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왜 울었지. 커튼콜 때 막 눈물이 나왔다. 감정이입이 마구 되는데 정확히 무엇이 이입되는 건지 알 수 없어 알쏭달쏭하면서도 행복했다. 시아준수의 무대로부터 눈물을 선사 받는 그 순간이 역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행복한 밤이다. 아트센터 정문을 나서는 순간 밀려드는 눅눅한 밤공기마저도 산뜻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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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을 보면서도 울뻔하였던 부분이 있다. 변함없는 진실. 이 넘버에서, 정확히는 음향이 말썽이는 순간마다 샤엘과 시아준수를 동시에 본다. 오늘의 음향은 말썽이라기보다, 외려 훌륭한 측에 속했지만 그런데도 그와 엘을 동시에 보았다.
이 노래가 얼마나 Fresh Blood와 정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넘버인지 고스란히 느껴졌던 것부터. 어떤 무대도 장치 없이 외따로 빈 공간. 하나 있다면 그를 비추는 백색 조명뿐인 무대에서 덩그러니 홀로, 목소리와 연기만으로 온전한 드라마를 창조하는 그가, 마음 시릴 정도로 좋았다.
노래적으로도 훌륭했다. 허상'인'가, 의 예고되지 않았던 긁는 소리. 다리를 모아 일으키는 동작과 긁어당기는 이 소리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흡사 그가 흩뿌려진 단서들을 끌어모으는 듯한 느낌을 연출했다. 이게 시작이었어. 이 소리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탁성을 터트려냈다. 절정은 어둠 너머 저편에'서'. 전에 없던 포효. 돌출 최전방에 서서 그렇게 온몸으로 흩트려 내는 절정이 불러일으킨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곡이 끝남과 함께 감전된 것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그래, 오늘 최고였어. 엘도, 그도.
마지막 순간에서는 오늘도 주먹을 쥐었다. 라이토는 이틀 만에 다시 끝음을 올리는 약 올리는 말투로 돌아왔는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들을 때마다 화를 부채질하기는 하지만, 이 말투가 이 상황에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오늘 보여주었던 '처음부터 다 보였어'의 얼굴은 도무지 어떻게 이름해야 할지 모르겠다. 울먹이는 듯 축 처진 눈매와 혼란을 품은 눈썹, 그러나 올곧게 상대를 주시하던 동공. 노트의 격류에 휘말려 운명의 끝을 향해 달려가지만 자의식만큼은 온전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던 그 눈동자의 빛. 이어지는 가사로도 말해준다. 널 놓치지 않을 거야. '너'에는 라이토도, 엘 자신도 포함되는 것이라 여겨졌다.
재차 라이토를 겨누기 전, 두 손을 내려다보며 품었던 혼란은 팔을 내려놓음과 함께 완전히 갈무리했다. 손이 아닌 라이토를 향한 시선에는 죽음을 받아들인 기색이 엿보였어. 그렇다고 절망하였다거나, 포기하였던 건 아니다.
그런데 라이토를 재차 겨누며 분노에 가깝게 떨리던 입술. 그 표정의 의미는 정확히 무엇일까. 그토록 가벼운 자만으로 생과 사를 멋대로 심판해온 라이토에 대한 분노? 살인자의 허무맹랑한 자기합리화에 대한 노여움? 확실한 건 자기 자신의 패배에서 기인한 얼굴은 아니었다는 것. 게임의 승패는 두 손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완전히 그의 안에서 해갈된 후였으므로.
죽음. 어제보다도 훨씬, 웃음에 가까웠던 최후의 얼굴.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어. 그 모습 위로 변함없는 진실 reprise의 구절이 겹쳐졌다. 사신의 그림자 뒤에서 떠오른다는 변함없는 진실은, 그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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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me Begins. 어제와 확연히 달랐다. 어제의 그가 고요하게 소용돌이치는 분노를 태풍의 눈 안에 품고 있었다면, 오늘은.. 오늘은 제목처럼 놀이를 즐기는 아이였다. 모종의 기대감을 품은 듯한 눈빛은 어제 보여주었던 분노의 기색과는 정반대의 것.
절정은 인정사정없는 '게임!' 두 팔을 가로 확 펼쳐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헉. 심장아. 그의 손끝에서부터 이 위험한 게임의 서막이 열리는 것만 같아 콩닥콩닥.
그리고 오늘의 눈찡긋은 게'임'이야.
비밀과 거짓. 키보드를 콕 두드리기 전 어제는 두 눈을 부풀려 아, 하는 얼굴이었다면 오늘은 실제로 아 하는 입 모양을 만들었다. 이어서 '확인해' 달라던 목소리는 지윽하고도 부드러웠으나, 거부할 수 없는 강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장면. 딸기 간택할 때 고개를 비스듬히 뉘이며, 딸기 그릇의 딸기들을 내려다보던 시선이 지나칠 정도로 탐미적이라 지켜보던 나의 마음이 그만 까맣게 타버렸네. 부럽다 딸기야.. 브이자 자세로 앉아 마지막 한 입을 베어 물 때, 유혹하듯 부드럽게 뻗어져 나오던 분홍빛 혀 역시.. 부럽다 딸기야..
