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시작하면서는 죽음의 게임과, 다시 읽으면서는 그남자와, 마무리는 12월 32일과 함께 하였습니다.
지금 기억하고 싶은 것은, 생일축하 노래에 못 말리겠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기꺼이 웃어주던 예쁜 얼굴. 고마워요.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고마워요.
돌아 나오는 걸음이 가볍고도 무거웠다. 눅신한 풀밭 위를 거니는 것처럼 살랑살랑 들떴다가도 돌연히 시무룩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그가 주는 사랑에 마음으로 화답하는 것이 전부인 나는, 몸 둘 바를 몰라 어떻게 해야 하나.
말을 그대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오빠가 단연 으뜸이다. 오늘 몇 가지의 선물을 받았는지 몰라. 노래하겠노라는 약속,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한데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당신. 나야말로 이 무한한 사랑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당신에게 하염없이 고맙고, 고맙고, 고마워서 애가 닳는다.
*
"행복하다"고 몇 번이고 말해주었다. 사흘 내내 마지막 토크에서는 물론이고,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시시로. 심지어는 노래하는 중에도.
마지막 날 스탠드 마이크를 두 손으로 움켜쥐어 자기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그가, 있는 힘을 다하여 "2015년,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하고 외쳐주었을 때,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안도감이 벅찬 기쁨 속에서 피어났다.
2014년을 떠올렸다. 그해를 결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29살 마지막 겨울, 그해 연말의 당신이 너무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당신이 보여주는 행복에만 이끌려 당신 품 안의 아픔까지는 보지 못했던 눈먼 내가, 나의 행복을 좇느라 당신의 번민과는 발맞추어 걷지 못하였던 것이 미안해서. 그래서 30살 겨울의 당신이 "덕분에 행복하였다"고 온 마음을 다하여 전해주었을 때 서러울 정도로 울먹이고 말았다. 당신의 노래와 웃음이 자양분인 나의 행복에도 비로소 자격이 생긴 것 같았기에. 한 꺼풀의 부채감을 지운 행복으로 그를 향하여 마주 웃을 수 있었다.
그는 상냥했고, 허물없이 다정했다. 지니타임의 정체 모를 소원을 경계하면서도 거리감을 두지 않았다.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도 결국 준비해온 정성과 바라는 염원을 물리치는 법이 없었다. 대부분 받아주고, 눈감아주는 편인 그가 드물게 너스레를 피우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허밍을 하거나, 도리질을 할 때면 그 천진스러움에 웃음이 만발했다.
곧바르도록 성실했다. 구석구석을 향하여 귀를 기울이며 다가왔다. 소원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여럿이 있지만 개인적인 정점은 랜덤플레이댄스였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사실 곰 세 마리를 위한 밑밥이었지만, 그 전에.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 안무에 맞춰 어떻게든 춰보려다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 시점에서 그의 얼굴을 스쳐 간 표정. 이래선 곤란한데, 아랫입술을 지그시 안으로 깨어 물고 미간을 굳혔던 찰나의 곤혹스러움. '지니가 되지 않고 있다'는 그 얼굴. 그가 어떤 마음으로 지니타임의 소원들을 대하고 들어주고자 하는지 여실히 보이는 표정이었어서 가슴에 콕 박혔다.
아낌없었다. 그가 우리의 관계를 일컬어 밀당이라고, 줄다리기라고도 표현한 적이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늘 그가 져주곤 하는 이런 일방적인 관계에서 어떻게 줄다리기가 성립할 수 있나. 지니타임은 말할 것도 없다. 잠시 숨돌릴 틈에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그런다. 뿐 아니야. 그는 이번에도 더블앵콜을 준비하여 왔다. 늘 더블앵콜을 소망하니, 이제는 그조차도 정식 세트리스트로 먼저 준비하여 오는 사람이다. 12월 32일을 부르고도 환해질 기색이 없었던 회장의 어둑어둑한 조명이 꼭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그의 마음 같아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였기 때문에, 끝끝내 트리플의 염원마저 들어주는 마음씨에는 눈물이 났다. 곤란하다고, 어르고 달래다가도 외면하지 못한다. 결국 전력을 다하여 다시금 다가와준다.
Incredible에서의 얼굴을 잊지 못하는 마음이 번잡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숨이 차올라 매듭짓지 못한 "여러분, 이 춤.... (아시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그시 감아내렸던 두 눈. 종지부엔 곡을 끝마치고 풀썩, 내려앉아 한참을 인사하던 상체까지. 정말 전부를 사랑으로 내보여준 당신. 당신처럼 자신의 사랑을 끊임없이 증명해 보이는 사람이 또 있을까. 개운함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듯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마움을 모아 속삭였다. 이것이 이 생의 마지막 트리플 앵콜이었어도 좋다고.
숨기는 것이 없었다. 너무 막 나가는 건 아닌가? 불현듯 갸우뚱하다가도 감추거나 걸어 잠그는 것 없이 소탈했다. 누가 뭐라해도 내가, 우리가 이미 그의 울타리 안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야한 이야기 좋아해요~"라며 때로는 짓궂은 장난을 걸어오고, 캐럴 메들리를 함께 부르면서는 오랜 친구처럼 투닥투닥 대기도 했다. 같이 부르자는 권유에 단호한 거절만이 돌아오자 짐짓 토라진 체 어이없어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십년지기의 스스럼없음이라,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철저하게 프로였으나 지나치리만큼 착했다. 준비되지 않은 노래ㅡ양화대교의 음을 처음으로 입에 담아보기에 앞서, '괜찮아'를 연호하는 객석을 향하여 못 말리겠다는 듯한 얼굴로 난처하게, 하지만 부드럽게 웃으며 '괜찮은 건 내가 괜찮아야 한다'던 순간적인 되짚음에서 그 전부가 동시에 느껴졌다.
