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밤 모두 내린 샤큘.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최후의 순간에 그가 웃는 것만큼은 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죽음의 고통마저 웃음으로 포개는 일만큼은 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는데..

여전히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그는 웃었다. 이전에도 내내 그녀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 따뜻한 눈빛을 머금곤 했지만, 죽음의 순간에서조차도 오늘과 같이 분명하고 명확한 웃음은 처음이었다.

칼을 맞은 채로, 관 안으로 무너지면서.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빛내며. 괜찮으니 걱정 말라는 것처럼 고개까지 연신 끄덕이며. 최후의 순간까지 오로지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그였다. 낮공도, 밤공도 모두 그랬다.

괜찮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시아준수.. 내 눈물샘의 파괴자..ㅜ

충격의 2막의 At Last 외에도, 오늘의 넘버로는 러빙유. 눈물의 골짜기로 엮어 만든 것 같던 러빙유. 낮밤 모두.


1.

밤공. 면도칼 씬. 조나단에게 얌전히 남아있으라 경고하면서, 카이 조나단의 어깨를 톡 잡았다. 원래도 했었나? 순간적으로 기억이 나질 않아 당황했다. 또 조나단이 부럽단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서도 당황했네.


2.

Fresh Blood

'젊음을 채워!’ 하며 손을 날개처럼 탁, 넓게 펼쳐내는 동작은 정말 좋다. 문자 그대로 포효한다.

낮공의 마무리. 영원히 살리‘라'의 음이 살짝 갈라졌다. 이번 뮤지컬에서 처음 있는 일. 그 어느 무대에서도 드문 일. 음이탈은커녕 이렇게 갈라지는 소리조차 단 한 번 없었을 정도로 목 관리에 철두철미했던 그였는데, 메마른 음성이 창공으로 튀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잠시. 곧바로 음의 뿌리를 틀어쥐고 제 위치로 돌려놓았다.

이 찰나의 순간에 나는 흥분했다. 그가 자신의 소리를 다루는 모습을 또 한 번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의 통제를 벗어난 음절이 나타나는 순간 그가 어떻게 돌변하는지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음 넘버가 기대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집중력이 진가를 드러낼 시간이 올 것이었으므로.


밤공에서는 그 어떤 이탈도 없었다. 거의 날아다녔다. 정신력과 체력이 물아일체의 경지에 있었다. 그렇게 온 힘으로 낮공을 마쳐놓고도 밤공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이는 그는 늘 놀랍다.

밤공의 흥분은 ‘거부못해앸’하며 포효할 때 정점을 찍었다.

아, 망토모자가 오랜만에 뒤집혔다. 검은 안감이 보였어 ㅎㅎ 오랜만갑.


3. 삼연곡

낮공. Fresh Blood 직후 예감한 대로, 아니나 다를까. 음 하나하나를 어르고 달래며 그는 노래했다.

사랑의 노래를 할 때는 부드럽고 평화로운 가성으로, 흑화할 때는 톡톡 튀는 제멋대로의 음을 주도하면서, 사랑을 잃고 처절하게 절규할 때는 그야말로 온 마음으로.

게다가 오늘 절규할 때 왜 이렇게 아름다웠지? 어제도 아름다웠는데 오늘도 아름답고. 이렇게 항상 아름다운 것이 가능한 일인가..

‘저주받아 아파하고 아파해도 그녀에게 갈 수 없죠.
차라리 내 고통의 삶 끝내주소서.’

절규할 때의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처절하면 처절할수록 아름답다. 얼굴 가득 핏줄이 돋고, 눈썹이 한껏 이지러지며, 이마와 양 볼에 수심을 품고 깊게 주름 파인 얼굴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워.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받은 내 인생’에서도 이 같은 벅찬 아름다움을 경험했다.

아름다워, 아름다워.
당신은 정말로 아름다움을 현실에 드러내 놓기 위해 존재하는가.


At Last

낮공도 많이 울었는데 밤공은 놀라울 정도로 눈물바다를 경신했다. 초마다 눈물이 방울졌다. 두 사람이 번갈아 서로의 눈물을 훔쳐주는데도 볼은 마를 틈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한 번 닦아주면 그녀가 그의 볼을 쓸어주고, 다시 그가 그녀의 볼을 그러쥐는 식으로 거의 경쟁적으로 서로의 눈물을 훔쳐주었는데도.

애틋함과 절절함이 철철 넘쳐 흘렀던 것은 당연. 2막의 At Last에서처럼 두 사람의 감정이 깊이도 얽혀 있었다. 서로 떨어질 줄을 몰랐어. 짧은 입맞춤 직후에도. 그에게서 애써 멀어지면서도,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는 듯했던 미나의 모습. 목이 메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듯이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 그런 그녀를 가득히 담던 그의 눈.

그와 그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세상 없이 그렇게 울었다. 서로가 서로의 감정의 기폭제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러빙유

낮공도, 밤공도. 러빙유는 그의 표현을 빌려, 하나의 장대한 ‘포효’였다.

