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를 발견한 직후의 표정이 오늘따라 왜 이리 새로웠지. 그간 보지 못했던 각도에서의 얼굴이어서 그랬나. 

자, 노트를 만져봐. 실체를 드러내는 키라의 비밀을 포착한 순간, 그의 동공이 선명하게 부풀었다. 성큼성큼 두세 걸음만으로 단숨에 다가서서, 위대한 발견을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흥분과 떨림을 고스란히 담은 눈빛으로 멈칫. 라이토를 한 번, 노트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이윽고 떨림이 느껴지는 손목을 들어 올려 검지만을 정체불명의 물체에 허락했다.

류크의 기척이 느껴지는 등 뒤를 돌아볼 때도 그랬다. 다소간의 긴장과 떨림을 담은 숨소리가 나직하게 흘렀다. 마침내 확인한 사신의 존재에 얼마간 그의 얼굴을 채웠던 빛은 놀라움.

쏟아지는 진실 앞에서 그의 눈동자 안으로 여러 감정이 흘러들었다. 충격과 허무, 깨달음과 공허함. 그 모든 감정이 뒤엉킨 채 뒤죽박죽이었던 얼굴에서 모종의 결의가 피어올랐을 때, 그가 선언하듯 말했다. 처음부터 다 보였어.
'널' 놓치지 않을 거야. 움켜쥐는 것 같던 음성. 내가 가는 지옥의 끝으로 너를 함께 데려가겠다는 것처럼.

오늘 밤 네가 할 행동까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 연이은 라이토의 위장죽음. 자신이 노트의 지배하에 완전히 있었음을 절감한 눈동자가 지그시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차마 주먹 쥐지 못하고 오므렸다, 피기를 반복하는 왼손 틈으로 빠져나가는 자의식을 보았을까. 반대로 총을 든 오른손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흐름을 보았던 걸까. 마치 총이 그대로 그의 손에 달라붙기라도 한 것처럼, 저항의 기색도 없이 그대로 두 손을 내려놓는 얼굴이 고요했다.

라이토가 그 스스로를 겨누게 하였을 때 그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라이토를 겨눈 채 올곧게 멎어 있던ㅡ물론 얼마간의 분노와 결의를 품고 있던 눈동자가 시선의 방향을 잃고 정면의 어딘가로 흩어지더니, 지그시 눈을 감아버린 것처럼 희미한 빛을 냈다.

거역할 수 없다. 그것을 느꼈겠지.

최후의 순간. 그의 얼굴에 피어난 것은 시작도 마무리도 흐느낌처럼 들렸다. 웃음의 자락을 머금고 있을 뿐인 흐느낌처럼.


*

게임의 시작. 살긋하게 웃는 얼굴. 근데 그 얼굴보다 오늘 미성이 정말 예뻤다. 마치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 같던 음성. 순수와 잔인성이 함께 엿보이는 그를 그대로 드러내는 소리!

선하다 싶은 미성과는 달리 숫자들과 데이터는 생소하게 공명하는 소리였다. 무대 위에 존재하는 모든 감각세포를 후려쳐! 일깨우는 각성의 소리였다고 할까. 주문 같기도 하고. 처음 듣는 듯한 소리였는데.. 느낌 탓인지 진짜였는지는 다시 들어봐야징.


비밀과 거짓. 니가 가장 죽이고 싶은 건, 바로 나잖아~ 시작부의 노랫소리에서 유난한 즐거움을 들었다. 살그머니 입꼬리로 웃고 있기도 했고.

사신의 눈. 류크를 향해 뻗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윽고 검지만을 남기고 부드럽게 감싸 쥔 손안에는 그의 발견이 도사리고 있었다. 고개를 잔뜩 숙인 채 발견에 심취하는 기쁜 얼굴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렸던 두 손으로는, 마치 자신의 뇌파를 가늠하는 것 같은 물결치는 동작으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돌출 입구로 나와 웃을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엘밖에 없다구요!) 그 뒤의 스크린이 깜빡깜빡 명멸하다, 그가 노래를 시작하는 순간 깜빡임을 멈추고 호숫가의 물결처럼 부드럽게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사고의 단계를 시각적으로도 엿본 것 같아 짜릿함 두 배. 

