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이다. 엘이 지나치게 베이비페이스라는 것이. 귀여운 행동을 한다기보다도, 얼굴 자체가 어리다.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ㅡ동그란 등을 짜그맣게 말고, 발꿈치를 든 채로 주저앉은 엘 특유의 자세(앞으로 이 자세를 기본자세라 하자)로 마침내 정면의 얼굴을 보여주었을 때, 말갛다 싶을 정도의 어린 얼굴에 놀랐다. 진짜로. 말 그대로 어린 얼굴이었다. 다른 때에 비해, 심지어 콘서트에서보다도 옅어 보이는 분장이 어린내를 폭발적으로 돋보이게 했다.

이렇다 보니 그냥 존재 자체가 귀엽다. 귀여움에 한도가 없다. 동그란 볼에 오뚝한 코, 형형한 눈망울 위로 헝클어트린 듯 아닌 듯한 앞머리. 씩 웃을 때 눈 밑으로 올망지게 피어나는 애교살까지 완벽하게.

이런 귀여움, 머리색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었는데..


반대로 감히 예상할 수 있었던 건 섹시함.

역시 섹시했다. 섹시해. 99%의 섹시함과 1%의 귀여움이라 극단적으로도 말할 수 있다. 어깨선이 살짝만 드러나는 헐렁한 상의와 보일 듯 말 듯한 쇄골부터 그랬다. 아무 무늬 없는 상의 속으로 부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마른 몸이 그랬고. 수줍게 인사하는 맨발은 또 어땠는지. 외모, 행동거지 할 것 없이 모조리 섹시했다. 귀여우면서 동시에 섹시해. 나른하면서도 통통 튀는 묘한 섹시함이었다.


이 섹시함에는, 그의 귀여움에는 조금의 의문의 여지도 없었다.

시아준수가 엘을 끄집어낸 것이다. 글자 그대로. 만화 속 엘을 ‘끄집어냈다.’ 투디를 쓰리디화 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위화감? 그게 뭐죠? 엘 특유의 자세에서 풍기는 나른함과 시아준수의 탁월한 해석력, 빼어난 몸놀림이 만나니 이것이 바로 샤엘이었다. 이를 일러 ‘샤엘화’라 명명한다면, 바로 이것이 오늘 그가 선보인 brand new 신상.

극 중 샤엘화가 돋보였던 장면은 모두 백미였는데:

- 샤엘 기본자세
- 그 자세 그대로 폴싹 솟아올라 일어서는 동작
- 그랬다가 그대로 폴싹 솟아올라 다시 앉는 동작 (샤엘 기본자세 대로 앉았다가, 비스듬히 옆으로 누웠다가..)
- 잔을 들어 올리는 손등
- 딸기를 집어 올릴 때의 엣지 있는 손가락
- 사탕을 먹을 때 인사하는 혀
- 사탕을 앙 물어 통통해진 볼
-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구부정히 걷는 등
- 시아준수도, 샤토드의 것도 아닌 제3의, 샤엘의 걸음걸이
- 다리 난간에 구부정히 주저앉던 자세
- 철퍼덕 주저 앉았을 때 동그랗게 말린 등
- 가끔씩 턱을 치켜올린 채 내립뜨는 몽롱한 눈

(는 차후에 이것을 문장으로 풀어서 쓸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리고 테니스씬. 

그의 말대로 꽃이었다. 적어도 데스노트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 이후에는 이것밖에는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마음을 앗아가는 장면임이 틀림없었다. 테-니-스라는 이 세 음절이 이렇게 황홀한 조합일 줄은 이전에는 미처 몰랐지.

시아준수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태가 나는 사람이 작정하고 몸을 쓴다. 어깨를 어떻게 그렇게 쓰지? 어떻게 그렇게 우아하게 어깨를 튕겨낼 수 있지? 공을 쳐 내는 순간의 반동에 밀려나는 어깨를 표현하는 움직임이 너무도 유려했다. 그림 같았다.

테니스 치기 전 몸 푸는 뒷모습(라이토는 앞모습)은 또 너무 본격적이고 진심이라 귀엽기까지. 엘 같기도 하고, 언뜻 시아준수 같기도 했다. 추꾸장에서 스트레칭하는 단장님 생각도 나고.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이 닮은 구석도 있네. 승부욕.



