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샤큘

1막에서는 5:5의 완전한 생머리. 2막에서는 머릿결을 살려 부드럽고 눅신하게 넘긴 머리의 깐샤큘.

오늘의 깐사큘은, 진심을 다해 너무너무 멋있었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세상의 온갖 잘생김이 그에게로 결집한 듯한 느낌. 세상에 이렇게 곱고 예쁜 절대악이 또 어디 있을까.


오늘의 기억이 될 넘버는 Fresh Blood. 프리뷰와 7월 27일 밤공을 넘어서는 파워였다. 개인적인 충격도도 그를 훨씬 웃돌았다. 대단해, 엄청나. 그의 용솟음치는 에너지, 그 파괴적인 아름다움.

She도, It’s Over도 대단했다.
그러나 Fresh Blood.. 시아준수.. 후... 오늘의 Fresh Blood는 정말이지......


1. 

그러니까 첫 타자는 Fresh Blood

'수! 많은 새 생명 날 거부 못 해'

마지막의 ‘해'가 엄청 남달랐다. 오늘의 Fresh Blood를 꽉꽉 채우고 있던 타격감의 종지부를 찍었다. 문자로 풀어쓰면 거부못해애액! 같은 소리였다. 무언가를 그러쥐며 할퀴는 음성. Life After Life의 ‘갈증을 채<워>’처럼.

C블록 쪽으로 다가서 머리를 쓸어넘기는 동작은 오늘은 두 번이나 했다. 양손을 번갈아 써가면서 여유롭게.

그보다 앞서 무대를 횡단하던 그는, 예고한 대로 ‘포효했다.’ 마디마디마다. 사방의 공기가 충천한 그 소리에 난자당했다. 무대를 짓누르는 파워, 공간을 압도하는 강렬함.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일제히 숨을 멈추고, 모든 시선이 그를 향하여만 수렴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고도의 집중과 몰입은 그가 선사하는 황홀함에 더 큰 희열을 보탰다.

자비 없는 황홀경이었다. 시간이 그대로 멈추었으면 하고 바랐다.


2. 윗비

그 언젠가는 언뜻 들떠 보이기도 하는 그였는데, 28일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감격에 오히려 목이 메기도 하는 것처럼.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마음을 억지로 뒤로 감추는 것처럼.


3. 삼연곡

She

맑은 공기 가득한 ‘곳에’
‘곳’은 가성, ‘에’는 진성이었다. 오 색다름. 그리고 아름다움. 순간적이었지만 그가 단단한 집중력으로 음절마다 각각에 알맞는 소리를 선택하여 불어넣을 때의 짜릿함에 당했다.

흑화, 특히 ‘정말 미치도록 널 저주해’하며 내팽개쳐진 칼을 집어 든 직후의 얼굴은 말도 못하게 아프다. 분노와 울음이 마치 행성의 충돌처럼 격하게 맞부딪혀 뒤섞인 얼굴. 그래서 끝내는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얼굴.


러빙유

시작하기 전의 흐느낌이 점점 강해진다. 27-28일 주보다 훨씬 또렷했다. 이때 그의 얼굴은 참 아이 같다. 네모나게 처진 입매와 글썽이는 두 눈이.

섬세했던 ‘나의 곁으로.’
그리고 2절 직전 숨이 막히는 것처럼 울던 그. 울음을 마치 숨처럼 힘겹게 토해냈다.

그댄 내게 단 한 ‘사’람의 음도 평소와 달랐다. 훨씬 높고 처절했다. 창공을 찌를 듯이 애달팠어.


4.

Life After Life

루시를 쳐낼 때의 얼굴이 진짜 콱 박혔다. 정말 짜증 나 보였어 ㅋㅋ 한글로 쓰니까 느낌이 잘 안 사는데 제대로 annoying 해 보이던 순간의 그. 이 표정 은근 중독적인 것 같다. 또 보고 싶어..

‘가장 달콤한 피’에서의 그는 이제 감탄스럽다. ‘피’의 진동이 엄청나. 입 모양은 분명 ‘아’인데 소리는 ‘이’고.. 

이 ‘피’를 들으면서 생각한 건데, 기회가 된다면 각각의 넘버를 그가 어떻게 분석하고, 어떤 소리들을 후보군에 두었으며, 최종 결정을 내릴 때까지의 과정은 어땠는지 듣고 싶다. 뮤지컬 드라큘라 메이킹이 피료해..


5.

The Master’s Song (Reprise)

어쩐지 느낌이 왔는데 정말 깐샤큘이었다. 그런데 내가 알던 그가 아니었어. 오늘 대체 뭐가 달랐지? 진득하고 녹신한 부드러움과 숨 막히는 감미로움? 유혹적이면서도 냉정한 걸음걸이? 대체 뭘까.

너무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검은 블라우스, 검은 바지에 창백한 얼굴에, 타는 듯이 붉은 머리칼. 한 송이의 장미꽃 같던 그.


그리고 안개는 앞으로도 이 정도를 유지해주면 딱 좋을 것 같다.


6.

Mina’s Seduction

‘무의미해’하며 웃는 얼굴을 보았다. 여태껏 Seduction에서 스쳐 가는 식으로라도 웃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 말라서 퍼석퍼석했지만 분명하게 웃었다.

