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 자의식이 있다는 건 참 잔인한 일이다. 두 번의 좌절을 고스란히 겪어내는 눈동자를 보는 일이 힘들지 않다면 거짓.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보는 동공의 떨림은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라이토를 재차 겨누기 전, 혼란이 거세게 쓸고 지나간 얼굴 위로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어느 때보다 비장했던 얼굴엔 모종의 각오가 서려 있었다. 

이를 악물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총구를 겨누며,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목숨을 구걸하지도, 비통함에 자신을 잃어버리지도.

얼마나 끝까지 고아하게 그 자신이었는지. 마지막 순간, 웃음이 분명했던 그 흐느낌에 그를 위하여, 그의 어깨를 도닥여주고 싶었다. 

그래요. 당신이 옳았어. 


*


비밀과 거짓. 브이자 자세로 딸기를 먹다가 자세를 풀어내기 전. 라이토를 따라가던 동공에 호기심이 얼룩졌다. 동공의 이런 움직임은 처음. 

류크에게로 뻗어진 오늘의 손가락은 검지뿐만이 아니었다. 손가락 전체로 마치 류크의 형상이 만져지는 것처럼 허공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예의, '그래' 하는 듯하던 웃음. 

마지막 듀엣. 거짓말과 비밀을 자유롭게 이용하여. 결계를 두른 것처럼 단단하게 대기를 감싸 안은 라이토의 목소리가 반투명 막과 같았다면, 그 막을 꿰어 뚫어버릴 것만 같은 소리로 그가 맞섰다. 받아치면 다시 찌르고, 튕겨 나오면 재차 들이찌르고.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어서는 두 사람이 동시에 맞찌르고. 그래, 창과 방패의 대립을 소리화한다면 이런 것이지 않을까. 
마지막 음. 바로 너'야'가 되어서는 그가 찌르고 라이토가 내치는 구도가 삽시에 뒤집혔다. 그의 목소리가 공간을 풍성하게 둘러안고, 라이토의 높은음이 장창이 되어 사방을 꿰찔렀다. 아아. 소름 돋아서. 듣고도 믿을 수 없던 청각적 대치. 처음부터 좋았는데 더 좋아진다. 죽음의 게임이 한 악보의 높은음자리라면, 비밀과 거짓은 낮은음자리랄까. 하나를 고를 수 없다. 


정의는 어디에 reprise. 박수를 치고 싶어 손이 쑤신다. 무대로 일제히 쏠린 모든 시선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몰입을 유지하게 할 정도로 좋았고, 그런 만큼 더더욱 크게 박수쳐주고 싶었다. 미사는 그냥 2막에서 데스노트를 주우면 안되는 걸까요? 여기서 짜잔, 엔딩하고 엔딩에 걸맞도록 큰 박수를 쳐주고 싶어. 

특히 정의란 무엇인'지'의 끝음. 유난히 높고 날카로웠다. 한 차원 다른 음 같기도 했고. 오늘 1막에서 내내 그가 들려주었던 찌르는 소리의 최종장 같았다.


The Game Begins. 가성으로 처리하는 부분의 소리가 나날이 풍부해진다. 비로소 막을 올리는 선언의 소리. 오늘은 특히 내가 상대해주'지'의 끝음이 깊고 그윽했다. 전반적으로도 깊게 긁는 소리가 많았다. 고등학생이야는 오늘도 낮은 어조였는데, 훨씬 더 '회심'의 말투였다.


"나도 괴로워요." 이 대사를 하기 직전. 잠시 눈을 질근 감았다 떴다. 살며시와 질근의 중간 지점의 무게감으로 눈꺼풀이 움직였는데. 그래서인지 오늘은 다소간의 진의가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하지만 여전히 그 괴롭다의 깊이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안을 드러내 보여주지는 않는다.

주머니를 찾아라! 는 오늘도 있었다. 죽음의 게임. 꺾은 돌출에서 휙 돌아 본무대를 향하는 순간 주머니에 손을 꽂는 타이밍에. 코트는 멋있게 젖혔으나 상의가 주머니 입구를 봉쇄하고 있던 탓에 한 번에 손을 찔러넣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직후부터 귀여움 다량 방출. 손가락만을 재빨리 꼬물꼬물 움직여 상의를 약간만 들추어내더니, 그대로 쏘옥 골인. 아아 귀여워. 아아 귀여워. 다람쥐 같았어ㅜ

그의 손가락이 귀엽기만 했던 건 아니다. 취조신. 나른하게 까딱이는 검지가 마치 추처럼, 미사의 심중을 가늠해내는 모습은 서늘했고, 섬뜩했고, 섹시했다.

시아준수는 확실히 엄청난 배우다. 무대 위의 모든 움직임을 사전에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하여 만들어내지만, 정작 무대 위에서는 연기의 태가 없다. 그저 그 자체로서 샤엘이야. 취조하는 그가 얼마나 눈빛 깊은 곳까지 무섭도록 엘인지, 소이치로를 비웃는 어깨의 들썩임 하나까지도 얼마나 엘인지. 이 경이로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나날이 감격스럽다.


*


오늘의 애드립은 "이거나 드세요" (키라는 당신의 아들). "비키니 사진 보고 완전 팬됐어요."

스트레칭은 (스트레칭 자세에서 대사하는 것까지) 주말과 같았으나 다만 가볍게 한 번 고개 돌리기가 추가되었다. 
사탕은 두 번 모두 오렌지와 하양의 1/2

그리고 어깨. 주말 낮공에서도 그랬는데, 왜 이렇게 마음을 이상하게 하는지. 아이의 살결 같기도 하고,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근육이 동그랗게 잡힌 어깨는 청년의 것임이 여실하여 설레기도 하고. 예쁜 얼굴을 봐야 하는데 시선을 강탈당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시아준수 외의 이야기:
류크가 사과를 놓친 것은 이번이 세 번째. 그런데 오늘은 능청스럽게 "한 번 더!" 를 외쳤다. 받아낸 사과는 한 손에 쥐고, 떨어진 사과는 주워들어 야무지게 주머니에 넣어두고 미사의 콘서트를 관람하던 류크.

댓글 '4'

송이

15.07.07

어제 브라우니 들고 형사 뒷목까지 들이댔던 것도 졸귀였어요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들이댄건 처음이지 아니었나, 깜놀.

송이

15.07.07

서두에 마지막 순간에 관해 적으시는 거 소설 같아요. 감탄합니다. 샤엘이 그려지는 느낌이야

송이

15.07.07

근데 어제 눈물이 흘렀던 건 아니죠? 이마쪽으로 무지 물기 있는 얼굴이라 놀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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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07

아. 제가 어제 왼블에서 보아서, 왼블의 각도상 유난히 형사에게 밀착했다고 느꼈던 게 아니었군요. 거리감이 전혀 없을 정도였는데. 역시 그랬어. ㅋㅋ 아아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