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번호의 팬님이 자리를 뜨고 그가 다음 순번을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을 신호로 나의 차례를 알리는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여자의 목소리였는지 남자의 목소리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걸음을 떼기 이전에 먼저 그의 시선이 와 닿았기 때문에.

기이한 순간이었다. 무대 위의 모든 것이 탁하게 바래고, 나를 향하여 빛을 머금은 얼굴이 마치 줌을 당긴 듯 확 다가왔다. 그 눈빛이 꼭 등대와 같아서, 홀린 듯이 다가섰다. 그에게로까지 대여섯 걸음이었던가. 걷는다는 자각이 없었던 것 같다. 본능에 가까운 이끌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만난 그 어떤 시선보다도 선한 눈이었다.


선하고 생기 있는 눈. 부드럽고도 상냥한 호의를 머금은 눈. 생면부지의 타인에 대한 그 어떤 의문도 담지 않은 눈. 마치,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나의 걸음걸음을 신뢰한다는 듯이.
옅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반짝반짝했다. 예뻤다. 이루 말할 수 없게 반짝였다. 빛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반짝반짝했다. 그다운 상냥함을 담고, '팬'이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 어린 눈이 맑게, 아름답게.


Incredible 가사지 위에 사인을 받고자 펼쳐 건넨 의도에 그가 영문을 묻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페이지를 휙휙 넘겨 맨 앞장을 열었다.
"여기다 해도 되죠?"
상상을 그대로 따온 모습에 나는 옅게 웃었다. 사인을 받기에 앞서 '사랑하는 Incredible의 가사 위에 새겨져도 좋고, 혹 오빠 마음에 드시는 곳 어디에라도 임의로 적어주셔도 좋을 것 같다'고 상상했던 그대로의 그가 견딜 수 없게 사랑스러웠다.

"성함이..?"

내가 적어둔 To.에 다시 갸웃하며 그가 물었다.
"이렇게 쓰면 돼요?"
이름이 아닌 것이 의아했던 걸까. 잠깐 멈칫하던 그가 슥슥 펜을 움직여 내가 적어둔 문장을 따라 적기 시작하면서도 한 번 더 살짜기 갸웃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적어주시면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저에게는 오빠가 음악이시거든요."

내 마음을 새기는 그의 손끝을 가만가만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얀 종이 위에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문장이 입혀지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 전할 수만 있다면, 가장 깊은 아래에서부터의 마음을 끌어모아 조용히 말했다.
"노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빠."
문장을 완성한 그가 내 마음을 돌려주며 나를 보았다. 살짝 깜빡이는 눈동자로 대답했다. '알겠노라'고.
그 어떤 여과도 없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그의 눈빛으로 시침이 멎었다. 시간이 멎는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돌아 나오는 순간 준비해둔 채 미처 건네지 못한 말이 하나 있음을 떠올렸다. 그것은 전하는 대신 그를 위한 기도로 속삭였다.
건강하세요 오빠.
여기 이곳의 마음을 전부 다 합한 것 이상으로, 행복하세요.


♡

너는 나의 음악 vol.xia
2015. 11. 13. 20:11-1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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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11.14

이 글의 마무리는 너라는 시간이 흐른다와 함께 했고, 오빠와 함께 단상 위에 있는 순간에 흘러나오던 노래는 Midnight Show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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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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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더욱 꿈만 같았던 것은, 한 차례의 꿈을 꾸고도 더 꿀 꿈이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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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08

12년의, 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