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신이 네 이름을 노트에 적었어."
순간이었다. 아득해진 얼굴로 아주 약간만 고개를 젖힌 채, 그대로 눈을 감았다. 금세 다시 돌아온 눈동자는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은 빛이었다. 그게 운명이라면, 바둥쳐도 벗어날 수 없음을 직감한 판단이 그 얼굴에 서려 있었다.
밤공의 라이토는 더욱 얄밉게도, '네 이름을 적었다?'의 마지막 음절을 올려 약 올리는 투로 건넸다(극 중 인물을 때리고 싶었던 건 처음이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한껏 신난 자와, 승리를 목전에 두었음에도 패배를 인정해야만 하는 이의 감정이 교차하는 공간. 마음으로부터 후자의 사람인 나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휘말린 그의 모습에 심장이 저몄다.
라이토를 쏜 직후 양손을 번갈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 가득 들어찬 망연함에 눈이 시렸다. 총을 들지 않은 왼손을 눈높이로 들어 올려 물끄러미 응시하던 낮공과는 달리 밤공에서는 왼손과 오른손 모두를 번갈아 들어 올리며, 멀거니 보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본인의 의지였는지를 되묻는 듯한 동공의 떨림이 아팠다. 그리고 분명한 자의식으로, 분노로 라이토를 재차 겨누었을 때. 흐느낌이 섞여들어 거친 숨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약했다.
두려웠을까. 화도 났겠지.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울분이 섞인 듯한 숨을 가쁘게 내뱉는 것 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볼수록 허망하게 마음을 조각내는 극이다.
*
The Game Begins. '게임이야'를 부드럽게 끌어내며, 평소와 달리 앞음절에서 미간을 찡긋거렸다. 낮밤 모두. 가성으로 처리하는 소절은, 밤공에서는, 특히 끝음을 매우 공들여 부드럽고도 나긋하게 장식했다. 마치 음을 두 손으로 그러쥐는 것처럼.
고등학생이라 말하는 목소리는 어제보다도 훨씬 낮아졌다. 원래 속삭이는 느낌이 강했다면 오늘은 명확하게 대사의 느낌이었다. 너는 내 손바닥 안에 있어, 키라를 향하여 선전포고하는 것도 같았던.
비밀과 거짓. 새삼 시아준수가 무대 위에서 딸기를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왜 그리 귀엽게 느껴지던지.
키보드를 두드리기 전 혹시? 하는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부릅뜬 것은 밤공이 처음이다. 늘 큰 표정 변화 없이 무감하고도 섹시하게 키보드 쪽으로 흘긋 시선을 던졌을 뿐이었는데. 밤공만의 또 다른 에피소드로는 브이자로 앉은 자세에서 기본자세로 바꿀 때 팔꿈치로 딸기그릇을 밀어 넘어트릴 뻔했다는 것.
낮공에선 상의의 반란(?)이 큰 역할을 했다. 사신의 눈에 관한 대화를 듣고 서서히 주저앉기 시작할 때, 오늘따라 뒤로 젖혀진 상의 덕분에 목 뒤의 능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뿐아니라 키라는 당신의 아들과 변함없는 진실에서는 오른쪽 어깨가 그대로 드러나서 깜짝 놀랐네. 의자에 착석하여 대사할 때 특히. 하하. 시아준수는 어깨선도 참 예뻐라.
밤공은 새 옷이었는지 막 다림질한 자태가 역력하였는데, 낮공의 상의는 대단히 꼬깃꼬깃했다. 어깨 둘레는 잔뜩 늘어나 있고, 가슴께에도 손톱으로 찝어놓은 듯이 늘어난 자국이 두 개나 있어 마음이 이상했다. 세탁도 다림질도 하지 않고 입던 옷을 계속 입는 것 자체가 엘의 성격인 느낌이라. 흑흑.
키라는 당신의 아들.
낮공. '어맛' 하며 놀라는 형사를 돌아보는데, 눈동자를 먼저 도로로 굴린 후 고개가 시선을 따라갔다. 우왕. (왜인지 시아준수의 눈동자가 굴러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눈이 크고 예뻐서 그런가.)
그리고 브라우니 쌓기에서 굉장히 귀여운 모습을 보았다. 두 번째로 쌓은 브라우니가 가장 밑의 것보다 훨씬 두껍고 커서 탑이 위태로운 모양이었는데, 그걸 느꼈는지 마지막 세 번째 브라우니를 굉장히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려놓아서 ㅋㅋ 귀여웠다.
낮밤 모두 공통되었던 변화는 "나머지 97퍼센트"라 말할 때 왼손가락 검지를 사용한 움직임이 추가되었다는 것. 낮공에서는 손가락을 부채질하는 듯이 까딱였고, 밤공에서는 검지를 한 바퀴 빙그르르 돌렸다.
여기서 뿐아니라 전반적으로 검지로 표현하는 동작들이 많아졌다. 미사를 수사할 때 특히. 걸려드는 미사를 내려다보며 검지를 나긋이 까딱까딱. '렘'이라는 속삭임에 멈칫,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곧바로 곤두세워 하늘을 향하게 하였던 것. 소이치로가 끼어들어 방해하자, 세웠던 검지를 짜증스럽게 풀어내던 것까지.
또 사신의 눈에 관한 대화를 들을 때 (밤공), 웃으며 류크를 가리키던 검지가 그대로 유레카! 하듯이 하늘로 향하던 것도.
캠퍼스. 미사에게 전화기를 돌려주겠다는 라이토의 말에, 허리를 곧게 펴며 훗하고 웃었다. 그럴 수 없을 텐데? 하던 눈빛. 이어서 미사가 제2의 키라인 증거를 나열하면서는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소이치로와 사탕과 엘의 신. 낮공. 마지막 대사. "만약, 있다면요?"에 방점을 찍는 고갯짓이 남달랐다. 소이치로를 향하여 고개를 갸웃하는 움직임이 '이래도? 이러면 어쩔 건데?' 하고 약 올리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비스듬히 기울인 고개 안으로 사탕을 달그닥 거리며 넣기까지.
*
스트레칭. 어제와 같았으나 마지막의 2차 파닥임이 더 늘었다. 파닥임을 끝내고도 직각 자세를 바로 풀지 않았다. 그 상태 그대로 대사를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몸을 풀어냈다. 낮밤 모두. 스트레칭 자세에서 바로 대사를 넣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탕은 낮공은 두 번 모두 오렌지와 하양의 1/2
밤공은 첫 번째는 연분홍과 하양의 1/2, 두 번째는 핫핑크.
잡지 애드립은 오늘도 "맥심 3월호에 나왔었죠? 육감몸매 보고 완전 팬됐어요."
시아준수 외의 이야기:
류크의 솔로넘버. 류크가 라이토를 휙휙 돌릴 때, 그 언젠가 합이 기가 막혔던 하루를 빼면 늘 아슬아슬하게 라이토 스스로 돌아간다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급기야 두 번 모두 손을 놓쳤다. 두 사람이 꼭 견우와 직녀처럼 손가락을 한껏 뻗어 손을 잡으려는 모습에 나 그만 터졌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