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곡이었다. 헤어진 연인을 향한 노래. 그러나 그렇게만은 들을 수 없었다. 재작년의 오르막길과 같이, 나는 이 노래를 내가 원하는 대로 들었다. 아니, 내게 들리는 대로 들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것은 다독임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오늘을 기억하자는 그의 토닥임 같았다. 행복했던 우리의 어제와, 그 어제를 딛고 조금 더 행복해진 우리의 오늘. 지금 우리가 서로 마주 보고,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이 떨리는 순간을 조금은 서투르고, 조금은 멀찍이서 은은하되 진실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노래해 주는 그였다.
후렴구를 위해 마이크를 건네주며 관객을 담던 눈이 너무도 예뻤다. 지그시 깨물어 물은 것도 같고, 아주 살짝만 끄집어 올려 짓는 웃음 같기도 한 미소가 살그머니 입꼬리에 맺혔다. 그 얼굴로부터 예쁘고 애틋한 마음이 투성이로 피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선하고 상냥한 얼굴로 그가 웃었다.
‘잘 견뎌왔어’
그를 향한 마음들이 일제히 화답했다.
‘웃으며 Hello Hello'
많이 웃었다. 가볍고 경쾌한 몸놀림은 들떠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도 예뻤다. 한시도 낭비하지 않고 모조리 예뻤다.
이 예쁜 사람이 오늘 내 눈물샘의 신기원을 열었다. 나는 내가 춤추는 그를 보고도 울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빠른 박자의 경쾌한 음악 속의 그를 보며 펑펑 눈물 쏟게 될 줄은 몰랐어.
랜덤플레이댄스가 정식 댄스메들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도 그다웠다. 3집 콘서트의 지니타임을 총망라하기라도 한듯한 영상 말미에 ‘그를 수렁에 빠지게 한! 지니타임의 덫!’ 과 같은 문구에서부터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진짜였다. 어떤 소원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던 그 언제의 말을 또 한 번 몸소 펼쳐주었다. 그가 좋아서, 그가 춤을 추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소원을 이루어주는 무대’. 그리고 나는 속수무책이 되었다. 예정에 없던 '앙코르 콘서트'에서, 5년 전 10년 전 노래까지 뒤섞인 탓에 완수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소원을 정식 무대로 돌려주는 그의 마음 씀씀이 앞에.
다른 듯 비슷한 의미로 Love in the Ice의 자리에 다시 돌아온 Loving You Keeps Me Alive도 그다웠다. 일본에서의 기억은 그 땅 몫의 선물로 온전히 남겨 두는 듯하여, 일콘의 관객이 아니었던(물론 생중계는 들었지만) 나조차도 배려받은 기분이 되었다.
다시 돌아온 Loving You Keeps Me Alive를 펼쳐내는 방식도 그다웠다.
곡에 얽힌 이야기를 공들여 설명해주는 목소리가 좋았다. 동화책을 읽는듯한 조곤조곤한 음성. 그의 입을 통하여, 그의 목소리로 듣는 드라큘라의 삶에 지난여름이 고스란히 살아 돌아왔다. 마지막에 그가 덧붙여 주어서도 좋았다. “이렇게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저도 들으시는 분도 더 좋더라”고.
그래서였을까. 어느 때보다 지난여름을 가까이 느꼈다. 물 빠진 청록색 머리 너머로 붉은 빛깔이 언뜻언뜻 비추어졌다. 울며, 울며 부르는 얼굴이 그때와 꼭 같았다. 끝내는 무너지듯 털썩 꿇고 말았던 무릎까지도.
그리고 나비.
그의 목소리 중 단 하나를 고를 수는 없어도, 이것 하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가장 단기간에 가장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한 목소리가 이것이라고. 놀랍지. 강산을 한 번 보내고도 새로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니. 그 사랑이 이토록 불같을 수 있다니. 처음을 잊게 할 만큼 강렬할 수 있다니.
시아준수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를 알수록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시간이 단축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앙코르 콘서트에서는 “더, 열심히, 지치지 않는,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정확히는 인터뷰 영상에서의 인사)로부터 이어진 노래였다. 아무런 부연 없이도 그의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임이 분명한 이 노래에 앞서 그가 그렇게 이야기를 맺고 곧이어 흐르는 전주에 나는 마음을 통째로 도난당한 심정이 되었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매일 그가 내디뎌 왔을 한 걸음 한 걸음이 이 노래 안에 있었다. 그와 함께 걸어온 나의 길이 이 노래를 부르는 그의 눈빛 속에 있었다. 한없이 애틋하고 소중하여 마음이 따끔거리는 것만 같았다.
날아오른 그를 그 모습 그대로 기억에 박고 싶어 두 눈으로 공들여 새겼다. 저 멀리, 하늘에 닿은 모습이 조화롭고도 자유로워 보였다. 그 하늘로부터 다시금 천천히 내려와 지상을 밟는 모습까지 빈틈없이 예뻤다. 심장이 따가울 정도로 행복했다. 고통스럽게도 느껴지는 기쁨이 벅찼다.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소리의 형상으로 옮겨 놓은 듯한 노래와, 그 노래에 어울리는 동화 같은 이 무대에 시간을 멈추어 놓고만 싶었다.
온통 하나의 생각으로 범벅되고 말았다. 열병을 앓는 것처럼 되뇌었다.
시아준수를 좋아해. 시아준수를 좋아하는 내가 좋다. 시아준수가 좋아.
그런 그를 축하하여 줄 수 있었다. 울먹임을 삼켜가며 또박또박 속말을 꺼내놓는 그의 어깨를 박수로 다독여줄 수 있었다. 기뻤다. 벅찼어. 세상 누구보다 축하할 일로만 하루를 가득 채워주고 싶은 그에게, 세상 무엇보다 의미 있는 축하를 건넨 것이다.
축하의 인사는 언어라는 체로 걸러질 필요도 없었다. 마음을 뭉텅이로 그에게 안겨주다시피 하였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즉각적인 환호와 본능적인 박수가 그를 감싸 안았다. 그는 민얼굴인 것처럼 웃었다. 그늘진 곳 없이 웃음핀 얼굴이 기뻤다. 예뻤다.
‘우리의 테마송’이라는 명명에 감정이 복받치는 것을 막을 재간은 없었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의 테마송 안의 가장 짙고 달콤한 사랑의 향기ㅡ시아준수로서 존재하여온 그의 시간이 진심을 다하여 웃고 있었으므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의 우리는 오늘을 토닥이며 함께 웃겠지. 꼭 오늘과 같이 우리, 또 잘 견디어 왔노라고.
4월의 18일, 안녕. 웃으며, hello hello.
이 글을 조금 나중에 쓸 걸 그랬어. 그랬더라면 오늘 '잘 견뎌왔다고 우리의 사랑'에서 조금은 덜 울었을지도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