그건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는 말에는 한심해 하는 표정과 더불어 잔을 든 손의 중지와 약지로 찻잔의 옆면을 부드럽게 내려쳤다. 혀를 차는 듯이. 쯧쯧. 자신도 모르게 그럴 수도 있죠, 는 이런 가능성은 생각도 못 하는 거니? 하는 뉘앙스였고. ㅋㅋ
무엇보다 코너로 몰'아'주지의 어린 짐승미 때문에 심장이 아프다. 라이토와의 일차 듀엣 마지막 듀엣 모두 아가짐승미 폭발. ㅜ
키라는 당신의 아들. 어깨.. 왜 자꾸 보고 있기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어깨인지 모르겠다. 어깨.. (하략)
키라에 대해 밝혀진 것들을 나열할 때는 브라우니를 쥔 채로 허공을 두어 번 콕콕 찍어가며 강조했는데 그게 그렇게 귀여웠다.
더불어 잊지 못할 소절. 이 모든 데이터들이 '은밀히' 겹쳐지는 그곳에. 은밀히, 라는 단어가 노랫소리를 타고 흐르는 순간 유혹적인 곡선을 품었던 눈썹이 그림 같았다.
대사의 톤은 7일의 것처럼 강경하지도, 8일처럼 강하지도 않았으나 묘하게 적극적이었다. 그 적극성이 마치 선전포고를 하는 듯했다. 수사관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진정한 목적은 경찰의 힘이 필요해서도, 합동수사를 위해서도 아니라, 키라의 지척에 있는 야가미 국장에게 네 아들이 키라이고 내가 곧 밝혀낼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예고를 위함이었던 것처럼 여겨졌다.
죽음의 게임. 고개 돌리는 순간과 드럼 소리의 합은 오늘도 완벽했다. 이런 모양 (┘)으로 리드미컬하게 고개를 돌리는데, 끝지점에 이르렀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쿵 치고 들어오던 박자. 아아.
왼블에서 보았을 때 귀여움이 폭발하는 이유ㅡ형아 옷 입은 느낌은 소매가 손등을 완전히 뒤덮고 있기 때문이 큰 것 같다. 멋있는데 귀여워서 원.
소이치로와 사탕의 신. 이제 그건 힘들겠네요. 하며 뒤돌아보기 전에 웃었다. 씨익, 입꼬리를 올려 웃음을 그려 넣었어. 헉. 개인적으로 조금 충격을 받았다. 엘과 라이토는 정말이지 종이 한 장의 차이일 뿐이다. 자체 판단하에 범죄자를 소거해나가는 라이토나, 살인자를 잡기 위해 사형수를 이용하고 형식상이지만 어쨌든 동료인 자의 목숨을 방조하는 엘이나.
테니스 시합. 무게중심을 뒤로 젖히며 상체를 일으키는 그림 같은 동작이 오늘은 본격적으로 안무화되었다. 여기서 뿐만이 아니라, 움츠렸던 몸을 곧게 세울 때 거의 내내 이 방식으로 무게중심을 뒤로 옮겨 몸을 일으키는데.. 매우 예쁘다. 시아준수 예뻐서 좋아합니다.
시합 중, 시아준수적으로 귀여웠던 부분. 나답지 않잖아, 정신을 차리자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와 라이토를 기다릴 때. 조용하지만 쌕쌕 숨 고르느라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가슴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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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애드립:
치사 뽕인가요? 의 첫 등장. 정확히는 뽕과 뿡의 중간지점적인 느낌이었다. 이 오묘한 발음마저도 엘다워서 참.
맛있는데..
맛있는데..
이거나 드세요.
맥심 3월호에 나왔었죠? 육감 몸매 보고 완전 팬됐어요.
사탕은 두 번 모두 샛노랑
참. 정의는 어디에 reprise. 오늘은 오랜만에 뛰지 않고 가볍게 걸어 들어갔다.
시아준수 외의 이야기:
1. 사신의 듀엣. 류크가 뒷주머니로 사과를 열심히 구겨 넣는 모습을 본 뒤로는 계속 그것만 보인다.
2. 나의 히어로 넘버 후 미사는 항상 도도할 정도로 몸을 홱 틀어 퇴장하는데, 2막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와 굉장히 동떨어진 부조화스러운 동작이라는 생각을 늘 한다. 지나치게 차갑고, 칼 같고, 도도한 분위기가 미사가 아니라 배우의 것인 느낌을 주기도 하고. 완전히 암전되기 전이라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이는 부분이라 난감하다. 무대 벽 뒤로, 객석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조차 엘의 걸음걸이인 시아준수와는 다르다.
3. 야가미 국장님은 엘과 몇 번 수사해본 적이 있으시다면서, 엘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없었던 걸까? 문득 린드 L 테일러가 진짜 엘이 아님을 국장님도 몰랐다는 것에 의문이.. 키라 사건에서도 목소리를 변조하지는 않는 뮤지컬 속 엘이, 이전 수사에서라고 목소리를 변조하여 들려주었을 것 같지는 않고. 이전에는 서류상으로만 함께 수사했던 걸까. 아니면 국장님이 엘의 목소리를 잊은 걸까. 그런데 엘의 목소리,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그런 소리 아닌가요?
맞아요. 저도 공연에서 준수오빠 퇴장할때, 암전된 순간에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으로 뒤쫓곤 하는데, 끝까지 엘의 걸음걸이로 걷더라고요. 프로정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