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와의 시간이 쌓이면서 동일한 날짜에 서로 다른 추억이 겹치는 경우가 여럿 생겼다. 12월 26일은 오빠의 데뷔일이자 디셈버의 공연일이다. 12월 29일은 My Everything의 날이자 김준수만의 브랜드-연말 콘서트의 시작을 알린 날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기억이 제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날짜가 겹치는 다른 기억과 사이좋게 달력 한 칸을 나누어 쓴다. 그러나 예외는 있기 마련. 유난한 존재감으로 단 하나의 독보적인 기억만을 허락하는 날짜 또한 있다.
11월 26일은 믿어요의 날이다. 이날은 믿어요의 정식 릴리즈도, 첫 무대도 아니었으나 내게는 그 모든 것을 갈음하는 날이다. 2004년 11월 26일의 시아준수는 말로써는 설명하기 힘들다. 이날의 시아준수는, 말이나 글로써 표현하려 하기보다는 마음에 담아두게 된다. 마음에 품어 간직하는 것만이 가장 원형에 가까우리라 느끼는 탓이다. 내게 펼쳐지기 시작한 시아준수라는 거대한 우주를, 그 역사의 태동이 주는 감격을 인간의 사고로써 깎아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라만 보았다. 그 어떤 부연이나 감상도 없이. 그리고 그로부터 한두 해로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무수한 음악과 무궁한 웃음을 거치며, 오빠는 차츰 나의 일상이 되어갔다. 나의 음악이 되었고, 기쁨이었으며, 숨이 되었다. 혼자 있는 자리에서도 소리내어 오빠라 부르는 것이 스스럼없어질 정도가 되었다. 오빠가 나의 일상이 되어갈수록, 오빠를 좋아하는 나를 지켜보는 것은 내 사람들의 일상이 되었다. 그 틈에 내 안곁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사를 대신하는 질문이 생겨났고, 내게는 대답에 갈음하는 언어가 생겼다.
너 여전히 시아준수 좋아해?
응, 여전히.
자잘한 덧붙임 없이 늘 이 하나면 충분했다. '여전히'는 오랜 시간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단어였다.
다시 돌아온 11월 26일. 2004년과 2014년을 잇는 가교 위에서, 섣부른 용기를 내어 변화를 주어본다. 단어 하나를 교체하는 가든하고도 단촐한 혁명으로 자축한다. 일종의 다짐인 동시에 확신이다. 그리고 가장 곧바르고도 쑥스럽게는, 이런 방식으로라도 표현해보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1월 26일의 시아준수를 향하여 건네는 말이다.
여전히 오빠에게서
오로지 오빠에게로
나의 순정을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