영혼을 팔아서라도!’

평소보다 훨씬 몰아치고, 빠르게 다다다 쏟아냈다. 그리고 계속 올라가는 톤이었다. 원래는 애원을 하고! 까지 한 뒤에 잠시 쉬었다가 다음 대사로 넘어가는데 쉼 없이 다다다다, 게다가 끝없이 위로 위로!

밤공에선 루시를 물기 전에 혀를 축이곤, 또다시 혀를 내밀어 기대감을 빼꼼히 드러냈다. 요즘 이렇게 자꾸 혀를 많이 써주시면 감사할 따름.


5. 삼연곡

She

흑화, 격폭의 순간.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무대 앞까지 나와 마지막 절규를 할 때 ‘이 고통의 삶- 끝내주소서’ 사이에 탁 걷어 젖히던 고개, 찰랑이며 넘어가던 머리칼, 그리고 그 순간 흘러내리던 눈물방울.


At Last

'이제 깨달았나요', 그녀를 향하여 고개를 틀며 노래하는 순간 오른볼을 적시던 눈물줄기. 그것을 시작으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눈물. 
짧은 '마침내의 입맞춤'은 분명 짠 맛이 날 것이다. 

밤공에선, 노래하며, 울면서 웃었다. 똑똑 눈물 흘리면서도 그녀가 자신과 발맞추어 걷고 있음을 알곤 애달프게, 기쁘게, 아프게 그렇게 웃었다. 그렇게 예쁘게 아프게 울면서 웃다니..ㅜ

그렇게 마침내의 짧은 입맞춤. 살포시 감은 눈이 그녀의 기척이 멀어져감을 느끼고 질끈 요동했다. 바르르 경련하며, 이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두려움을 품고 서서히 뜨이던 그의 눈.
아아, 이 연기는 스크린으로 남겨야 한다. 이 장면이 영화라면, 그래서 무수히 돌려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러빙유

밤공. 노래를 시작하기에 앞서 오랜만에 육성의, 또렷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알 수 없이 찬 바람이 불어온다’는 미나의 가사에서 무너지는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땐 미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할 말 못 할 말 구분도 없어, 이 여자는..

1절의 도입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눈물의 세레나데. 간절한 사랑의 염원. 속삭임 같기도 했다. 그만큼 부드럽고 가냘팠다. 특히 ‘첫-사-랑’과 ‘나의 곁으로.’

2절. 아픈 심장을 움켜쥔 채 어쩔 줄 모르던 둥근 어깨는 늘 마음 아프다. 노래를 이어가면서는 다른 손으로 심장을 부여 쥔 채, 사랑을 호소했다.

‘이제 내게 돌아와’는 1절에서도 2절에서도 항상 어깨를 잔뜩 들썩이며 부른다. 떼쓰는 것 같기도 해서, 아이 같아서, 그만큼 순수한 그가 백만 배는 더 가여웠다.


6. 

Life After Life

가장 귀에 붙었던 소리는 '가장 달콤한 피'의 파동. 진동. 그는 정말 목소리를 골라 쓸 수 있나 보다. 각각의 자리에 맞도록 무수한 소리 중에 알맞은 것을 간택하여 그때그때 꺼내어 쓸 수 있나 봐..... 어쩜 이렇게 모든 소리가 조화로우며 알맞게 소름 돋지?

그리고 이렇다 할 안무가 있는 넘버가 아닌데도 항상 여기서 그의 몸짓과 맵시에 황홀해진다.

박자에 맞춘 몸짓이, 이전에도 썼지만 진짜 멋있어. 노래도 노랜데 그의 박자감각이 너무도 황홀해. 신경이 본능적으로 박자를 꿰뚫고 그것에 발맞추어 간다. 음악에 딱딱 맞추어 취하는 고갯짓과 손짓이 It’s Over 때와는 다른 엄청난 멋짐을 선사한다.


7. 

The Master’s Song (Reprise)

낮공. 안개가 지나치게 짙었다. 나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오늘의 그는 마치 자욱한 안개 속에서 스르륵 환영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오늘도 21일 공연처럼 피가 그어지다 끊겼당. 

밤공은 낮공과 달리 안개가 거의 없어 쾌적했고, 또 오랜만에 쾌혈이었다.


8. 

Mina’s Seduction

부드러운 쇳소리가 안개처럼 지긋이 공기를 덮고, 그가 숨처럼 그녀를 잠식해갈 때. 두 사람의 무아경 연기는 참 황홀하다. 

홀려들 듯하다가도 망설이는 그녀를 향한 그의 시선들이 특히. 연연하면서도 집요했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해갈 때의 섬세한 연기는 봐도 봐도 카타르시스를 준다. 돌아서는 그녀를 낚아채는 손길의 거칠지만 우아한 동작도. (오늘은 손목 대신 옷자락을 움켜쥐었다-는 낮공)

아, 그리고 침대에서 두 사람이 자세를 바꿀 때 너무 가장자리에 몸을 뉘였던 지라 미끄러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는데 내내 아슬아슬했어. 맨 가슴에 난 손톱자국도 오랜만에 굉장히 짙었다. 따가워 보일 정도로 발긋발긋.

