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마치 엘을 먹어치운 것처럼 노래했다. '시아준수'로서, 이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데는 이 이상의 제스처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듯한 여유로움이 낯설고도 익숙했다. 노래의 순간순간에 배어있는 엘의 버릇들ㅡ횡단추리, 걸음걸이나 57회의 공연을 거듭하며 완성해낸 엘의 디테일ㅡ허상'인'가, 받아들인다, 정복해버려ㅡ만이 그의 엘이 실재하였음을 느끼게 했다. 이따금씩 엘의 잔재로 느껴지는 그 잔동작들이 아니었다면, 지난여름이 꿈인가 싶었을 정도로 그는 단 한 번도 엘을 되살려내지 않았다.

'시아준수의 아우라'만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좋았다.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엘을 완전히 체화시킨 그에게서, 일찌감치 그를 이루는 요체로서의 삶을 얻은 모차르트와 드라큘라, 죽음까지 전부 보았다. 이제 엘도 그 생명의 하나로 영원히 살아가겠지.

자연히 그의 무대를 향한 나의 인사는 둘이 되었다. 노래하는 내내 팽배한 시아준수의 아우라와, 그 사이사이에서 묻어나는 엘의 자취를 향하여.

다시 한 번 안녕, 엘.
그리고 어서 와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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