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의 깐샤큘 (슈크림은 아님!)

이틀만의 오빠는 그사이 염색을 하셨는데, 오늘은 그에 맞추어 빨간 귀걸이까지! 28일에 보았던 그 작고 동그랗고 빨갛게 반짝반짝 빛나는 그것이었다. 그런고로 오늘 눈부시도록 빨갛게 빨갛게 아름다우셨던 오빠.

그리고 오늘로써 마지막 왼블. 막공을 벌써 맞이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드라큘라에서 사랑하는 각도의 팔 할이 왼쪽의 시야에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다니. 오늘로 그 모든 시야가 마지막이었다니. 


1. 드라큘라의 성
“미신이 깊은 문화라고 말씀드렸었죠!” 버럭과 동시에 질끈 감아내리며 고통을 삭이는 얼굴. 그 찰나의 내려닫힌 눈꺼풀이 이루 말할 수 없게 아름다웠다. 붉게 물든 눈매가 이토록 어울리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근데 문득. 백작님이 대체 왜 조나단을 뒤에서 보고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미나가 있는 방에 몰래 미나를 보러 온 것이었던가? 미나를 찾는데 미나는 없고 면도하는 조나단만 있었던 거야?.. 오늘 저녁 만찬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로 했는데 도통 미나가 보이지 않아서, ‘오늘 저녁 만찬에는 약혼녀도 참석하시는 거죠?’ 초조한 마음으로 물어볼 틈을 찾아 면도하는 조나단을 주시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다 잠시 피를 보고 흡혈귀의 본능이 왈칵. 십자가의 방해로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다시 약혼녀도 참석하느냐고 물어봤던 것?… 미나는 그 순정 꿈에도 모르고 떠나버렸는데.. 새삼 이 대목의 그가 애틋하여 혼났다. 조나단에게 꼼짝할 생각도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 심술에조차도 당위가 느껴질 만큼.


2. Fresh Blood
마지막 왼블이었으므로, 프레시 블러드에서 가장 사랑하는 순간을 가장 사랑하는 각도에서 보는 것도 오늘로써 마지막.
몇 번을 봐도 그때마다 심장을 세차게 뛰게 하는 순간. 무대를 가로 횡단하시는 노백작님. 용암이 차오르듯 끓는 갈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E에서 A를 향하여 걸음 할 때의 노백작님. 그 걸음마다 소리와 카타르시스가 증폭되는 황홀경을 선사하시는 노백작님. 마침내 A와 B가 만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두 팔을 벌리고 빙그르르 한 바퀴 돌며 더없는 위엄을 자랑하시는 노백작님. 이 찰나의 영원과도 같은 런웨이의 노백작님.

회춘 후 탄성의 ‘피’는 오늘은 반대방향을 향했다. 언제나와 같은 왼쪽 날개의 뱀파이어 슬레이브가 아닌, 오른쪽. 처음 있는 일이야.


3. 윗비
‘그럼 이만’ 홱 몸을 틀기 전. 불청객에 방해받은 얼굴에서 흰자가 부풀어 오르듯 번뜩였다. 큰 눈의 동공이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고 도르르 굴러, 굉장할 정도의 희번덕임을 보았네. 희고 깨끗하게 빛나는 눈의 광채는 불만을 한가득 머금어도 아름답더라.


4. 삼연곡

She.
넘버마다 제각각의 맞춤 시야가 있다면 she는 거의 전부에 가까운 장면을 왼쪽의 시야로 사랑했다. 사랑하는 넘버를 사랑하는 각도의 시야로 만나게 되는 순간의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므로 오늘은 행복하면서도 울적했다. 네 번의 공연이 남았지만, 이 시야는 다시 허락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사랑의 순간을 나열해볼까. 
엘리자벳사를 돌아보며 아득한 옛사랑의 얼굴이 되는 왕자님. 엘리자벳사의 두 손을 꼭 잡고 순결한 사랑을 영원토록 맹세하는 왕자님. 행복한 날들도 잠시뿐,의 살포시 찡그려지는 미간의 왕자님. 지옥의 밤을 보내고 다시 엘리자벳사와 포옹을 나누는 왕자님.

그리고 매번 가슴을 아프고도 황홀하게 두드렸던, 죽어가는 그녀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왕자님. 이때 마치 영혼의 지푸라기라도 잡듯 애처롭게 그녀의 어깨와 팔을 끌어안고 울음하는, 좌측으로 살짝 비켜난 각도에서 바라볼 때 볼 수 있는 웅크린 전신의 그를 사랑했다. 그의 울음이 저주가 되고 다시 애원으로 변해가는 이것이야말로 노래가, 사랑이 그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도 처절한 비극이라 여겼어.