섬세했다.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는 꼭 그 노래를 준비한 이유와, 이렇게 들어주셨으면 좋겠노라는 이야기를 덧붙여 주었다. 노래 하나하나에 따라붙는 설명이 꼭 노래에 대한 그의 음악적인 감상을 공유해주는 것만 같아 좋았다. 그의 울타리 안에서 그의 시선으로 그의 노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 또한 너무나 큰 선물이었으므로,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소중했다.
아름다웠다. 모든 순간에서 반짝반짝하였으나 웃음을 머금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서 유난스레. 그만의 '사랑의 창조'에서 한계 없이.
웃음 묻은 '너아사'는 먹먹할 정도로 예뻤다. 잔잔하고도 그윽하게 미소를 잃지 않고 불렀다. 이따금씩은 가슴 위로 살며시 손을 얹기도 했던 것 같다. 아지랑이처럼 고요하게 일렁이는 소리가 노랫말을 휘어감은 채 회장을 가득 울렸다.
어쿠스틱ㅡ'사랑의 창조'라 나의 마음대로 이름 붙인 이 세션에서는 내내 생각했다. 노래하는 모습이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또 있을까. 빛에 반사되어 하이얗게 빛나는 은녹빛의 머리칼이 아름다웠다. 그 아래로 노래를 머금어 집중한 얼굴이 아름다웠다. 두 눈에 그렁그렁한 사랑의 반짝임이, 두 볼에 홍조처럼 맺힌 그리움의 촉촉함이. 노래에 몰두한 감성이 그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으로 뭉쳐 꽃처럼 피어났다.
소리의 황홀함에 앞서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움에 정신 차릴 수 없게끔, 그렇게 아름다웠다.
노래가 아름다웠다. 소리가 아름다웠고, 비롯되는 감정이 아름다웠다. 부연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감성으로 적셔낸 그의 노래가 창조하는 세계가 아름다웠다. 그러한 아름다움의 현신으로 분한 그가, 소리의 결을 무궁히 바꾸어 쓰며 좋을 대로 수놓아가는 음악이 좋았다. 건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좋았고, 최소한의 반주와 함께하여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그의 소릿결이 좋았다. 절정으로 치달아 갈라지듯 강해지는 단단한 울림이 좋았다. 더불어 증폭되는 감정과 그 안에 깃든 사랑의 속삭임이 좋았다. 이따금 토해지는 듯하던 숨결마저도 좋았다. 매 순간이 좋았다. 가히, 어김없는 '사랑의 창조'였다.
마음 깊이 고마워했다. 앵콜은 각별할 정도로 전부가 그의 마음이었다. 가사를 곱씹으며 감히 짐작했다. 어렴풋하게 명멸하던 마음의 덩어리가 그가 노래를 하는 동안 상냥한 눈빛과 다정한 미소를 머금으며 점차 형체를 키워가더니, 종내에는 손으로도 만져질 것처럼 생생하고도 아릿하게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노래하는 눈빛이, 노래에 담긴 마음이 상냥하고도 촉촉하여 자꾸만 나의 마음을 적셨다. 노래의 화자로서 노래 안의 상대방에게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시아준수'로서 마주한 청중의 얼굴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5월 20일의 이슬을 머금은 나무를 떠올리게도 하는 따듯함이었다. 거짓 없는 눈동자에서 반짝반짝이는 빛이, 심장 저미도록 예뻤다.
그런데.. 어떤 부연 없이도 닿아오는 그 마음에 벅찬 와중에, 또렷한 언어로도 그가 말해왔다.
여러분, '참 예쁘다'고.
무대가 곧 자신의 마음이노라고. 상상과 꿈을 현실로 펼쳐 보일 수 있게 늘 힘이 되어주어 감사하다고, 전부 덕분이라고. 가득 찬 객석을 향하여, 그것을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며 자신의 기적이라 했다. 그래서 자신은 너무도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했다. 그런 자신으로 인하여 여러분 또한 행복하였으면 좋겠다고도.
시종일관 아낌없이 주었다. 표현할 수 있을 때마다 표현하려 한다던 여름의 말처럼, 그 마음을.
그리고는, 우리의 행복을 한데 끌어모아, 마치 유리를 다루는 손길로 더없이 조심스럽게 12월 32일에 묻어주었다. 우리의 영원과 함께.
나는 탄식하는 마음이 되었다. 이런 사랑, 또 있을까.
이런 사람, 다시 없다고.
댓글을 달아도 되는걸까? 망설였어요. 이글에 연꽃님이 오빠를 생각하시는 마음이 너무 커서 함부로 끼어드는 걸까봐. 근데 감사하단 말하고 싶어서 용기내서 남겨요. 읽고서 많이 울었거든요. 맞아,맞아, 오빠가 그랬지, 오빠는 이런사람이지-... 고맙습니다! 제 사랑도 무사하지만 가끔 들러 눈팅하곤했던 이곳의 사랑도 변함없는 것 같아서 큰 위로와 힐링을 받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