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도 유치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 첫 대면(린드 L 테일러의 죽음)에서 파악된 분명한 하나는 이것. 다른 무엇보다 이 사실이 그의 흥미를 건드린 것 같았다. 거울을 보는 것도 같은 상대가 호기심을 자극했겠지. 흥미로움과 혐오감이 동시에 두 눈 가득 번뜩였다.

오늘의 the game begins에서 그가 이 미지의 상대를 향해 어떻게 본능적으로 반응했는지는 처음 등장한 스타카토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내가 상대해주지ㅡ에서부터 가성 내내 음절 단위로 톡톡 강조되었던 발음. 스타카토 위에 특유의 밀고 당기는 박자감각을 더하여 완전히 새로운 노래를 정립해냈다. 그래. 새롭고 신선했다. 톡톡 끊어질 듯 이어지는 음은 그 자체로 생각의 송수신을 형상화하는 소리였다.

주사위가 던져진 후. 비틀비틀(유난히), 걸어가다 우뚝 멈추어섰다. 이놈, 잡았다. 매끄럽게 돌아서는 어깨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고등학생이라는 나직한 선언 역시.
'시작할까'는 어제의 거친 결이 완전히 사라진, 여유롭고도 강고한 울림이었다. 동면 후에 막 깨어나 터트려낸 포효가 어제의 것이었다면 오늘은 오래도록 기다려온 순간을 맞이하여 모든 준비를 마친 이의 여유가 느껴졌다.


비밀과 거짓. 키보드를 두드리기 전, 오늘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으로 아, 하는 표정을 만들어냈다. 눈썹에는 그 어떤 미동도 없이 눈만을 확장한 이런 표정은 오랜만. 부릅뜬 눈과 동시에 다른 모든 움직임은 멎어버렸던 그 1초가 꼭 스위치 온이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사신의 대화를 듣고 난 직후에는 콧잔등으로 웃음이 모여들었다. 눈으로도 웃지 않고 입꼬리는 아주 약간만 올렸을 뿐이라 얼굴 그 어디에도 웃음의 형상이 엿보인다 할 수 없었는데, 신기하게 코끝에는 웃음기가 완연했다.
깨달음을 자각하며 주저앉으면서는 머리를 감싸듯 두 손을 머리의 위치까지 끌어올렸다. 이것도 오랜만.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건 엘밖에 없다구요! 라는 말이 들리기라도 하는 듯 웃는 그 타이밍이 좋다. 중의적인 순간이다. 수사관들을 비웃는 것도 같고, 키라의 단서에만 몰두하여 수사관들은 안중에도 없는 순간이기도 한.
네가 날 죽이길 원한다면ㅡ을 은밀하다 싶게 속삭인 후엔, 본색이라 부를 법한 본성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거짓말과 비밀을 자유롭게 이용하여. 갈퀴처럼 잡아채는 소리였다. 눈앞에 키라가 있었다면 그 소리에 짖이겨졌을 것만 같은. 어쩌면 라이토의 것보다도 거침없고, 단선적일 정도로 본능에 충실했다. 오늘 특히 그랬다.

그리고 오늘은 유난히, 내내 팽팽하게 각진 손끝에 눈이 갔다. 핏줄이 잔뜩 돋아 앙상하다 싶을 정도의 마른 손가락. 온 신경이 손끝으로 곤두서있는 듯한 특유의 제스처. 시아준수가 아닌, 엘의 것. 


정의는 어디에 reprise. 즐거워 보이는 얼굴은 여전히 낯설다. 웃는 얼굴에서는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그 몫의 소절도.

악마의 본성을 이끌어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그다. 키라가 악마가 되기까지는 그의 협조와도 같은 묵인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어. 키라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자신으로 믿게 한 사형수의 목숨을 버렸고, 키라가 주창하는 정의란 모순에 불과하다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 FBI를 제물로 삼았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정의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걸까. 당신도 키라와 전혀 다르지 않다. 다.. 나빠...
정말, 정의는 어디에... 이 극에 정의는 있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어제부터 계속 충격을 주는 이 넘버..


키라는 당신의 아들. 오늘도 이어진 어깨요정의 활약. 이쯤 되면 드러나는 오른 어깨도 '이 자세가 아니면 안돼요'에 포함되는 듯하다. 노출의 정도도 오늘 최대치를 경..신. 

대사톤은 계속하여 강하게 유지한다. 빠르고도 단호하게. 언뜻 전투적인 속사포에서 토 다는 걸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고함도 느껴졌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가장 그의 흥미를 이끄는 단서. 즉 지독히도 유지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 오늘은 불현듯 이 대목의 발음에서 그의 고집이 느껴졌다. 이 성격적인 측면에서조차 내가 밀리는 건 싫다는 집념이. ㅋㅋ
본론에 진입하여(건들면 바로 덤비고~) 번뜩이는 눈에는 확신과 혐오로 범벅된 빛이 깜빡거렸다.

