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공은 돌아온 오대오의 내린 머리. 밤공은 2막의 깐샤큘 (역시 슈크림은 아님).
그리고 낮밤 모두 2월 2일의 빨간 귀걸이. 시아준수가 빨강과 예쁜 사랑을 종일토록 해주신 오늘의 공연 만세.

마지막 종일반은 1층과 2층의 조합. 낮공은 마지막 우블, 밤공은 처음이자 마지막 2층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의 2층은 뮤지컬로서는 처음이었는데, 이럴 수가? 음향의 신세계를 만났다. 예술의 전당이나 성남아트센터의 2층과는 차원이 다르던걸. 이렇게 깊고도 풍부하며 선명한 소리라니. 이런 음향이라니. 그야말로 ‘짱짱’하여서, 이제까지와 같은 공연을 보고 있는 게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리고 기뻤다. 이런 소리로 오빠의 드라큘라를 들을 수 있어서.


1. 드라큘라의 성
돌아온 엘리자벳사와 백작님의 사이를 두 번이나 번번이 막아서는 조나단이 오늘처럼 거슬린 적이 있었나 싶다. 미스 미나 머레이에게 환영의 손키스를 하는 그를, 그녀는 나를 살게 한 유일한 빛이라 말하는 그를 매번 ‘백작님’ 하고 멈추어 세운다. 약혼자라는 자격으로 그와 그녀 사이에 당당히 버티고 서서. 낮공, 우블의 정면으로 본 그의 얼굴에도 역시 못마땅한 기색이 숨김없이 떠올랐다. 형형한 광채의 두 눈이 느릿하게 부풀며 성가신 빛을 머금었다.

그래도 ‘그녀’와 다시 만났다는 환희가 그를 억눌러 주었는데. 인사도 없이 그녀가 떠나버린 후에는 그도 인내의 필요를 잃었다. 급한! 일이었답니까, 에서 평소보다 훨씬 몸을 부풀려가며, ‘들썩한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역정을 내더니 조나단에게 이 방에 꼼짝도 하지 말고 있으라는 으름장을 놓을 때는 정말로 인정 봐주지 않고 싸늘했다.

그리고 정말로. 노백작님일 때의 그는 ‘눈으로만’ 하는 연기에 통달한 것처럼 보인다. 미스터 하커! 에게 일갈하는 눈빛, 미나와 그의 사이를 막아서는 조나단을 향한 성가신 눈빛,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다시 만난 눈빛.

노백작님일 때의 그가 그녀를 보는 표정이 좋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집요한 빛이 좋아. ‘그녀는 나를 살게 한 유일한 빛이죠’라 말할 때에 이르러서는 마치 주문을 거는 듯한 눈이었다. 나를 기억해 내. 네가 나의 유일한 빛이야. 그만이 가늠할 수 있는 미묘한 열기를 공기 중에 자욱하게 흩뿌리면서.


2. Fresh Blood
오늘 감히 대단하였다 말해본다. 무엇보다도 파워가. 심장에 박혀오는 카타르시스가 압도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의심하지 마’는 어느 때보다 느리고 음산하였는데, 자욱한 안개 같은 소리였다. 위압적이고도 스산했어. 절대자스러웠다. 특히 2층에서 들으니 이 소리야말로 그가 의도한 변화의 소리였구나 싶었어.
이어 몰아치는 파워는 역대 최고. 정점은 나의 여왕 다시 찾!겠어에서 파편처럼 튀던 강세. 아….

재연의 프레시 블러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흡혈 직후 젊음을 되찾은 음성. 들어도 들어도 소름을 돋게 해. 그리고 뱀파이어 슬레이브를 내려다보며 음미하듯 내뱉는 탄성의 ‘피’. 오늘은 다시 왼쪽 날개를 내려다보는 얼굴이었다. 역시 5일 공연의 오른 날개가 레어였당.

참, 낮공. ‘우리는 어둠 속에서’ 태양을 피해 살지만! 장갑을 빼내기 직전 소절의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가로로 도리도리했는데 엄청 귀여웠어..