입맞춤은 언젠가부터 항상 고개를 꺾어왔었는데 오늘은 두 번이나 꺾었넹.

그리고 오랜만에 입맞춤 이후 포옹까지 이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입맞춤-포옹-겉옷 벗기는 이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가는 편이 좋은 것 같아.

오늘의 포옹은 또 남달랐다. 그가 웃었기 때문이야. 벅차하면서도 쓰게 웃었다. 먹먹한 데다 아릿해 보이기도 하고. 이제야 왔구나, 마침내, 드디어. 이런 감정을 담은 찰나의 미소였다.

흡혈 당할 때는 더 괴로워했다. 짧게 토하는 숨소리도 여러 번 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과, 탁 하며 뒤로 넘어가던 고개도 꽤 힘겨워 보였고.


7.

It’s Over

그녀는 이미 ‘나의 것’의 톤이 높았다. 선명하고 강렬하게 튀던 소리. 성경책을 날려버린 이후에는 인간들의 나약함을 비웃듯이 빠르게 피식 웃었다.

중간에 커튼 들추고 나갈 때는 조금 위험할 뻔했지만! 당하지 않았다. 이제 커튼 따위 우스워~

미나가 그를 버렸다 여겨 뛰쳐나갈 때, 28일과 같이 하이톤의 옅은 헛웃음이었다. 하핳하..!


8.

Train Sequence

사랑, 빛, 구원.

그녀가 그러한 존재니까, 꿈속의 그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이 극에서 그가 진심으로 웃는 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유일하게 여기에서, 그 본연의 모습으로 편안하고 달콤하게 웃는다. 참 짧지만.


9.

The Longer I Live

첫 소절. 오케스트라의 박자가 늦었고, 그는 이미 노래를 시작한 뒤였다. 당황하지 않고 오케스트라의 박자를 기다리며 음을 이끌어가던 그. 또 반했다. 그의 노래는 어떤 상황에서도 견고해. 그는 언제나 소리도, 박자도, 그 순간의 공기도 이끌어가지.

아름다우며 진실되고 프로인 사람. 문득 그 언젠가의 말이 생각났다. 이러한 존재를 동료로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가 얼마나 큰 존재이고 의지되며 위안이 되는 존재일지. 상상만으로도 벅차며, 부러운 존재일 것이라던.


10.

At Last

미나가 노래할 때 이미 울고 있었다. 한없이 아래로 처지던 얼굴. 촉촉한 얼굴빛.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을 때는 시선이 드물게 정면을 향한 채였다.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받은 내 인생.’

오늘은 주저앉았다기보다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She에서처럼. 두 무릎이 정식으로 바닥에 닿도록 꿇은 자세. 무너지듯 내려앉아 그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느낌을 주는 자세는 28일이 유일할런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엔 기어코 어떻게든 웃는다. 그녀를 위해. 쓴웃음이 되더라도 웃어 보여.

‘그댈 위해 내가 떠날게-요.’ 에서 ‘요’로 맺음하기 직전에마저도 웃었다. 심지어 고개까지 몇 번이고 주억이며, 그녀의 두 손을 잡고, 위로하듯, 그녀의 아픔을 애무하듯.

그렇게, 사랑해서 그가 떠났다. 마지막까지 그녀를 위한 웃음을 가장한 후, 끝내는 숨기지 못한 고통을 남김없이 드러낸 채로.

안녕, 사랑이여.
그것으로 당신이 구원받았다면,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 웃으리.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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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3

러빙유에서 오랜 시간조차도 지울 수 없던 사'람'도 평소와 달랐는데. 아주 명료하고 분명하게 '람'이었다. 끝맺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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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3

맞다, 정선아 미나가 노백작님 코트자락 밟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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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3

아직도 기억을 못 하겠어, 엘리자벳사?! 는 여전히 호통.
구걸을 하고 애원을 하고, 영혼을 팔아서라도! 도 매우 긴박하게 이어졌다. 그 언제지. 다다다다 끝없이 끝없이 톤이 올라가던 날처럼. 그날과는 달리 영혼을 팔아서라도! 전에 쉼표가 있기는 했는데, 그 어조가 현저할 정도로 다음을 예상케 하는 것이라서 쉼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 한꺼번에 다다다다 몰아치는 느낌을 주었다. 신기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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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3

이츠오버에서 총 맞을 때는 언제나처럼, 또 특별하게 그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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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3

She에서 분노하던 소리가 자꾸 생각난다. 포인트되는 가사에서 강! 약약 강! 약약 이런 느낌이 아니라 완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강강강강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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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3

러빙유를 시작하기 전에 터져나온 울음은 그 어느 때보다 아이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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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3

더 롱거에서, 관을 매만지며 마지막 소절을 부를 때. 그때 걸음걸이도 매우, 그 어느 때보다 터덜터덜. 걸음을 이어가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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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3

날 밝으면 몰아칠 일정들 때문에 다른 때보다 후기를 급하게 썼더니 쓰지 못한 것들이 자꾸만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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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3

렌필드는 28일에도 그랬고, 요즘 핏빛! 을 강하게 하지 않는 듯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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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4.09.03

2막에서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 많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리에 공을 들이는 모습. 그가 목소리와 호흡하는 방식이 섬세하고 생생하게 전달되는 장면이 많아 황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