'저도 야가미 라이토가 키라가 아니길 바랍니다.' 웃음기가 배어있는 말에서는 그의 내심이 들렸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리고 '은밀히'의 눈썹. 이건 볼 때마다 써야지♡


죽음의 게임. '아버지를 존경하고, 정의감도 강하고'에서 약한 웃음기. 비웃는 어조. 키라인 네가? 하는 듯한. 

늘 생각해왔던 건데 이제야 쓰는 건, 두 사람이 본무대로 돌아갈 때 엇갈리는 시선. 이 교차가 좋다. 먼저 반계단에 도달한 라이토가 그를 살피는 동안, 그는 시선을 못 본 체하며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반계단으로 돌아오는 중. 라이토의 시선이 떨어짐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그의 고개가 라이토에게로 돌려지는 이 팽팽함이 좋아. 자석의 극처럼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이끌어 당기는 모습. 이 순간의 엇갈림은 꼭 그런 느낌이다. 타이밍도, 두 사람의 연기도.


변함없는 진실. 도입부. 아주 얕은 웃음이 입가를 비집고 나왔다. 내내 그랬다. 스며들 듯 스며들지 않고,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묘한 미소가 입 끝에 맴돌았다. 그러다 '나의 무의식은 몸부림치고 있다'는 순간 흑화하는 그를 보았다. 내내 맴돌기만 하던 미소가 두 눈을 치켜뜨는 것과 함께 사나운 웃음으로 변모했다.

미궁 속에 갇혀버렸다면ㅡ은 찰나적으로 숫자들과 데이터의 얼굴이었다. 이성에게로 의식을 완전히 넘겨준 표정. 그 순간의 표정이야말로 그가 모든 능력을 이끌어내는 얼굴이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직후의 '그래 좋아 인정하지,' 에서는 여전한 나르시시즘과 자신감. 그 얼굴로 이어가는 추리란.. 노래로 추리하는 남자가 이렇게 섹시할 수 있다는 걸 요즘 여실히 느낀다.
생각에 골몰하는 옆모습은 설핏 화가 난 것처럼도 보였다. 한낱 키라가, 이 단계까지 자신을 이끌어냈다는 것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고 이 단계까지 진입하도록 내버려둔 자신에 대한 분노 같기도 했다. 후자에서는 뼛속까지 침투한 그의 나르시시즘이 느껴졌고.

절정에서는 음절마다 고개를 찍어눌렀다. 확신을 짓누르는 얼굴, 동시에 되묻는 얼굴이기도 했다. 이것으로 되겠는가? 이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는가?

그★리★고. 어둠에서부터 빛까지 용솟음치는 얼굴은 오늘도 보았다. 이 각도에서 바라보는 변함없는 진실과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이건 마치 Fresh Blood에서 무대를 가로로 횡단하던 백작님을 기다리던 때와 비슷한 두근거림이야. 검푸른 바다를 온몸에 휘어감은 채 어두운 진실, 그 자체인 것만 같던 그. 얼마나 그림 같이 극적인지..


소이치로와 사탕의 신. 어느 때보다 변함없는 진실과 이어지는 느낌을 주었다. 조명이 들어온 직후의 첫 얼굴부터 그랬다. 분기가 남아있는 눈이었다. 전력을 쏟을 수 있는 상대를 기다려왔음과 동시에, 전력을 쏟게 한키라에게 자존심 상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이 기묘한 분위기가 취조신의 가장 비인간적인 면모로의 전환에 탄력을 얹어주었다. 

과연, 취조신에서는 제2의 키라라는 애꿎은 제물에게 화풀이를 하는 느낌이랄까. 키라에게 복수를 한달지, 그런 느낌.

그런데 정말 여기서 시선을 내립뜬 채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사르르 미소를 머금은 입가로 사탕을 들이 넣는 얼굴이 정말정말 예쁘다. 숨 막히게 예뻐. 관능적이고 위험해.

대가를 치를 거라는 말에 받아치는 어조는 어제와는 달리 나긋해졌다(어제가 유난히 강하긴 했다). 그러나 표정으로는 여전히 강하게 되받아치며 반발한다. 건들면 바로 덤비고, 발끈하는 얼굴. 소이치로에게 잔뜩 들이민 얼굴이나, 비죽이며 비웃는 입술, 으쓱하는 어깨로. 


캠퍼스로 돌아가서. '나에겐,' 처음 생긴 친구니까. 오랜만에 여기서 숨이 먹혔는데 역시 이 느낌이 좋다. 진의와 비진의의 경계에 걸쳐진 느낌. 이마저도 엘의 의도이고 성격인 듯한 뉘앙스의 대사. 