3. 윗비
낮공의 오대오를 보는 순간 숨조차 쉴 수 없었어. 프레시 블러드 회춘 직후의 앞머리가 양옆으로 갈라져 있길래 설마 했는데 정말이었다. 세상에. 혼미한 와중에 또 너무도 그답다 여긴 부분은 초연 그대로의 부슬부슬한 오대오가 아니라 생머리의 오대오였다는 것. 초연을 되살려 오면서도 재연의 틀을 잃지 않는 면모가 너무도 그다워서 감격적이고 감동적이고 그랬다.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에선 낮밤 모두 아름답도록 신사의 얼굴이었다. 살포시 싱긋, 웃어 보이는 그가 얼마나 근사했는지.


4. Lucy & Dracula 1
오대오의 ‘내 혈관의 모-든 피’가 주는 감격이란. 때마침 우블이었어서 그 순간의 정면이 얼굴이 보이는 자리였는데 이마와 눈썹뼈까지 고스란히 눈에 담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이렇게 다시 와줘서 정말 기뻐요.

오늘의 대사 톤도 유난히 좋았다. 첫머리의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미나’부터 그렇게 해주지의 마지막까지. 안정적? 인상적? 그런 걸로는 설명할 수 없는 드라큘라 그 자체의 말투였다.
특히 낮공. 넌 선/택/했/어. 스타카토처럼 뛰던 네 음절. 이어 완전히 하이를 찍으며 가파른 오름세를 타던 ‘다른 이들은 구걸을 하고 애원을 하고!’의 포르티시모. 그러다 마치 탄식처럼, 이해 못할 울음처럼 탁 터지며 터트려지던 ‘영혼을 팔아서라도!’의 정점이란. 시아준수는 대사 톤까지 왜 이다지도 노래 같은 거죠?

그리고 오늘도 보았다. 흡혈 직후 흡혈의 감각이 주는 황홀함에 멍해진 얼굴. 두세 걸음 정도 뒷걸음질할 때 희미하게 스쳐 가는 찰나의 표정을.


5. Mist
재연의 그는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었는데 그대로인 오대오의 그림자 영상이 못내 걸렸는데, 돌아온 오대오로 덕분에 오랜만에 이 부분에서도 마음이 편했당.


6. 삼연곡

She.
오대오의 she가 시작되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재현되고 있었다. she만큼은 오대오의 그여야 한다고, 사실은 내내 그리워하였는데. 믿을 수 없는 당신. 14년의 가장 고결한 그림을 불러와 16년의 오늘로 새롭게 채색해주었다. 사랑의 어제가 오늘의 현실이 된 감격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단지 과거를 ‘되살려오는’ 차원이 아닌, 오늘의 것으로 새 생명을 입혀 ‘재창조’해내는 그인데.

작은 십자가를 내치며 파편처럼 흩어지는 음절들은 마치 비명의 소리 같았다. 새된 소리가 마구잡이로 긁혀서 났다. 정제되지 않은, 아니 정제의 노력조차 거칠 겨를이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몰아치는 소리가 팽배했다. 슬픔과 분노에 숨구멍마저 막힌 듯한 소리라서,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 것인지 염려될 정도의 그였다.

십자가를 찌르고 무릎으로 무너지듯 내려온 그가 엘리자벳사의 앞에서 지상의 절규를 내뱉은 후.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디디며 아파하고 아파해도 그녀에게 갈 수 없는 고통으로 허물어질 때는, 이번에는 내 쪽에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이 세상 너머의 아름다움. 가장 아름답고도 잔혹한 동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밤공에선 또 한 번 칼날 부분을 잡고 들어 올리는 바람에, 손잡이 쪽으로 칼을 돌려쥐었는데 이 찰나가 너무도 좋았다. 앞으로도 매번 볼 수 있었으면, 싶을 정도로.