화석이 되어 굳은 사랑이 송두리째 폭발하던 순간. 음절마다 그의 사랑이 견고하게 새겨지고 그녀를 향하여 빗발쳤다. 그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외면할 수 있는 그녀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초인인가..


4.

Lucy & Dracula 2

밤공. 방안에 들어서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 사르륵 웃었다. 처음이야.

루시를 흡혈할 때의 자세는 점점 농염해진다. 밤공이 특히 그랬다. 아예 루시를 침대에 앉힌 뒤, 루시 뒤쪽으로 침대를 한 손으로 탁 짚고 루시를 밀어 넘어뜨렸다. 그 자신도 함께. 이런 디테일이 추가된 데다가 동작 자체도 은밀하기 그지없어서.. 뭔가 야하다..

(+) 어제 공연에선 루시가 서랍을 다 닫았는데 오늘은 반만 닫혔당.


5.

Life After Life

달콤한 ‘피’는 들어도 들어도 좋다. 입 모양과 번득이는 눈빛, 단단하게 버티고 선 그의 다리까지 전부 다 모조리 좋아.
루시를 물리쳐낼 땐 오늘은 약간 건들거리는 느낌도 있었다. 낮밤 모두 ㅎㅎ


6.

‘난 언제나 당신 곁에 있었어요.’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낮기도 하고, 서늘하기도 하고, 가라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제도 살짝 달라진 느낌을 주었지만 확신하지 못해서 적지 않았는데, 오늘은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의 차이를 함축하고 있었다. 처음 듣는 새로운 목소리.

밤공에선 대사 톤 전체가 달랐다. 공연 초중반에는 속도도 빠르고, 조바심내는 것 같기도 한 그였는데 오늘은 서두르지 않았다. 차분하고 덤덤한 느낌까지 주었다. 뱀파이어 특유의 서늘한 느낌도.


7.

Mina’s Seduction

‘무의미해’에서 오늘도 웃었다. 심지어 2일보다 더 진득하고 고혹적으로. 밤공에선 미소가 훨씬 더 길고 진했다.

‘내 피는 그대 피 내 몸은 그대 몸’
두 사람이 손 마주대며 부르는 이 부분이 너무 좋다. 영혼이 이어지는 느낌. 그러다 포옹으로 얽혀들고 말면, 마침내 두 정신과 육신이 만나는 듯한 느낌. 서로가 서로의 운명인 그와 그녀.


8.

It’s Over

생각해보니, 흡혈 당한 직후의 넘버다. 그녀의 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몸이 떨릴 정도로 자신의 피를 내어준다. 그런데도 이렇게 강한데, 흡혈 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힘이 충전된 그라면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새삼 놀랍도록 오늘도 역시 파워, 파워!

발끝부터 머리칼에까지 기합이 바짝 들어있다. 쏟아질 것 같은 강렬한 눈빛이 그중에서도 가장 매섭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유로워.

오늘은 오랜만에 그의 발끝에 시선이 고정되어 헤어나질 못했다. 발끝으로 거닌다. 부츠를 토슈즈처럼 써. 성물에 움찔할 때를 제외하고는 발끝 이외의 부분이 바닥에 닿는 법이 없다. 그런데도 이 모든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흐르며 물 흐르듯 부드럽고 아름다워. 강인하게 아름답다. 파괴적으로 아름다워!

(+) 밤공의 모든 포기’해’가 강인하게 특별했다.


9.

Train Sequence

낮공. 반 헬싱의 목소리를 들은 후, 체념이 빨랐다. 두 눈을 감으며 역시 안 되는가.. 하는 표정이었어. 마음 아팠다.
밤공에선 화를 참듯 으르렁, 이를 악물었다.


10.

The Longer I Live

러빙유와 함께 오케스트라가 가장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곳. 낮밤 모두. 오케스트라 자꾸 왜 그래요. 시아준수가 박자를 기다리고, 이끌고, 당기고, 어르는 데도 따라오기는커녕.. 물론 주도적으로 어떻게든 노래를 완성해내는 그의 프로다운 모습은 참 멋있지만, 그래도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건데.. 오케스트라도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낮공. 마지막 소절 부르기 위해 계단을 내려올 때 걸렸는지 삐끗했당. 조심조심.


11.

At Last

그가 체념한 듯이, 내려놓은 듯이 고개를 가로젓는 순간 미나의 소절은 항상 다르다. 오늘은 ‘지옥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절묘했다. 스스로에 대한 절망, 체념, 그녀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그 모든 것이 집약적으로 비추어졌다.

밤공의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받은 내 인생.’은 이후의 가사까지 모조리 다 울음범벅이 되었는데, 그렇게 많이 울면서도 결국에는 그녀를 위해 태연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아주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다하여.

울면서도 그녀를 위해 웃는 얼굴. 혹은 그녀이기에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웃음.
칼에 찔린 직후에조차 웃음을 머금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이기적이 되어달라 더 말할 수도 없어졌다. 그렇게 필사적인 사랑 앞에서 무엇을 더 바랄 수 있겠어요.

그저 너무나도 짧았던 사랑의 일치와, 사랑 속에서 맞이한 영원의 안식이 그에게 진정한 구원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사랑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