내가 키라라고 생각하냐는 라이토의 물음에는 웃었다!! 처음이야! 늘 걸려들었다는 듯이 두 눈을 부풀리긴 했지만 여기서 웃은 건 처음. 뭘 물어 봐? 연기하는 거 다 보여, 이런 느낌. 대답은 오랜만에 살포시 내려앉는 느낌이 이닌 단호하게 맺는 어조의 '네.' 였다.


그리고 어제도 보았으나 깜빡 쓰지 못했던 것. 여기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웠다고 대꾸할 때만 해도 웃음의 가면을 쓰고 있더니, 전화기를 가져가는 라이토의 뒷모습을 향해서는 두 눈을 부릅뜨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도발하는 얼굴이었어. 라이토가 그 표정과 그 대사를 보고도 폭발하지 않았다니 대견할 정도. 

나도 괴로워요. 에서는 비진의적인 느낌이 보다 강했다. 살짝 영혼이 결여된 어조로, 초점 없는 눈동자로 던져넣듯 말했다.


변함없는 진실 reprise. 키라 못지않게 악랄했던 그의 눈동자에 의식도, 초점도 없는 모습은 오늘도 아팠다. 오늘도 그 얼굴을 보자마자 울먹울먹. 희미하게 사그라지는 목소리. 허상처럼 흩어지던 '너는 끝났다'는 선언. 

약절정. 어느 정도 스스로를 되찾은 얼굴에 빛이 스며들듯 웃음이 스쳐갔다. 살짝이었지만 눈썹과 눈 언저리를 찡긋하여 웃었다.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이 끝에 무엇이 있는지 감내하겠다는 얼굴에, 웃음이 지나간 자리 위로 경직된 각오가 내려앉았다. 


다이코쿠 부두 창고. '거기에 이름을 써서 사람을 죽인 거로군.' 평소와는 달리 발견의 기색에 기쁨이 적었다. 이렇게 허무하다니, 눈빛이 공허했다. 

그래서였는지 1차의 혼란도 짧고 조용했다. 대신 받아들임의 과정이 섬세했다. 시선을 살짝 내리깐 얼굴이 바닥을 쓸다가, 눈빛을 끌어올려 키라를 보았다. 각오를 마친 얼굴. 늘 이 대목에서 혼란이 쓸고 지난 자리에 내려앉는 고요한 빛이 마음에 맺힌다. 그 눈빛을 그대로 형상화한 소리가 바로 '처음부터 다 보였어.' 그러니 이 소리가 맺히지 않을 리 없지.

2차 혼란은 늘 1차보다 길고, 회오리친다. 자기 의지로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건 처음이겠지. 그것도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내달린다. 분노와 두려움, 놀람과 낯섦. 그 자신조차 처음 겪어보는 듯한 감정들이 숨으로 쏟아져나왔다. 통제할 수 없는 스스로에 놀라고, 처음 겪는 감정들에 또 놀란 것 같던 얼굴. 

총구를 스스로에게 겨눈 눈가에 오늘은 물기가 가득했다. 오른쪽 눈 앞머리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 한 자락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오늘의 웃음은 작았다. 오랜만에 흐느낌이 삼켜버린 마지막이었다. 



*


오늘의 귀여움: 
여보세요의 말투가 너무 귀엽다. 
주니어 챔피언이었다면서 고개를 살짝 내밀어 웃었는데, 너무 뿌듯해 보여서 귀여웠다. 
'경기에 집중해야지'는 처음으로 나무라는 어조였다. 늘 높은 톤에서 시작하여 낮은 톤으로 맺었던 음이 오늘은 낮은 톤에서 시작하여 더 그런 느낌을 주었다. 모자란 녀석을 어르는 말투로. 그렇다고 대놓고 약 올리는 느낌은 또 아니었고.

그리고 돌아왔다. 손대지 않고 팔을 이케 휘저어 소매 걷기. 옷이 너무 크고, 소매가 너무 흘러내리긴 해ㅎㅎ


*

오늘의 애드립:
치사빤슨가요?
달달한데..
이거나 드세요.
맥심 3월호에 나왔었죠? 비키니 입은 사진 보다가 다크서클 생겼어요. (오늘 옆자리 사람은 이 대목에서 발을 구르며 웃었다.)

사탕은 두 번 모두 핑크와 하양의 1/2

정의는 어디에 reprise. 요즘 어둠이 짙어서 그런가. 유난히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기 읏-챠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더는 퇴장할 때 뛰지 않아. 


그리고.. 오빠 오른쪽 어깨에 가느다랗지만 발간 상처자국이 있었다. 그것도 두 개. 긁힌 걸까? 다치지 말아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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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16

참. 오늘 딸기가 오랜만에 짜그마했다. 하지만 기어코 끄트머리를 남기는, 딸기보다 더 작고 훨씬 귀여운 앞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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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16

이건 기록 차원에서. 취조신 그의 첫 대사에서 마이크 음향사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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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16

빛 받아 눈가에서 반짝이는 그것이 꼭 눈물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물이라고 입 밖에 꺼내어 말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