At Last
낮밤 모두 ‘이전의 삶을 선택하겠다구요’에 원망이 돌아왔다. 원망의 소리는 낮공보다 밤공에서 더 선명하게 그녀를 책망했다. 어째서 나를 외면하는 거야.
그리고 역시 낮밤 모두, 발작이듯 고개를 부르르 떨며 외쳤다. 작은 주먹으로 바닥을 쿵 내려치며, ‘당신은!'
멀어져가는 그녀를 향해 한 손을 뻗고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쥐며, ‘이미 결혼했어..’ 작은 손에 들어찬 심장이 그의 얼굴에 고통의 빛으로 모였다. 그는 지친 슬픔의 얼굴로 울었다. 지친 기색 가득한 눈매와 어깨가 유난히 안쓰럽고 아이 같았어.


Loving You Keeps Me Alive
시작부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미어지는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었다. 빨간 눈가에 눈물이 맺혀 반짝반짝 눈 부신 빛을 냈다. 심장을 쑤시는 고통을 삭이는 것처럼 지그시 눈을 감을 땐, 아득한 상실감이 얼굴을 스쳐 갔다. 깊은 체념과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독에 빠진 듯한 얼굴로 ‘꿈같은 삶, 완벽한 인생’에 집착하는 그녀를 보는 그를 삼킨 무력감이.. 너무도 아팠다.

마지막 남은 생명을 전부 쥐어짜서 부르는 듯한 눈물의 세레나데였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루시의 부케를 받을 때조차도 서글퍼 보였다. 버림받아 갈피를 잃은 아이의 될대로 되라는 심정에서 비롯된 심술 같아서, 그마저도 안쓰러웠다.

밤공에선 오랜만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마저도 잊어버린 그 같았어.


7. Lucy & Dracula 2
사르륵 미소가 스며든 얼굴로 한 바퀴 고개를 비잉 돌려 흡혈의 기대를 음미하는 그는 늘 너무나도 아름답다. 음미를 마친 후 돌연히 부릅뜬 눈으로 루시를 더듬어 포착한 후, 번득이던 흰자도 역시 위협적으로 아름답고.


8. Life After Life
5일 공연에서 새로 사랑에 빠진 장면. 시작부의 빨간 빛 벽면을 등진 채 군림하는 그. 이때의 풀샷, 정말 그림이다. 영원에 멈추어 두고 싶을 만큼 아름다워. 얼굴을 보고 싶은데 붉은빛을 딛고 선 그가 너무도 아름다워 풀샷을 보아야 하는 포기할 수 없는 고통도 얻었지만..

너의 세상, 파괴하거라의 박자 쪼개기는 오늘에도 이어졌다. 밤공에선 루시가 또다시 매우 폭삭 안겨서, 살짝 뒤로 밀린 그가 정말로 정색을 하며 떼어냈다. 그 직후의 소리라서 그런지, 밤공의 ‘파괴하거라’에서 역시 성가신 기색이 매우매우 역력하였고. 아무래도 나름의 상관관계가 있는 느낌인데.


9. The Master’s Song (Reprise)
재연에서 정말 두드러진 변화를 맞이한 장면이 아닐까. 여기서 보여주는 표정이 점점 많아진다. 오늘은 마치 너를 어떻게 해줄까, 하는 듯이 렌필드를 빤히 보았다. 폭풍전야 같은 짧은 침묵 후에 두 손으로 그러쥐듯 하였던 뺨을 홱 밀쳐낸 그가 말했다. 멍청한 놈. 그리고는! 느릿느릿 뒷걸음으로 물러나며 렌필드를 내립떠보는데! 그때의 얼굴이! 정말로! 섹시했다!!


10. Intro to Please Don’t Make Me Love You
5일 공연의 그때, 다시, 불러요의 강약에 밀고 당기기가 ‘심어진' 느낌이었다면, 밤공에선 훨씬 더 분명하게 ‘박혀 있었다’. 쉼표에서 준마침표가 된 느낌으로 방점을 찍은 느낌이었어. 그때. 다시 불러요.

그리고 낮공에서 정말 완벽한 ‘거-짓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거-짓말.