연기적 요소가 유달리 기억에 강하게 남는 공연이었어서 노래 이야기를 이제야 하는데. 1,2막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넘버는 <변함없는 진실>.

쇼케이스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샤엘의 다른 모든 넘버와 비교해도 압도적이었다. 1막에서 답답했던 음향도 이 즈음엔 개선되어 사운드적으로도 좋았네. 절정에서 고개를 옆으로 서너 번 털던 동작은 샤엘적으로도, 시아준수적으로도 멋있었다.

또 아마 여기서였던 것 같은데. 철퍼덕 주저앉은 채로 등장하는, 현실 소리 날 정도로 귀여운 샤엘의 공이 1위의 견인이 아니었다면 거짓말. 망연자실한 듯하면서도 불타오르는 투지로 이글이글한 눈동자도.



음향은 역대 뮤지컬을 통틀어 가장 답답했다. 특히 1막. 소리는 멀리서 들려오고, 가사는 창에 가로막힌 듯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순간이 많았다(특히 앙상블). 덕분에 이렇게까지 가사를 소거하고 멜로디만 들은 극은 처음.
 
하지만 역시 시아준수. 존재만으로 공간을 채운다. the game begins의 무대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엇이 따로 있을 필요도 없었다. 스테이지가 회전하며 뒷모습이 돌아가고 정면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얼어붙는 것 같던 공기가 유난할 정도로 좋았다. 이게 바로 시아준수의 뮤지컬이고, 이것이 첫공이지ㅡ싶던 순간.



마지막으로,

개막 전 시아준수는 ‘샤토드를 뛰어넘는 캐릭터가 될 수 있을까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에 대해 판단은 관객의 몫이고, 자신은 그저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 답했다.

시아준수로부터 이토록 중차대한 판단을 위임받은 관객으로서 프리뷰에서의 샤엘에 대해 말한다면, 샤엘은 샤토드의 영역 밖에 있는 존재라 말하고 싶다.
샤엘은 새 옷이다. 그것도 막이 올려지기 전, 그가 '감히' 예고했던 것처럼 지금까지 보여준 바 없는 완벽한 신상이다. 단 하루, 고작 시작에 불과할 세 시간 남짓을 보고도 나는 단언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쁘게 인사했다. 

안녕 샤엘. 올여름 잘 부탁해.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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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6.20

1. 샤엘은 (아우터가 있긴 하지만) 단벌신사다. 하지만 이 단벌이 매우 섹시하므로 문제없다.
2. 디테일 애드립이 다채로울 것 같다.
3. 깐샤엘을 만날 일은 없겠지?
4. 샤엘이 초코과자 한 입 베어물려 할 때마다 방해하던 수사팀 부들부들.
5. 샤엘이 먹은 것은 딸기, 우유? 커피?, 초코과자(시도), 막대사탕 2-3개.

6. 아직 넘버 제목도 순서도 모르겠어서 극에 대해선 쓸 수가 없네.. 샤엘만 기억 속에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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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6.20

대사 연기에 대하여는 아직 쓰는 중인데. 프리뷰 후기에 댓글로라도 꼭 남기고 싶은 부분은:

훌륭하다 키라.

이미 충-분히 놀라고 있어요, 야가미 국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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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6.20

대사 연기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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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6.20

엘이 더욱 마구마구 말을 해주었으면, 바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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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6.20

테니스신 휴식 시간에 라이토에게 물 주고, 땀 닦아주는 여학생들은 군단을 이루는데 엘에게는 한 명뿐이다. 그 한 명마저도 물병을 꼭 쥔 채로 엘을 염려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기만 한다. 보고 있지만 말구 한 모금 마시라고 건네줘요.. 샤엘도 목마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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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6.20

프리뷰에서 없었던 것

- 뮤비에서 나온 엘의 세트장을 본공연에서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엘과 라이토의 수갑으로 이어진 우정

- 와타리

- 두뇌싸움

연꽃

15.06.20

오늘(첫공)은 극을 좀 더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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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6.21

아, 아니야. 테니스신에서 물병을 건네주기는 한다. 하지만 샤엘이 받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