마지막 듀엣. 절정. 게다가 오늘 유난히 낮게, 긁는 소리를 많이 내서! 깜짝.


정의는 어디에 reprise. 이렇게까지 내내 산뜻하게 웃은 적이 있던가. 처음이야. 그러다 노래를 시작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다문 입술을 앙 물어, 아주 살짝만 화를 표출해냈다. 


키라는 당신의 아들. 추리의 톤 내내 함께하였던 웃음은 또 처음. 특히 죽기 직전의 행동을 조종할 수 있다에선 예의 쉼표를 곁들이며, 브라우니로 콕콕 찍어 강조하기까지. 내내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얼굴은 가장 중요한 단서에서 더욱 크게 증폭되었다. '지독히도 유치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 웃음으로 얼굴이 반짝거렸어. 
이어지는 노래에서 오늘 가장 섬세하였던 결은 '생명이 하나둘씩 사라져.' 이 기이한 현상을 살뜰하게 살피는 관찰자의 얼굴로. 

이거나 드세요 직전에는 분명한 쉼표가 있었다. 스윽 둘러보고, 옛다, 하듯 떠넘겼다. 넘기는 동작이 다소 거친 느낌도 들었고.

이미 충-분히 놀라고 있어요 야가미 국장님. 에선 역시 말을 시작하기 전부터 짙게 끅끅 웃음을 끌어모으더니, 말을 맺기 전에 이미 정색했다. 재미있는 건 웃을 때나 굳을 때나 똑같이 온도는 같다는 것. 똑같이 차가워. 


변함없는 진실. 지난 주말 즈음부터인가. 받아들인다의 소리가 한 차원 증폭되었다. 생목인듯 아닌 듯 확장시켜내는 소리. 
정복해버려 역시 점점 거세진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강하게 시선을 앗아갔던 것은 횡단추리에서의 몸놀림. 어깨에 회전축을 두어 방향을 트는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강했다. 팽이가 돌듯 홱홱! 사고의 방향을 자유자재로 뒤트는 그의 뇌 속처럼 유연하고도 탄력적이었던 움직임. 격정적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ㅡ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포착해ㅡ어깨의 능선♡
절정에서 가장 악센트를 두었던 부분은 드러내는/너의 존재. '드러내는'에서 이 노래 안의 모든 확신을 함축한듯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소이치로와 사탕의 신. 단서가 없다는 말에 오늘도 쪽 소리를 선명하게 내며 사탕을 빼냈다. 이것이 의도한 디테일이었단 말인가! 놀라워랑.
횡단하며 소이치로와 주고받는 대사도 무척 핑퐁식이었다. 소이치로가 반박하기 무섭게, 여유롭게 되받아치던 음성. 재고나 토론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듯이. 


테니스 시합. 요즘 시합에서 가장 좋은 강세는 자, 따/라/와/봐. 봐에서 증폭되는 힘이나, 강하게 내려찍는 그의 고개나, 부푸는 동공이나, 라켓을 쥔 손에서 느껴지는 의지나 전부 다 좋다. 


취조신. 키라는 신이 아니야! 미사의 말에 거의 숨넘어갈 듯 씩씩 웃으며 좋아했다. 그래 미사, 바로 그거야. 하듯이.
소이치로에게는 유난히 정색했는데 특히 '자기' 자식의 죄를 탓하세요에서 분명하게 그르렁!


*

오늘의 애드립:
치사빤슨가요?
달달한데.
이거나 드세요. 
맥심 3월호에 나왔었죠? 비키니 입은 사진 보다가 쌍코피 터졌어요.

사탕은 분홍과 하양의 그라데이션, 샛노랑.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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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28

일어나서 경계선에 대하여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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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28

그래. 어제 변함없는 진실, 돌출로 걸어 나올 때 유난히 끄는 걸음소리가 선명했다. 쓰윽쓰윽. 돌아나갈 때도 터벅터벅 감정이 맺힌 듯한 걸음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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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07.28

변함없는 진실에서 돌출로 퇴장할 때 돌출 가장 끝 계단 앞에 이르러 잠시 멈칫하는 그 타이밍이 좋다. 걸음에도 운율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