11.  Mina’s Seduction
이번 낮밤처럼 흡혈 당할 때 뒤로 스러지는 고개가 극적이었던 적이 없다. 떨구어지는 한 팔도 그림 같았어. 스르르 미끄러지듯이 풀썩.

밤공에선 또다시 그의 어깨가 보였는데, 오늘은 그 옷자락을 쥔 미나가 바로 여며주지도 않아서.. 어깨가 거의 내도록 보여서 살짝 걱정을 했다. 저 상태로 어떻게 이츠 오버를 하징. 옆으로 스러져가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정리되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단추가 모두 뜯어지는 것까지는 그렇다쳐도 어깨까지 보이는 건 너무 위험한 것 같아..


12. It’s Over
역시 오늘의 귀여움 담당. 낮공에서 다시 전-부 뜯어지는 바람에 재등장하면서 단추 밑단을 잠그고 나온 그를 보았다. 밤공에선 다행히 뜯어짐이 덜하여서 멋짐에 집중할 수 있었어.

낮공에서 정말 인상적이었던 표정. 날 버리고, 이 자를 선택하겠다고?! 미-이-나! 절규하는 얼굴에서 좌절감이 만져질 듯 선명했다. 넌 아직도 내게로 다 오지 않았구나.. 이런 느낌의 무너짐이었어. 그리고 이 감정이 내내 이어졌다. 트레인 시퀀스와 더 롱거를 쭉 관통하여서.


13. Train Sequence
이츠오버에서 그를 덮친 허무함과 무력감이 가득히 번진 얼굴을 보았다.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하였는데도 결국 그가 아닌 이의 역성을 든 그녀로 인한 충격.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그녀를 향하는 법밖에는 모르는 순정을 어쩌면 좋을까. 어둡고 세찬 물결 속에서 자조하고 혼란스러워하다 돌연한 그녀의 기척에 본능처럼 반응하는 그를 어쩌면 좋아.


14. The Longer I Live
낮공의 이츠오버 엔딩-트레인 시퀀스-더 롱거의 매듭은 정말 완벽했다. 이런 감정선, 놀라울 정도로. 바스러질 것 같은 도입부와 메아리치는 마지막 세 소절은 노래로도 완벽했다. 가맣도록 가득한 검푸른 바다를 펼쳐내는 그의 소릿결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 외에는 달리 소화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15. At Last
그녀와 마지막 포옹을 나눌 때였다. 왈칵, 순간적으로 울음이 모여드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찰나였다. 틈 없이 서로를 껴안은 아주 잠시 후엔, 다시 분리되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으므로 그는 금세 감정을 갈무리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울음이 모여든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그가 아팠다. 심지어는 희미하게나마 미소까지 힘겹게 머금는 그 노력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어.

밤공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받은 내 인생은, 진짜 울음이었다. 울음이 소리가 되면 이런 것일까 싶게. 낮에 울음이 모여든 얼굴을 필사적으로 그녀에게 보여주지 않고자 하던 그가 결국 소리로는 숨기지 못했다. 제발, 이렇게 고통스러운 나를 보내달라는 애원처럼도 들렸다. 밤을 허락해줘요. 자유를 줘요..

그래서였을까. 낮공에선 죽음의 고통으로 그녀를 차마 바라보지 못한 채 관 안에서 질끈 눈을 감아버렸던 그가, 밤공에서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를 향한 시선을 놓지 않았던 것이.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프면서도, 이제 모든 것이 끝이 났노라는 모종의 안도감 또한 느꼈다. 다 끝났으니, 이제는 안식을 향하여 가겠노라 하는 것 같던. 죽음의 고통조차 그를 막지 못했다. 더는 무엇도 그의 영혼을 묶어놓지 못하리라는 구원의 해방감이 그를 삼켜버린 후였으므로.

낮공의 그는 사랑을 잃었으나 밤공의 그는 자유를 얻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랬다.

*

안 웃겨요? 이게 왜 안 웃기지..