밤공에선 키스신의 그가 정말 섹시했다. 입맞춤 직후 자켓을 벗기는 그녀를 내립떠보는 그 시선이, 헉. 흡혈의식으로 이어지는 이 장면 전체를 한 번에 납득시켜주는 그런 시선이었다. 으앙..ㅜㅜ


9. 

It’s Over

그와 반 헬싱이 대적할 때, 조나단을 살핀 미나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놀라는 얼굴. 요즘은 항상 이 부분에 신경이 집중된다. 그가 십자가를 태우고야 말자 경악으로 번지던 그녀의 표정. 그를 막아서는 그녀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 두 사람이 좁히지 못한 거리. 그 어긋남.

동그랗게 동그랗게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푼 그의 동공이 그녀를 향해 호소하듯 쏟아졌다.
이 자 때문에 날 버리겠다고?
돌아오는 대답은 그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 허탈한 웃음. 그녀와 마침내 공유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영원한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순간의 절망.

밤공의 그는 물러서라며 더욱 살뜰히도 그녀를 감싸주어서 뒤이어지는 장면의 그녀가 더욱 야속했다. 적들과 대적하다가도 그녀를 향하여만은 상냥한 목소리와 눈빛의 그인데.. 날 버리는 것이나는 되물음도 평소보다 가늘었다. 언뜻 차분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더 마음 아팠다. 그는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는데..
알겠나 미나? 당신이 한 건 그런 거야.. 반 헬싱의 목숨을 살린 것 같지? 당신은 그의 죽지 못해 살아온 생을 꺾어버렸어..ㅜㅜ


10.

Train Sequence

지친 얼굴. 그러나 웃었다. 미나의 목소리를 알아차렸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미소였다. 기분 좋은 꿈에 잠겨들기 직전의 얼굴처럼, 포근하고 행복하게. 두 사람이 함께 ‘영원한 삶’을 부르는 순간이 되었을 때 미나의 웃음을 따라서도 또 한 번 웃었다.

이것은 낮공. 밤공의 웃음은 살짝 스쳐가는 정도에 그쳤다.


11. 

The Longer I Live

공허하고 메마른 마음의 소리. 공간을 가득 메우는 그의 회한. 사랑을 위한 옳은 선택 앞에 용기 내는 그를 인간적으로 괴물이라 하지 말자.. 그 마음따라 터덜터덜 곤들어박히는 걸음걸이를 보고도 그를 그렇게 칭할 수는 없다.


12.

At Last

사랑해요 그대 내게 밤을 허락해요, 하며 그가 웃었다. 그녀를 안심시키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완전한 마음의 정리가 된듯이, 이제 곧 모두가 편안해지리라는 듯이.

자신이 떠나야만 그녀의 세계가 안녕하리란 것도 잔인한데 웃다니. 그것도 그렇게 웃다니..

‘싱긋’ 웃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도렷한 웃음이었다. 모든 공연 중에서 가장. 아.. 이렇게 웃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웃으면 미나가 아니라 내가 속수무책이 되고 마는데.. 

칼을 쥐여주고 입맞춤하기 전에도 웃어 보였다. 낮공도 밤공도 그랬다. 이미 모든 결심을 한 채, 그녀의 마음의 부담까지 안고 가려는 듯이 헌신적이면서도 고결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어. 그 자신도 울면서, 자신의 눈물은 흐르도록 내버려두면서. 그녀의 눈물은 마음 아프다는 듯이 몇 번이고 재차 훔쳐주었다.

죽음에 직면한 마지막 순간의 얼굴이 남김 없는 고통을 품고 있어 차라리 다행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것이 그녀를 위한 헌신적인 미소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에 충실한 얼굴이라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모순적이지만 그랬다. 웃는 얼굴보다 차라리 아파하는 얼굴이 낫다고 여기게 된 건 전부 그의 탓이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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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8.29

그 언젠가 노백작님의 은발이 찰랑거려 남부럽지 않은 때도 있었는데 이날은 대단히 푸석했어. 실머리도 군데군데 삐져나와 있고. 성 안엔 거울도 없고, 있어도 보지 못하니까 세월과 함께 젊음도, 미모도 흘러가게 두었나 싶어져 더 슬펐다... 이제 이 극에서 슬프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남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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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2

미나와의 대화, 우리가 영원히 행복하길 바랄 뿐이에요의 대사 톤이 다소 달랐다. 여기서 전체적으로 그의 분위기가 달랐어. 조금 더 느리고, 약간은 지친 듯도 했던.
그러고보니 대사도 살짝 달랐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