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귀갓길이었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에 모든 소리를 맡겨두고 가로등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는 중이었다. 처음 재생을 누르면서는 분명히 온 신경을 음악에 쏟고 있었는데, 점차 그의 목소리가 주는 영감에서 비롯되는 생각을 좇아가게 되었다. 목소리에서부터 시작해 도드라지는 리듬감, 앨범을 관통하는 계절감 등을 곱씹다 보니 소리는 점차 기계적으로만 듣고 있었다. 음악과 생각을 오면가면 맴도는 집중력 탓에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깜빡, 다시 노래의 궤도로 돌아왔다가도 깜빡. 그러다 마침내 모든 신경이 수면과 같은 생각 아래로 빠져들어 소리를 잃어버렸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한걸음에 시야가 바뀌고, 또 한걸음에 지나쳐가는 사람의 얼굴이 바뀌는 가운데 트랙이 바뀌어 새 노래가 시작되었다. 톡톡톡톡 경쾌하게 귀를 두드리는 비트에 이어 그가 노래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뭍으로 끌어올려 진 것과 같은 급작스러운 각성 상태에서 노랫소리가 귀에 꽂혔다. 눈이 부셔. 첫 소절. 이토록 아름다운. 둘째 마디. 저 멀리 어딘가로 사그라져 귓가를 맴돌기만 하던 청력이 빠르게 되돌아오면서 모든 감각이 제자리를 찾았다. 여름밤 공기가 소리에 실려 심장으로 들어찼다.
격렬할 정도로 소리가 증폭되어 박혔다. 외줄 타기 하듯 극도로 날 선 집중력 속에서 그의 노래가 마침내 한 꺼풀 벗겨졌다.
여름 냄새 나는 그의 목소리. 그 산뜻함에 반사적으로 웃어버렸다. 이토록 아름다워. 그 청명함이 시원한 바람을 몰고 왔다. 여름. 계곡. 시큼한 과일에 둘러싸인 여름밤 별빛 아래의 평상. 싱그럽게 자란 초록빛 잔디 위로 물줄기가 뿌려지는 상쾌함. 여름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를 몰아오는 바람처럼 목소리가 쏟아졌다.
어떻게 하면 여름 냄새를 이렇게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을까? 그는 어째서 이런 것이 가능할까?
그의 목소리가 만드는 자체적인 화음의 빗줄기가 너무나 따사로웠다. 너무 좋아서, 희비를 한꺼번에 움켜쥔 것 같았다. 비가 오는 동시에 해가 뜨고, 해가 있는데 달도 또렷하게 밝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종합적인 모순감에 마구 휩싸였다.
이 청량한 바다 내음. 물, 푸름. 겹겹이 쌓이는데도 끝까지 투명함을 잃지 않는 신비로운 목소리. 사랑해 마지 않는 어김없는 그의 강약. 그의 조화로움. 많은 것이 자연스럽게 들려왔고 무수한 인상이 숨처럼 스며들었다.
온전한 의미 그 자체로 노래가 너무 좋아서.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걸음을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보도가 제멋대로 쿵쾅거렸다. 그의 음악과 호흡하는 순간이 정확하게 일치했을 때 지나치는 행인들의 모습에서 그를 찾기란 쉬웠다. 와펜을 푸짐하게 얹어 댄디하면서도 귀여운 빨간 자켓과 흰색 레깅스에 싸인 무릎이 주던 경쾌감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완벽하게 사로잡힌 것을 느꼈다. 기뻤다.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