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뿐인 저녁이었다. 으레 그랬듯 상차림은 식탁이 아닌 거실 협탁 위에 이루어졌다. 동생이 식사할 준비를 갖추는 동안 나는 볼 채비를 했다. 여타의 날이었다면 영화나 여행 프로 같은 것이 찬거리가 되었겠으나,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의 볼 것은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곧장 다시보기를 누른 후 내 편의 준비는 끝났음을 알리자, 평소와는 달리 채널 고르기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 신속함에 동생이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말했다.
"이제부터 너에게 아주 진귀한 것을 보여줄게."
동생은 시아준수를 잘 모른다. 그와 나에 대하여, 동생은 내가 작년 8월 9일의 콘서트를 다녀온 것에 대하여만 알 뿐이다. 우리의 만남이 얼마나 잦았는지, 이 역사가 어떠한지 동생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직감에서였을까. 동생은 마치 탐색하듯 그를 보았다.
그러나 그를 일러 '동그랗다'한 첫 마디가 전부였다. 도통 별말이 없었다. 먹는 것에 정신이 팔린 건가 싶어 슬쩍 고개 돌려 동생을 보았을 때, 눈이 맞았다. 내 눈을 보고 동생이 그를 가리켜 말했다.
"누나, 저 사람 지금 되게 기분 좋은가 봐."
그가 Reach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이 무대를 대하는 그의 마음이 이 아이의 눈에도 보이는가 싶어 나는 웃었다.
"응 이건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무척 소중한 무대야. 당사자인 저 사람에게는 더 그렇겠지."
내가 하는 말의 무게를 동생이 선뜻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생은 무리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어지는 노래에서도 별말이 없는 동생이었으나, 재차 기척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간헐적으로 달그락대며 존재감을 과시하던 '식사 중인 소리'까지 사라져버린 탓이다. 반주 없이 거실을 가득 채우는 그의 목소리에 동생은 귀를 기울였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식사를 시작한 이상 도중에 멈추는 일이 없는 아이인데, 수저를 내려놓은 손이 보였다.
그의 목소리로만 팽배하던 공간에 첼로의 선율이 스며들고 나서야 동생이 입을 열었다.
"저 사람 목소리 좋다."
못 박아둔 듯 정면으로 고정해둔 시선. 나는 동생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고자 고개만 끄덕였다.
동생은 경청했다. 가르쳐준 바 없는데도 이미 훌륭한 청중이었다. 내 자신의 감상을 위하여 그가 노래할 때는 되도록 큰 소리를 내지 말라는 주의를 주어야 하나, 앞서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딱 하나, 황금별을 따라 불렀던 것 말고는.
'북-두-칠-성'까지 부른 동생이 황급히 입을 다물곤, 잔뜩 아리송한 얼굴이 되어 나를 보았다. 내가 이 노래를 어떻게 알고 불렀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 의문을 읽은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동생의 얼굴 위로 떠오른 물음표에 대한 답을 나는 알았다. 2010년, 집에 있을 때면 늘 뮤지컬 모차르트!의 넘버를 틀어두곤 했다. 거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식사 시간에도, 티 타임에도 집안을 감싸는 공기처럼 존재했다. 황금별은 자연스레 가족들 모두 제목은 몰라도 가사는 아는 정체불명의 노래 중 하나가 되었다.
Loving You Keeps Me Alive에 이르러서는 동생은 더욱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이 노래를 대체 어디에서 들었지, 곰곰이 생각하는 미간이 자못 진지했다.
"누나가 자주 불렀던 노래잖아, 여름에."
"아닌데? 전혀 다른데?"
누나한테서는 전혀 들어본 적 없다는 단호한 대답에 나는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밤에 네가 데리러 나오면 집으로 오는 여름나무 밑에서 계속 불렀어. 가사도 같잖아. 그때 네가 가사 좋다고 했거든?"
더 설명해줄 수 있었으나 동생의 거부에 부딪혔다. 같은 노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가. 내가 그렇게 못 불렀나, 하는 생각도 잠시. 그가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 노래를, 이 아름다운 무대로, 온전히 그의 노래로써 피붙이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된 순간의 감격에 휩싸였다.
이윽고 꽃.
반주의 심상찮음에 동생의 허리가 꼿꼿이 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더 살필 겨를이 없었다. 손을 내미는 그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와 나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동생은 외딴 손님이 되었다. 총 감상평과도 같은 동생의 중얼거림을 듣고 나서야 우리 집 거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꽃이랑 잘 어울린다" 했다.
그리고
"몰랐는데 머리색 특이하네. 역시 (우리랑은) 좀 다른가 봐."
몇 살이냐고도 물어보았고, 정말로 6년이냐고도, ebs에는 어떻게 나올 수 있었냐고도 묻더니, ebs는 참 좋은 방송국인 것 같다고도 했다. 앞으로도 이런 방송이 있으면 또 보여달라고도.
나는 꼭 그러마 했다.
오르막길은 보여주지 못했다. 초인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귀가를 마중하고, 상차림을 정리하는 동안 동생은 밥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투덜댔지만, 일어서면서는 '북두칠성 빛나는 밤에 come take my hand'를 흥얼거렸다. 음은 하나도 맞지 않았지만 그가 전한 노래의 골자를 제대로 전해 받은 듯하여, 나는 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이 글에 등장하는 오늘은 5월 6일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