그 비극의 정점에서 저주받은 영혼의 절규는 오늘도 지상의 것이었다. 싸늘하게 식은 그녀의 주검을 앞에 두고 죽음의 고통보다 극렬한 상실의 비명.

그런데 오늘, 작은 십자가를 무너트린 직후의 휘청거림을 보았다. 비틀 거리며 서너걸음 뒷걸음질하던 그가 원래의 동선대로 제단을 찾아가기까지는 얼마간의 진정이 필요했다. 찰나지만 분명히 보았어. 차오르는 감정에 밀려 뒷걸음질하던 다리. 탁 터진 분노에 차마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만 같던 그를.


At Last
뺨을 쓰다듬는 손길보다, 그녀의 두 손을 꼬옥 움켜쥐는 손길이 더욱 아팠다. 볼에서 손으로 더듬더듬 옮겨간 손이 아프고도 아프게 그녀의 두 손을 그러쥐었을 때, 드라큘라 성에서의 재회에서와같이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마주 잡아 오는 그녀의 변화가 서러울 정도로 아팠다. 두 사람이 마침내 마음으로 만났는데, At Last인데, 2막의 사랑의 일치를 이루기까지 아직도 넘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음을 알기에.

이전의 삶을 선택하겠다구요? 의 말투는 오늘도 변화를 이어갔다. 원망이 아니라 애원처럼. 버림받은 아이처럼. 왜, 이게 아닌데, 온몸으로 동요했다. 

마지막 그림은 ‘당신은 이미 결혼했어!’와 함께 뻗어지던 손이었다. 애틋하게, 어렵게, 간신히 그녀를 향해 뻗었으나 닿지는 못한 채 허공에서 움츠려지던 손.


Loving You Keeps Me Alive
왼쪽의 시야로 사랑한 장면이 여기에도 있다. 해돋이를 불러일으키는 그를, 내 허무한 삶의 유일한 빛에서 무릎으로 무너지는 그를, 새벽을 향하여에서 결국 털썩 주저앉고야 마는 그를 사랑했다.
미나의 결혼식에 안돼, 안돼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멀어져만 가는 그 역시.

염색한 머리에서는 붉은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는데, 삼연곡 전부를 마칠 때가 되어서는 양 볼이 모두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마저도 사랑에 데인 상처같이 보여서.. 또 슬펐당.


5. Life After Life
시작부. 핏빛 조명이 드리워진 무덤벽을 등진 채 한 손으로만 묘지의 문을 조종하여 닫는 그가 얼마나 그림이었는지. 빨간빛 조명이 그의 아름다움을 어느 경지로 부각시켜 빛나게 하는지! 

그리고 처음 보는 제스처가 있었다. 루시가 나올 문 기둥에 한 팔을 살며시 얹고(원래는 문 근처로 다가가기만 하는 동선), 그 공동묘지 안의 모든 죽은 영혼을 어르는 것처럼 잠시 기대어 서있었다. 빨갛게 빛나는 무덤벽과 비스듬히 마주선 그 모습이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몰라.

오늘의 소절은 단연코. 너의 세상, 찾아서 파-괴 하거라의 박자 쪼개어 밀기. 안겨드는 루시를 밀쳐내며 부르는 대목의 가사인데, 박자의 밀고 당기기까지 더해지니 루시를 더더 성가셔한다는 느낌도 주었당. ㅋㅋ


6. The Master’s Song (Reprise)
그의 팔을 가로질러야 했을 핏물이 오늘 객석의 시야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바깥쪽으로 흐른듯?). 대신 렌필드의 콧등 위로 떨어진 몇 방울을 보았다.
‘멍청한 놈!’은 오늘 박자를 완전히 밀어서, 한 템포 늦게, 꾸짖는 것처럼 빠르게 내뱉었다. 마지막 음절과 거의 동시에 두 손으로 쥐고 있던 렌필드의 얼굴을 튕기듯이 밀쳐냈고. 이 부분의 디테일 변화 정말 좋아.


7. Mina’s Seduction
왼쪽 시야를 말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넘버. 도입부의 모든 장면을 왼쪽의 시야로 사랑했다. 흐릿한 안갯속에서 고민하는 미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썹으로 반응하는 그를. 별빛보다 영원한 나의 삶, 영원한 쾌락을 속삭일 때 눈썹으로 경련하며 그녀를 유혹하듯 설득하듯 온 마음으로 진심인 그를.
그리고 이때는 눈썹 뼈의 섬세한 움직임을 볼 수 있는 넘긴 머리가 좋아. 이마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 또 없지요. 오늘의 깐샤큘 만세.


8. It’s Over
요즘 자꾸만 귀여움을 담당하는 이츠오버. 매번 장풍을 날릴 때의 자그마한 주먹이 참을 수 없는 귀여움을 선사하더니, 오늘은 진짜 심각한 귀여움을 만났다.
3일 밤공에서 보고도 제대로 본 게 맞는지 갸웃한 장면이었는데 오늘 분명해졌다. 미나가 끝까지 완전하게 풀어헤친 블라우스의 밑단을 재등장하기 전에 살짝 잠그고 나타난 그를 목격했어. ㅋㅋ 요기 가장 아래, 밑단만 잠그면 아무도 눈치 못 채겠지? 하는 것처럼 아무 일 없었단 듯이 장풍을 쏘는 그가 멋있음에 앞서 귀여워서 아주 혼이 났다.

그리고 오늘은 정말 제대로 보았다. 피격의 장면. 기억하는 바대로의 그림처럼 우아하고도 위급하게 비틀거리며 땅을 짚는 순간의 그를. 역시 왼블은 사랑입니다.

박자 밀당이 점점 탁월해지는 소절은 ‘앞으로 나의 삶은’. 앞 소절과 아주 잠깐의 쉼표만을 두고 곧바로 이어갔는데(마치 랩처럼), 팽팽함의 극대화로는 안성맞춤이었던 선택.


9. Train Sequence
왼블의 트레인 시퀀스 한 줄 감상 = 시아준수가 아름다워요. 왼블의 트레인 시퀀스는 사랑입니다.


10. The Longer I Live
마지막 소절. 요즈음의 그는 울먹인다. 촉촉함을 넘어 소리를 잇지 못하는 울음이 스며 있는 소리를 들려줘. 관을 바라볼 때의 비통함 역시 증폭되었다. 관을 보는 물기 어린 눈이, 꼭 관으로 대변되는 암흑 속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오늘 아주 온 힘을 다해 새겼어. 무너진 성벽 기둥을 오르며, 왼쪽의 시야로서는 점점 더 높은 고지로 멀어져갈 때의 그. 더 높이, 더 멀리 오를수록 아득하게 메아리쳐 돌아오는 소리와 차오르는 회한의 그. 계단을 내려오며 관 뒤의 그늘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의 그. 왼쪽의 시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전부를.


11. Loving You Keeps Me Alive reprise
반헬싱이 사라진 무대의 왼쪽을 향하여 고개를 떨구고, 울음으로 번져가는 노래를 가까스로 머금는 그의 얼굴(의 정면)도 오늘이 마지막. 아흑흑. 그의 울음이 공연을 거듭할수록 서럽게 번져가고 있어서 더 마음 아파.. 


12. At Last
왼쪽의 시야를 사랑하는 팔 할의 반이 She에 있다면, 남은 반은 2막의 At Last에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폐허 된 성의 기둥 사이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낼 때의 그를 필두로 왼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모든 얼굴의 그를 사랑했어.

십자가를 내던지고 다가오는 미나에 뒷걸음질하는 얼굴을. 정말 나와 함께 가겠어요? 묻는 얼굴의 그를. 스스로 그녀에게 죽음의 칼을 내미는 표정을. 그리고 차가운 암흑 속의 저주받은 영혼을 울부짖는 순간의 비통함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관을 일으켜 세우는 뒷모습의 그와, 마지막. 관 속에 잠겨 상체만을 내민 채 그녀와 마지막 입맞춤을 나누는 옆모습의 그를.

마지막 왼쪽의 시야로 목격한 오늘 슬픔의 최정점은 두 사람의 손이 맞닿았을 때였다.

1막의 At Last에서 그가 먼저 그녀의 손을 감싸 쥐는 것과는 반대로, 2막에서는 그녀가 먼저 다가와 그의 손을 잡는다. 정말 나와 함께 가겠어요? 물으면서도 뒷걸음질하는 그를 먼저 잡아 세워. 칼을 내밀며 또 도망하려는 그의 품 안으로 다시 안겨드는 것도 그녀다. 그가 아니라 그녀가 먼저 다가온다는, 이 자그맣고도 거대한 변화가 새삼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찔러왔다. 이렇게 마침내(at last) 서로 같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와 동시에 목전으로 다가온 이별이 야속하여.

마지막 포옹의 순간. 와락 안겨드는 그녀보다 한 박자 늦게 팔을 굽혀 그녀를 끌어안는 모습에는 왈칵하고 말았다. 그 순간의 모든 공기, 떨림, 울음까지 마지막으로 품 안에 보듬어보겠노라 하는 듯한 팔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이 너무나도 가마득했다. 먹먹하고도 미어질 듯한 얼굴로 그녀의 육신과 영혼을 전부 감싸 안아보고자 하는 그가 너무도 눈에 시렸어.

그래서 오늘의 기도는 이것이 되었다.
당신이 바라보고 담은 모든 것이 당신의 마지막에 온전히 함께 하였기를.


*

안 웃겨요? 밤새 준비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